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7월 30일 화요일

단어는 어떻게 암기할까?

  오늘도 기적의 단어 암기법이 있다는 신문 광고를 보고 한숨이 나왔다. 이전 글에서 영어 잘 하는 법 찾아다니지 말라고 필자가 조언했었다. 물론 단기간에 많은 양의 단어를 외고 시험을 봐야 하는 (그리고 바로 다음날 다 까먹어도 상관없는) 사람들 입장에서 이런 저런 암기 방법은 중요할 수 있다. 하지만 시험을 위해서가 아니라 영어를 하고 싶은 사람들은 절대 이런 방법에 현혹되지 말길 바란다.

  그렇다면 단어를 어떻게 암기하는 것이 좋을까? 필자는 단어를 암기하기 말라고 조언하고 싶다. 이게 무슨 말인가? 단어를 모르고 어떻게 영어를 할 수 있단 말인가? 필자가 하고 싶은 말은 특정 단어를 문맥에서 독립시켜서 따로 암기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단어가 나온 문장을 그대로 암기하라! 이 말은 필자가 주구장창 주장하는 표현을 통째로 외라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우선 책을 읽을 때 모르는 모든 단어를 사전 찾아 확인할 것이 아니라 대충 보라고 오래 전 글에서 조언한 적이 있었다. 물론 모르고는 절대 글을 대충도 이해할 수 없는 그런 중요한 단어는 찾아 보아야 한다. 그렇게 중요한 단어인지 알아보는 방법도 소개했었다: 1) 모르는 단어를 무시하고 읽어도 말이 되는가? 2) 말이 안된다면 그 단어의 뜻이 유추가 되는가? 이 두 기준은 그 단어가 포함된 문장 뿐 아니라 그 다음 문장까지 읽고나서 판단해야 하고, 다시 강조하지만, 대충 말이 되는 것 같으면 사전 찾지 않고 넘어가는 것이 원칙이다.

  이런 기준 하에 글의 맥락에서 중요한 단어로 인정했고 그래서 사전을 찾았으면 어찌해야 할까? 여기서부터 많은 설이 존재하기 시작한다. 우선 일반적인 방법은 영한사전으로 단어를 찾아 뜻을 확인하고 그 뜻과 단어를 암기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영어로 말하고 쓸 때도 번역을 하게 만드는 첫걸음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영어를 익히면 나중에 한영사전 없으면 말하기도 글쓰기도 안되는 문제점을 기를 수 있다. 이런 점은 차지하고라도 영한사전, 한영사전이 일제시대에 초안이 작성된 이래 거의 바뀐 적이 없다고 하면 믿겠는가? 사실 영어를 한국어로 번역해도 오역이 부지기수인데, 영어를 일어로 번역한 것을 다시 한국어로 번역하였으니 얼마나 많은 오역이 존재하겠는가? 이제 왜 영어 사전을 보면 국어사전에도 없는 번역어가 뜻이라고 쓰여 있는지 이해가 갈 것이다.

  그래서 대안으로 제기되는 방법은 영영사전으로 뜻을 찾으라는 것이다. 이때 따라오는 흔한 조언은 뜻만 익히지 말고 그 영영사전에 나오는 용법도 단어장에 적어 놓고 익히라는 것이다. 물론 용법을 익힐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예문을 적고 외는 것이다. 이 방법은 일견 좋고 정석적인 방법이다. 그러나 단점은 영어에 초보인 사람이 사용하기는 어려운 방법이라는 것이다. 현재 읽고 있는 책도 어려운데, 사전으로 단어 하나 찾았더니 이렇게 욀 것이 많다면 어찌 포기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필자도 이 방법이 너무 좋아 보여서 한동안 이렇게 공부를 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결론은 필자에게 맞지 않는 방법이었다. 하다보니 자신이 책을 읽으며 단어 공부를 하는 것인지 단어장 만들기 공부를 하는 것인지 헷갈릴 정도로 단어장 만드는데 시간이 더 들었다. 그래서 나중에 타협한 방법은 필자가 찾았던 맥락과 같은 용법을 사용한 하나의 예문만으로 단어장을 만드는 것이었는데, 이 방법도 성공적이지는 못했다. 단어장 만들기 공부는 중단할 수 있었지만, 여전히 맥락을 전혀 모르는 사전에 나온 예문들을 왼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었다. 특히 필자는 암기력이 아주 좋지 않다.

  필자의 견해로 이 방법은 그 단어로 시를 쓰고 싶을 때에 쓰면 적당한 방법이 아닐까 싶다. 조선시대 치루어졌던 과거에서 단어(한자는 각 글자가 뜻을 가지고 있으니 영어의 단어라 보아도 무방할 듯 싶다)를 주고 시를 지으라고 했을 때처럼 특정 단어를 어떻게 사용하는 모조리 알고 나야 최상의 결과가 나오는 작업에 사용하는 방법이라는 말이다.

  이에 필자가 도달한 결론은 다음과 같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도 아니고 맥락에도 없는 사전에 나온 예문 말고 자신이 읽던 책에 나온 표현 하나만 외는 것이다. 해당 단어의 뜻은 만일 영어를 배우는 초기라면 영한사전으로 찾는 것도 좋다. 시간도 절약되고 심리적으로도 안정된 방법이다. 처음부터 영영 사전을 사용하면 이제 자신의 주요작업이 책을 읽는 것인지 사전을 보는 것인지 헷갈릴 수 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서 영한사전은 영어를 한국어로 번역할 때 보는 사전이다. 즉 영한사전에는 그 단어의 뜻이 나와있지 않다는 것이다. 영한사전에 나온 한국어들은 다 해당 영어 단어를 어떤 한국어로 번역할 수 있는지 예시해 놓은 것이다. 이 점은 한영사전을 보면 명백해진다. 누구도 한영사전을 보면서 그곳에 나오는 표현이 한국어를 뜻풀이해 놓은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영어 표현들은 해당 한국어를 영어로 번역할 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예시해 놓은 것들이다. 또한 영한사전에는 오역도 많고 잘못된 예문도 많다.

  따라서 처음에는 영한사전을 보면서 점점 영어에 익숙해지고 난 다음에는, 영영사전으로 뜻을 찾는 것이 좋다. 영영사전만이 해당 영어 단어의 진정한 뜻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시간이 허락하면 예문들도 훑어보면 좋다. 그러나 너무 처음부터 욕심내다가 포기하느니 그냥 자신이 읽은 책의 그 문장에 집중하는 것이 백번 낮다고 필자는 권고한다. 자신이 읽은 책은 해당 문장의 전후 맥락을 알 수 있기 때문에 그 중요한 단어가 포함된 문장을 외기도 쉽고 또 잊기는 더 어렵다. 이런 장점을 모두 포기하고 밑도 끝도 없이 영영사전에 나온 예문에만 집착한다면 그 무슨 시간낭비 노력낭비인가.

  혹자는 단어 100개를 외는 것보다 100개 문장을 외는 것이 더 어렵다고 불평할 수 있다. 이는 맞는 말이다. 그래서 언제나 필자가 전제를 달지 않는가? 오직 시간이 허락한다면 쓸 수 있는 방법이란 말이다. 한 달 후 단어 10000개를 외서 시험을 봐야 한다면 이 방법은 사용해서는 안된다. 그러나 시간이 허락한다면 필자가 하나 주장하고 싶은 것이 있다. 단어 10000개를 욀 때보다 10000개 문장을 욌을 때 훨씬 덜 까먹는다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단서가 있다. 바로 맥락이 있는 글들이어야 한다. 주의할 점도 하나 더 있다. 그 글이 좋은 영어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반드시 이런 방식으로 책을 읽을 때는 저자가 Native Speaker of English인지 확인해야 한다. 만일 해당 책이 다른 언어를 주로 사용하는 사람이 썼다거나 다른 언어의 책을 영어로 번역했다거나 한다면 절대 사용해서는 안되는 방법이다. 여기에는 유럽인이거나 유럽어도 해당되니 유념하길 바란다. 

2013년 7월 27일 토요일

영어 절대로 잘 할 수 없다!

  여기에서 필자가 하고 싶은 말은 한국인은 (아무리 노력해도) 영어 절대로 잘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인정한다. 매우 선정적인 글 제목에 주장이라는 것을.

  하지만 오늘도 들었다. 어떻게 하면 영어를 빨리 잘 할 수 있게 되나요? 만일 당신이 아직도 이런 방법을 찾고 다닌다면 당신이 지금은 물론 미래에도 영어를 잘 할 수 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아주 단적으로 영어만이 아니라 다른 공부를 하더라도 누구에게나 좋은 방법은 없다. 영어든 수학이든 자신이 직접 이런 저런 방법으로 공부해보고 자신에게 맞는 방법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어떤 방법이든 자신에게 맞으면 그것이 아무리 다른 사람이 잘못이라고 해도 그 방법이 옳은 것이다. 이런 방법을 찾으려면 스스로 공부하다 어려움을 겪어 보고 그것을 극복해야 한다.

  누구는 필자처럼 티비 보고 현지인들과 놀면서 영어를 익힐 수 있다. 티비를 보는 것이 유학생들 사이에서 공인된 방법임을 감안하면 분명 좋은 방법 중의 하나일 것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반복하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하기도 한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티비나 비디오를 반복 시청하며 영어 익히기를 바랄 수 없다.

  이런 사람은 혹  직접 사람과 대회해야만 영어를 익힐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 방법도 꽤 좋을 것이다. 그러니까 현지에서 살아야 영어가 는다고 믿는 사람이 그렇게 많은 것이 아닐까? 그러다 보니 현지인 애인을 사귀는 것이 영어를 익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과연 그럴까? 사실 현지인 애인을 사귀는데 가장 큰 걸림돌이 바로 의사소통이 안 된다는 것이다. 물론 정말 잘 생긴 사람이라면 의사소통이 안 되어도 애인을 사귈 수 있을 것이고 그 애인이 친절히 언어도 가르쳐 줄지 모른다. 하지만 대부분 그렇게 미모가 뛰어나지 않다는 점 스스로 잘 알고 있지 않은가? 가뜩이나 문화차이가 있어 오해하기 쉬운데 의사소통이 되지 않으면 정말 관계를 유지하기가 힘들다. 언어를 익히기 위해 자신의 미모를 사용해 상대방을 이용하다 버릴 생각이 아니라면 (이건 정말 너무 비인간적임으로 미모가 받쳐 주더라도 사용하지 말라고 권하고 싶다.) 애인 보다는 친구들을 많이 사귀는 것이 더 좋다. 서로 문화도 배우고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어도 무리지어 몰려다니다 보면 사실 그리 큰 문제가 없기도 하다. 우리 친구 집단에도 말 안하고 조용한 사람이나 사오정처럼 대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언제나 있기 마련 아닌가? 그럼에도 당신이 매우 수줍은 사람이라면 이 방법을 쓸 수 없다.

  또 다른 누구는 책을 주로 보거나 심지어 사전을 통째로 왼다. 이 방법은 너무 오래되고 실생활 영어가 아니라 읽기에만 도움이 되기 때문에 잘못된 방법이라고 말하고 싶은가? 그럼 외국에서 좀 살았다고 생활영어는 하는데, 조금만 어려운 글을 읽어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영어를 잘 하는 것인가?

  바꾸어 말하면, 현재 우리의 영어도 충분히 잘 하는 것이다. 이점을 이제는 깨달았으면 한다. 완벽에 완벽을 추구하다 보면 누구도 영어를 잘 하는 것이 아니게 된다. 사실 모두가 쉬쉬하는 이야기가 있다. 나이가 어리거나 많거나 외국에서 학위 받고 온 사람들이 영어를 얼마나 잘하는가? 못한다! 한국어 강의가 여전히 편하고 영어 강의에서는 놓치는 정보가 많다. 영어 문서를 읽을 때보다 한국어 문서가 훨씬 빨리 읽히고 그 내용이 기억에도 오래 남는다. 이제 솔직해 지자. 이 분들 주위에서는 영어 잘 한다고 떠 받들어주는데, 사실 자신보다 영어를 잘 못하는 친구들 앞에서 아니라고 손사래 치기도 뭐하다. 하지만 계속 이런 오해를 허용하다 보니 외국에서만 몇년 살면 모두가 영어를 잘 한다는 오해로 이어지고, 영어 잘 하는 방법만 찾아 헤메던 사람들이 최종적으로 어학연수를 택하는데 결론은 실망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자기에 대한 실망은 또 다시 한국인들의 추켜세워줌에 사실을 밝히지 못하는 열등감으로 이어진다. 나만 이런가?

  그렇지 않다. 모두가 어학연수를 갔다 와도 영어를 잘 못한다. 어학연수가 아니라 3-4년 학위를 마치고 와도 영어는 못 한다. 물론 한국에서만 영어 잘하는 방법 찾아다니던 때보다 외국에서 찾아다니다 오면 조금은 더 잘 할 것이다. 하지만 그 들인 노력과 시간에 비한다면 절대 더 잘한다고 보기 어렵다. 대부분 넉넉하짐 못한 환경에서 어학연수를 떠나게 되는데, 생전 처음 와본 외국에서 한국에서 살 때처럼 학원만 다니다가, 그러다 좌절해서 동병상련 한국인 친구들하고만 놀다가 귀국하니 이게 무슨 낭비인가?

 이럴 바에 이제는 생각을 바꾸자. 우리는 절대 영어를 잘 할 수 없다! 그러니 외국에 가면 이국적 대 자연을 느끼고 처음 만난 사람들과 친구로 지내고 가급적 많은 것을 경험하고 오는 것이다. 이름은 어학연수로 하든 유학으로 하든 상관없다. 무조건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가끔 마음 맞는 사람들 만나면 평생 친구로 지낼 기반 다져 놓고 그러고 오는 것이 가장 좋은 어학연수요 유학으로 생각하자는 말이다.

  물론 언어 천재는 있다. 한국에서만 살았는데 영어를 잘 구사한다거나 이른바 알려진 영어 시험에서 만점을 받고, 영어 웅변대회에서 1등을 하지 않나, 사회과학이나 인문학에서 영어로 논문을 써서 발표하고... 외국에서 살아도 그 졸업하기 어렵다는 대학을 남들보다 빨리 졸업하는 등, 그래서 한국어와 영어를 모두 수준급으로 구사하는 정도가 아니라 예술로 만드는 사람들도 있지 않는가? 하지만 모두가 이럴 수 있다고 헛된 희망에 부풀어 좌절만 되풀이하다 좋은 시절 다 보내지 말고 영어는 잘 할 수 없는 것으로 결론을 내고 자기가 하고 싶은 것만 찾아서 하도록 하자..

  자신이 좋아하는 소설을 영문 원서로 읽고 싶은가? 그럼 읽기만 죽어라 하면 된다. 영화를 만화를 자막없이 보고 싶은가? 그럼 듣기를 해야지. 프리젠테이션을 잘 해야 한다면 영어 스피치를 좀 배워야 할 테고, 영어로 논문을 써서 상을 받고 싶다면 쓰기를 해야 할 것이다. 하고 싶은 것, 할 수 있는 것만 하자! 그래도 힘들다. 그리고 이것밖에 못한다고 좌절하지 말고 나는 이만큼이나 할 수 있다고 자랑스러워 하자! 어차피 다 잘 할 수는 없다. 다 잘한다고 쳐도 그것은 절대 영어 실력에만 좌우되는 것이 아니다. 주변을 돌아보면 아주 명확하지 않은가? 우리 모두 국어를 잘하지만 우리 모두가 잘 듣고 읽고 말하고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 부모님은 어찌 그리 우리 말을 안 들으시는지, 내 친구는 어쩜 그렇게 말을 못해서 소개팅마다 애프터를 못 받는 건지, 나는 왜 말은 하겠는데 누가 글을 쓰라고 하면 무서운 건지, 내 동생은 왜 책만 펴면 자는 건지....

  물론 시간도 많고 영어를 기본기부터 잘 다지고 싶다면 듣기, 읽기, 말하기, 쓰기를 모두 해야 한다. 이에 대해서는 이전 글을 참조하기 바란다. 

2013년 7월 25일 목요일

English and Konglish

우리는 흔히 한국에서 사용되는 Broken English를 놀리는 말로 Konglish라고 부른다. 의미를 따져보자면 English가 Korea에 와서 고생한다는 의미 정도? ㅋ.

물론 영어가 한국에 와서 잘못 사용되는 예는 많다. 그러나 어느 언어든 그 지역을 떠나면 잘못 사용되고 과도하거나 협소하게 이해되는 예는 단지 한국에서 사용되는 영어에 한하는 것은 아니다. 많은 사람이 알고 있듯이 아직 한국에서는 더 이상 중국에서 사용되지 않는 고대 한자어가 사용되기도 하고 한국어도 일본이나 다른 나라로 넘어가서 이상하게 사용되기도 한다. 이런 정도는 일반적인 것이고 또한 우리가 그다지 잘 못하는 것도 아니다. 귤이 현해탄을 건너가면 탱자가 되듯 모국어 환경을 떠난 언어의 운명이라고 봐도 무방할 듯 싶다.

이런 당연한 현상이 문제가 될 때는 바로 물 건너온 그 언어를 배울 때이다. 국내에서 사용되는 표현이 현지에서 사용되는 방식이 아니라는 것은 물론 현지에서 사용되는 정상적 언어 형태도 배워야 한다. 이것은 당연한 절차이다.

하지만 우리가 지나치게 한국식 accent를 의식하면서 미국식으로 발음을 무조건 굴리면 영어를 잘 하는 것이라고 인식하듯이 한국에서 정상적으로 사용되는 영어식 표현도 무조건적으로 Konglish라고 비하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Handphone이 현지에서 사용되지 않는 다는 이유로 Konglish라고 비하하거나 심지어는 사용을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필자는 이 단어가 반드시 콩글리쉬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필자가 이 말을 소개해 줬을 때 현지인들이 즉각적으로 이해할 뿐 아니라, smart idea라고 호평을 해주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는 오히려 콩글리쉬라고 구박받는데, 이러한 현지인들의 반응은 나에게도 신선했다. 그러나 여전히 현지인들이 사용하지 않는다면 Konglish라고 주장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필자가 들고 싶은 예는 정 반대의 경우이다. 우리가 너무나 많이 사용하는 단어 Netizen은 영어권 국가에서 만들어진 단어이지만 이 단어를 말했을 때 바로 이해하는 원어민은 거의 없다. 무슨 말이냐고 반드시 나에게 되물었다. 즉 현지에서 거의 사용되지 않고 오히려 한국에서 많이 사용하는 단어이다. (중국에서도 많이 사용된다고 한다)

핸드폰이고 네티즌이고 둘 다 현지에서는 사용되지 않는데, 핸드폰은 한국인들이 만들었으니까 콩글리쉬고 네티즌은 현지인이 만들었으니까 콩글리쉬가 아니라고 여전히 주장한다면, 너무나 협소한 생각이다. 특히나 hand-phone은 이렇게 하이픈만 넣어주면 심지어 워드 프로그램도 정상적 단어로 인식한다. 그러나 Netizen은 어떻게 해도 워드가 단어로 인식하지 못하고 스펠링 바꾸라고 붉은 줄을 쳐 준다.

