2013년 7월 16일 화요일

번역은 어떻게 할 것인가

이전 글에서는 필자가 일제시대 영어 읽기 방식대로 영어를 한국어로 옮기는 고질병에 대해서 지적했다. 그리고 중국인들의 자기 말 영어로 옮기기가 얼마나 잘 되어 있는지도 칭찬했다. 그렇다고 일본에서 본받을 만한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일본에서 본받을 점은 발음이 아니라는 것일 뿐이다. 바로 일본에서 본 받을 것은 외국어를 뜻으로 번역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psychopath라는 영어 단어의 뜻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정신병질'이라고 나온다. 이게 무슨 소용인가? 요새는 psychopath라는 말이 많이 대중화되었지만 10년 전만해도 매우 생소한 단어였다. 심지어 심리학을 전공하는 학생 중에서도 이 단어의 영어 및 한글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정신적 문제를 통칭하는 말'이라고 이해하는 웃지 못할 상황을 필자가 목격한 적이 있었다. 즉, psychopath나 정신병질이나 웬만한 학생이 이해할 수 없는 외국어이기는 마찬가지였다는 것이다. 아마 현재는 정신병질이라는 우리 말(중국 말? 혹은 일본식 한자?)은 여전히 생소하지만 psychopath라는 영어 단어가 귀에 익숙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현재 한국어의 문제점이다. 한자가 한국어 단어의 70%를 차지하는데, 그 많은 단어들이 모두 '음'으로 읽히기 때문에 한자 단어를 듣고 바로 그 뜻을 이해하기는 어렵다. 이렇게 음으로만 번역하는 행위는 영어를 번역하는데도 그대로 이어져서 영어단어나 영어를 번역해 놓은 단어나 둘 다 이해 못할 외국어 신세를 면치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영어책을 읽을 때 모르는 단어의 뜻이 유추가 되는 경우 그대로 그 단어를 외라는 조언이 나오는 것이다. 사전 찾아 봤자 무슨 소리인지 모를 뜻 풀이만 한자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냥 영어를 쓰지 번역은 왜 하는가?

그런데 일본에서는 이런 영어 단어를 뜻으로 번역하기도 한다고 한다. 영어를 번역할 때 뿐 아니라 일본어 자체가 한자를 읽는 방식도 음을 읽는 방식과 뜻을 읽는 방식 두 가지로 이루어져 있어서 (두 가지 이상일 지도 모르겠지만 필자의 지식이 여기까지이다), 처음에는 어순이 같아서 배우기 쉽다던 일본어가 깊이 배우면 배울 수록 정말 어렵다는 하소연을 빈번하게 들을 수 있다. 우리 나라에서도 예전에 이두와 같은 글자에서 부분적으로 한자의 뜻을 소리로 표현하는 경우가 있었다고 하지만 체계적으로 발전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이해 못할 영어 단어를 이해 못할 한자어로 옮겨놓고 번역자만 이해하는 자회자찬은 그만두고, 한자도 영어도, 외국어는 뜻으로 번역하는 노력을 기울여 보자고 제안하고 싶다. 

아울러 현재 굳어져 있는 잘못된 번역들도 바로 잡아 보는 것은 어떨까? 그 대표적 예가 Developed countries를 선진국이라고 번역하는 것이다. Developing countries는 후진국! 그래도 한국이 여기에 속하는 기간이 있다 보니 우리 번역도 바뀌었다. 개발도상국으로. 필자는 이 후자의 번역이 더 정확하다고 본다. 그렇다면  Developed countries는 그대로 좋은가? 사실 선진국은 Advanced countries라는 다른 영어표현이 있고, 이는 잘 쓰이지 않는다. 쓰이더라도 아주 제한적으로 어떤 영역에서 앞서가고 있는지를 명확히 밝혀야만 쓸 수 있는 매우 쓸기 까다로운 표현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적합하지도 않는 번역어 선진국이란 단어를 남발하고 있을까? 이제 우리도 이 표현을 쓸 때에는 다음 질문에 명확히 대답하도록 하자. In what area?

그렇다면 Developed countries는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개발완성국. 너무 길다. 개발국 정도가 적합해 보인다. 경제 개발을 완성했다고 그 나라가 선진국이라는 발상은 사실 과거 (혹은 현재에도 계속되고 있는) 서구 중심의 사고 방식이다. 정말 서구의 문명이 선진적이어서 경제 개발에 먼저 성공했다고 아직도 믿고 있는가? 여러 식민지와 아편전쟁 등을 통해 다른 대륙에서 부를 탈취해 가서는 아니고? 과거에 얼마나 정당한 혹은 부정한 방법으로 부를 취득하고 경제를 개발했는지는 이 글의 논점이 아니다. 따라서 여기서는 분명 다른 나라에서 (역시 일본이 아닐까?) 번역된 말도 안 되는 표현을 줏대 없이 그대로 가져다 쓰는 행동은 좀 자제하자는 것이다.

