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8월 21일 화요일

No Means No, Yes Means Yes = 노 민스 노, 예스 민스 예스? 아니다!

No Means No, Yes Means Yes: 노 민즈 노, 예스 민즈 예스!

  과거 Slut Walk을 시작으로 Me Too를 거쳐 젊은 세대들의 성평등 가치를 위한 운동이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이와 관련해서 No Means No Rule, Yes Means Yes Rule이 빈번하게 언급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No Means No Rule이 아직 법에 반영되어 있지 않지만 국회에는 입법이 논의되고 있다고 한다.

  사법부에서도 현행 법을 폭넓게 해석해서 이 No Means No Rule에 준하는 판결을 많이 내린다는 어떤 변호사의 주장도 있다. 하지만 여전히 폭력도 없었고 여성이 '싫다'는 소리 이외에 물리적 저항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성폭행으로 볼수 없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이 고소를 한 것은 문제가 있다며 무고로 유죄를 내린 사례도 최근까지 있었다.

  따라서 과연 사법부가 여성이 싫다는 소리만 했다면 성폭행 범죄를 인정해 주는지, 따라서 No Means No Rule에 근거한 판단을 내리는지는 아직 확신할 수 없을 것 같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즉 수사기관, 판사만 탓할 것이 아니라 국회가 현재 계류중인 법을 제대로 논의해서 빨리 통과시켜야 하지 않을까 싶다. 에휴... 국회는 도대체 언제나 되어야 일을 할 것인지...

  하고싶은 말이야 한도 끝도 없으니 각설하고, 여기에서는 어떻게 No Means No Rule, Yes Means Yes Rule이 신문 등에서 한글로 표현되고 있는지 생각해보자.

  요새 뉴스에서 '노 민스 노 룰, 예스 민스 예스 룰'이란 표현을 자주 볼 수 있다. 이것이 바로 No Means No Rule, Yes Means Yes Rule를 우리말로 그대로 옮긴 것이다.

  그런가?

  우리말을 영어로 혹은 다른 외국어로 옮길 때 원칙이 되는 것은 '우리말 소리 나는 대로' 이다. 그런데 왜 영어는, 외국어는 그 나라말 소리 나는대로 옮기지 않는 것인가?

  필자가 볼 때 뉴스기자들이 No Means No Rule, Yes Means Yes Rule를 '노 민스 노 룰, 예스 민스 예스 룰'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국립국어연구원이 일률적으로 s는 ㅅ으로 표기하라고 했기 때문이다. 이른바 표준어 지침!

  정말 우리 국어연구원 표준어 너무 좋아한다. 아니 한국어를 소리나는 대로 외국어로 옮겼으면 외국어도 소리나는 대로 한국어로 옮겨야지 왜 우리 맘대로 영어 철자 하나 당 하나의 소리를 지정한단 말인가?

  이것은 마치 외국에서 동양의 언어표기를 하나로 합친 다음 자기들 편한대로 특정 글자에 특정한 소리를 배당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거 혹시 언어차별이라고 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래서 '한국인'이 현재 외국에는 Kroean으로 알려져 있지만 만일 그들이 이제부터 현지 단어를 쓴다면서 '한코쿠렌'이라고 부르면 여러분 기분이 어떨 것 같은가? 아니 이건 어느 나라 말인가 싶지 않을까? 여기서 '한'은 우리말과 같은 소리가 나지만 '국'은 일본어 발음을 쓰고 '인'은 중국어 발음이다.

  마찬가지로 's'라는 철자는 독일어에서는 언제가 거의 같은 소리가 나고 불어에서도 최소한 그 언어만의 발음 법칙에서는 예측할 수 있는 소리가 나거나 무음이지만 영어에서는 그렇지 않다.

  영어는 알파벹대로 소리를 내는 그런 언어가 아니다! 그런데 means를 우리 멋대로 '민스'라고 발음해 버린다면 이것은 mean의 영어 발음에 뒤 s는 독일어 소리를 합성한 것처럼 들린단 말이다.

