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사람들이 영어와 한국어를 동시에 원어민 수준으로 구사한다는 것이 어렵다는 주장을 할 때 가장 큰 반론으로 제기되는 것은 유럽인들은 몇 개 국어도 술술 구사한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대단히 공부를 한 것도 아니고 티비만 봤는데, 3-4개 국어는 기본이고 많게는 9개 혹은 그 이상도 구사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한국인은 불가능하다는 것인가? 사실 지능 측면에서 한국인이 세계에서 가장 똑똑한 축에 든다고 자부하는데 (사실 어느 인종이나 이런 식의 자화자찬은 있을 것이지만) 유럽인이 어려움 없이 하는 것을 한국인이 하지 못한다고 하면 납득이 가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몇 개 국어 한다는 유럽인들의 각 언어 수준은 우리가 사투리를 안다는 수준이 아닐까? 이전 글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스페인 사람과 이탈리아 사람들은 서로의 언어를 한번도 배워보지 않았다 하더라고 만나자 마자 서로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서로의 언어를 배우기는 얼마나 쉽겠는가? 또한 필자의 한 독일인 친구에 의하면 벨기에 일부와 네델란드에서 사용하는 Dutch라는 언어와 독일어(Germany or German Deutsch)는 서로의 언어를 모르는 상태에서도 문자로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발음상으로 좀 달라서 서로의 언어를 모른 채 말로 의사소통하기는 문자로 할 때보다는 어렵다고 한다. 국내의 어떤 유럽여행 안내서에는 이 둘의 문자가 어찌나 비슷했던지 두 언어가 같다고 해설해 놓기도 했다. 하지만 유럽인들은 이 두 언어가 전혀 다른 언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스페인사람은 티비만 보면 이탈리아어를 습득할 수 있고, 독일 사람 또한 티비만 보면 Dutch를 습득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아주 쉽게 2개 국어 달성이다.
좀 더 전문적으로 들어가서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프랑스어는 같은 뿌리를 가지고 있다. 라틴어. 또한 독일어, Dutch, 영어가 같은 뿌리를 가지고 있다 (독일인들의 말에 의하면 독일어에서 갈라졌다고 한다. 이것이 사실인지는 역시 전문가의 견해가 필요하다.). 비슷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프랑스어와 다른 두 언어, 그리고 영어와 다른 두 언어는 마치 한국에서 제주도말과 서울말처럼 바로 서로 의사소통이 가능할 정도로 비슷한 것은 아니고 공부를 좀 해야 의사소통이 가능해진다. 즉 tv좀 보고 학교에서 좀 배우면 이제 바로 3개 국어 달성이 되는 것이다.
좀 더 멀리 들어가 보면 위 여섯개의 언어가 다시 같은 뿌리에서 갈라져 나왔다. 그리고 동유럽을 중심으로 슬라브어의 여러 갈래 언어들이 존재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것은 러시아어. 그런데 더 깊이 들어가면 이 역시 위 여섯개와 같은 뿌리! 이렇게 유럽에서 여러 국어를 섭렵한다는 것은 한국인이 영어를 비롯한 여러 유럽어를 구사한다는 것과 본질적으로 다르다.
한 예로 내가 아는 어떤 철학자는 고등학교 때까지 책 한번을 읽지 않았다고 한다. 이 사람이 책을 읽기 시작한 것은 겨우 대학 때부터였다. 당연히 독일로 유학 갈 당시 이 사람의 영어 실력은 형편 없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독일에 유학을 10년 다녀와서 갑자기 영어책을 빨리 읽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는! 이는 유럽어들이 얼마나 연관되어 있는지를 보여주는 일화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유럽어끼리는 번역기가 잘 작동하는 것일 것이다. 하지만 한국어와 영어 간 번역기를 돌리면 그 결과는 정말 배꼽을 잡을 만큼 우스워진다. 이로부터 다음과 같이 유추해 볼 수 있다. 유럽인이 다른 나라의 유럽어를 배울 때 번역을 통해 배우는 것이 어느 정도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한국인들이 번역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초기 단어 습득에 한해 있다. 그러나 더 깊이 들어가면 많은 경우 한국어 단어의 뜻과 영어 단어의 뜻이 정확히 일치하지 않는 것도 알 수 있다. 따라서 수준이 올라가면 단어 수준에서도 번역은 힘들어진다.
언어의 표현은 우연의 산물이다. 내가 한국어를 배우는 것을 선택하지 않았듯이, 한국어에서 자주 사용하는 표현도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다. 이는 우리 선조들의 우연적 경험이 축적되어 형성되어서 내려오는 것이다. 내가 '귀신이 곡할 노릇' 혹은 '말도 안돼'라고 말하고 싶을 때 이것을 영어로 번역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나는 아마도 "I don't believe it" 또는 "Unbelievable'이라고 표현할 것이다. 자 보자 여기 어디에 직접적 번역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있는가? 표현의 축적은 역사와 문화를 공유하면서 그 특수한 환경에 우연이 겹쳐지면서 공유되어 공인된 표현으로 자리 잡는 것이다. 그래서 결론은 혹 영어권 국가 문화를 한국의 문화로 점령을 하게 된다면 모를까 아니면 한국인들은 영어에서 사용되는 표현을 그대로 통째로 익혀야 한다.
그러고 보니 일어나 중국어를 번역기로 돌리면 한국어로 잘 번역되는지에 대해서는 필자는 잘 모른다. (혹시 아는 사람?) 한국어, 베트남어, 중국어, 일본어 등은 어원도 다르다고 알려져서 어쩌면 유럽어만큼 힘들지도 모르겠다. (일본어에 대해서는 혹자는 한국어와 같은 알타이어족이라고 하고 또 일부 일본인 학자들은 그렇지 않고 전혀 별개라고 주장하고 있어서 좀 더 지켜보아야 할 것 같다.) 하지만 최소 중국 문화와 일본 문화가 우리에게 익숙하기 때문에 그 만큼은 더 쉬울 것 같다. 우리가 현재 미국문화에 많이 노출되어 있지만 그래도 한국어의 70%를 차지하는 중국어의 영향과 아직도 청산되지 않은 일제시대의 유산들에 게임이 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한가지 더 언급하고 싶은 것은 실제 각 언어간 간격이 얼마나 큰지는 좀 연구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 특히 동양어 간 간격은 어떤지 알려진 바가 없는 듯 싶다. (혹 알고 있는 분이 계시면 help me here!!! ^_^) 언어 간 간격을 따지려면 어떤 기준이냐에 따라 달라질 듯 싶은데, 우리가 알고 싶은 것은 배우기가 얼마나 어렵냐는 것이니까 일반적 중고등학생이 혹은 성인이 최초로 배우기 시작해서 기본적이고 단순한 글을 읽기 시작하게 되기까지의 평균 기간을 조사하면 될 듯 싶다. 일주일에 세번 한시간씩 강의를 듣고 한달에 한번 시험을 보는 것으로 형식을 통일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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