필자는 둘다 broken English가 아니기 때문에 콩글리쉬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싶다어느 지역에나 영어를 사용하는 곳에는 현지에서만 통용되는 표현이 사용되기 마련이다이는 영어뿐만이 아니라 한국어도 마찬가지이다어디에서든 신조어가 생길 수 있고 그것이 특별히 문제가 되는 표현이 아니라면 그 지역에서만 사용된다고 해서 나쁜 언어라고 개념화할 필요는 없다나아가 전 세계가 사용하도록 언어를 전파하는 것도 가능하다. 사실 mobile phone보다 hand-phone이 음절 면에서도 더 경제적이다. 전자는 삼음절이고 후자는 이음절 아닌가.

특히나 영어에는 한국어에 있는 표준어 개념이 없다. 우리가 흔히 화장실을 toilet이라고 말하는 것이 실례라고 배우는데, 이 역시 미국에서만 통용되는 기준이다. 다른 영어권 국가에서는 아무 문제가 없는 표현이다. 또 하나. 음식을 싸가지고 갈 때 쓰는 표현 to go도 미국에서만 쓰는 표현. 다른 곳에서는 take away라는 표현을 쓴다.

한국에서 영어가 공식어 중 하나인 것은 아니지만, (이대로 가다가는 조만간 지정될지도 모르겠지만) 우리가 다른 나라 언어를 배울 때에도 그 나라 언어로 신조어를 만든다든지 신조어를 널리 퍼뜨리는데 기여할 수 있다. 이를 모두 broken English라며 지나치게 과민반응을 일으킬 필요는 없어 보인다. 사고를 바꾸자.

극단적 예로 Native Speakers of English도 broken English를 사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building. 이 것은 필자의 호주인 친구가 지적한 것인데, 사실 빌딩은 이미 지어진 것을 지칭하므로 built라고 표현해야 맞다는 것이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필자는 원어민의 이런 지적이 재미있었다.

그러다 최근 생각해 본 것이 하나 있다. 미국을 The United States of America라고 하는데 미국이 미대륙 전체를 차지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는 잘못된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를 United States in America로 바꾸면 어떨까? 여러분들이 보기에는 이도 역시 콩글리쉬?

쉬어가는 페이지 2: Three and Thirty (발음 함부로 굴렸다가 망한 이야기)

  호주에서는 장기 투숙객인 경우 Hostel이든 Share House이든 2주나 4주에 한번씩 rent를 내는 곳이 많다. 필자가 호주에 처음 갔을 때 머물던 곳의 방 번호는 30번이었다. rent를 내야 하는 때가 도래해서 reception에 갔다. 그곳에서 일 보던 receptionist에게 말을 걸었다. 그랬더니 그 receptionist가

왔 룸 넘버?

  필자는 최대한 말을 잘 하고 싶어서 여태껏 배운 모든 기교를 다 써서 대답했다.

써리!

  하지만 receptionist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뭔가 잘못됐나 하는 순간 receptionist가 다시 물었다.

써티 오 쓰리?

  필자는 최대한 천천히 (나름 또박또박?) 다시 말했다.

필자: 써어리!

receptionist: 아하, 쓰리. 롸잍?

필자: 노노노, 써리!

receptionist: 올롸잍, 쓰리 오 쓰리 지로?

필자: 쓰리 지로!

  이렇게 첫 payment를 무사히 마쳤다. 진땀 나는 순간이었다. 무슨 대단한 의사소통을 한 것도 아니고, 숫자 하나 불러주기부터 이렇게 꼬이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무엇이 잘못된 것이었을까?

  이에 대한 해답은 좀 오랜 뒤에 얻을 수 있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상대방이 하는 말소리를 듣고 그 사람의 발음 경향을 파악하게 된다. 발음 경향, 다른 말로 하면 accent이다. 그렇게 상대방의 accent에 적응하게 되면 그 뒤로 의사소통이 좀 더 쉬워진다. 만일 특정 지방의 accent가 강하거나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accent라면 적응의 시간이 좀 더 걸릴 수도 있다.

  이제 우리 모두 알다 시피, 한국인은 v와 b, f나 p를 잘 구분하지 못할 뿐 아니라, 사실 d를 t처럼, b를 p처럼 발음하기가 매우 쉽다. 이렇게 유성음을 무성음으로 발음하는 accent를 가진 한국인이 30을 미국식으로 써리라고  발음한다면, 미국 이외의 지역에 사는 현지 native speaker들이 이 소리를 three로 알아듣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30을 써티로 발음하는 데다가 이상한 악샌트를 쓰는 사람이 갑자기 미국식 accent를 섞어 쓸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기 때문에 thirty를 써리로 발음하면 써리는 쓰리를 잘못 발음한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 말은 미국 이외에서 영어를 사용하는 경우에 한해서 사실이다. 즉, 미국이라면 함부로 발음을 굴려도 괜찮을 지도 모르겠다. 사실 필자가 미국에는 있어본 적이 없어서 모른다. 미국에서 경험있으신 분들의 조언을 부탁한다.

  또한 한두마디 했을 뿐인데 자신이 미국식 액센트를 사용한다는 사실을 상대방이 인식할 수 있는 정도로 미국식 accent를 구사한다면 문제가 없다. 그래서 필자가 '함부로'라는 말을 제목에 달았다. 무조건 굴린다고 망하는 것이 아니다. 함부로 굴리면 망하는 것이다. ㅋ~

2013년 7월 19일 금요일

A Story of an Indian Student

  필자가 인도에 간 적이 있었는데, 좋은 친구가 생겨서 며칠 한 대학생과 함께 머물게 되었다. 그 동안 힌두어 특히 인도 글자에 관심이 많던 필자는 힌두어 철자를 가르쳐 달라고 그 학생에게 부탁하였다. 마침 방학이라서 그 대학생도 시간적 여유가 있었던 터라 하루는 둘이 방에서 힌두어를 가르치고 배우는 시간을 가졌다. 한 스물 몇개 되는 철자를 배우는데, 필자가 듣기에는 ㅎ 소리가 나는 다 같은 소리인데, 그 학생은 모두 다른 소리라며 세 개나 되는 다른 철자를 각 소리에 배당하는 것이었다. 필자가 English Native Speakers에게 우리말을 가르칠 때 그 친구들이 ㄷ, ㅌ, ㄸ 소리에 혀를 내두르던 입장이 이해가 갔다. 그 친구들 입장에서는 모두 한가지 't' 소리일 뿐인데 이들을 한국에서는 구분한다니 어찌 쉽게 익힐 수 있겠는가?

  또한 Indian 영화를 보면서 어쩌면 저렇게 말에 ㅎ 소리가 많이 들어갈까 의아해 한 적이 있었는데 이제 이해가 갔다. 아마 저마다 다른 ㅎ소리를 들었을 텐데 필자는 다 같은 ㅎ소리로 들었을 것이 자명하지 않은가? 아무튼 필자가 그 세가지 ㅎ 소리에 혀를 내두르고 있는데, 정작 그 학생에게도 혀를 내두를 일이 발생했다. 바로 그 다음이 문제였다. 아마 마지막 두 개의 철자가 남은 모양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 학생이 해당 철자를 기억해 내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 학생도 당황했지만 필자도 같이 당황했다. 급기야는 그 학생이 아는 다른 학생에게 연락을 해서 물어보게 되었다. 결론은 그 학생이 연락한 친구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필자는 너무 당황해서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난감했다. 괜찮다고 해야 하지 어떻게 어려운 표현도 아니고 모국어의 기본적 철자를 모를 수가 있냐고 물어봐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이런 필자의 심정을 읽기라도 했듯이 그 학생은 잠시 후 미안한 표정으로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그 설명의 핵심은 자신들이 중학교 때부터 영어를 배우기 시작하는데, 그 이후로는 영어에 너무 집중해서 힌두어에는 거의 신경을 쓰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용빈도가 떨어지는 두 철자가 기억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필자는 이 학생들이 우리말로 따지면 ㄼ쯤에 해당하는 철자를 기억해 내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럼에도 필자는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었다. 영어가 공용어 중 하나이고 (힌두어가 인도의 공동 공용어이다) 영어 잘 하기로 소문이 난 인도에서 영어를 공식적으로 가르치는 시기가 바로 중학생부터라니! 한국이 영어를 가르치는 시기를 초등학교 3-4학년으로 바꾼지 얼마 되지 않던 시기라서 필자는 놀라웠다.

  그래서 필자는 다시 물을 수 밖에 없었다. 정말 중학교 때부터 배우냐고?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영어를 잘하냐고? 그 학생 대답이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시작하는 것이 맞고 고등학교까지 대부분의 수업은 여전히 힌두어로 진행된다고 한다. 하지만 영어를 잘하는 것이 대학교로 진학하는 데 매우 중요하고 대학교의 모든 수업이 (그래도 힌두어 전공에서는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 싶지만 필자가 확인하지는 못했으므로 그 학생이 말한대로 전달하는 바이다) 영어로 진행되기 때문에 영어를 잘하지 못하면 졸업은 꿈도 꾸지 못한다는 것이다.

  왜 그들이 중고등학교 때부터 영어에 집중할 수 밖에 없는지가 확연해졌다. 그리고 왜 Indian 대학생들이 영어를 잘하는지도 이해가 갔다. 또한 그 대가가 무엇인지도 눈 앞에 명확해졌다. 과연 그들이 쓰는 힌두어의 수준은 어느 정도인지도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현재 인도에서 힌두어로 문학 및 다른 고급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는지도 의심해 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물론 나는 이런 질문에 대답할 만한 그 어떤 지식도 가지고 있지 못하다. (흠.. 인도인 친구들에게 물어봐야 겠다)

 아무리 똑똑해도 영어를 잘하지 못하면 대학을 졸업하지 못하는 인도의 현실은 좀 서글펐다. 아마도 우리의 현실이 투영된 탓이 크리라. 또한 영어 수업을 초등학교 때부터 하는 것에도 만족하지 못하고 영어 유치원에 온 갖 아동 영어 교육 상품이 판을 치는 한국의 현실에서 20년 후 우리의 모습도 보이는 듯 했다. ㄱ, ㄴ을 다 모르는 학생들이 대학에서 영어로 수업을 받는 그런 현실이 우리의 미래가 될 것인가?

  이 미래를 보여주는 듯한 한 기억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필자가 외국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칠 때, 한 한국인 대학원생을 초대한 적이 있었다. 순전히 재밌자고 한 일이었다. 그 학생은 호주에서 태어나고 호주에서 대학원을 다니고 있었지만, 대부분 어린 시절을 한국에서 보냈고, 대학도 한국에서 나온 학생이었다. 호주에 오기 전 미국에 어학연수도 갔다 왔다는 것을 보니 한국어도 영어도 꽤 잘 하는 것 처럼 보였다. 그런데 필자의 강의가 진행되는 중간에 갑자기 그 학생이 이의를 제기했다. 도대체 ㄽ이라는 철자가 한국어에 있는 것이 맞냐는 것이 그 학생의 질문이었다. 우리가 ㄽ을 언제 쓰냐고 묻던 그 친구에게 어떻게 대답해 주어야 할지 몰라서 잠시 머뭇거렸다. 필자가 웃으면 그 친구가 무안해 할테고, 게다가 필자의 강의를 듣는 외국인 학생들에게 두 한국인이 한국어 철자에 대해 있다 없다 논쟁하는 모습이 얼마나 이상해 보일지도 눈에 선연했기 때문이었다. 생각 끝에 필자는 칠판에 '돐'이라고 조용히 써주고, 하던 강의를 계속했다. 그 학생은 몹시 놀란듯이 그 뒤로 가만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강의 내내 앉아 있더니 강의가 끝나자 마자 귀가했다. 물론 그 다음날 정도엔 충격을 좀 정리했던지 필자가 좋은 강의를 했다고 칭찬해 주는 것을 잊지는 않았지만.

  다음 글에서는 어릴 때 부터 영어에 집중하면 생길 수 있는 일들을 좀 더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다.

2013년 7월 18일 목요일

해외 여행 이외에 영어 익히기 동기를 부여하는 방법

  이전 글에서 한국 경제가 나빠질수록 해외여행을 가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기본적으로 필자는 경제가 좋거나 나쁘거나 명품을 구매해서 모든 사람이 같은 상표의 옷을 입고 구두를 신고 다니는 것은 반대하지만 그 돈을 모아 해외여행을 가는 것은 적극 찬성한다. 아이들에게도 메이커 옷 신발을 사줄 돈 모아 해외여행을 보내라고 적극적으로 이야기해주고 싶다. 물론 메이커를 입지 못하면 심하게 자신감이 손상되는 아이를 둔 부모라면 좀 더 생각해 보아야 하겠지만, 아이는 신경도 안 쓰는데, 부모가 자신의 한을 푸느라고 비싼 옷 사주고 사교육 시키는데 여념이 없느라 해외 여행 한번 보내지 못하는 실수는 하지 않길 바란다.

  하지만 어떻게 해도 해외여행을 꿈꿀 수 없는 사정도 존재한다. 집에 명품은 물론 시장에서 파는 핸드백도 없이 사는 어머니들도 존재하고 소주 한 번을 마음 놓고 마시지 못하는 아버지들도 존재한다. 그저 하루 세끼 먹고 아이들 학교 보내는 것만으로도 빠듯한 생활에서는 아이들의 영어 익히기 동기 부여가 불가능한 것일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요새는 동네에도 도서관 제도가 꽤 잘 되어 있다. 근래 서울 시내 변화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서울이 아닌 지방의 제도는 어떠한지 잘 모르겠다. (지방에 사시는 분들 소식 좀 전해주세요 ^_^) 만일 아이들이 만화 영화를 좋아한다면, 예를 들어 '뽀로로' 영문판 비디오를 빌려서 아이들에게 보여주자. 혹 아이들이 노래부르기를 좋아한다면 아이들에게 영어 동요 테잎을 도서관에서 빌려 들려주자. 영어 동화 녹음 씨디도 좋은 방법이다. 여전히 아이들이 싫어하면 그만 두는 것이 좋다.

  아이들이 이런 것을 접하고 흥미를 보이면 스스로 도서관에 가서 더 다양한 것을 빌려 듣도록 해주자. 아이들이 어리다면 더더구나 듣게 해주는 것이 좋다. 너무 이른 나이에 읽기를 강요하는 것은 아이들에게 이제 부터 영어를 싫어하라고 말해 주는 것과 같다는 점 숙지하기 바란다. 물론 아이들이 먼저 알파벹을 알고 싶다거나 읽고 싶다거나 요구해 온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아이들이 이 정도 재능을 보이고 흥미를 보인다면 최대한 도움을 주는 것이 부모가 할 수 있는 일일 것이다.

  물론 아이들이 어느 정도 수준에 도달하면 더 이상 부모가 도움을 줄 수 없게 된다. 그래도 여러 루트가 존재한다. 저렴한 비용에 회화 프로그램이 주민자치센터를 중심으로 있고(가정 경제 사정이 나쁘면 비용이 더 절감되거나 무료도 가능할 것이다) 정 궁하면 종교를 갖고 있지 않더라도 영어 교육해주는 교회 프로그램이라도 찾아보자.

  필자도 종교는 없지만 그리고 구하는 자에게 길이 열린다는 성경 구절을 그대로 믿지도 않지만, 무엇이든 시도해 보는 것은 좋다고 본다. 시도해 보고 잘 되면 좋은 것이고 안 되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또한 당장 별 성과가 없다고 너무 크게 낙담할 필요도 없다. 이런 시도로 몇년 후 아이들 자신이 원하기만 한다면 스스로 다시 시도할 수 있는 가능성 자체는 열어주게 되는 것이다. 이후 부터는 아이들 몫이다.

2013년 7월 17일 수요일

시야를 넓혀라!

  영어를 잘 할 수 있는 한가지 방법이, 좀 더 정확하게 말해서 영어를 잘 할 수 있도록 동기화할 수 있는 방법이 해외여행을 하는 것이라고 말하자 마자 한 숨 쉬는 분들이 계실 것이다. 결국 돈이 있어야 영어를 잘 할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이건 너무 협소한 생각이다.

  우선 잠깐의 여행을 위해서 돈을 버는 것도 가능한 일이다. 무슨 일이든 하면 마련할 수 있다. 물론 그 돈이 아까워서 쓸 수 없다면 해외여행은 물건너 간다. 그러나 해외여행이 투자라고 생각하고 쓰면 당신은 새로운 세상을 보게 되는 것이다. 아이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아이들이 가기 싫어하는 학원을 모두 끊고 그 비용을 저축해라. 그러면 몇 개월 뒤 해외여행이 가능할 것이다.

  물론 애초에 돈 벌어서 가족 먹여 살려야 하는 사람들도 있을 테고, 아이들 학원에 보내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하는 형편도 분명 존재한다. 그렇다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 우선 당신이 성인인데 만 35세 이하라면 working holidays를 이용할 수 있다. 필자가 알기로는 Australia와 Canada에서 이런 기회를 제공한다. 물론 다른 나라에서도 기회가 있을 수 있다. 목 마른 사람이 우물을 판다고 저렴한 비용으로 해외여행을 하고 또는 거기서 살면서 가족에게 생활비를 송금까지 하고 싶다면 택할 수 있는 방법이다.

  아이들도 여행이 아니라 해외봉사를 보내는 방법이 있다. 물론 이는 많이 알아보아야 할 것이다. 아이들이 얼마나 안전하게 머물면서 봉사할 수 있는 시설인지가 관건이다. 아무튼 이런 곳을 찾을 수만 있다면 저렴한 비용으로 해외 체험을 하면서 봉사까지 하는 기쁨을 얻을 수 있다.

  여전히 멀게 느껴지는 사람도 있겠지만, 한국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명품을 사기 위해 돈을 모으고 계를 드는지를 보면 대부분의 경우 돈이 없어서 해외 여행을 가지 못한다는 것은 핑계이다. 이제 우리도 명품이 아니라 해외여행을 위해 돈을 모으고 계를 할 때이다. 시야를 넓히면 유럽인들이 명품에 죽고 사는 한국인들, 동양인들을 얼마나 이상하게 보는지 알게 될 것이다. 물론 명품을 소유하는 것이 자신의 자존심에 그리 중요하다면 필자는 말리고 싶은 생각은 없다. 소유해라. 대신 돈이 없어서 해외여행을 가지 못했다는 소리를 하지 말라. 그냥 당신은 해외 여행으로 자신의 시야를 넓히는 것 보다 명품 구매가 더 중요한 것 뿐이다. 쿨하게 인정하자!

   요새 국격에 대한 논의가 활발한데, 한국이 경제 규모에 비해 해외 자선 실적은 아주 형편없다는 점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게다 아직도 한국에 가난한 사람도 많은데 왜 해외의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주냐는 아주 국수주의적 발언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는 해외에 친구가 없어서이다. 친구들이 생긴다만 이렇게 협소하게 사고하고 협소하게 살지 않게 될 것이다. 말로만 글로벌이 아니라 이제 글로벌하게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이제 명품이 아니라 기부, 봉사하는 정도로 서로 경쟁하는 한국사회를 꿈꿔보는 것은 너무 무리일까?