  영어에서 s는 특히 우리말을 기준으로 볼 때 상황마다 다양한 소리가 난다. s 다음에 사음이 나오면 우리말 'ㅅ' 소리와 비슷한 소리가 나지만 s다음에 모음이 오면 일반적으로 'ㅆ' 소리가 나고 s가 동사의 3인칭 용법에 쓰이는 경우 그 동사의 원형이 유성음으로 끝나면 'ㅈ'와 비슷한 소리가 난다.

  따라서 No Means No Rule, Yes Means Yes Rule을 한국어로 그대로 옮기고 싶다면 '노 민즈 노 룰, 예스 민즈 예스 룰'라고 옮겨야 맞다.

  제발 국립국어연구원 여러분, 외국어도 그 나라 말소리에 맞게 한국어로 옮깁시다. 우리는 이제 국제사회에 살고 있는 데, 국적도 없는 영어 표현 더 이상 듣고 싶지 않네요.

  물론 필자는 우리나라 말을 외국어, 혹은 영어로 옮길 때 어떤 원칙을 국어연구원이 제시하고 있는 것은 대환영이다. 우리가 여권을 만들 때나 영어로 소통할 때 영어를 잘 모르는 사람에게 꼭 필요한 지침이라고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다 더 영어로 잘 옮기는 방법은 더 고민해야 겠지만 초보적 수준에서 지침 마련은 시민들에게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인정한다.

  하지만 외국어를 잘 모르면서 외국어 알파벹에 일방적으로 하나의 소리를 배당하는 것은 정말 언어차별, 언어폭력이라고 본다. 그러니까 영어가 타국에 와서 고생한다는 소리가 나오는 것 아니겠는가?

  필자는 이 참에 국어연구원에서 외국어와 한국어의 소리 차이에 대한 연구도 좀 더 하고 어떻게 하면 더 잘 영어를 우리말로 우리말을 영어로 옮길 수 있는지 고민해보기를 바란다. 더 이상 국적없는 영어 표현은 제발 보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 적어본다.

2018년 8월 20일 월요일

The Historian and His Facts에서 'his'는 유시민 말대로 남자라는 뜻?

  얼마전 유시민 작가가 새롭게 책을 내면서 여러 podcast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이런저런 유익한 강연을 하고 있는데, 필자는 유시민의 책을 읽지는 않았지만 이런 온라인 video cilps은 재미있어서 찾아 보게 되었다.

  그러다가 유시민 작가가 요새 화제가 되고 있는 여성이슈와 관련해서 우리의 역사적 기술이 남성 중심적이라는 문제를 지적하는 부분이 있었다. 그 예로 E. H. Carr가 What Is History라는 책에서 "the historian and his facts"라는 표현으로 역사가와 역사가가 다루는 사실 간 관계에 대한 문제를 다루는 데, 여기에서 역사가를 he라는 대명사로 받은 것을 든다.

  물론 필자는 인류의 역사가 남성중심적으로 기술되었다는 점에는 이의가 없다. 그래서 지금까지 역사가 history이고 우리는 이제 herstory를 보고 싶다는 주장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인류의 역사를 진보의 역사로 보고 장미빛으로 인간의 미래를 전망하고 있는 Carr의 관점이 필자가 보기엔 지나친 감이 있어 그 관점에 필자는 완벽히 동의하지도 않는다. 따라서 필자에게 Carr의 글을 굳이 정당화할 그 어떤 동기도 없음을 미리 밝혀둔다.

  하지만 Carr가 역사가를 'he'로 받고 역사가가 다루는 사실을 'his facts'로 받았다고 그가 역사가를 모두 남자라 간주했을 것이라는 해석은 사실일까?

