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7월 6일 토요일

쉬어가는 페이지 1: Robin's Experience of Teaching Korean in a Foreign Land

  내가 외국에 처음 나가게 된 것은 서른이 넘어서였다. 나가기 전에도 학회에 외국인 학자가 오면 숙소까지 안내해주고 저녁식사하면서 간단한 담소를 나눌 정도의 기본적 영어는 할 수 있는 상태였지만,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외국에서는 우리말과 전혀다른 영어를 혹은 다른 언어를 사용한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정확하게는 머리로는 알겠는데 현실감있게 다가오지 않았다. 마치 동화를 읽으면 그 내용은 이해하지만 현실화시켜서 공주가 있고 왕자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였던 듯 하다. 이것이 간접적 경험의 한계가 아니었을까 나는 생각한다. 

  그런 비현실감을 느꼈기에 내가 처음 외국에 갈 때에도 정말 내가 외국에 간다는 사실 자체도 믿어지지 않았다. 그런 내가 전혀 가보지 않는, 책으로만 보던 세상에 내가 가서 직접 살게 된다는 생각이 마치 동화 속에 들어가서 살게 된다는 말을 들었을때처럼 비현실적으로 느껴진 것이다. 나는 정말 그런 곳에 가게 되는 걸까? 심지어는 비행기를 탈 때 조차도 내려서도 이 비현실감은 어찌할 수가 없었다. 입국심사를 받으면서 정말 모든 사람이 영어만 사용하는 공항의 현실을 보고 공항을 나와 숙소로 가기 위해 버스를 타서도 내가 이 버스를 내리면 외국의 어느 한 곳에 있는 건물에서 지내게 된다니... 이 얼마나 비현실적인가? 그래서 나는 서른이 넘어서가 아니라 더 어릴 때 이런 우물안 개구리식의 세계관에서 벗어나도록 본인도 아이들도 해외 경험을 하도록 추천하는 것이다.

  그곳에 살게 되면서 부터는 현실감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지만 그래도 처음보는 생생하고도 낯선 건물들의 모양, 사람들의 모습에 비현실감도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었다. 그 와중에 나는 첫번째 충격적인 경험을 하게 된다. 위에서 말했듯이 그 때에도 어느 정도는 영어를 할 수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불안한 와중에도 자신이 있었다. 그 지방 특유의 accent가 복병이 될 것이라는 것은 꿈에도 모른채. 강한 지역 accent에 평범한 표현도 알아듣지 못하게 되자 나는 완전한 panic상태에 빠져 들었다. 이 때 내가 받은 충격은 거의 사람들을 피해다닌 수준이었다. 하지만 현지인들은 친절하게도 부족한 나를 손짓 발짓에 그림까지 그려주며 잘 돌보아 주었고 나도 서서히 그들의 accent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또한 열심히 내가 목표한 공부를 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영어는 생각만큼 빨리 늘지 않는다는 사실에 스트레스를 받는데다가 노력을 너무 한 탓인지 6개월만에 영어로 된 문서만 보면 구역질이 치미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이것이 두번째 충격이다. 언어능력이 좋다는 소리만 듣고 자라온 내가 외국에서 이런 상황에 빠지게 될 것이라고 나는 그 때까지 생각도 하지 못했었다. 얼마나 충격적이었는지 모른다. 사람이 이러다 정신병원에 가게 되는 구나라고 느낄만큼 상황이 심각했기 때문에 우선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조치는 바로 '노력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 때부터 tv만을 봤다.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즐기자는 것이 그 의도였다. 그래서 외국에서 내가 얻은 첫 별명은 'The Girl Always Watching TV '였다. 
  