  한국의 가난한 사람은 복지로 해결하고 물론 한국의 빈자를 돕겠다는 사람이 잘못이라거나 그러지 말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주요하게는 정부 복지 시스템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본다. 우리 한국은 최소 그런 시스템은 있는 나라이다. 그 시스템을 국민이 정치인이 제대로 손 보고 활용하지 않고 자선에만 기대는 것은 우수운 것이 아닌가. 하지만 외국의 수많은 나라에서는 아직 그런 시스템조차 없어서 어른은 물론 아이들도 굶어죽어가고 있다. 그런 경우 우리가 자비의 손을 뻗칠 수 밖에 없지 않은가? 우리가 잘 사는 것도 그 사람들 부를 빼앗은 것인지도 모르는데.

  영어를 익히는데 동기를 가지게 되는 일도, 한국의 무한 경쟁에서 벗어나는 길도, 우리가 가진 부를 가난한 외국에 나누어 주는 길도, 모두 시야를 넓혀야 가능한 일이다. 

2013년 7월 16일 화요일

번역은 어떻게 할 것인가

이전 글에서는 필자가 일제시대 영어 읽기 방식대로 영어를 한국어로 옮기는 고질병에 대해서 지적했다. 그리고 중국인들의 자기 말 영어로 옮기기가 얼마나 잘 되어 있는지도 칭찬했다. 그렇다고 일본에서 본받을 만한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일본에서 본받을 점은 발음이 아니라는 것일 뿐이다. 바로 일본에서 본 받을 것은 외국어를 뜻으로 번역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psychopath라는 영어 단어의 뜻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정신병질'이라고 나온다. 이게 무슨 소용인가? 요새는 psychopath라는 말이 많이 대중화되었지만 10년 전만해도 매우 생소한 단어였다. 심지어 심리학을 전공하는 학생 중에서도 이 단어의 영어 및 한글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정신적 문제를 통칭하는 말'이라고 이해하는 웃지 못할 상황을 필자가 목격한 적이 있었다. 즉, psychopath나 정신병질이나 웬만한 학생이 이해할 수 없는 외국어이기는 마찬가지였다는 것이다. 아마 현재는 정신병질이라는 우리 말(중국 말? 혹은 일본식 한자?)은 여전히 생소하지만 psychopath라는 영어 단어가 귀에 익숙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현재 한국어의 문제점이다. 한자가 한국어 단어의 70%를 차지하는데, 그 많은 단어들이 모두 '음'으로 읽히기 때문에 한자 단어를 듣고 바로 그 뜻을 이해하기는 어렵다. 이렇게 음으로만 번역하는 행위는 영어를 번역하는데도 그대로 이어져서 영어단어나 영어를 번역해 놓은 단어나 둘 다 이해 못할 외국어 신세를 면치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영어책을 읽을 때 모르는 단어의 뜻이 유추가 되는 경우 그대로 그 단어를 외라는 조언이 나오는 것이다. 사전 찾아 봤자 무슨 소리인지 모를 뜻 풀이만 한자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냥 영어를 쓰지 번역은 왜 하는가?

그런데 일본에서는 이런 영어 단어를 뜻으로 번역하기도 한다고 한다. 영어를 번역할 때 뿐 아니라 일본어 자체가 한자를 읽는 방식도 음을 읽는 방식과 뜻을 읽는 방식 두 가지로 이루어져 있어서 (두 가지 이상일 지도 모르겠지만 필자의 지식이 여기까지이다), 처음에는 어순이 같아서 배우기 쉽다던 일본어가 깊이 배우면 배울 수록 정말 어렵다는 하소연을 빈번하게 들을 수 있다. 우리 나라에서도 예전에 이두와 같은 글자에서 부분적으로 한자의 뜻을 소리로 표현하는 경우가 있었다고 하지만 체계적으로 발전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이해 못할 영어 단어를 이해 못할 한자어로 옮겨놓고 번역자만 이해하는 자회자찬은 그만두고, 한자도 영어도, 외국어는 뜻으로 번역하는 노력을 기울여 보자고 제안하고 싶다. 

아울러 현재 굳어져 있는 잘못된 번역들도 바로 잡아 보는 것은 어떨까? 그 대표적 예가 Developed countries를 선진국이라고 번역하는 것이다. Developing countries는 후진국! 그래도 한국이 여기에 속하는 기간이 있다 보니 우리 번역도 바뀌었다. 개발도상국으로. 필자는 이 후자의 번역이 더 정확하다고 본다. 그렇다면  Developed countries는 그대로 좋은가? 사실 선진국은 Advanced countries라는 다른 영어표현이 있고, 이는 잘 쓰이지 않는다. 쓰이더라도 아주 제한적으로 어떤 영역에서 앞서가고 있는지를 명확히 밝혀야만 쓸 수 있는 매우 쓸기 까다로운 표현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적합하지도 않는 번역어 선진국이란 단어를 남발하고 있을까? 이제 우리도 이 표현을 쓸 때에는 다음 질문에 명확히 대답하도록 하자. In what area?

그렇다면 Developed countries는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개발완성국. 너무 길다. 개발국 정도가 적합해 보인다. 경제 개발을 완성했다고 그 나라가 선진국이라는 발상은 사실 과거 (혹은 현재에도 계속되고 있는) 서구 중심의 사고 방식이다. 정말 서구의 문명이 선진적이어서 경제 개발에 먼저 성공했다고 아직도 믿고 있는가? 여러 식민지와 아편전쟁 등을 통해 다른 대륙에서 부를 탈취해 가서는 아니고? 과거에 얼마나 정당한 혹은 부정한 방법으로 부를 취득하고 경제를 개발했는지는 이 글의 논점이 아니다. 따라서 여기서는 분명 다른 나라에서 (역시 일본이 아닐까?) 번역된 말도 안 되는 표현을 줏대 없이 그대로 가져다 쓰는 행동은 좀 자제하자는 것이다.

그 외에도 어느 나라에서 번역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우리가 아무생각 없이 가져다 쓰는 단어들이 많다. United Kingdom (UK or Great Britain, GB)을 영국이라고 부르는 것도 그 한 예이다. 영국이라는 단어는 분명 England라는 단어에서 왔을 테고 이 지역은 UK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British 사람들 중 England 출신이 아닌 경우 English라고 하면 무지하게 싫어한다. 그런데 우리는 여전히 이 나라를 영국이라고 부르고 있다. 마치 미 대륙의 원주민들을 아직도 인디안이라고 부르는 것 처럼. (콜롬버스가 처음 미 대륙에 도착했을 때 그는 자신이 인도에 왔다고 생각해서 그 곳 주민들을 인디안이라고 잘못 부르기 시작한 것이 지금까지 고쳐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미국에서도 공식적으로는 이제 Indian이라고 하지 않고 Natives라고 명칭을 바꾸었다. 그러나 일상적으로는 여전지 Indian이라 불리고 있다. 아직 인도가 강대국이 아니고 미 대륙 원주민들이 힘이 없어서 그렇지 내가 인도인이었으면 혹은 미대륙 원주민이었으면 대노할 사안이다. 이런 것이 바로 왜 우리가 시야를 넓혀야 하는가와 맞물리는 사안이다. 사실 한국인들도 다른 나라가 한국에 대해서 잘 모른다고만 불평하지 자신들 시야가 좁은 것은 생각 못한다. 한국인들이 이런 미대륙 원주민들의 아픔을 모르고 인도인들의 아픔을 모르면서 영국이 한국에는 나쁜짓 하지 않았다고 신사의 나라라고 불러주는데 누가 한국을 침범한 일본이 죄를 제대로 뉘우치지 않는다고 함께 아파해 주겠는가?) 

또 말이 샜다. 그럼 본론으로 돌아가서 영국은 어떻게 번역할 것인가? UK라는 이름으로 보면 '합왕국'으로 번역하는 것도 좋겠다. US가 '합중국'인 것처럼 말이다. 혹 British (GB)라는 관점으로 본다면 '부국'이라고 하는 것은 어떨까? 혹 더 좋은 아이디어가 있는가?

마지막으로 짚고 넘어가고 싶은 번역은 3인칭 대명사이다. 현재 우리는 he는 그로 she는 그녀로 번역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말의 '그'는 남녀 성별 구분이 없는 대명사이고, '그녀'라는 말은 원래 없던 말로 영어 she를 번역하기 위해 만들어진 신조어이다. 혹자는 신조어를 도입해서 한국어가 풍부해질 수 있다면 무슨 문제인가하고 그녀라는 번역어를 옹호한다. 이도 일리가 있는 말이다. 하지만 '그녀'라는 신조어를 만듦으로써 '그'라는 단어의 성별 무관함이 사라진다면 이 또한 한국어의 한 풍부함을 잃는 것은 아닌가?

물론 영어에서도 성별 구분 없이 3인칭 대명사를 써야 하는 경우가 생기면 he를 일반적 대명사로 사용한다. 그러나 그 어떤 경우에도 he는 일차적으로 남성이다. 따라서 성차별적 사용이라는 문제가 제기되는 것을 피할 수 없었고 그 역으로 일반적 3인칭 대명사로 she만을 쓰는 경우도 있다. 그 동안 받았던 차별을 뒤집기 위해 he로 일반적 사람을 지칭할 수 있다면 she만으로도 그렇게 할 수 있다는 주장인 것이다. 근래에는 이런 논란을 피하기 위해 일반적으로 누군가를 칭할 때는 he/she라고 두 대명사를 병기하는 경향이 강해졌다. 그래서 한국어 번역은 다음과 같아진다. 그(녀).

이것이 바로 우리 말 남녀 성별 편향성이 없는 '그'라는 단어에 남성 편향성을 집어 넣은 결과이다. 원래 '그'는 남녀 통칭하는 대명사이다. 따라서 he/she는 '그'로 번역하면 된다. 하지만 20세기부터 번역하기 시작해서 21세기에는 자리잡아버린 신조어 '그녀'로 인해 '그'라는 대명사에 편향성이 생겼고 이제 우리는 영어 사용자들이 가지고 있는 논란을, 원래 우리 단어 '그'를 지켰다면 없었을 그 논란을 고스란히 겪게 생겼다. 이 얼마나 우매한 일인가. 

그렇다면 he와 she는 어떻게 번역해야 할 것인가? 필자가 보기에 she를 '그녀'로 번역해야 한다면 he는 '그남'으로 번역해야 한다. '그남'이란 단어가 이상한가? '그녀'라는 단어도 처음엔 무지 이상했다. 그래서 번역서에서만 쓰이다가 20세기 후반부터 노래 가사에 쓰이기 시작하다가 이제서야 정착하게 된 것이다. '그남'이란 단어도 한 100년 쓰면 아주 익숙해질 것이지 걱정은 하지 말길 바란다. 말했듯이 he/she' '그'로 번역하면 된다.

영어 호기심 천국: How to Make Our Children Interested in English?

   어차피 공부는 혼자 하는 것이다. 물론 혼자 고립되어 한다는 것이 아니다. 특히 영어와 같은 언어는 주변의 도움이 많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이 본인이 주도적으로 자신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높은 영어 시험 점수가 필요하면 지겹게 듣는 광고에서 처럼 단기간 수천개의 단어를 외게 해준다는 프로그램이 필요할 수도 있고, 의사소통을 하고 싶다면 학원이나 테잎의 도움을 받아야 할 수도 있다. 전화 영어는 좀 어려운 편인데, 어느 정도 의사소통이 된다면 이 또한 좋은 방법일 수 있다. 이런 필요 뿐 아니라 본인이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느냐도 본인에게 좋은 학습 방법이 무엇인가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다. 자신에게 맞는 영어 훈련 방법을 찾고자 한다면 여러 방법을 시도해보고 자신의 특성에 그리고 자신의 목적에 맞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남이 해보고 좋았다고 해서 그것이 자신에게도 좋은 방법은 아니다. 이것은 남이 재밌는 영화라고 해서 나도 그 영화를 재밌다고 반드시 여기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학습의 대 원칙은 아이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아이들이 스스로 자신에게 맞는 방법을 찾으려면 우선 영어에 흥미가 있어야 한다. 흥미가 있어야 이 방법도 시도해보고 저 방법도 시도해보고 부모에게 도움도 구할 것이다. 바로 이 때가 부모가 도움의 손을 줄 수 있는 유일한 기회가 되었으면 하는 것이 필자의 바램이다. 물론 이 경우에도 자신의 생각만으로 특정 방법을 강요하거나 압력은 제발 행사하지 않았으면 한다. 아이들은 부모가 행사하지 않아도 자신이 사회적으로 어떤 압력을 받고 있는지 잘 알고 있다.

  본론으로 들어가서, 그렇다면 아이들에게 흥미를  유발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필자가 제안하는 방법은 부모와 함께 외국을 여행하라는 것이다. 왜 배우는지도 모르고 부모의 강압에 의해 영어를 배우는 것과 실제로 그 이상한 언어로 의사소통이 이루어지는 세계를 직접 경험하고 스스로 배우고 싶어지는 것과는 천지 차이다. 일단 외국에 나가면 아이의 시야는 한번도 외국에 나가보지 못한 사람과는 질적으로 달라진다. 한국 밖의 세상에 대한 흥미는 자연스럽게 외국어에 대한 흥미로 이어지기 쉽다.

  만일 해외 여행을 부모와 같이 갈 여건이 되지 않는다면 아이들을 방학동안 한 두달 어학연수 프로그램이 집어 넣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이는 어학연수의 효과를 크게 기대하기 보다는 안전하게 어린 아동이 해외에서 지낼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친척이 있다거나 다른 안전한 방법이 있다면 그것도 적극 활용하기 바란다. 다만 한가지 주지시키고 싶은 점은 한 두달 어학연수를 한다고 영어 실력이 크게 늘 것이라고 기대한다거나 그런 기대로 아이들을 압박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전 글에서도 밝혔듯이 몇십년을 살아도 영어를 잘 구사하지 못할 수도 있다.

  또한 여행을 한다고 해도 당장 그 여행 국가에서 사용하는 외국어에 흥미를 느끼지 못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기다려야 한다. 아이가 그 흥미를 느낄 때까지. 이후에라도 흥미를 느낄 가능성은 훨씬 커졌다. 극단적으로는 영원히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럼 뭐 어떻단 말인가. 시야가 넓어졌다는 것만으로도 얻을 수 있는 것은 다 얻은 것이다. 사실 언어는 덤으로 온다. 최소한 외국어 사용 국가에서 겁먹지 않고 생활할 수 있는 능력, 그리고 survival expression 정도는 대부분 익힐 수 있다. 여기에서 만족하는 아이도 있을 테고 대단한 외국어 능력이 없다고 해서 전혀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그 아이의 언어 능력이 혹은 외국어에 대한 호기심의 정도에 따라 그 구사 정도는 달라질 뿐인 것이다.

  잠시 여행을 하거나 단기간 어학연수를 한번 쯤 경험해서 외국에 대한 두려움을 없앴다면 필자는 다음을 추전해 주고 싶다. 아이가 어른이 되기 전 최소 한번 쯤은 현지에서 친구를 사귈 수 있을 만큼의 기간동안 (최소 몇달?) 보내도록 하자는 것이다. 여행하면서 부모와 함께 두루두루 겉에서만 보는 것도 안 가는 것보다는 낫지만 한 곳에서 지내면서 친구를 사귈 수 있다면 그 때부터 진정한 문화교류가 가능해질 것이다. 이것이 그곳의 문화를 배울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길이 될 것이다. 이제 그 아이는 모든 문제를 한국 안에서만 해결해야 한다는 좁은 소견에서 벗어날 수 있다.

  영어 열풍으로 몸살을 앓는 한국 문화에서 재미있는 현상은 경제가 어려워지기만 하면 해외 어학연수 해외여행이 도마에 오른다는 것이다. 도무지 앞뒤가 맞지 않는다. 경제가 어려워진다고 영어 열풍이 사그라지지는 않지 않는가? 해외여행과 어학연수는 경제가 나빠질 수록 더 가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신조이다. 이렇게 외국에서 배우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창출해 나쁜 경제를 더 나아지게 해야 하지 않겠는가? 물론 그 새로운 아이디어는 단순히 외국것을 카피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가지고 있는 한국 문화 한국 브레인과 접목 되었을 때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고 보는 것이다. 어찌됐는 새로운 정보, 새로운 시각, 즉 외국에서 보고 느끼는 것은 필수다. 

2013년 7월 15일 월요일

How to Practice English Pronunciation

이번엔 발음 공부를 어떻게 할지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우선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숙지할 사항이 두가지 있다. 그 중 하나는 발음은 중요하나 그것은 절대 어느 악센트인가가 아니라는 것이다. 즉 r과 t를 얼마나 강하게 혹은 얼마나 약하게 발음하는 가는 영어실력과 무관하다. 또한 o를 아처럼 발음하느냐 오로 소리내는냐가 영어 실력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것은 정말 개인의 선호도이다. 특히나 영어에는 한국어에 있는 표준어 개념이 없다. 영어 원어민들은 상대방 발음 가지고 비하하거나 하지 않는다. 이런 행위는 아주 무례한 것으로 간주되는 듯 하다. (물론 상대방이 영어를 잘 못하는 외국인인 경우에는 다르다.) 한국어에서도 지나치게 서울말 중심으로 사투리를 무시하는 행태는 사라져야 한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이대로 가다가 우리는 사투리를 거의 소실하게 될 것이다. 그 때 가서 우리 문화유산이 사라졌다고 후회해봤자 소용없다. 지금부터라도 표준어 제도가 아닌 공용어 제도로 바꾸어서 사투리를 보존하는데 힘썼으면 좋겠다.

이야기가 좀 삼천포로 빠졌는데, 발음에 대해  숙지해야 할 사항 중 나머지 하나는 영어 발음과 한국어 발음이 일대일 대응 관계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 두 발음체계에 비슷한 부분이 있다고 해서, 그 둘을 같다고 여기는 순간 원어민들과 대화할 수 있었을지도 모를 당신의 영어 실력은 개발되지 못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d'와 'ㄷ' 소리에는 유사한 점이 있지만 이 둘은 절대 같은 소리가 아니라는 것을 이론적으로나마 알고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어떻게 이런 상이점을 체화하는가에 초점을 맞추어서 이야기 해보기로 하자.  

그렇다면 본론으로 들어가서, 우선 발음을 어떻게 정확하게 배울 것인가? 발음을 처음 익히는데는 언어 전문가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일반적 외국인은 정확히 발음할 줄은 알지만 어떻게 그런 소리가 나는지를 우리에게 설명해 주지 못한다. 이건 어떤 외국인이 한국어 발음을 어려워할 때 정작 우리가 설명해 주지 못하는 이치와 같다. 즉 발음이라는 영역은 한국어 발음에 대해, 또 영어 발음에 대해 전문적으로 교육 받지 못한 사람에게는 도움을 받을 수가 없다. 혹 외국어 발음을 일반인에게 해보라고 하고 듣고 바로 따라할 정도의 천부적 재능을 가졌다면 가능하다. 사실 이 점이 아이들이 가지는 유일한 장점이다. 그래서 어릴 때 영어를 배우라고 하는 소리가 나오는 것이다. (그러나 발음이 영어의 전부가 아니라는 점 다시 한번 여기에서 상기하자. 아무리 발음이 좋아서 성인이 세 살이나 사용하는 영어 표현을 쓴다면 그것은 좋은 영어가 아니다. 그러나 발음에 한국어 액센트가 있어도 한국어와 영어의 차이를 명확히 해소해서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고 게다 고급영어를 구사한다면 그것이 바로 실력있는 영어이다.)