 필자가 볼 때 이러한 유시민의 상상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우선 he가 일반적으로 남성 개인을 지칭하고 she가 여성 개인을 지칭하는 대명사인 것은 맞다. 문제는 그 제 3자의 성을 모를 때 어떻게 하느냐는 것이다. 영어에서 불특정한 누군가를 지칭할 때 일반적으로 화자가 남자이면 he, 화자가 여자이면 she를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즉, 성별을 모를 때 제 3자를 어느 성별의 대명사로 받는냐는 화자의 성별이 주로 결정짓는다는 것이다.

  또한 역사적으로 지금까지 글을 쓰는 사람은 남자인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화자가 여성이 아니더라도 이렇게 남성중심적 문화에 비판적인 성평등주의자인 경우 자신의 성별이 남성이더라도 불특정 누군가를 지칭할 때 she로 받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이렇듯 영어에서 말하고 있는 사람의 성별이 알려진 경우에는 남성을 he로 받고 여성을 she로 받는 것은 당연한 것이나 Carr의 책에서 처럼 불특정한 개인, a historian을 이야기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his facts'는 그저 그 역사가의 사실이지 특별히 그 역사가가 남성임을 가정했다고 생각할 만한 필연적 이유는 없다고 보는 것이 맞다. 최소한 언어적 측면에서 볼 때 his facts는 화자가 남자임을 알려준다고 보는 것이 더 옳다는 것이다.

  물론 Carr가 책을 썼을 당시 역사가들 대부분이 남자들이었기 때문에 무의식적으로는 자신이 이야기하고 있는 그 역사가도 남자라고 가정했을 수는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필자는 위에서 유시민의 주장이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고 결론을 내린 것이다.

  과거에는 이렇게 불특정한 개인을 he로 받는 문화가 꽤 지배적이었기 때문에 심지어 여성작가가 글을 쓸 때에도 관습적으로 불특정 개인을 he로 받는 경향까지 있었다. 여기에서 남성중심적 문화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반성 때문에 성평등의식이 강해진 다음에는 남성작가가 글을 쓸 때 불특정한 개인을 지칭할 때 'she'를 쓰는 경향도 생겨났고, 더 나아가 화자가 아니라 진정으로 화자가 말하고 있는 사람의 성별을 모른다는 뜻으로 불특정한 개인을 언급할 때 그에 상응하는 대명사로 he/she를 쓰기도 하였음을 이전 글에서 필자가 언급한 바 있다.

  심지어 필자는 이런 사람도 봤다. 필자가 아는 성별이 멀쩡한 남자인 친구가 그의 facebook에 자기 자신을 받는 대명사로 'she'를 설정한 것이다. 필자가 증명하건데 이 사람은 절대 자산의 성정체성에 혼란이 있다거하 하지 않는다. 매우 유머가 있고 자연을 사랑하고 곤충을 좋아하는 친구이다. 그래서 필자는 이 친구의 프로필을 볼 때마다 웃게 되는데, 필자가 직접 물어본 적은 없지만 아마도 이 친구의 성차별에 대한 반감, 성평등의식이 강했던 것이 아닐까?

  따라서 역사가를 he로 받는 것이 대부분의 역사가가 남성이었기 때문이라는 유시민의 지적을 그대로 인정하더라도 그 대안으로 반드시 역사가를 다수로 상정하고 따라서 그들이 다루는 역사적 사실을 their facts로 받는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만일 화자가 여성이거나 성평등의식이 강하다면 her facts로 받는 것도 가능하고 유시민처럼 역사가에 초점을 둔다면 his/her facts나 her/his facts도 가능하다는 점 언급하고 싶다.

2018년 8월 17일 금요일

번역의 문제: he/she = 그남/그녀

  이 번역에 대한 고민은 간단한 명제 "he/she = 그/그녀"가 참이 아니라는 데에서 시작한다. 언뜻 이해가 잘 안 가시는가? 그럼 지금부터 그 이유를 살펴보자.