  물론 전적으로 그랬다는 것은 아니다. 내가 하는 공부에서 요구하는 최소한만 하고 더 이상은 하지 않았다. 그리고 tv 프로그램 중 재미있는 것을 골라보며 소일하기 시작했다. 이 조치의 목적은 내가 영어를 편하게 느낄 때까지 시간을 좀 주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전략의 취약점은 말하기는 늘 수 없다는 것이었다. 특히나 한국의 외국인들이 모두 잘 알아듣던 내 영어 발음은 이 지역에서는 완전히 무용지물일 때도 있었다. 이렇게 의사소통하기가 어려우면 점점 말하기가 싫어진다. 상대방을 고생시키는게 다 보이는데 남에게 피해를 주면서까지 내 영어를 연습한다는 것이 뭔가 부당하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말하기를 연습하기 위한 나의 두번째 조치가 탄생한다. 그것은 '한글 가르치기'! ㅋ~ 나는 한국어에서는 전문가! 이것을 영어로 아이들에게 가르쳐 주면 한시간 내내 내가 영어로 이야기할 수 있고, 또 아이들은 한글을 배울 수 있어서 좋고! 이것이 바로 누이 좋고 매부 좋고가 아닌가?! 한 두달 정도 지속되었던 그 강의의 수강생 중에 콜롬비아에서 온 아이는 잘 배워서 한국인이 운영하는 슈퍼마켙에 가서 한국어로 인사하다가 그곳에서 계속 그 친구에게 한국어로 말을 거는 바람에 결국 실토를 했다고 한다. 자기 간단한 한국어 밖에 못한다고. 또 다른 미국에서 온 동양계 아이는 나중에 더 고급으로 가르쳐 달라고 부탁하는 바람에 내가 그러겠다고 약속을 했는데 이후 계속 바빠져서 끝내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되기도 하였다. 이 말은 내 가르치기 실력이 꽤 괜찮았다는 자랑을 하고자 꺼낸 것임을 모두 눈치 챘을 것이다.
     
   이런 전략은 유효해서 나는 점점 영어 실력이 늘었고 영어는 점점 편해졌다. 하지만 내가 외국에서 살게 된지 1년이 지난 시점에서 세번째 충격을 받게된다. 내가 영어권 국가에서 1년을 살았는데도 아직 원어민처럼 영어를 구사하게 되지 못했다는 사실에 다시 한번 panic을 느꼈던 것이다. 물론 내가 구사하는 영어는 1년 전에 비하면 현저히 늘었다. 외국에서 한 동안 영어를 배우게 되면 자신이 미리 학습해 간 영어의 10배 정도를 더 배울 수 있다는 말이 있다. 물론 열심히 한 경우에 해당되는 말일 것이다. 내가 기본적 의사소통은 하는 상태에서 갔고 1년이 지났으니 얼마나 늘었겠는가? 1년 쯤 지났을 때 아주 잠깐 매우 기뻤었다. 내가 이제 이 정도 영어를 구사하는 구나. 1년 전에 비하면 용됐구나. 하지만 여전히 전화로 의사소통하는 것은 어렵고 원어민과 대회에서 놓치는 것은 많았다.

  이쯤되니 다음과 같은 고민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아, 나는 언제쯤 영어를 통달하게 될 것인가? 혹 나에게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러면서 정보를 구하러다니니 이는 나만이 겪는 문제가 아니라 많은 유학생, 뿐만 아니라 많은 이주민도 함께 겪는 것이었다. 그 때 비로소 나는 알게 되었다 외국에서 1년 어학연수를 하고 영어를 술술 구사할 수 있게 될 것이라는 나의 믿음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를!

  그 다음 2-3년이 흐른 다음에는 또 한번의 한국어 강연을 유학생들에게 해 주었고 이제 티비를 통해 처음 1년동안 본 드라마, 영화의 재방송을 보면서 내가 이제 이만큼 이해하는 구나 기쁨도 느꼈다. 심지어는 전화통화도 자연스러워졌고 호주에 견학 온 한국사람들을 위해 통역 아르바이트도 한 두 건 할 만큼의 실력이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토론에서 내 주장을 피력하기는 힘들었고 (연설보다 토론이 훨씬 힘들다) 공식석상에서 발언하거나 공식문서를 작성할 때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이 때 다시 한 번 느꼈다. 외국에서 몇 년 살고 원어민들의 수준으로 영어를 구사하길 바라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

  현재 나는 5년 정도 외국에 살았고 영어를 잘 하는 축에 드는 유럽인만큼은 영어를 구사한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원어민 수준이 절대로 아니라는 것이다. 그 이상의 해석은 독자에게 맡긴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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