하지만 성인은 듣고 따라 배우는데 한계가 있다. 따라서 전문적 강사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들은 각 소리가 어떻게 나는 지를 가르쳐 줄 수 있다. 가령 예를 들어서 's' 소리는 혀 전체가 입 천장에 붙어야 정확한 소리가 난다는 것과 같이 성인이 발음을 배우는데 필수적인 정보를 알려줄 수 있다. 열심히 배우자.그런데, 간혹 외국인 영어 강사 중에도 전문적 훈련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은 이를 도와줄 수 없다. 따라서 전문적 교사를 찾아 도움을 구하도록 하자.

이미 학원도 지겹게 다녀봐서 기본은 있고 더 이상 왔다 갔다 시간낭비하고 싶지 않다면 테잎이 있거나 설명이 잘 되어 있는 교재를 선택해서 스스로 익히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특히 외국인 친구가 있어서 익힌 것을 시험해 보고 외국인이 알아듣는지 못알아듣는지 feedback을 얻을 수 있다면 금상첨화이겠다. 개인적으로 한글이 더 많은 영어교재는 추천해 주고 싶지 않다. 초기 교재의 해설은 강사가 하든 테잎으로 듣든 우리 말이 많이 섞여들어가는 것은 불가피하다 해도 이런 해설 테잎은 한두번 들으면 그만이니까 상관없다. 하지만 교재는 계속 보게 되기 때문에 반드시 한글이 거의 없는 것으로 구입하자.

이렇게 영어의 각 알파벹을 어떻게 소리 내어야 정확한 발음인가를 알았다면 연습을 해야 한다. 처음엔 발음을 과장해서 연습하길 바란다. 가령 th 발음은 반드시 혀를 이 사이로 집어 넣어서 발음해야 한다. 나중에 익숙해지면 자연스럽게 나오겠지만 처음부터 자연스럽게 나오길 기대하면서 대충 발음하거나 자연스럽게 나오지 않는다고 해서 연습을 게을리 하거나 포기하지 말고 어린아이처럼 과장해서 눈에 보이게 이 사이로 혀를 빼고 이 발음을 연습하자. 이 때부터 얼굴에 철판을 좀 깔 필요가 있다. 당신의 얼굴에 깔린 철판 두께가 일년 뒤 당신의 발음을 좌우할 것이다. 자 이제 시작이다!

2013년 7월 13일 토요일

어릴 때 이민을 가도 영어 못할 수도 있다.

  이전 글에서 고등학교 시절에 뉴질랜드 이민을 갔지만 영어 사용에 여전히 자신 없어하는 의사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그렇담 고등학교 시절 보다 어릴 때 이민을 가면 괜찮을까? 필자의 친구들 중에 중학교 시절 이민을 간 친구들이 있다. 혹 거기서 태어나면 완벽하게 영어를 구사할 수 있을 까? 아마 가능할 것이다. 한국어를 포기하나다면. 물론 이런 예측은 일반적인 경우에 한한다. 언어에 천부적 재능을 가진 사람들은 심지어 한국에서만 영어를 익혀쓴데도 영어 정말 잘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한국인 모두가 천부적 언어 재능을 타고 났다고 가정할 수 없으므로 보통의 언어 재능만을 가진 일반적 경우를 가장하고 이후 논의를 진행하고자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어릴 때 이민을 가서 영어권 국가에서 교육받고 살아도 현지인처럼 언어구사를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여기서 현지인처럼 구사하지 못한다는 것은 일상적 표현을 하지 못한다는 뜻이 아니라 대학에서 term paper를 무리없이 쓴다거나 delicate concept을 이용해 논쟁을 성공적으로 하는 경우를 뜻한다. 이는 그 사람이 집에서 그리고 한국인만 친구로 사귀어서 실제로 영어로 의사소통하는 경우는 학교교육에 그치는 경우가 많아서라고 현지 한인들은 진단하고 있다. 또한 현지에는 이런 한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도움 프로그램이 꽤 활성화되어 있다. 이로부터 부모나 친구와의 대화를 통해 우리가 얼마나 많은 언어를 습득하는가에 대해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때로는 한국어를 사용하는 부모 밑에서 태어났는데, 어릴 때부터 두 개의 상이한 언어를 지속적으로 접하다 보니 언어발달이 지체되는 경우도 발생한다. 흔히 '아이가 언어를 헷갈려한다'로 표현하는데, 실제로 아이가 이런 현상을 보여서 급 귀국하여 아이와 엄마는 한국에 남고 남편만 다시 외국에서 학위를 마치거나 직장을 계속 다니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이는 역시 한국어와 영어의 언어 차이가 커서 발생하는 듯 하다.

  정상적으로 적응을 하는 경우에도 어린이 집에서는 영어를 사용하고 집에서는 한국어를 사용하느라 아이들이 고생을 많이 하고 어릴 때 수행은 떨어진다. 어릴 때 언어의 간격이 큰 두 개의 언어를 동시에 배우면 최악의 경우 언어가 헷갈려 정상적 언어발달을 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사실 위에서 언급했다. 반대로 언어능력이 좋은 경우에도 일반적으로 하나의 언어만 한 경우 만일 1200단어를 구사하는 나이에서 두 언어를 한 아이는 각 언어에서 800단어밖에 구사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아이는 두 언어를 했기 때문에 두 언어 통틀면 1600단어를 구사하는 것이 된다. 따라서 한국어만 한 아이와 한국어 경쟁에서도 지고 영어만 한 아이와 영어 경쟁에서도 지지만 두 언어를 모두 구사한다는 장점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어느 장점이 더 중요하고 어느 약점이 덜 중요한지는 각자가 판단할 몫이다.

  즉 일반적인 경우 어릴 때 이민을 가도 한국어를 포기하고 영어에 집중하지 않으면 영어를 남들 처럼 못할 수도 있다. 한인 타운에 살면 하루 종일 영어 한마디 하지 않고도 살 수 있다는 사실은 이제 그리 새로운 정보가 아니지 않는가? 가끔 영어도 원어민처럼 하는데 한국어도 잘하는 한인 2세를 만날 수가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우리의 기준이 관대해서 그렇지 그들의 한국어는 대화를 하는 정도에 그칠 뿐 한국어로 공식문서를 작성할 수 있는 수준까지는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만일 그 사람이 한국어가 수준급이라면 영어에 문제가 있기 쉽다. 물론 이 경우에도 영어 발음은 좋고 일상 수준의 커뮤니케이션은 가능하니까 한국 사람이 보기에는 또 듣기에는 영어 잘 한다고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뿐이다.

  물론 당신의 자녀가 다행이 언어 능력이 뛰어나다면 둘 다 잘  할 수 있다. 가능성은 무한대이지만 가능성은 가능성일 뿐이다. 현실적으로 어릴 때 이민을 가는 경우, 외국에서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경우 두 언어 중 하나가 수준급이 되지 못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대비해야 한다. 따라서 무엇을 포기하고 무엇에 집중할 것인가 역시 선택해야 한다. 필자는 한국어를 포기하고 영어를 선택하는 사람들을 비난할 생각은 없다. 자녀가 미국에서 살길 바란다면 이 또한 현명한 선택일 수 있다. 전적으로 각자의 선택이고 책임이다. 다만 이런 고민 없이 장미빛으로 영어권 국가에만 가면 모든 언어 문제가 해결된다는 지나치게 순진한 발상이 비극을 불러오는 것이기 때문에 독자들이 발생 가능한 문제점을 인지하기 바라는 것이다.

한국어 영어로 옮기기

우리말을 영어로 옮길 때도 일본식을 많이 따르는 것 같다. 예를 들어, 일본에 있는 우리말의 'ㅅ' 소리에 해당되는 발음을 영어로 옮길 때, 'S'로 옮긴다. 하지만 일본에 있는 그 'ㅅ' 소리가 'ㅣ'라는 모음 앞에 오면 일본인들은 그 같은 소리를 'sh'로 옮긴다. 나는 일본어의 그 'ㅅ'에 해당하는 소리가 다른 모음 앞에서서 얼마나 'S'와 비슷하게 소리가 나고 'ㅣ' 모음 앞에서는 'sh' 소리가 나는지 여부는 알지 못한다. 내가 만난 일본인 중에 테솔을 밟고 있는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도 나에게 잘 설명해 주지 못했다.

  하지만 우리 말의 'ㅅ'과 'S' 소리가 다르다는 점은 분명히 안다. 오히려 'S'는 ㅆ과 더 비슷한 소리를 낸다. 물론 그렇다고 같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가장 가까운 소리가 ㅆ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왜 한국어에서 ㅅ을 ㅆ에 가까운 'S'로 옮길까? 그것도 경음화를 싫어하는 서울사람들이? 일본식의 영향이 아닐까하고 필자는 의심하고 있다. 달리 다른 이유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혹 그 이유를 아시는 분은 친절히 알려주시면 감사하겠다.

 그렇다면 한국어의 ㅅ은 어떤 철자로 옮겨야 할까? 내가 볼 때 'sh'가 가장 적당하다. 물론 정확하게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가장 근접한 소리라고 본다. 여기에서는 중국인들의 자국어 소리 영어로 옮기기 방식이 더 본받을 만하다. 모두 아는 바대로 중국어는 상형문자를 기본으로 한다. 그래서 중국의 글자는 배우기 어렵기로 유명하고 중국 내 문맹도 많다. 또 그래서 중국은 한자의 단순화를 추진하기 시작했고, 모든 중국의 소리에 영어 (혹은 로마자) 알파벹을 부여했다. 그리고 중국에서 초등학생들은 한자를 배우기 전에 이 로마자를 학교에서 제일 먼저 배운다. 아마 이 작업에서 각 소리를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많은 연구가 있었을 것이다. 최소한 우리나라처럼 주먹구구로 만들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물론 그게 우리나라 잘못은 아니다. 우리말은 그 자체로 매우 과학적인 소리 언어이기 때문에 단지 그럴 필요가 없었을 뿐이다. 

  그렇게 해서 중국에서 나온 발음대로 중국의 한 도시 '상해/상하이'는 영어로 'Shanghai'로 옮겨진다. 필자는 중국어를 잘 하지는 못하지만 상하이라는 중국어 발음과 한국어의 '상도'에서 '상'의 발음 차이를 느끼지 못한다. 물론 차이가 있을 수도 있다. 혹 큰 차이가 있다면 친절히 알려주길 바란다. 또 다른 문제 제기로는 'shang'소리는 '샹'이라고 소리가 난다는 주장이다. 따라서 '샹'이라는  소리를 나타내려고 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하냐는 질문이 제기 될 수 있다. 필자가 볼 때 이 소리는 간단하게 shyang으로 표현 가능하다고 본다. 사실 우리가 걱정해야 할 것은 만일 '상'을 'sang'으로 표현했을 때 '쌍'은 어떻게 표현하냐는 것이다. 우리는 나름대로 'ssang'이라고 표현하지만 영어에서 볼 때 sang과 ssang은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다. 그냥 우리 만족일 뿐이다. 

왜 우리말을 좀 더 잘 표현할 수 있는 길이 있는데 이를 무시하고 한국어와 영어의 발음 체계를 엉망으로 만드는지 필자는 이해할 수가 없다. 다른 예로 베트남 식당 중 Pho Bay라는 간판을 가진 프렌차이즈가 있다. 한 번은 영어 원어민이 이 식당 간판 발음이 [pou bei]라는 사실을 알고 불만을 토로한 적이 있었다. 아니 p소리면 p만 써야지 ph로 써서 여태껏 자기는 [fou bei]로 발음했다는 것이다. 마치 베트남 사람들이 영어를 모른다는 비판처럼 들렸다. 하지만 베트남 사람들도 로마자에는 전문가들이다. 아마도 프랑스에 지배를 받았던 역사에 기인하는 것이겠지만, 그들은 중국보다 훨씬 이전에 자국의 언어를 소리나는 대로 로마자로 표현하고 있다. 그래서 필자가 한가지 가능성을 제시해 주었다. 혹 베트남어에서 'p'소리는 뒤에 'h'소리가 살 짝 곁들어지는 그런 발음이 아니겠는가 하고. 그 말에 그 원어민은 아무 대꾸도 하지 못했다.

  이렇게 우리가 ㅅ을 sh로 표현하고도 이것이 영어처럼 '쉬' 소리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s'소리 다음에 'h'소리가 살짝 곁들어지는 것, 다시 말하면 ㅅ소리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실제로 필자가 원어민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칠 때 'ㅅ' 소리는  참 많이 힘들었다. 예를 들어, '상'이 들어가는 단어를 이야기할 때는 그들이 잘 알아 듣지 못하고 꼭 되묻는다. 
"What? Hang? Tang?"

최종적으로 필자가 아는 어떤 친구는 이 소리를 다음과 같이 적었다. 'tsang'! 어떤가 이제 필자가 위에서 한 주장이 아주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을 것이다. 우리말의 '상' 혹은 'ㅅ' 소리는 절대 'S' 소리가 아님을 유념해 주기 바란다. 개인적으로 필자는 tsang보다는 shang을 선호한다.

  모쪼록 우리 말을 영어로 덜 잘 표현하여 나중에 영어를 배울 때도 헷갈리지 않길 바라는 바이다. 하지만 여기에도 자국어 중심의 원칙은 항상 적용되어야 한다고 본다. 위에서도 '샹'을 표현하는 방법이 없었다면 필자는 다시 생각해 보았을 것이다. 자국어 중심 원칙을 예를 들어 설명해 보자면 현재 우리는 부산을 'Busan'이라고 옮긴다. 과거에는 'Pusan'이었는데 'Busan'으로 옮긴 것은 잘 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필자는 'Bushan'이라고 쓰기 바란다. 왜냐하면 부산은 부싼이 아니기 때문이다. 부싼이 뭔가? 뭐가 싸다는 뜻인가?

한 번은 필자의 한 외국인이 부산은 busan이 아니라 pusan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물론 맞는 말이다영어 중심적 사고에서는 말이다. 왜냐하면 부산의 ㅂ은 대체적으로 한국어에서 p소리로 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말의 ㅂ소리는 영어의 b소리도 포함한다. 따라서 한국어 중심으로 생각한다면 전자가 맞다고 본다. 또 왜냐하면 부산을 pusan으로 표현한다면 푸줏간의 pu와 소리에서 구분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부'와 '푸'를 충분히 다른 철자를 사용해서 구분할 수 있는데, 둘 다 같은 소리를 사용해서 한국어를 사용하는 사람들까지도 헷갈리게 만들 이유는 전혀 없다고 보는 것이다. 



2013년 7월 12일 금요일

영어 한국어로 옮기기

여기에서 필자는 번역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말 그대로 영어 단어를 한국어로 옮기는 작업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다. 필자가 알기로, 국어 사용 원칙에서 외국어를 우리글로 옮길 때는 원어의 발음이 기준이 된다고 알 고 있다. 즉, 원어에서 발음나는 대로 옮긴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원어의 철자가 무엇이었는가는 상대적으로 중요하지 않다.

그런데 필자는 여전히 원어의 발음보다는 일제시대 유입된 영어 사용을 많이 보게 된다. 이런 양상은 특히 L R 소리의 구분에서 두드러진다.  일본인들이 'L' 소리를 제대로 내지 못하기 때문에 흔히 'clean'을 '크린'으로 발음하기 쉽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이를 비교적 정확하게 '클린'이라고 발음할 수 있다. 이렇게 외국어를 옮길때 한국어가 가지고 있는 장점을 잘 살리지 못한 예를 여전히 많이 볼 수 있다는 데서 아쉬움을 많이 느낀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 유명한 상표인 '크리넥스' à '클리넥스'로 바뀌어야 한다. 물론 크리넥스는 너무 잘 알려진 상표라서 이를 바꿀 경우 금전적 손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인지해야 한다. 하지만 최근에 만들어 지는 단어에도 이런 실수는 계속 반복되고 있으니 안타까움을 금할 수가 없는 것이다. 

필자가 아는 외국어가 영어에 국한된 지라 이 곳에서 영어를 많이 언급하고 있으나, 영어가 아닌 경우의 r발음도 관습으로 무조건 'ㄹ'로 옮기는 사례가 빈번하다. 독일어로 자연이라는 단어는 현지어로 '나투어/나투허'로 발음나는데 한국인들은 지속적으로 '나투르'라고 옮겨 적고 있다. 또한 한국의 한 프렌차이즈 빵집의 간판은 '투레주르'인데, 이는 불어로 보다 '툴레주흐'에 가깝게 소리가 난다. 이런 식의 'r'은 어느 언어에서나 'ㄹ'로 소리난다는 입장은 어디에서 온 것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실제로 독일인들이나 프랑스인들은 자신의 언어를 배우는 사람들이 'r'을 영어식으로 발음하면 매우 싫어한다.

여기서 다른 예를 하나 더 들어보자. 필자가 '아이팟'이 iPod라는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 너무 충격을 받아서 이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사실 오래전부터 't'가 단어의 맨 마지막에 왔을 때 왜 한국인들이 받침에 ㅅ을 쓰는가 의문을 가져왔었다. 소리나는 대로라면 ㄷ이 맞다. 철자까지 고려해주면 ㅌ! 어차피 같은 소리인데, ㄷ으로 통일하거나 심지어는 ㅅ으로 쓸 이유가 있는가? ㅅ받침이 더 멋져보이니까 유행했을까 아니면 우연히 누군가 그렇게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 확산된 것일까 궁금하다. 

필자의 입장은 이왕 나는 소리가 같다면 원 알파벹에 해당하는 한국어 철자를 살려주는 것이 더 낫다는 쪽이다. 따라서 'it'에 대한 우리글 표현은 '잇'이 아니라 '잍/읻'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좀 더 긴 표현을 옮겨야 할 때, 가령 'It is'같은 표현을 '잍 이즈'로 옮길 수 있고 이 경우 한글 표현을 읽을 때 가장 원어와 같은 소리가 난다. 이 것을 '잇 이즈'로 옮기면 한글만을 읽을 때 '이시즈'로 발음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이 것은 원어와 완전히 달라지는 발음이다. 이 오류가 처음에는 작게 보일 수도 있지만 이런 오류가 쌓여서 나중에는 원어를 절대로 알수 없는 Konglish가 나오고 또 어떤 표현을 그렇게 읽으면 Native English Speaker가 알아듣지 못한다고 법석을 떠는 악순환이 발생한다.

그 예가 바로 iPod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d'는 유성음으로 영어 단어의 맨 마직막에 위치할 때, 즉 한글로 옮겨서 받침인 자리에 놓이게 되면 원어와 전혀 다른 소리가 나는 대표적인 소리이다. 따라서 우리는 bird를 언제나 '버드'라고 옮기지 '벋'이라고 옮기지 않는다. 그런데, pod는 '포드(미국식은 파드)'라고 옮기지 않고 '팟'이라고 하는 국적 불명의 단어가 완성되는 것이다. 