  우선 he가 일반적으로 남성 개인을 지칭하는 대명사이고 she가 여성 개인을 지칭하는 3인칭 대명사인 것은 맞다. 그래서 제 3자인 개인을 지칭하는 대명사 '그' 밖에 없었던 우리말에서 영어를 번역할 때 바로 이 구분 때문에 애를 먹게 되었다.

  필자가 볼 때는 일본이 영어를 번역하는 경향의 영향을 크게 받아서 혹은 그대로 카피해서라고 생각하는데, 아무튼 100여년 전 우리 선조는 he를 '그'로 번역하고 자연스런 우리말 '그'에 '여'자를 붙여 '그녀'라는 말을 만들어내어 'she'에 대한 번역어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필자는 이 말을 마치 우리가 여자인 의사, 선생, 경찰, 검찰 등에게 여의사, 여선생, 여경찰, 여검사라고 부르는 것과 꼭 같은 여성에 대한 편견을 포함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이상한 번역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그냥 '의사'라고만 하면 당연히 남자로 간주해야 한다는 뜻인가? 그러나 우리말의 '그'는 당연히 남자는 아니었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그 제 3자의 성을 모를 때 어떻게 하느냐는 것이다. 영어에서 불특정한 누군가를 지칭할 때, 일반적으로 화자가 남자이면 he 화자가 여자이면 she를 사용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것은 누군가에게 사람을 그려보라고 하면 나타나는 현상과 비슷하다. 심리학에서는 사람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여성이면 여자를 그리고 남성이면 남자를 그리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알려져 있다. (물론 트랜스 젠더 등은 다를 것이다)

  이렇게 블특정한 누군가를 지칭할 때 화자에 초점을 맞추어 he나 she로만 사용하면 유시민처럼 지칭되고 있는 사람의 성별을 화자의 성별과 같다고 오해하는 경우가 생겨서 그럴까?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불특정한 누군가의 성을 알 수 없으면 영어에서는 he/she나 she/he와 같은 형식으로 남녀를 의미하는 3인칭 대명사를 모두 써주는 경우도 있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s/he라는 표현을 간단하고 그 동안 남성 중심의 문화에서 탈피하는 저항도 느껴져 더 좋아하나 이 표현은 영여권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되고 있지는 않다.

  이 시점에서 필자는 '그녀'라는 번역어가 영어의 she와도 일치하지 않는 이상한 조합어라고 생각하고 사용하지 말 것을 권고한다.

  필자가 '그'가 he의 번역어로 충분하고 she를 그녀로 번역하는 것이 좋은 번역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은 바로 우리말에서 불특정 누구를 지칭할 때 '그녀'라는 대명사를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새로 만들어 사용하고 있는 '그녀'라는 표현은 불특정 개인을 지칭할 수 없는 불완전한 3인칭 대명사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뉴스 이상의 공식문서나 자연스런 어법이 중요한 품위있는 글에서는 3인칭 대명사로 성별이 잘 알려진 경우에도 남녀 모두 우리의 자연스런 3인칭 대명사 '그'만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그녀의 구분이 he/she에 상응한다고 보는 것은 마치 언어의 기준을 영어에 두고 영어에 존재하는 표현이 우리말에도 있어야 한다는 강박관념 하에서 언어 생활을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 결과 우리 말에서 원래 남녀 모두에게 해당되는 대명사 '그'의 사용을 he에 한정하고 이상한 번역어 '그녀'를 사용하게 된 것이 아닐까?

  물론 이러한 필자의 주장에 대한 반론도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고신해철이 생전에 일본식 번역어 그녀의 사용이 한국어를 더 풍성하게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의 주장은 '그'만 쓰는 것보다 '그녀'도 쓰는 것이 더 한국어의 표현에 보템이 된다는 것이다.