그 외에도 어느 나라에서 번역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우리가 아무생각 없이 가져다 쓰는 단어들이 많다. United Kingdom (UK or Great Britain, GB)을 영국이라고 부르는 것도 그 한 예이다. 영국이라는 단어는 분명 England라는 단어에서 왔을 테고 이 지역은 UK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British 사람들 중 England 출신이 아닌 경우 English라고 하면 무지하게 싫어한다. 그런데 우리는 여전히 이 나라를 영국이라고 부르고 있다. 마치 미 대륙의 원주민들을 아직도 인디안이라고 부르는 것 처럼. (콜롬버스가 처음 미 대륙에 도착했을 때 그는 자신이 인도에 왔다고 생각해서 그 곳 주민들을 인디안이라고 잘못 부르기 시작한 것이 지금까지 고쳐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미국에서도 공식적으로는 이제 Indian이라고 하지 않고 Natives라고 명칭을 바꾸었다. 그러나 일상적으로는 여전지 Indian이라 불리고 있다. 아직 인도가 강대국이 아니고 미 대륙 원주민들이 힘이 없어서 그렇지 내가 인도인이었으면 혹은 미대륙 원주민이었으면 대노할 사안이다. 이런 것이 바로 왜 우리가 시야를 넓혀야 하는가와 맞물리는 사안이다. 사실 한국인들도 다른 나라가 한국에 대해서 잘 모른다고만 불평하지 자신들 시야가 좁은 것은 생각 못한다. 한국인들이 이런 미대륙 원주민들의 아픔을 모르고 인도인들의 아픔을 모르면서 영국이 한국에는 나쁜짓 하지 않았다고 신사의 나라라고 불러주는데 누가 한국을 침범한 일본이 죄를 제대로 뉘우치지 않는다고 함께 아파해 주겠는가?) 

또 말이 샜다. 그럼 본론으로 돌아가서 영국은 어떻게 번역할 것인가? UK라는 이름으로 보면 '합왕국'으로 번역하는 것도 좋겠다. US가 '합중국'인 것처럼 말이다. 혹 British (GB)라는 관점으로 본다면 '부국'이라고 하는 것은 어떨까? 혹 더 좋은 아이디어가 있는가?

마지막으로 짚고 넘어가고 싶은 번역은 3인칭 대명사이다. 현재 우리는 he는 그로 she는 그녀로 번역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말의 '그'는 남녀 성별 구분이 없는 대명사이고, '그녀'라는 말은 원래 없던 말로 영어 she를 번역하기 위해 만들어진 신조어이다. 혹자는 신조어를 도입해서 한국어가 풍부해질 수 있다면 무슨 문제인가하고 그녀라는 번역어를 옹호한다. 이도 일리가 있는 말이다. 하지만 '그녀'라는 신조어를 만듦으로써 '그'라는 단어의 성별 무관함이 사라진다면 이 또한 한국어의 한 풍부함을 잃는 것은 아닌가?

물론 영어에서도 성별 구분 없이 3인칭 대명사를 써야 하는 경우가 생기면 he를 일반적 대명사로 사용한다. 그러나 그 어떤 경우에도 he는 일차적으로 남성이다. 따라서 성차별적 사용이라는 문제가 제기되는 것을 피할 수 없었고 그 역으로 일반적 3인칭 대명사로 she만을 쓰는 경우도 있다. 그 동안 받았던 차별을 뒤집기 위해 he로 일반적 사람을 지칭할 수 있다면 she만으로도 그렇게 할 수 있다는 주장인 것이다. 근래에는 이런 논란을 피하기 위해 일반적으로 누군가를 칭할 때는 he/she라고 두 대명사를 병기하는 경향이 강해졌다. 그래서 한국어 번역은 다음과 같아진다. 그(녀).

이것이 바로 우리 말 남녀 성별 편향성이 없는 '그'라는 단어에 남성 편향성을 집어 넣은 결과이다. 원래 '그'는 남녀 통칭하는 대명사이다. 따라서 he/she는 '그'로 번역하면 된다. 하지만 20세기부터 번역하기 시작해서 21세기에는 자리잡아버린 신조어 '그녀'로 인해 '그'라는 대명사에 편향성이 생겼고 이제 우리는 영어 사용자들이 가지고 있는 논란을, 원래 우리 단어 '그'를 지켰다면 없었을 그 논란을 고스란히 겪게 생겼다. 이 얼마나 우매한 일인가. 

그렇다면 he와 she는 어떻게 번역해야 할 것인가? 필자가 보기에 she를 '그녀'로 번역해야 한다면 he는 '그남'으로 번역해야 한다. '그남'이란 단어가 이상한가? '그녀'라는 단어도 처음엔 무지 이상했다. 그래서 번역서에서만 쓰이다가 20세기 후반부터 노래 가사에 쓰이기 시작하다가 이제서야 정착하게 된 것이다. '그남'이란 단어도 한 100년 쓰면 아주 익숙해질 것이지 걱정은 하지 말길 바란다. 말했듯이 he/she' '그'로 번역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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