이제서야 이런 경향을 지적하는 것도 좀 문제일 듯 싶다. 사실 이런 변형의 전조는 예전부터 있어 왔다. 오래 전에 외화 제목을 영문 그대로 한글로 옮기는 것이 예사가 되었는데, 그 때 한 영화의 제목이 'Wag the Dog'이었다. 이 제목은 '왝더독'이라고 옮겨졌다. g도 d와 마찬가지로 한글에서 받침 자리에 오면 소리가 달라진다. 따라서 Dog à 도그가 더 적합한 표현이다. 

물론 '포드' 보다는 '폳'이, 그리고 '도그' 보다는 '독'이 간결성이라는 측면에서 보다 장점이 있을 수 있다. 그리고 한국에 들어 온 이상 영어 단어도 한국인들의 취향을 따라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많은 경우 한국어에서 충분히 간결하게 줄일 수 있는데도 늘려쓰는 사례가 수없이 많다. 예를 들면 유명한 소설이면서 영화인 Harry Potter Series의 주인공들 중 한 명인 Hermione Granger의 이름은 한국어로 '헤르미온느'로 옮겨진다. 그러나 실제로 현지인들이나 영화에서는 '허마니'로 불리운다. 두 글자나 줄일 수 있는 이런 이름은 현지 발음을 무시하고 길게 옮기면서, 또 원어의 발음을 무시하고 iPod를 아이팟으로 옮기는 행위는 이해할 수 없다.

물론 한국어는 한국어니까 외국어를 어떻게 표현하던 우리 마음이라고 주장한다면 필자는 할 말이 없다. 그러나 백번을 양보해도 최소한 '아이팓' 이상으로의 변형은 취하지 않는 것이 좋지 않을까? 또한 어떤 경우에도 외국어와 한국어의 발음 체계가 일대일의 관계가 아니라서 완벽할 수는 없다. 그래서 위 필자의 제안에도 논란은 있을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일본식 발음과 비상식적 적용을 방지한다면 훨씬 더 한국어에 적합하고 체계적이 될 것이다그래서 현재 유행하고 있는 아이팟과 팟캐스트의 원어가 iPod와 Podcasting이라고 필자가 설명해 주었을 때 한국인들마저 놀라는 사태는 좀 막는 것이 좋을 듯 싶다. 혹 독자들 중 시간이 있고 관심이 있다면 국어맞춤법도 아울로 찾아보기 바란다.

그렇다고 필자가 현재 한국인의 모든 영어 사용에 삐딱한 시선을 보내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푸쳐핸접' 같은 경우는 정말 영어와 한국어에 대한 이해가 대단히 깊은 상태에서 나온 것 같다. 실제 나는 소리와 매우 근접할 뿐 아니라 원어와 한국어의 음절 수도 일치하는 이렇게 창조적 옮김을 적극 환영한다.

2013년 7월 11일 목요일

유럽인이 구사하는 영어의 수준

  이전 글에서 몇 개 국어 한다는 유럽인들의 진실은 우리가 사투리를 안다는 수준이라는 설명을 했다. 하지만 그들 자신이 토로하듯이 유럽인에게도 외국어는 어렵다. 즉 그들에게도 영어는 어렵다는 것이다. 사실 생각해 보면 우리가 사투리를 알아듣는 것은 언어의 뿌리가 같아서 가능하지만 구사하는 수준은 미비하다. 좀 더 들어가서 그 사투리로 문학작품을 만든다거나, 왜 이렇게 다른 표현이 각 지방에 사용되는가와 관련된 지식에 대해서는 완전 문외한이다. 사실 잘 모르면서 우리는 다른 지방 사투리를 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TV를 좀 보고 주변에서 사투리 쓰는 사람 몇 만나고 나서 흉내를 좀 내는 것으로 말이다. 유럽에서 몇개 국어를 한다는 사람들의 실체도 이런 것이 아닐까? 물론 필자는 잘 모른다. 이에 대한 대답은 유럽인들이 해주어야 할 듯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가 이야기해 줄 수 있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필자는 학부시절 스웨덴 왕립 과학연구소에서 영문으로 펴낸 책을 번역하는데 도움이로 활동한 적이 있었다. 필자의 역할은 초벌번역을 하는 것이었다. 그 때에도 나는 외국에 나가 공부를 하고 싶은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이 번역활동은 아르바이트로 용돈을 벌 수 있을 뿐 아니라 필자의 영어실력 향상에 도움이 크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결론적으로 많은 도움이 됐다. 필자는 이후에 왠만한 nature나 생물에 대한 다큐멘터리 문서는 그 어떤 다른 문서보다 더 잘 읽을 수 있게 되었으니까... 하지만 backfire도 만만치 않았다. 바로 필자의 영작은 이 스웨덴식 영어에 영향을 크게 받아 원어민이 보기에는 문제 투성이였던 것이다. 따라서 외국에서 필자의 학업 중에 이 잘못된 영어를 고치는 과정이 크게 한 몫을 차지했다.

  이후로 필자는 유럽인의 영어 실력은 어느 정도인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내 Native English Speaker 친구에게 유럽인이 쓴 영어 논문 중 하나를 보여주고 평을 해달라고 했다. 그 친구는 유럽인치고는 어법에 잘 맞게 쓴 편이라고 이야기해 주었다. 이는 유럽인이 그것도 영어로 논문을 쓸 정도의 숙달정도를 가진 사람이 영어를 사용하는데 얼마나 많은 실수를 하는지를 반증해 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현재 필자의 영어 수준은 이 스웨덴식 영어책 수준 만큼은 되는 것 같다. 그 말은 책 한 권 펴낼 정도는 되지만, 그랬다가는 이 책 처럼 수많은 표현들이 실제 영어책에서는 쓰지 않는 것들이거나 중간 중간 이해하기 어려운 표현들이 수 없이 섞여있을 것이란 말이다. 필자가 볼 때 몇 개 국어를 한다는 유럽인들의 언어 수준도 이 이상 벗어나기 힘들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잘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는 듣기에는 Native English Speaker처럼 영어를 구사한다고 보일 것이다. 물론 필자의 영어가 아니라 유럽인의 영어를 말이다. 우리가 듣기에 잘 알아들을 수 없지만 서로 의사소통도 되는 듯 하고 발음도 잘 굴리는 듯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유럽인들이 영어를 구사할 때도 그들 모국어의 accent가 매우 특징적이다. 그 유럽인이 영어를 잘 못하고 또 그 원어민이 해당 유럽어에 대한 지식이 없으면 서로 못 알아 듣기도 한다. 그러나 Native English Speaker들은 유럽 문화에 익숙하고 외국어로 유럽어를 배우기가 쉽다. 따라서 유럽인의 영어 포현 실수는 문화적으로 더 공유되어서 Native English Speaker들이 더 잘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마치 일본인이 한국어 발음 어디에서 실수하는지 우리가 알고 있기 때문에 일본인들이 발음을 이상하게 해도 한국인들이 거의 알아듣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우리가 실수하면 그들은 거의 전혀 알아 듣지 못한다. 그래서 내가 아는 한 한국인 친구는 이렇게 불평을 한 적이 있다. "영어가 지들 모국어인데 나같은 외국인이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어야지 왜 못 알아 듣는 거냐구?" 이건 우스개 소리였지만 사실 이런 불평이 유럽인들 사이에서는 잘 나오지 않는다. 또한 유럽인들은 자신의 고유 표현을 번역해서 말해도 왜만하면 English Speaker와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이 또한 우리와는 다른 점이다. 부럽나? 부러우면 지는 거다. ㅋ

  유럽인이 땅을 사서 한국인이 배가 아프다면 좀 통쾌한 이야기도 해야 할 듯 싶다. ^_^ 그것은 유럽인들도 영어로 문서를 작성할 때 Native English Speaker가 이런 저런 오류를 지적하면 찍소리도 못하고 따른다는 것이다. 사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용감한 사람들은 한국인들이다. 한국의 교육에 힘입어 문법으로 무장하고 Native English Speaker 에게 따진다. 가끔은 그렇게 해서 Native English Speaker 과 논쟁에서 이겼다는 사람들을 보기도 한다. 통쾌한가? 하지만 너무 이르다. 이것은 원어민들이 말이 안 통하니까 포기한 것이지 진짜 한국인들이 자신이 아는 문법으로 이겼다고 보면 곤란하다. Native English Speaker들은 자신들이 사용하는 문법을 말로 표현하지는 못해도 몸으로 체화한 사람들이다. 물론 모든 영어 사용자가 그렇다고는 살 수 없겠지만. 영어 교사로서 언어교육 받았거나 대학원 이상 고학력인 사람들에 한해서.. 대학 졸업만 하면 그렇다고 봐야 할 까?

  문법에는 맞아도 때때로 어떤 표현은 의미상 말이 안되고 또 다른 표현은 관습적으로 그렇게 쓰지 않기도 한다. 이렇게 영어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표현을 쓰게 되는 이유는 누누히 말했지만 한국어에 영향을 받아서이다. 특히 자신이 아는 한국어를 번역해서 써놓고 문법에는 맞다고 좋아하면 원어민 입장에서는 곤란할 것이다. 그래서 필자가 전혀 다른 표현체계로 표현자체를 통째로 습득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한국어에도 이런 관습적 표현 규칙이 존재한다. 모두 한국어에 한해서는 전문가이실 테니 스스로 한번 찾아보시길 바란다. 그러나 사실은 전문가가 아니니 어려울 것이다. 게다가 그런 관습적 표현을 찾아놓고도 왜 이 표현은 이렇게만 써야 하는지 그 근거를 찾아내려고 한다면 머리에 쥐가 날 것이다. 따라서 요새는 한국어를 하는 외국인을 쉽게 만나 볼 수 있다. 만일 그 사람들이 이런 관습적 표현에 이의를 제기한다면 어찌할 것인가?

  여기서 문제 하나?
  만일 어떤 외국인이 왜 한국에서 모든 집의 단위는 방인데 (안방, 건너방, 쪽방 등) 부엌에만 '방'이란 말을 쓰지 않냐고 물어보면 어떻게 대답해 줄 것인가?

  어쩌면 우리도 Native English Speaker  우리 영어 사용에 문제를 제기해 주면 문법으로 따지지 말고 유럽인처럼 고분고분 감사히 받아야 할 지도 모르겠다.

2013년 7월 10일 수요일

유럽인이 구사한다는 9개 국어의 진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영어와 한국어를 동시에 원어민 수준으로 구사한다는 것이 어렵다는 주장을 할 때 가장 큰 반론으로 제기되는 것은 유럽인들은 몇 개 국어도 술술 구사한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대단히 공부를 한 것도 아니고 티비만 봤는데, 3-4개 국어는 기본이고 많게는 9개 혹은 그 이상도 구사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한국인은 불가능하다는 것인가? 사실 지능 측면에서 한국인이 세계에서 가장 똑똑한 축에 든다고 자부하는데 (사실 어느 인종이나 이런 식의 자화자찬은 있을 것이지만) 유럽인이 어려움 없이 하는 것을 한국인이 하지 못한다고 하면 납득이 가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몇 개 국어 한다는 유럽인들의 각 언어 수준은 우리가 사투리를 안다는 수준이 아닐까? 이전 글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스페인 사람과 이탈리아 사람들은 서로의 언어를 한번도 배워보지 않았다 하더라고 만나자 마자 서로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서로의 언어를 배우기는 얼마나 쉽겠는가? 또한 필자의 한 독일인 친구에 의하면 벨기에 일부와 네델란드에서 사용하는 Dutch라는 언어와 독일어(Germany or German Deutsch)는 서로의 언어를 모르는 상태에서도 문자로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발음상으로 좀 달라서 서로의 언어를 모른 채 말로 의사소통하기는 문자로 할 때보다는 어렵다고 한다. 국내의 어떤 유럽여행 안내서에는 이 둘의 문자가 어찌나 비슷했던지 두 언어가 같다고 해설해 놓기도 했다. 하지만 유럽인들은 이 두 언어가 전혀 다른 언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스페인사람은 티비만 보면 이탈리아어를 습득할 수 있고, 독일 사람 또한 티비만 보면 Dutch를 습득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아주 쉽게 2개 국어 달성이다.

  좀 더 전문적으로 들어가서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프랑스어는 같은 뿌리를 가지고 있다. 라틴어. 또한 독일어, Dutch, 영어가 같은 뿌리를 가지고 있다 (독일인들의 말에 의하면 독일어에서 갈라졌다고 한다. 이것이 사실인지는 역시 전문가의 견해가 필요하다.). 비슷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프랑스어와 다른 두 언어, 그리고 영어와 다른 두 언어는 마치 한국에서 제주도말과 서울말처럼 바로 서로 의사소통이 가능할 정도로 비슷한 것은 아니고 공부를 좀 해야 의사소통이 가능해진다. 즉 tv좀 보고 학교에서 좀 배우면 이제 바로 3개 국어 달성이 되는 것이다.

  좀 더 멀리 들어가 보면 위 여섯개의 언어가 다시 같은 뿌리에서 갈라져 나왔다. 그리고 동유럽을 중심으로 슬라브어의 여러 갈래 언어들이 존재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것은 러시아어. 그런데 더 깊이 들어가면 이 역시 위 여섯개와 같은 뿌리! 이렇게 유럽에서 여러 국어를 섭렵한다는 것은 한국인이 영어를 비롯한 여러 유럽어를 구사한다는 것과 본질적으로 다르다.

  한 예로 내가 아는 어떤 철학자는 고등학교 때까지 책 한번을 읽지 않았다고 한다. 이 사람이 책을 읽기 시작한 것은 겨우 대학 때부터였다. 당연히 독일로 유학 갈 당시 이 사람의 영어 실력은 형편 없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독일에 유학을 10년 다녀와서 갑자기 영어책을 빨리 읽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는! 이는 유럽어들이 얼마나 연관되어 있는지를 보여주는 일화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유럽어끼리는 번역기가 잘 작동하는 것일 것이다. 하지만 한국어와 영어 간 번역기를 돌리면 그 결과는 정말 배꼽을 잡을 만큼 우스워진다. 이로부터 다음과 같이 유추해 볼 수 있다. 유럽인이 다른 나라의 유럽어를 배울 때 번역을 통해 배우는 것이 어느 정도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한국인들이 번역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초기 단어 습득에 한해 있다. 그러나 더 깊이 들어가면 많은 경우 한국어 단어의 뜻과 영어 단어의 뜻이 정확히 일치하지 않는 것도 알 수 있다. 따라서 수준이 올라가면 단어 수준에서도 번역은 힘들어진다.

  언어의 표현은 우연의 산물이다. 내가 한국어를 배우는 것을 선택하지 않았듯이, 한국어에서 자주 사용하는 표현도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다. 이는 우리 선조들의 우연적 경험이 축적되어 형성되어서 내려오는 것이다. 내가 '귀신이 곡할 노릇' 혹은 '말도 안돼'라고 말하고 싶을 때 이것을 영어로 번역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나는 아마도 "I don't believe it" 또는 "Unbelievable'이라고 표현할 것이다. 자 보자 여기 어디에 직접적 번역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있는가? 표현의 축적은 역사와 문화를 공유하면서 그 특수한 환경에 우연이 겹쳐지면서 공유되어 공인된 표현으로 자리 잡는 것이다. 그래서 결론은 혹 영어권 국가 문화를 한국의 문화로 점령을 하게 된다면 모를까 아니면 한국인들은 영어에서 사용되는 표현을 그대로 통째로 익혀야 한다.

  그러고 보니 일어나 중국어를 번역기로 돌리면 한국어로 잘 번역되는지에 대해서는 필자는 잘 모른다. (혹시 아는 사람?) 한국어, 베트남어, 중국어, 일본어 등은 어원도 다르다고 알려져서 어쩌면 유럽어만큼 힘들지도 모르겠다. (일본어에 대해서는 혹자는 한국어와 같은 알타이어족이라고 하고 또 일부 일본인 학자들은 그렇지 않고 전혀 별개라고 주장하고 있어서 좀 더 지켜보아야 할 것 같다.) 하지만 최소 중국 문화와 일본 문화가 우리에게 익숙하기 때문에 그 만큼은 더 쉬울 것 같다. 우리가 현재 미국문화에 많이 노출되어 있지만 그래도 한국어의 70%를 차지하는 중국어의 영향과 아직도 청산되지 않은 일제시대의 유산들에 게임이 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한가지 더 언급하고 싶은 것은 실제 각 언어간 간격이 얼마나 큰지는 좀 연구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 특히 동양어 간 간격은 어떤지 알려진 바가 없는 듯 싶다. (혹 알고 있는 분이 계시면 help me here!!! ^_^) 언어 간 간격을 따지려면 어떤 기준이냐에 따라 달라질 듯 싶은데, 우리가 알고 싶은 것은 배우기가 얼마나 어렵냐는 것이니까 일반적 중고등학생이 혹은 성인이 최초로 배우기 시작해서 기본적이고 단순한 글을 읽기 시작하게 되기까지의 평균 기간을 조사하면 될 듯 싶다. 일주일에 세번 한시간씩 강의를 듣고 한달에 한번 시험을 보는 것으로 형식을 통일해서 말이다.

2013년 7월 9일 화요일

영어와 중국어는 어순이 같아서 중국인은 영어 배우기가 쉽다?

   많은 사람들이 어순 때문에 중국인은 영어를 배우기가 쉽고 마찬가지로 한국인은 일본어를 배우기가 쉽다고 믿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 일본어 배우는 한국인에게 물어보면 일본어 어렵다고 한다. 같은 단어도 여러 읽는 방식이 있고 이를 다 익혀야 하기 때문이다. 사실 일본어에서 문자는 한문을 단순화한 형태인데다가 일본어에서는 여전히 한자가 많이 쓰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한자가 어렵다면 일본어가 쉽다고 하기는 어려울 듯 싶다.

  또 다른 반론으로 필자는 중국어가 어순이 달라서 배우기 어렵다는 소리를 한국사람들한테 들어본 적이 없다. 언제나 그 밑도 끝도 없는 상형문자가 도마에 오르지 않는가. 과거에 세종대왕이 한국어와 중국어는 달라서 한글을 창제했다고 했는데, 당시에 다르다는 기준이 무엇이였는지 갑자기 궁금해진다. 또한 영어를 배우는 중국인에게 물어봐도 영어는 어렵다고 한다. 필자는 중국어를 잘 하는 호주인을 하나 알고 있는데, 이 친구에 따르면 중국어는 글자를 익히기가 어렵지만 4성만 제대로 익히면 말하기는  그다지 어렵지 않다고 한다. 왜냐하면 중국어에는 복잡한 문법이 거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 이 친구의 설명이다. 필자는 중국어에 대해 잘 모른다. 따라서 이 주장의 진의를 따지자면 언어 전문가가 필요하다. 다만 쉽다 어렵다 떠도는 이야기들이 모두 주관적 의견에 불과하다는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실제로 유럽에 사는 사람들도 영어 배우기 어렵다고 호소한다. 우리가 보기에는 엄살이 심하다. 그러나 그들 입장에서는 물론 어려울 것이다. 우리도 우리말 사투리를 무시하고 배우려고 하지 않아서 그렇지 정말 다른 지방에서 사용하는 사투리를 제대로 배워서 그 언어로 문서도 작성하고 전문가로 나서려면 그 과정은 절대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언어 간격이 큰 외국어만큼이야 하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필자의 눈에 유럽인들의 어려움 토로는 엄살로 느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본론으로 돌아가서 정말 영어는 어순이 달라서 배우기가 힘든 것일까? 내가 볼 때 이렇게 말하는 대부분의 사람은 한국어를 번역해서 영어로 말하거나 영어를 번역해서 한국어로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순 바꿔서 번역하자니 힘들다고 하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이렇게 영어 하지 말라는 조언을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보았을 것이다. 영어는 한국어와는 전혀 다른 표현의 체계이다. 이것을 번역해서 읽고 말하려고 하면 절대 제대로 배울 수 없다. 또한 모국어와 간격이 매우 큰 외국어를 배울 때 이 언어는 우리의 뇌에서 모국어와 경쟁하게 된다. 이는 외국어를 배우고 사용하는 동안엔 모국어를 사용할 수 없다는 점에서도 쉽게 알 수 있다. 또한 어떤 표현을 할 때 모국어가 아닌 외국어 중 선택해서 말하거나 써야 한다는 점에서 모국어를 억제하지 않고 외국어를 빠르게 배우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러분도 제 2외국어를 배울 때 떠올려야 하는 해당 언어의 특정 단어는 떠오르지 않고 평소에는 떠오르지도 않던 영어 단어가 떠올라서 영어를 억제하려고 노력해 보았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언어 간섭이다.