  이 밖에도 필자는 우리말에 피동형이 제한되어 있고 사물이 주어가 되는, 그러니까 능동적 행위의 주체가 되는 경우가 드물지만 그런 표현이 많은 외국어가 번역되면서 그런식의 번역체 표현이 많아지는 것에도 경종을 울리는 편이다. 이러한 필자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피동형이나 사물을 주어로 삼는 것이 우리 말을 더 풍부하게 해준다며 번역체 표현을 폭넓게 인정하자는 주장이 번역계에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필자는 아직 동의하지 않지만 그런 주장도 일리가 있다고 본다. 언어라는 것은 변화하는 것이고 언어가 더 단순화되는 것보다 더 풍성해지는 쪽으로 변화하는 것이라면 그 변화의 방향도 좋다고 본다. 따라서 우리가 깊게 고민해야 하는 부분이 맞다.

  하지만 '그'의 사용을 he에 국한하는 것은 위에서 설명했듯이 원래 남녀를 모두 지칭하는 의미를 제한하여 우리말의 의미를 한정하는 것일 뿐 아니라 '그녀'가 불특정한 누군가를 지칭하는 표현으로는 사용할 수 없는 이상한 번역어라는 사실도 변하지 않기 때문에 현재의 용법은 우리말을 풍성하게 만들었다기 보다 왜곡했다고 본다.

  따라서 she를 '그녀'로 굳이 번역해야 겠다면 he는 '그남'으로 번역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즉 그녀를 쓰고 싶다면 그남도 써서 남녀를 구분하는 것이 좋겠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우리말의 '그'는 원래의 의미를 살려 성별을 모르는 경우, 불특정한 누군가를 지칭하는 'he/she'와 같은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고 특히 공문서나 품위 있는 글에서는 지금까지와 같이 성별이 알려진 경우에도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그남/그녀/그'를 모두 사용하는 것이 우리말을 더 풍부하게 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필자는 제안한다.

  특히나 우리말의 '그'는 성별 구분 없이 그 사람이라는 뜻이므로 요새 한창 이슈가 되고 있는 성소수자를 포함하는 언어라는 측면에서도 훨씬 진보적 의미를 함의하고 있는 대명사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폭넓은 단어를 '남자'를 지칭하는 대명사로 국한하는 것에 대해 필자는 극렬히 반대하는 바이다!

2018년 5월 31일 목요일

Me, Too! 나도 그랬어! or 나도 (그래)! VS. 나도 당했다?

  평등문화 정착을 위한 미투운동이 한창인데, 언론을 비롯한 일각에서 me too를 '나도 당했다'로 번역해서 필자의 심기가 아주 불편하다.

  사실 이 번역이 초기 미국에서 벌어진 미투운동을 국내에 소개하면서 제안된 것인데, 당시에도 이렇게 번역하면 피해자의 무기력함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어색한 번역이라 부적당하다는 지적이 있었는데, 이 운동이 정작 한국 사회에서 활성화되자 아무도 문제제기하지 않고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아 걱정이다.

  왜 미투가 '나도 당했다'가 아님을 이해하려면 미투운동의 의미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 여기서 필자가 말하는 정의는 물론 필자가 정의한 것은 아니고 위키피디아 등에서 검색하면 알 수 있는 대중적 의미를 말한다.

  각자 찾아보면, 미투운동은 자신의 피해사실을 고발하는 것만이 목적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어떤 면에서는 화제가 되었고 다른 측면에서는 논란이 되었듯이 몇 십년 전의 피해까지 나오는데... 필자 개인적으로 좀 보태자면 가해자가 누구인지 몰라서 특정할 수 없는 경우에도 미투 운동의 의미는 퇴색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미투운동은 자신이 성적 피해를 받았는데, 지금까지 신고도 못하고 말조차 하지 못했던 그 심정을 이야기하는 데 방점이 찍힌다고 본다. 내가 피해자인데 왜 내가 두려움에 떨며 사회적 시선에 움츠려 들었는가... 그래서 이제 용기내서 이야기를 한다! 결과적으로 성적 폭력이 얼마나 사회적으로 만연한지가 알려지는 것이고 또 특정 가해자가 지목되어 처벌 받을 수도 있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도 당했다'라는 번역은 적절하지 않은 것이다. 물론 당한 측면이 있지만 당한 것이 전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자는 제안한다. '미투'는 '나도 그랬어!'로 번역하자고.

  나도 그런일을 당했지만 무서워서 말도 못하고 혼자 끙끙 앓았어. 나도 그런 적 있었어. 이런 뉘앙스를 모두 담아보면 '나도 그랬어!'라는 말이 딱 적당하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혹 '나도 그랬어'는 화자가 무언가를 한 것 같은 느낌이 강해서 주저스럽다면, '나도 그래!'도 좋겠다. 지금도 무섭지만 이렇게 말하는 거야...라는 느낌까지 넣는 다면 말이 된다.

  그것도 아님 다 줄이고 '미투'의 진정한 직역 '나도!'로 가든가...

  그 무엇도 마음에 들지 않고 못마땅하다면, 아예 번역을 하지 말든가!! '나도 당했다'는 정말 아니다!!! 지금처럼 번역하려면 그냥 원어를 쓰는 것이 낫다고 본다. 미투!!!

  그래도 영어 쓰기 싫은 사람에겐 추천합니다!!!

  "나도 그랬어!" 혹은 나도 (그래)! 

2018년 4월 23일 월요일

쉬어가는 페이지 7: 미국식 영어와 다른 영국식 영어

  요새 갑자기 꽂혀서... 너무 딱딱하게만 이야기 한 듯 싶다. ^_^;; 그럼 재미있는 이야기도 곁들여서 하자.

  우리는 아마 대다수가 이렇게 알고 있을 것이다. 영어로 Toilet이라고 하면 '변기' 자체를 가르치는 말이기 때문에 '나 화장실 갈래'라고 말할 때 toilet이라고 하면 좀 없어 보이고 Wash Room 혹은 Man's Room or Lady's Room이라고 해야 한다고.

  과연 그럴까?

  위 정보는 부분적으로만 옳다. 미국에서는 화장실을 toilet이라고 잘 하지 않는데 그 이유는 위에서 설명한 바와 같다. 하지만 호주나 영국에서는 화장실을 toilet이라고 바로 표현한다. 필자가 얼마나 놀랬는지... 그래서 물어봤다. toilet이 변기를 가르키는 말아니냐고... 그랬더니 그들의 표정이... '얘 뭐래니?' 이정도!? -_-;;

  우리가 발음도 그렇고 미국식 영어를 마치 무슨 표준 영어처럼 배우는 일이 많아서 미국에서 통용되는 상식을 아무 생각없이 받아들이고 있어서 화장실을 toilet이라고 하면 큰일 나는 줄 알게 된 것 같다. 사실 우리가 화장실을 세척실(Wash Room)이라고 하지 않고 또 남자방/여자방(Man's Room/Lady's Room)이라고 하지 않는 것이 이상한가?

  호주인이나 영국인에게 왜 화장실을 toilet이라고 부르는지 그 이유를 자세히 들을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우리도 외국인이 우리한테 너네는 왜 부엌을 '부엌'이라고 부르니?라고 물어보면 '얘 뭐래니?'정도로 처다볼 밖에 무슨 설명을 해 줄 수 있겠는가?

  그렇게 혼자 고민하다 필자가 발견한 것은 우리들도 면세점에서 많이 구입하는 향수의 일종으로 Au De Toilette라는 프랑스어이다. Toilette라는 단어는 독일어에도 있는데, 바로 '화장'을 나타내는 말이다. 바로 Toilette이라는 단어가 영어로 넘어오면서 "toilet"이 되었고, 이것이 바로 우리가 사용하는 '화장실'이라는 단어의 원조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그리고 이 단어가 미국으로 넘어가면서 '변기'라는 뜻을 가지게 되지 않았을까?