  결론은 영어가 어순이 달라서 배우기 어려운 것이 아니라 우리의 학습 방법이 잘못 되어서 어려운 것이다. 영어를 번역해서 이해하려 하지 말고 한국어를 번역해서 영어로 작문하려고 하지 말자. 필자는 워낙 두뇌회전이 느려서 이렇게 하려면 세월이다. 특히나 대화나 채팅을 할 때는 시간을 놓치면 그것으로 끝이다. 그 와중에 번역하고 있으려면 정말 '머리털 다 뽑힐 것이다.' 그 뿐 아니라 그렇게 구사한 영어 표현은 많은 경우 원어민들이 이해하기 어렵고, 공식적 문서라도 작성하는 날이면 대개 절대 사용해서는 안되는, 영어의 관습적 사용에서 벗어나는 문장들이다. 당신의 문서는 절대 통과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마치 어느 외국인이 'He drives me crazy'. 라는 표현을 '그가 나를 미치도록 몰고가.'라고 직역해서 말하는 것과 비슷하다. 한국인들이 이런 외국인의 표현을 들어면 무슨 말인지 이해는 하겠지만, 이상한 표현이라는 것은 누구나 인정할 것이다. 반대로 한국인이 '쟤 때문에 나 미치겠어.'라고 말하고 싶은 때 만일 'I am crazy because of him'.라고 말한다면 외국인들도 우리와 같은 심정이 된 것이고 당신은 이게 다 어순때문이라고 탓을 할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한국인들이 영어를 제대로 구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영어 표현을 통째로 외야 한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한가? 많이 듣고 읽고, 또 많이 말하고 쓰면 가능해진다. 뭘로? 영어로! 그래서 이런 추천을 하는 것이다. 생각부터 영어로 하라고!!! 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이 글의 주제가 아니므로 다음 기회에 하기로 하겠다.

  

False Belief about English 2: 영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발음이다?

  한국에서는 영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마치 발음일 것처럼 여겨진다. 그래서 과거 중고등학교 교사들의 영어는 이른바 구리고 미국인들의 발음을 흉내낸 영어는 멋지다는 선입견이 있다. 이런 선입견의 바탕에는 발음이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영국에서 몇 년 거주하다 온 필자의 지인이 영어를 하는 것을 듣고 한국인 친구들이 네 영어 발음은 마치 내가 중학교 때 선생님이 하던 영어같다고 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래서 그 지인은 분노했다. 영어 실력도 아니고 발음이 미국식이 아니라 영국식이라고 비웃다니!

  물론 구리고 멋지다는 것은 주관적 판단이니까 필자가 뭐라고 하는 것도 이상하겠다. 발음이 미국식인 것이 중요하다는 것은 한국의 sub-culture로 인정할 수 있다. 영국이나 호주에 가면 그 사람들도 자기네 식 발음이 제일 좋은 발음이라고 생각하고 어떤 외국인이 미국식 발음을 하면 잘못 발음했다고 고쳐준다. 여기서 외국인이 중요하다. 그러니까 그 사람이 영어를 잘 못하는 듯하면 영어 발음 자기네식으로 고쳐준다. 하지만 그 사람이 미국식으로 발음하지만 원어민이면 아무 말도 안 한다. 그야 말로 no touch! 그러니까 한국에서 미국식 발음이 멋져 보인다까지는 문제가 없다고 본다. 하지만 다른 발음을 사용한다고 비웃는 것은 좀 문제가 되는 듯 싶다. 우리는 외국인들끼리인데, 서로 비웃지 말자. 또한 발음과 영어 실력이 같다고 혼동하는 일은 없어야 할 듯 싶다. 특히 발음만 좋은 그 사람이 어떤 영어를 구사하건 원어민과 같은 수준의 영어르 구사한다고 바로 평가해 버리는 것은 좀 심각하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발음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의사소통에서 발음은 물론 중요하다. 내가 지난 글에서도 이야기했듯이 발음은 전문가의 도움을 반드시 받아야 할 만큼 중요하다. 특히 한국에 있는 외국인들만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현지에 있는 원어민들과 의사소통하려면 발음은 중요하다. 그것이 흔히 우리의 고정관념의 기본이 되는 영국식 발음이나 미국식 발음과 같은 지역 accent가 아니라 한국어와는 다른 영어의 발음 체계를 알아야 하는 것이다. 즉, 한국인이 흔히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처럼 r이 단어의 마지막에 오거나 r 다음에 자음이 오는 경우 미국인들처럼 강하게 발음해 줄 것인가 아니면 영국인들처럼 대충 발음해 줄 것인가나 d와 t가 단어의 마지막에 오거나 모음 사이에 위치하는 경우 미국인들처럼 대충 발음해 줄 것인가 아니면 영국인들처럼 확실히 발음해 줄것인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D와 t를 대충 발음하고 r을 강하게 하면 좋은 발음이라는 환상은 잘못된 것이다. 영어라는 측면에서는 둘 다 실력차이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발음하면 한국인들 사이에서는 영어 잘한다 칭찬받을 수 있다. 뭐, 한국에서만 영어를 구사하며 뽐내고 싶다면 나쁘지 않은 전략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신경써야 하는 정말 중요한 발음은 무엇인가? 사실 한국인들이 더 신경써야 하는 발음은 잘 알려진 바와 같이 한국어에는 없는 r과 l, b와 v, p와 f를 구분하는 것이다. 이와 동시에 잘 알려지지 않은 i와 ee[i:] (그리고 e,), dg (judge, jejus)와 ch (그리고 z), d와 t 등의 구분이다. 이런 발음들은 한국어에도 있지만 영어와는 미묘하게 차이가 있어서 우리도 외국인도 혼동하기 쉽기 때문에 이들을 신경써야 의사소통이 원활할 수 있다. 특히 유럽인들의 발음과 차이점도 간과해서는 안된다. 필자가 외국에 가기 전에 'Ace of Base'의 팬이었다. 그들 앨범 수록곡 중 오래 전에 유명했던 'Edge of Heaven'이라는 노래가 있다. 열심히 따라 부르며 발음공부도 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 곡에서 'edge' 발음은 영어 원어민의 발음과 완전히 다르며 나중에 안 사실이었는데, 이 그룹의 맴버들이 영어권 국가의 사람들이 아니었다.

  필자가 개인적으로 생각할 때 'd' 발음이 가장 어렵다. 외국에서 살 때 언젠가 한번 데이터 저장을 위해서 blank CD 하나를 구하러 다닌 적이 있었다. 그곳에서 CD는 몇십장 묶음으로만 판매하기 때문에 우선은 친구들한테 구하려고 했다. 그래서 물었다.
"두유 해브 어 씨디?"
"왔 씨디?"
  이해가 가시는가? 내가 물어보려고 했던 것은 CD를 가지고 있느냐 였는데, 그 친구는 내 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city에 대한 질문 치고는 이상했던 것이다. 즉 한국어로 편하게, 우리가 흔히 CD를 발음하듯 영어에서 발음하면 원어민들은 우리의 발음을 city로 알아 듣는다. 왜냐하면 그들이 t를 약하게 발음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d를 무성음으로 발음하기 때문이다. 한국어의 'ㄷ'은 무성음이고 영어의 'd'는 유성음이다. 이것이 가장 근본적인 차이이다. 그리고 한국어의 'ㄷ'는 유성음 'd'를 포함하지만, 영어의 무성음 't'는 완전 무성음만을 취급한다. 여기에서 한국어와 영어의 발음체계가 1대1 대응관계가 아니란 것을 알 수 있다. 어떤 유명한 강사들이 자꾸 미국인들은 't'를 약하게 발음해서 'd'처럼 합니다라고 강의하는데, 이런 사람들은 이런 기본적인 한국어와 영어의 발음 범주의 mismatch를 모르는 것이다. 정확하게는 영어 원어민들이 대게 그 음절에 stress가 없는 상황에서 't'를 'ㄷ'로도 발음할 수 있다. 하지만 이 'ㄷ'은 영어에서 절대 'd'가 아니다. 't'이다. 왜냐하면 무성음이기 때문이다. 영어로 CD를 제대로 발음해 주려면 뒤의 'd'를 유성음으로 제대로 발음해 주어야 하는 것이다. 자 이제 목젖에 손을 대고 자신이 'd'를 발음할 때 목젖이 울리는지 확인해 보자. 시작! CD.

  또 하나 우리나라 사람들이 많이 범하는 실수는 영어 단어의 맨 마지막에 오는 자음을 대충 발음하는 것이다. 우리가 원어민들 발음하는 것을 듣기에는 잘 안들리니까 대충 발음하는데, 사실 원어민들은 나름대로 제대로 발음한다. 우리가 잘 안들린다고 원어민들이 발음을 잘 안하는 것이라고 오해하는 것은 이후 영어로 현지 원어민과 의사소통하는데 심각한 장애를 초래할 수 있다. 한번 bird를 발음해 보시라. 맨 마지막 'd'를 발음할 때 목젖이 울리는가? 그리고 발음도 또렷하게 들리는가? 그럼 축하한다. 성공한 것이다! 나는 5년을 외국에 살았어도 이 단어의 발음에 한번도 성공해 본 적이 없다. 그 말은 내가 이 단어를 발음했을 때 동양인을 제외하고는 단번에 내가 '새'를 말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챈 원어민이 한 명도 없다는 뜻이다. 반드시 내가 뭘 말하고 있는지 다시 설명해 주어야 그들은 이해했다. 아, 비참하다. ㅋㅋㅋ

  마지막으로 짚고 넘어가야 하는 한국인들의 실수는 L을 R로 발음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이 두 발음이 어렵다는 사실은 너무 유명해서 내가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다. 그래도 'L'발음은 조금만 노력하면 쉽게 할 수 있다. 한글에서 표현할 때도 'ㄹㄹ'로 표현하면 문제가 없다. 즉, glass는 글라쓰/글래쓰로 거의 정확하게 (완벽할 수는 없지만) 표현된다. 하지만 'R'은 조금 더 힘들다. 굳이 따지자면 right을 '롸잍'으로 표현하면 거의 정확하게 표현되는 것인데 어쩐지 좀처럼 이렇게 한글로 표현하는 경우가 드물다. 그래서 원래 발음과는 동떨어지게 표현해 놓고 이 발음을 배우려니 더 어려운지도 모르겠다. 쉬운 방법 두고 어렵게 하다 보니 'R'을 제대로 발음하게 되면 사람들이 흥분하게 되는 모양이다. 이때 하는 실수가 'L'로 발음해야 하는 것도 모두 'R'로 발음하기 쉽다는 것이다. 이 경우에 특이한 사항은 L과 R을 잘 구분하지 못하는 한국인들이 이 발음 경향의 문제점을 잘 알아차리지 못하고 마구 칭찬해 준다는 것이다. 그렇게 사회적 보상을 많이 받게 되면 그런 발음 습관이 굳어질 수 있다. 따라서 자신이 이제 막 'R'발음을 익혔다면 'L'을 발음할 때 더 주의를 기울이자. 기본적으로 이 둘을 구분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시간이 좀  걸린다. 아자, 아자, 지화자!

  마지막으로 당부하고 싶은 말은 한국인들끼리는 비슷한 실수를 하고 또 같은 실수를 하는 사람들끼리는 (중국인들과 일본인들도 포함) 기차게 서로 알아듣기 때문에 이런 발음들은 반드시 현지인들과 의사소통을 하거나 현지인 영어 교사를 통해서만 배울 수 있는 것이 현 한국의 현실이다. 달리 말해서 이것도 한국인들끼리 의사소통하거나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들만 상대하는 경우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선택은 언제나 독자들의 몫이다.

2013년 7월 8일 월요일

영어에 대한 잘못된 믿음 1: You can command English fluently if you live abroad!

  외국에 가서 살면 누구나 영어를 잘 할 수 있다? 열심히만 하면 이 말은 맞는 말일 것이다. 하지만 열심히 하지 않으면 영어 사용 국가에 이민을 가도 한인타운에서 한인만을 상대로 살면 영어 한마디도 하지 않고도 잘 살 수 있다. 그렇다면 영어가 늘겠는가? 그래도 오래살면 귀는 트인다고들 한다. 하지만 말하기는 정말 오랜 산다고 누구나 다 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이 첫번째 결론이다.

 둘째, 외국에서 살면 영어를 잘 할 수 있고 한국에서 살면 한국어를 잘 할 수 있다. 이 것은 누구나 다 잘 아는 사실이다 외국의 어린 아이들이 어쩜 영어를 그렇게 잘 하는지... 부러움을 느껴보지 않은 사람 별로 없을 것이다. 요새 아이들도 한국말 정말 잘한다. 티비만 봐도 말로 부모를 찜쪄먹는 아이들 많다는 사실 잘 알 것이다. 그러나 한국어와 영어를 둘 다 잘 하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이는 한국에서 살든 외국에서 살든 마찬가지이다. 즉, 외국에서 살면 누구나 영어를 잘하게 된다는 말이 "외국가서 살면 누구나 영어와 한국어를 동시에 잘 할 수 있다"는 말이라면 이는 잘못된 말이다. 누군가는 둘 다 잘 하겠지만, 모두는 아니다. 일반적으로 당신이 외국에서 영어를 정말 잘하게 된다면 그만큼은 아니더라도 당신의 한국어 실력은 뒤떨어질 수 밖에 없다.

  모국어도 잊는다. 이게 말이 되는가? 하지만 사실이다. 필자도 경험한 일이다. 영어권 국가에서 한 몇년 살게 되니 '양잠, 양봉'이라는 말을 잊게 되었다. 내가 아무리 떠올리려고 해도 몇년 동안 떠올릴 수가 없었는데, 한국에 와서 검색을 해고 결국 다시 알아내게 되었다. 내가 한국에서는 절대 경험하지 못한 대사건이었다. 어릴 때 문학소녀인척 하고 고등학교 때 공부는 때려쳐도 자연과학 잡지는 매달 정독하던 나에게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었겠는가? 혹자는 내가 너무 늦은 나이에 외국에 가서 생긴일이 아닌가 의심할 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한 고등학생의 예를 준비했다. 내가 아는 한 중국인 의사의 경우에는 고등학교때 뉴질랜드로 이민을 와서 의대를 나오고 현재 호주에서 외과의사로 일하고 있는데, 연봉을 엄청나게 받으면서 나름 성공한 케이스로 잘 살고 있다. 하지만 이 의사가 중국어도 영어도 자신의 모국어로 느껴지지 않는다고 한번 필자에게 하소연을 한 적이 있다. 이 의사의 경우 고등학교 이후로 중국어는 거의 사용하지 않아서 중국어 구사 능력을 많이 잃어버리고, 그렇다고 영어를 원어민처럼 구사하는 것도 아니다. 업무에 지장을 주지 않을 정도에서 영어를 구사하기 때문에 의사로서는 손색이 없지만, 영어 단어의 미묘한 뉘앙스까지 구분해 내지는 못하는 것이다. 중국어도 영어도 어느 정도 구사하지만 그 어떤 언어도 자신의 모국어가 아니라고 느끼는 경우 연봉이 아무리 높아도 당신의 행복지수는 어떨것인가? 개인마다 다를 것이다. 그러니 개인이 선택할 문제이다.

  이 것이 바로 당신이 혹은 당신의 자녀가 외국에서 오래 살면서 나름 성공한 경우에도 생길 수 있는 문제이다. 물론 모든 사람이 이렇지는 않을지도 모른다. 또는 고등학교 시절에 이민을 가서 생긴 일이지 더 어릴 때 갔으면 달랐을 것이라 주장할 수도 있겠다. 또한 이 주장은 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경우 그 아이는 영어를 모국어로 느끼고 한국어 구사 능력은 거의 전부 잃어버릴 수도 있음은 가능한 결과의 한 선택지로 염두에 두어야 한다.

  현재 영어권 국가에서 20년을 넘게 산 사람이 영어를 모국어라고 느끼지 못하는데, 한두달 방학동안 영어 캠프를 외국으로 간다고 해서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물론 6개월 이상 어학연수를 가서 열심히 하는 경우는 다를 수 도 있고 또 언어재능 끝내주는 경우도 다를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이렇다는 말이다. 한두달 외국에 머물면서 영어 실력을 늘릴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 외국에 머물지 않는 열달 정도의 시간에 영어를 열심히 익히는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해 보자면, 한두달 어학 연수는 아동에게 안전한 해외여행 중 하나라고 생각하고 보내자. 물론 그 한두달은 부모와 함께 여행하며 경험을 공유하는 것도 괜찮겠다. 여건이 허락하지 않는다면 영어캠프를 이용하거나 친척집에 보내는 것도 좋다. 갔다 와서도 아이가 자발적으로 이야기 하지 않는한 영어를 얼마나 배웠는지 물어보지 말고 어떤 경험을 했는지 물어보고 부모와 교감하자. 그래서 아이들이 그 지역에서 사용하는 그 이상한 언어인 영어에 호기심을 가지게 되었다면 한국에 머무는 나머지 시간동안 차근차근 영어 동화책도 보고 영어 동요도 따라 부르고 점점 더 영어와 친숙해 질 수 있을 것이다. 그 다음 해에, 또는 몇 년이 지난 후 다신 외국에 나가게 된다면 그 아이는 분명 달라져 있을 것이다.

  물론 영어 캠프 다녀오고도 여전히 영어에는 관심이 없을 수도 있다. 그럼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그 아이는 미래에 영어시험을 위한 영어만을 공부하게 될 것이다. 그래도 좀 덜 두렵지 않겠는가? 그렇다 하더라도 외국엔 가능한한 자주 무조건 보내라. 어학연수든 여행이든 유학이든 working holidays이든 무슨 핑계이든 보내자. 무슨 경험을 하든 피와 살이 될 것이다. 한국인들끼 몰려다니든 혼자 배낭여향을 하든 상관없다. 이제는 영어가 아니라 그 아이의 세계관을 넓히는 것이 목적이다. 그렇게 세계관이 넓어지면 좀 더 나이가 들어서라도 부모가 그리 원해 마지 않던 영어에 관심을 보일지도 모른다. 영어가 아니라면 다른 외국어에라도... 그것도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무슨 상관이랴. 그 아이는 이제 부모처럼 우물안 개구리가 아닌 것을! 부모의 한은 이렇게 푸는 것이다! ㅋㅋ

2013년 7월 6일 토요일

쉬어가는 페이지 1: Robin's Experience of Teaching Korean in a Foreign Land

  내가 외국에 처음 나가게 된 것은 서른이 넘어서였다. 나가기 전에도 학회에 외국인 학자가 오면 숙소까지 안내해주고 저녁식사하면서 간단한 담소를 나눌 정도의 기본적 영어는 할 수 있는 상태였지만,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외국에서는 우리말과 전혀다른 영어를 혹은 다른 언어를 사용한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정확하게는 머리로는 알겠는데 현실감있게 다가오지 않았다. 마치 동화를 읽으면 그 내용은 이해하지만 현실화시켜서 공주가 있고 왕자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였던 듯 하다. 이것이 간접적 경험의 한계가 아니었을까 나는 생각한다. 

  그런 비현실감을 느꼈기에 내가 처음 외국에 갈 때에도 정말 내가 외국에 간다는 사실 자체도 믿어지지 않았다. 그런 내가 전혀 가보지 않는, 책으로만 보던 세상에 내가 가서 직접 살게 된다는 생각이 마치 동화 속에 들어가서 살게 된다는 말을 들었을때처럼 비현실적으로 느껴진 것이다. 나는 정말 그런 곳에 가게 되는 걸까? 심지어는 비행기를 탈 때 조차도 내려서도 이 비현실감은 어찌할 수가 없었다. 입국심사를 받으면서 정말 모든 사람이 영어만 사용하는 공항의 현실을 보고 공항을 나와 숙소로 가기 위해 버스를 타서도 내가 이 버스를 내리면 외국의 어느 한 곳에 있는 건물에서 지내게 된다니... 이 얼마나 비현실적인가? 그래서 나는 서른이 넘어서가 아니라 더 어릴 때 이런 우물안 개구리식의 세계관에서 벗어나도록 본인도 아이들도 해외 경험을 하도록 추천하는 것이다.

  그곳에 살게 되면서 부터는 현실감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지만 그래도 처음보는 생생하고도 낯선 건물들의 모양, 사람들의 모습에 비현실감도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었다. 그 와중에 나는 첫번째 충격적인 경험을 하게 된다. 위에서 말했듯이 그 때에도 어느 정도는 영어를 할 수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불안한 와중에도 자신이 있었다. 그 지방 특유의 accent가 복병이 될 것이라는 것은 꿈에도 모른채. 강한 지역 accent에 평범한 표현도 알아듣지 못하게 되자 나는 완전한 panic상태에 빠져 들었다. 이 때 내가 받은 충격은 거의 사람들을 피해다닌 수준이었다. 하지만 현지인들은 친절하게도 부족한 나를 손짓 발짓에 그림까지 그려주며 잘 돌보아 주었고 나도 서서히 그들의 accent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또한 열심히 내가 목표한 공부를 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영어는 생각만큼 빨리 늘지 않는다는 사실에 스트레스를 받는데다가 노력을 너무 한 탓인지 6개월만에 영어로 된 문서만 보면 구역질이 치미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이것이 두번째 충격이다. 언어능력이 좋다는 소리만 듣고 자라온 내가 외국에서 이런 상황에 빠지게 될 것이라고 나는 그 때까지 생각도 하지 못했었다. 얼마나 충격적이었는지 모른다. 사람이 이러다 정신병원에 가게 되는 구나라고 느낄만큼 상황이 심각했기 때문에 우선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조치는 바로 '노력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 때부터 tv만을 봤다.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즐기자는 것이 그 의도였다. 그래서 외국에서 내가 얻은 첫 별명은 'The Girl Always Watching TV '였다. 
  
  물론 전적으로 그랬다는 것은 아니다. 내가 하는 공부에서 요구하는 최소한만 하고 더 이상은 하지 않았다. 그리고 tv 프로그램 중 재미있는 것을 골라보며 소일하기 시작했다. 이 조치의 목적은 내가 영어를 편하게 느낄 때까지 시간을 좀 주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전략의 취약점은 말하기는 늘 수 없다는 것이었다. 특히나 한국의 외국인들이 모두 잘 알아듣던 내 영어 발음은 이 지역에서는 완전히 무용지물일 때도 있었다. 이렇게 의사소통하기가 어려우면 점점 말하기가 싫어진다. 상대방을 고생시키는게 다 보이는데 남에게 피해를 주면서까지 내 영어를 연습한다는 것이 뭔가 부당하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말하기를 연습하기 위한 나의 두번째 조치가 탄생한다. 그것은 '한글 가르치기'! ㅋ~ 나는 한국어에서는 전문가! 이것을 영어로 아이들에게 가르쳐 주면 한시간 내내 내가 영어로 이야기할 수 있고, 또 아이들은 한글을 배울 수 있어서 좋고! 이것이 바로 누이 좋고 매부 좋고가 아닌가?! 한 두달 정도 지속되었던 그 강의의 수강생 중에 콜롬비아에서 온 아이는 잘 배워서 한국인이 운영하는 슈퍼마켙에 가서 한국어로 인사하다가 그곳에서 계속 그 친구에게 한국어로 말을 거는 바람에 결국 실토를 했다고 한다. 자기 간단한 한국어 밖에 못한다고. 또 다른 미국에서 온 동양계 아이는 나중에 더 고급으로 가르쳐 달라고 부탁하는 바람에 내가 그러겠다고 약속을 했는데 이후 계속 바빠져서 끝내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되기도 하였다. 이 말은 내 가르치기 실력이 꽤 괜찮았다는 자랑을 하고자 꺼낸 것임을 모두 눈치 챘을 것이다.
     
   이런 전략은 유효해서 나는 점점 영어 실력이 늘었고 영어는 점점 편해졌다. 하지만 내가 외국에서 살게 된지 1년이 지난 시점에서 세번째 충격을 받게된다. 내가 영어권 국가에서 1년을 살았는데도 아직 원어민처럼 영어를 구사하게 되지 못했다는 사실에 다시 한번 panic을 느꼈던 것이다. 물론 내가 구사하는 영어는 1년 전에 비하면 현저히 늘었다. 외국에서 한 동안 영어를 배우게 되면 자신이 미리 학습해 간 영어의 10배 정도를 더 배울 수 있다는 말이 있다. 물론 열심히 한 경우에 해당되는 말일 것이다. 내가 기본적 의사소통은 하는 상태에서 갔고 1년이 지났으니 얼마나 늘었겠는가? 1년 쯤 지났을 때 아주 잠깐 매우 기뻤었다. 내가 이제 이 정도 영어를 구사하는 구나. 1년 전에 비하면 용됐구나. 하지만 여전히 전화로 의사소통하는 것은 어렵고 원어민과 대회에서 놓치는 것은 많았다.

  이쯤되니 다음과 같은 고민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아, 나는 언제쯤 영어를 통달하게 될 것인가? 혹 나에게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러면서 정보를 구하러다니니 이는 나만이 겪는 문제가 아니라 많은 유학생, 뿐만 아니라 많은 이주민도 함께 겪는 것이었다. 그 때 비로소 나는 알게 되었다 외국에서 1년 어학연수를 하고 영어를 술술 구사할 수 있게 될 것이라는 나의 믿음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를!

  그 다음 2-3년이 흐른 다음에는 또 한번의 한국어 강연을 유학생들에게 해 주었고 이제 티비를 통해 처음 1년동안 본 드라마, 영화의 재방송을 보면서 내가 이제 이만큼 이해하는 구나 기쁨도 느꼈다. 심지어는 전화통화도 자연스러워졌고 호주에 견학 온 한국사람들을 위해 통역 아르바이트도 한 두 건 할 만큼의 실력이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토론에서 내 주장을 피력하기는 힘들었고 (연설보다 토론이 훨씬 힘들다) 공식석상에서 발언하거나 공식문서를 작성할 때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이 때 다시 한 번 느꼈다. 외국에서 몇 년 살고 원어민들의 수준으로 영어를 구사하길 바라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

  현재 나는 5년 정도 외국에 살았고 영어를 잘 하는 축에 드는 유럽인만큼은 영어를 구사한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원어민 수준이 절대로 아니라는 것이다. 그 이상의 해석은 독자에게 맡긴다. ㅋㅋ 

2013년 7월 5일 금요일

Can everyone command both Korean and English fluently?

  누구나 노력하면 한국어와 영어를 동시에 잘 할 수 있는가와 관련해서는 도대체 여기서 잘한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에 따라 그 대답이 달라진다.

  만일 영어를 잘한다는 의미가 우리가 한국어를 잘 한다고 할 때 처럼 하는 것이라면, 즉 원어민처럼 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이는 모두에게는 불가능하다. 단지 일부 언어 능력에 천부적 재능을 타고 태어난 사람만이 가능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여기에서 하나의 대전제는 한국어와 영어의 간격이 매우 크다는 점이다. 물론 한국어와 영어 뿐 아니라 좀 더 일반적으로는 유럽어와 동양어 간 간격이 매우 커서 누구나 영어와 한국어를 모두 잘 할 수는 없다.

  이런 주장에 가장 큰 반론은 유럽인들이 TV만 보고도 몇 개 국어를 한다는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유럽어는 나라가 달라도 그 뿌리가 비슷하기 때문에 유럽에 몇 개 국어 하는 것은 한국인이 팔도 사투리를 아는 것과 동일하다고 봐야 한다. 일례로 한 Spanish와 Italian이 만나면 그들은 상대언어를 한번도 배워본 적이 없어도 서로 의사소통이 가능하다고 한다. 물론 Spanish는 Spanish만 사용하고 Italian은 Italian만 말하면서 서로의 말을 어느 정도는, 의사소통이 될 정도는 이해하는 것이다. 생각해 보자. 이는 정확하게 부산 사람들이 광주 사람들과 대화할 때 벌어지는 일이다. 부산 사람은 부산사투리만 사용하고 광주 사람들은 광주 사투리로 말하지만 서로 무슨 말인지 알아 듣는다. 물론 여전히 뉘앙스의 깊은 뜻은 놓치기도 한다.

  좀 더 전문적으로 말해서 한국인이 영어를 처음 배우면서 영어로 씌여있는 글을 읽게 되려면 약 2년이 걸린다고 한다. 그렇다면 유럽인은? 약 2주 걸린다. 이것이 바로 언어의 간격을 말해 주는 것이다. 이 간격은 한국인이 영어가 공용어인 국가에 이민을 가서 살아도 극복될 수 없는 간격이다. 그래서 한국인이 동양인이 영어권 국가에 적응하기가 유럽인이 적응하기 보다 훨씬 어렵다. (물론 다른 문화적 요인도 함께 작용할 것이다) 억울한가? 그렇다고 너무 억울해하지는 말자. 이는 유럽인이 동양어를 배울 때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규칙이기 때문이다. 즉, 유럽어를 원어를 구사하는 사람들에게도 한국어는 매우 어려운 언어라는 점이다.  예를 들어, 유럽인이 한국어를 배우려면 몇 개의 유럽어를 기회비용으로 치루어야 한다. 한국어 하나 배울 시간이면 서너개의 유럽어를 배울 수 있다는 점은 이미 유럽인들에게는 잘 알려진 사실이다. 따라서 우리가 영어를 유럽어를 어려워하는데 대해 너무 억울해 하지 말자. 오히려 좀 더 다행일 수도 있다. 사실 한국어를 원어로 구사하면서 유럽어를 배우는 것이 낳지 유럽어 하면서 한국어 배우기는 어쩌면 더 힘들 지도 모른다. 한국어는 문법에 너무 예외가 많아서 한국인도 어려워하는 언어가 아닌가? ^_^

  더욱 다행인 것은 한국 사회에서 평범한 직장을 다닌다면 모두가 영어를 잘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나는 기본적으로 영어를 잘해야 하는 사람은 영어를 좋아하거나 영어로 먹고 사는 사람들뿐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원칙적으로 한국어는 영어와 워낙 언어적 거리가 멀어서 모든 한국사람이 한국어와 영어를 다 잘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오직 언어능력이 받쳐주는 사람에게 한해서만 가능한 것이다. 너무 비관적으로 들리는가? 하지만 생각해 보자. 한국인은 누구나 한국어를 잘한다고 하지만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가. 단적으로 생각해 봐도 학교에서 국어시험을 보면 모두가 백점을 맞지는 않는다모두가 국어를 모국어로 하고 있어도 어떤 사람은 말을 더 잘 하고 어떤 사람은 글을 잘 쓰고 또 나머지는 둘 다 잘 하지 못한다

  이는 모두가 영어를 공부해서 모든 사람이 같은 정도로 영어를 잘 할 수는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누군가는 어렸을 때 우연히 외국에 살아봤던 덕에 영어를 혹은 다른 외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다그러나 이는 언어능력이 뛰어난 경우에 한정된다더 극단적 예로 언어능력이 정말 뛰어난 사람은 외국에서 살아본 적도 없고 그다지 대단한 학원이나 강사에게서 배우지도 않았음에도 원머임처럼 영어를 구사할 수도 있다. 최소한 이런 사람이 영어시험에서 뛰어난 성적을 낸다거나 외국대학에 척 붙었다거나 하는 사례를 뉴스로 확인할 수 있다. 사실 이 경우도 외국어를 모국어처럼 구사할 수도 있는지는 확신하기 어렵다. 시험성적이 곡 언어실력이 아님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언어능력이 뛰어나지 않은 경우 가령 한국어와 영어와 같이 무리하게 언어차이가 많이 나는 두 언어에 어릴 때부터 동시에 노출되면 최악의 경우 그 어떤 언어도 모국어로 발전시키지 못할 수도 있다이에 대한 구체적 사례는 이 글의 주제가 아니므로 다음에 다루기로 하고 이 장의 주제로 돌아가자.

  그렇담 영어를 원어민처럼 구사하길 바라는 것이 아니라 특정 목적하에 어느 수준으로 구사하는 것으로 만족하고 이 수준을 잘하는 것이라고 여긴다면 이 질문에는 Yes라고 대답하고 싶다. 여행 가서 간단한 회화로 길을 찾고 식사하는 도중 옆에 앉은 외국인에게 인사 정도 하는 영어로 여자친구, 남자친구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고 싶다면 이는 대부분의 사람에게 가능하다고 이야기해 주고 싶다. 만일 이 정도에서 머물지 않고 이런 여행에서 만난 외국인을 혹은 한국에 잠시 머무는 외국인을 친구로 사귀고 싶다면 좀더 높은 수준의 영어를 구사할 수 있어야 하는데 (혹 그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쳐서 친구가 될 배짱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여기까지도 정말 열심히 노력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사실 여기에서는 영어 실력도 문제지만 부끄러워하는 한국 사람들의 성향과 문법만 따지는  한국사회의 경향이 더 나쁜 영향을 미친다고 여겨진다. 나아가 회사에서 적절한 비지니스 영어를 구사해서 외국인과 계약을 돕거나 공대나 자연과학대에서 영어로 논문쓰는 것까지는 노력하면 된다는 점을 많은 사례들이 보여주고 있다. 물론 많은 노력이 있어야 하지만 하면 된다!로 밀어 붙일 수 있는 영역이다.

  그러나 여기까지이다. 이 이상은 사실 원어민으로도서도 힘든 영역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즉, 자신이 외국인과의 계약을 주도적으로 계획하고 성사시키고 사회과학대나 문과대에서 영어로 논문을 쓰거나 아예 영어로 소설이나 기타 작품을 작성하는 등 좀 더 전문적으로 성공하고 싶다면 이는 모두에게 가능하다고 여겨지지는 않는다. 상당한 언어능력이 받침되지 않으면 이 수준으로 성공하기 쉽지 않다. 그 언어 능력에 부단한 노력도 더해져야 가능한 수준이다. 사실 이 노력에는 때로 한국어를 포기하고 영어에만 전념하는 기회비용도 포함되어 있다. 이제 선택은 자신들의 몫이다. 앞으로 인생을 한국어로 성공할 것인지 영어로 성공할 것인지 아니면 평범하게 행복하게 살 것인지... 단 선택할 때는 자신의 선택으로 치러야 하는 기회비용을 반드시 고려해서 무엇이 자신에게 더 중요한지 충분한 고민 뒤에 결정하길 바란다.

2013년 7월 4일 목요일

아이들 영어는 어떻게 해야 되나?

  영어 익히기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면 요새 불고 있는 광풍, 아동 영어 교육에 대해 이야기 하지 않을 수 없다. 즉 이 글에서는 '아이들 영어는 어떻게 공부시켜야 하는가'와 관련해서 생각해 보자. 결론은 내가 읽어본 적은 없지만 유명한 어느 책 제목처럼 아이들에게 영어공부 시키지 말라고 해 주고 싶다.

  아이는 기본적으로 놀아야 한다. 아이들에게 노는 것이 바로 배우는 것이다. 아이들은 노는 것을 통해 자기가 무엇을 좋아하는지도 알게 되고 다른 아이들과 어떻게 지내야 하는지도 배우게 된다. 많은 것을 경험하게 해 주고 그 중에 좋아하고 잘하는 것을 찾게 해 주자는 것이 나의 아동 교육지침이다. 영어 교육에 대한 것도 무관하지 않다. 우리가 상대적으로 중국어를 일본어를 쉽게 느끼는 것은 어릴 때부터 이들 언어에 문화에 노출되어 왔기 때문이다 (위 두 언어가 본질적으로 더 쉽다는 주장도 있으나 이에 대해서는 내가 아는 바가 없다. 일부는 위 두 언어도 아주 어렵다고 주장하고 있다는 점을 알고 있다. 혹 이에 대한 비교연구가 있다면 내게 소개해 주기 바란다). 만일 영어권 문화에 그리고 영어라는 언어에 일찍부터 노출된다면 나중에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시점에 닥쳤을 때 상대적으로 더 쉽게 영어를 공부하게 될 것이다. 여기서 상대적이라는 말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이는 절대로 쉽다는 말이 아니다. 여전히 어렵지만 이렇게 접하지 않았을 때보다는 비교적 쉬울 것이라는 말이다. 

  일단 영어와 관련된 문화들을 접하게 하다 보면 아이들의 선호도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아이들은 뭐 그냥 그런게 있나보다 하면서 더 알려고 하지 않을 것이겠지만 다른 아이들은 저런 이상한 언어가 있나 하면서 적극적으로 호기심을 보이고 정보를 찾으려 할 것이다. 여기서부터는 아이들 몫이다. 좋아하면 더 많이 알게 될 것이고 머리가 좋아도 우연히 들은 바를 다 기억할 테니 더 많이 알게 되는 셈이다. 이 경우 부모가 도와주는 것은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 방향이 잘못되어 있다면 부모의 도움은 결국 아이들의 영어 학습을 방해하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 아이들이 언어에 능력도 있는 것 같고 영어에 호기심도 보이길래 영어 유치원을 보냈다가 나중에 아동 치료 상담을 받게 되는 사례는 이제 더 이상 드문 이야기가 아니다. 많은 경우 영어 유치원에서 아이들에게 문법을 가르친다고 한다. 즉, 유아기 때 영어를 배워본 적이 없는 어른들이 영어 교육을 전공했든 외국에서 티솔을 전공했던 아동에게 적합한 교육 프로그램 개발 없이 자기가 중학교 때 배웠던 내용을 (조금 쉽게? 바꾸어서?? - 필자는 영어 유치원 수업을 들어 본 적이 없다. 유경험자 제보 부탁하는 바이다.) 유치원생들에게 가르친다는 것이다. 사실 이쯤되면 아동 학대에 포함시켜 주어야 한다. 그럼 어떤 도움이 필요할까? 그것은 영어를 가지고 노는 것이다. 노래를 부르거나 연극을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사실 어린 아이들은 영어를 들려주기만 해도 그 소리가 모국어인 한국어와 다르기 때문에 신기해 하고 재미있어 한다. 그렇게 다른 소리를 가지고 여러 방법을 사용해 놀다 보면 금새 3학년이 되어 학교에서 배우기 시작하게 될 것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관심없어 하는 아이들에게 더 이상 압력을 가하는 것은 그 언어를 싫어하게 만드는 것이다. 사실 현재 관심 없어도 나중에는 좋아하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이 언어에 대해 나쁜 기억을 심어준다면 훗날 아이들이 좋아하게 될 지도 모를 어떤 언어를 미리부터 싫어하게 만드는 길임을 기억하자.

  아마 대부분이 주변에서 일본 만화를 좋아해서 일본어를 배우기 시작하고 중국이 강대국이 될 테니 이에 대비해 중국어를 공부하겠노라 결심하는 사람들을 보았을 것이다. 바로 이것이 아이들이 해야 할 일이다. 부모가 시켜서 혹은 시험 성적 때문에 억지로 하는 영어공부가 아니라, 내가 어떤 영어 소설을 읽다 보니 드라마를 보다 보니 번역없이 읽고 보고 싶어서 영어를 스스로 공부하는 이 경우에만 아이의 영어 능력에 미래가 있을 것이다. 

  가끔은 좋아하는 것이 잘 하는 것과 일치하지 않을 때도 있다. 이것을 극복하고 혹은 현실에 타협하는 법을 배우는 것만으로도 나는 아동에게 충분히 심각한 스트레스를 제공한다고 본다. 그렇다고 해서 부모가 혹은 선생이 무엇을 아동이 좋아해야 하는지를 지정해 주어서는 안 된다. 이는 아동이 스스로 고민하고 선택할 문제이다. 그렇게 커 가야 하지 않겠는가? 단, 아이는 싫은데, 부모가 좋아하니까 억지로 좋다고 하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 좋아하는 것인지 정도는 부모로서 양심적으로 구분해 주자.

  물론 인생에서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 수는 없다. 그러나 어릴 때 아이들 인성교육만 받는 것으로도 충분히 하기 싫은 것을 열심히 배우는 것이다. 하기 싫은 것을 더 많이 억지로 하면서 사는 것은 좀 더 큰 다음부터 해도 충분하다고 본다. 심지어는 영어 혹은 조기교육이라는 하기 싫은 것을 가르치기 위해 인성교육을 포기하는 부모들도 있다고 한다. 자녀가 싫어하는 무슨무슨 학습을 하는 것을 조건으로 '네가 원하는 것 다 들어줄께'라고 하면서 지나치게 많은 음식이나 장난감을 제공한다든지, 아이의 성격이 그러한 스트레스 때문에 신경질적으로 변화하는데도 불구하고 공부만 잘 하면 괜찮다고 방치하는 양육방식은 절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조기교육이 대부분의 경우 효과가 없을 뿐만 아니라 인성교육은 아이들의 인생전체에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언어학자도 아동전문 교육가가 아니다. 따라서 내가 주변에서 보고 들은 바가 전체를 대표할 수는 없겠다. 이와 마찬가지로 몇몇 사례에 입각해서 어릴 때 영어를 접하면 성인이되어서 원어민처럼 영어를 구사하는 것이 모든 사람에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도 문제다. 이런 경향이 현재 한국사회를 주도하고 있기 때문에 더 큰 문제가 될 듯 싶어 경고하고자 한다. 따라서 이 글을 읽고 의문이 생기는 교육자가 있다면 통계적으로 얼마나 많은 아동들이 원어민처럼 성장하는지 아니면 언어가 헷갈려서 언어발달 자체에 문제가 생기는지 연구를 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또한 독자들도 주변에 아는 교육자가 있다면 같은 말을 해 주길 부탁드린다.

How to Start Learning English?

  이번에는 '영어 공부하고 싶은데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생각해 보자.

  만일 처음부터 영어의 기초를 다지고 싶은 것이라면 방법은 하나다. 많이 듣고 말하고 그 다음 많이 읽고 쓰는 것이다이 경우는 당장 영어 성적을 올려야 한다거나 다음 달 여행을 가는데 써야 하는 표현을 익혀두겠다는 등의 목적이 있는 경우가 아니라 영어라는 언어가 궁금해서 혹은 나중에라도 사용할 일이 생길테니 기초는 지금 다져두자라는 생각에 시작하는 것을 말한다. 즉 시간도 많고 할 생각도 확고하다면 좀 더 정석으로 가는 것이 좋겠다. 

  다시 강조하다면 영어의 정석은, 모든 언어의 정석, 즉 듣기, 말하기, 읽기, 쓰기이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이 아닌가? 바로 초등학교 시절 국어를 배울 때 들어봤음직한 말이다. 기본적으로 국어나 영어나 언어이기 때문에 기초를 다지는 일은 일맥상통할 수 밖에 없다

  우선 듣기와 읽기, 즉 인풑input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자면 쉽고 재미있는 영화, 티비 드라마, 만화, 소설 등을 자막 없이 모르는 단어 찾지 말고 많이 듣고 읽는 것이다. 여기에서 자막 없이 듣고 모르는 어휘가 나와도 사전을 찾지 말고 읽는 것이 매우 중요한 포인트이다. 영화나 만화나 자막 없이 들으면 처음엔 이해하기 어렵다. 이건 사실 듣는 것이 아니라 보는 것이라고 해야 더 옳겠다. 하지만 모든 언어는 이렇게 시작할 수 밖에 없다. 이렇게 익숙해지는 것이다. 읽을 때도 가급적 내용이 유추가 되는 한해서는 최대한 사전을 찾지 말고 읽기 바란다. 때로는 오해도 좋다. 특히 한 페이지에 모르는 단어가 십수개 나오는 상황에서 더욱 그렇다. 따라서 명심하자! 처음엔 그냥 듣고 읽는다. 여기에서 어느 책 제목 말마따나 영어는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니라고 강조하고 싶다. 즐기는 것이다. 즐길 수 없다면 기본기 쌓기 정말 힘들어 진다.

  이 블로그에서 아직 저작권이 유효한 몇몇 작품을 소개한다는 것은 좀 문제가 있기도 하고 필자가 좋아했거나 좋아하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도 그렇다고 볼 수 없기 때문에 일반론에 입각해서만 이야기 하자면, 처음에는 쉬운 것이 좋다. 하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본인에게 재미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듣기 읽기에서는 반복이 생명이기 때문이다. 어차피 아무리 쉬운 것도 처음에는 자막없이 알아 듣기 어렵다. 따라서 반복해서 보고 듣는 것이 중요하고 그렇기 때문에 재미있는 것이라야 한다. 재미가 없다면 분명 반복하고 싶지 않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드라마보다 뉴스나 다큐멘터리가 더 쉬울 수 있다. 특히나 한국에서 정식으로 영어 교육을 받은 사람들에게 드라마나 영화에서 나오는 속어와 부정확한 발음들을 듣고 이해하기란 정말 어렵다. 만일 약간의 필요한 어휘만 받쳐 준다면 전문 성우가 정확하게 발음해주는 표준 표현들만 사용하는 뉴스나 다큐멘터리가 훨씬 더 쉬울 수 있다. 필자는 자연이나 동물과 관련된 다큐멘터리는 아직 영어를 잘 한다고 보기 어려웠을 때부터 그 어떤 다른 프로그램보다 쉽게 이해하고 즐겨 보았다.

  반면 드라마는 언어를 이해하지 못해도 재미있을 수 있지만 뉴스나 다큐멘터리는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면 계속 듣고 있을 수 없을 만큼 지겨울 것이다. 이 경우라면 드라마나 영화를 반복하는 것이 훨씬 더 좋은 방법이다. 결국 무엇이 가장 재미있고 반복할 수 있는 가가 제일 우선해야 할 사항이고 여기에는 개인 취향이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될 것이다.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가? 필자는 한 뮤지컬에 빠져서 그 뮤지컬의 모든 노래를 다 외울만큼 열심히 반복해서 해당 뮤지컬 전곡 시디를 듣고 또 들었던 경험이 있다. 

  읽기도 마찬가지이다. 자기가 재미있는 책을 고르자. 아이들이나 보는 동화나 만화면 어떠한가. (사실 동화나 만화, 만만치 않게 어렵다) 자신이 재미있으면 그만이다. 또한 위에서 언급한 대로 사전은 가급적 찾지 않는다. 이때 무조건 사전을 찾지 말라는 말이 아니다. 모르는 단어 중에도 이야기 흐름에서 아주 중요한 것들이 한 두 개 있을 수 있다. 이 단어를 모르면 이후 진행이 안 되는데, 전혀 유추조차 안 되는 상황에서는 찾을 수 밖에 없다. 여기서 기억해 두자. 이 두 조건이 충족되지 않는 한 단어는 찾지 않는 것이다. 1) 이야기 흐름에서 중요한 단어인가? 2) 유추가 되지 않는가? 아무리 중요한 단어라도 유추가 된다면 확신이 없어도 사전은 찾지 않고 넘어 간다. 그 다음에 읽을 때 쯤이면 본인의 유추가 맞았는지 틀렸는지도 알게 된다. 이렇게 단계 단계 알아가는 것도 이런 기초 쌓기의 묘미이다.
  
  좀 더 원론적인 이야기를 해보자면, 아무리 쉬운 책을 골라도 한 페이지 모르는 단어가 많이 나오는 상황에서 모든 단어를 찾아가며 읽다 보면 중간에 포기하게 된다. 따라서 그냥 읽는다. 아주 처음 몇번은 아무 단어도 찾지 않고 읽어도 무방하다. 무슨 소리인지 몰라도 괜찮다. 단 이럴 수 있으려면 그 와중에도 간혹 간혹 재미있고 쉬운 표현이 있다던가 최소한 책의 삽화라도 재미있는 책을 골라야 할 것이다. 이렇게 익숙해지다 보면 각 단어의 정확한 정의는 몰라도 어떤 상황에 자주 나오는 지 알 수 있게 된다. 두 세번 읽은 다음 익숙해 지면 그 중 핵심 단어만, 혹은 책 한 페이지에 모르는 단어가 한 두 개 밖에 없을 때는 단어를 제대로 찾아서 뜻부터 활용법까지 익혀두는 것이 좋다. 이렇게 궁금해서 익힌 단어는 좀처럼 잊혀지지 않는다는 기쁨도 함께 맛 볼 수 있을 것이다. 아직 어떤 단어가 궁금하지 않은가? 그럼 그 단어는 아직 사전 찾을 때가 안 된 것이다. 궁금해서 영어 단어를 찾을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은 궁금해질때가지 기다리는 것이다.

  그 다음은 말하기와 쓰기, 즉 수행performance에 대한 조언이다. 이 역시 마찬가지다. 재미있는 것을 찾아서 반복! 인터넷 채팅이 재미있다면 그것을 하고 직접 만나서 대화하고 이메일을 교환한다면 그것도 좋은 방법이다. 현재 국내에서 언어교환을 목적으로 하는 소셜 웹사이트들이 존재한다. 그런 곳을 찾아가서 내가 밥을 살 테니 영어를 좀 가르쳐 달라고 제안하는 것은 아주 손쉬운 방법이 될 것이다.

  이 외에도 말하기에서는 발음과 문법, 이 두 가지를 언급할 필요가 있다. 그 중 하나는 발음, 이는 듣기에서도 중요하지만 말하기에서도 중요하다. 발음은 커뮤니케이션의 기본으로 읽기와 쓰기에서 철자를 알아보는 것과 같은 것이다. 현재 본인의 발음에 자신이 없다면 원어민이 가르치는 학원이나 한국어 발음과 영어 발음이 어떻게 다른지를 잘 알려주는 교재를 통해 도움을 받을 것을 추천한다. 한국인들이 가지는 발음에 대한 오해가 상당함으로 이는 별도의 글에서 다시 다루기로 하겠다. 나머지 하나는 문법이다. 발음도 알고 단어도 아는데 문법에 틀릴까봐 벌벌 떨면서 한마디도 하지 못하는 한국인이 정말 많다. 결론부터 말하면 원어민들도 말할 때 문법 많이 틀린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우리말을 할 때도 마찬가지라는 점을 쉽게 알 수 있다. 따라서 결론은 문법은 틀려도 좋으니 말은 해야 맛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도 다음 기회에 자세히 이야기해 보겠다.

  혹 너무 바쁘거나 예측가능한 스케쥴로 일하는 것이 아나거나 성격이 내성적이라 언어교환 웹사이트에 가서 외국인 친구를 사귈 수가 없다면, 혼자서 쓰기 연습을 하는 수 밖에 없다. 흔히 일기를 권한다. 다음을 보자.
예문: I woke up in the morning and today's weather was sunny. I ate three times in the morning, in the afternoon and in the evening.
이 얼마나 간단한가? 위 같은 간단한 형식도 매일 쓰기만 한다면 1년에 365문장을 쓰게 되는 것이고 그때 경험하게 되는 익숙함은 전혀 다른 것이다. 따라서 거창하게 하려다 중간에 포기하지 말고 간단하게라도 쓰자.

  물론 반드시 일기만을 매일 같이 써야 하는 것은 아니다. 좀 더 길게 며칠에 한번씩 쓰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이고, 일기는 재미 없지만 소설의 플롯을 짜보거나, 시를 쓰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역시 재미있는 것이 재일 중요하다. 무엇이든 쓰고 싶은 것을 매일 혹은 자주 쓰도록 하자. 무엇을 쓴다는 것 자체가 너무 거창해서 기가 질리고 시작 엄두가 나지 않는다면, 일상적 메모를 영어로 하고 컴퓨터 기본 언어를 영어로 설정해 놓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당신이 주부라면 장을 보러 갈 때 아이템부터 영어로 작성하면 그것이 바로 쓰기의 시작이다.

  지금까지 시간이 많고 기본기를 두루두루 쌓고 싶은 경우 영어기초를 어떻게 다지는 것이 좋은가를 중심으로 이야기해 보았다. 마지막으로 요점을 다시 반복해보면 무엇이 됐든 좋아하는 것을 찾을 것(가급적 너무 어렵지 않은 것으로)을 찾아서 반복할 것!!!

2013년 7월 3일 수요일

영어를 잘 하려면?

  오늘 한 친구가 물었다.
  “영어를 잘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해?
  사실 이 질문처럼 자주 듣는 질문도 없거니와 이 질문처럼 막연한 질문도 없다. 이 질문이 왜 막연한지 이해가 가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제안하고 싶은 사고 게임이 있다. 만일 내가 한국어를 잘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당신에게 묻는 다면 당신은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이후 지문을 읽기 전에 진지하게 내 질문을 생각해 봐 주기 바란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그런 애매한 질문이 어디 있냐고 타박하거나 국문과를 가라거나 할 것이다. 여기서 국문과를 갈 생각은 없지만 국어를 잘하고 싶다고 한번 더 질문을 하면 모르긴 몰라도 십중팔구는 반드시 되물어 볼 것이다. 왜 국어를 잘 하고 싶은지, 국어를 잘 해서 어디다 쓰려고 하는지, 도대체 국어를 잘 한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말을 잘 하고 싶다는 것인지 작문을 잘하고 싶다는 것인지를 말이다. 즉 이 질문은 다음과 같이 환원된다. 나는 경제신문을 잘 이해하고 싶어, 혹은 문학작품을 잘 쓰고 싶거나 연설은 잘 하고 싶어. 또한 해결책도 이런 구체화된 질문과 맥을 같이 한다. 경제신문에 나오는 국어를 잘 이해하고 싶다면 경제 용어를 공부해야 할 테고, 소설이나 시를 잘 쓰고 싶다면 그에 해당하는 작문, 운율 등을 공부해야 할 것이다. 연설을 잘하고 싶다면 웅변학원을 다니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이다.

  영어도 마찬가지이다. 영어를 어떻게 하면 잘 할 수 있는지는 영어를 왜 잘 하고 싶은 지와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 만일 여행 가서 간단한 의사소통이라도 하고 싶어서라면 평소에 재미있게 영어를 접하다가 여행 가기 몇 달 전부터 여행에서 필요한 표현들과 가능한 답변들을 중심으로 바싹 공부해도 충분하다. 여기에서 영어를 재미있게 접하란 이야기는 좋아하는 영화를 자막 없이 보거나 만화나 소설을 보거나 어떤 방식이 되었든 자신이 좋아하는 것으로 즐기란 말이다. 또한 바싹 공부할 때는 몇 달 간 학원을 다니거나 전화 영어 인터넷 영어 등 자신에게 편한 방법을 취하면 된다.

  만일 영어 시험을 잘 보고 싶은 것이라면 영어 시험공부에 필요한 것을 해야 할 것이다. 시험의 종류에 따라서 요구하는 것이 다르고, 또한 한국에서는 영어 시험 성적만이 중요하지 그 시험을 기반으로 실제로 영어를 사용하는 업무가 주어지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에 이 방법도 하나의 유용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영어 회화를 잘 한다고 학문에 사용되는 영어를 테스트하는 시험에서 성적이 좋을 수가 없고, 학문적 영어를 잘 안다고 해서 반드시 비지니스 영어를 잘 한다고 볼 수도 없다. 이는 공부 잘 한다고 해서 반드시 사회성이 뛰어난 것이 아니라는 점과도 맥락을 같이 한다. 따라서 시험을 잘 보고 싶으면 해당 시험에서 요구하는 것을 공부해야 한다.

  더 나아가 업무에서 영어를 사용하고 싶은 것이라면 자신이 어느 업무에 종사하고 있는지가 중요하다. 자신의 업무에서 자주 사용하는 용어를 공부해야 하고 자신의 업무에 적합한 표현형식을 알고 훈련해야 한다. 아울러 비즈니스 영어와 학문적 영어도 구분할 줄 알아야 하겠다.

      이제 자신의 원하는 영어를 잘 하기 위해서 질문을 좀 더 정교화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인식했을 것이다. 또한 질문만 잘 하면 답도 어느 정도는 정해질 것이라는 점도 혹은 최소한 주변에서 자신의 경우에 해당하는 정보를 구하기가 훨씬 쉬워졌다는 점도 알게 되었을 것이다. 그럼 건투를 빈다. 개인적으로 무엇이 그 목적이든 재미있게 했으면 좋겠다.

  만일 그 어떤 목적도 없이 순수하게 영어의 기초를 다지고 싶은 것이라면 이야기가 전혀 달라진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글 'How to Start Learning English?'에서 자세히 소개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