  물론 이것을 확실히 알아보기 위해서는 역시 일제시대로 돌아가서 어떻게 '화장실'이라는 말이 생겼는지 조사해 봐야 할 테지만 여기서는 필자의 개인적 추측으로 마무리하려고 한다. 혹 누가 영어로 화장실을 toilet이라고 하면 안된다고 그러면 꼭 물어보자. 왜? 그래서 미국영어 이야기 나오면 '그거 미국이 잘못 쓰는 거야...'라고 해주자. 다른 나라는 다 toilet이라고 하는데, 뭘 그렇게 까다롭게 굴어!

  미국식 영어와 다른 표현을 쓰는 영국식 영어 표현이 또 있다. 식당에 가서 음식을 먹지 않고 사서 싸가지고 집에 와서 먹고 싶을 때 쓰는 표현을 우리는 대부분 'to go'라고 알고 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미국에서만 통용되는 표현되시겠다!

  그래서 호주에 가서 음식 주문할 때 이 표현을 쓰면 상대가 못 알아 듣기 십상이다. 대부분의 호주인들은 미국식 영어를 TV를 통해 접해서 알기 때문에 알아들을지도 모르겠지만, 아시다시피 호주가 워홀들의 나라 아닌가. 대부분의 식당에서 주문을 받는 사람들은 워홀로 단기 체류하고 있는 사람들일 가능성이 높고 이들은 영어 표현 중에 자주 쓰이는 것 밖에 못 알아 듣기 일쑤이다. 그래서, 필자도 호주 체류 초기에 식당에서 깜짝 당황한 적이 있었다. 다행히 take away라는 표현을 이미 들은 적이 있어서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지... 안 그랬다면 설명을 했어야 했을 것이다. Well, I'd like to get the dish and bring it with me home, blar blar blar...

필자: One Vegi Pizza, please. To go.
Waitress: What?
필자: Well... Hum...(이런 미국식 표현이 안 통하는군. 호주에서 쓰는 표현을 들은 적이 있는데... 뭐였드라...) Take away?
Waitress: Take away! sure!!

  그래서 호주에서 가장 흔히 쓰이는 '싸 가지고 갈게요" 영어 표현은 'take away'되시겠다. 식당에서 주문할 때 웨이터나 웨이츄리스가 'Eat here or take away?'라고 먼저 물어보는 일도 많으니 이 표현 알고 가자.

  그러고 보면 한국에서 쓰는 'take out'이라는 표현은 어디서 나온 것인지 모르겠다. 혹시 또 일본??? 필자는 시도해 본 적 없는 데, 혹 외국에서 이 표현 사람들이 알아듣는지 궁금하다. ㅎ


2018년 4월 20일 금요일

영어에 대한 오해 3: 거시기... 갸가갸가가? 도 영어로 번역이 되나요?? ^_^

  한국어 뿐 아니라 영어도 매우 맥락적일지도 모른다는 느낌으로 지난 한국어만? 시리즈를 써왔다. 우선 영어에서 행위자의 생략이 얼마나 체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지 혀를 내두를 지경이다. 이전 글에서 언급한 수동태 뿐 아니라 영어에서는 무생물 주어를 내세워 실질적 행위자를 가리는 경우도 많다. 사실 무생물 주어가 나오는 문장은 문장만 수동태가 아니지 수동태 문장처럼 행위자가 아닌 존재가 주어로 등장하여 문장이 구성된다. 이 경우 한국어로 번역할 때 골치 좀 아프다. 많은 경우 실질적 주어를 글의 맥락에서 찾아내어 명시해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정도면 한국어가 형님이라고 부를 정도까지는 아니어도 한국어 버금간다고 해 줄 수는 있지 않겠는가?

  또한 sometimes 부사 하나가 문장의 끝에 와서 문장 전체의 의미를 모두 바꿀 수도 있다는 사실을 언급했다. 설마 영어와 한국어만 이렇게 맥락적이겠는가? 그래서 필자는 모든 언어는 끝까지 들어봐야 한다고 결론을 내린 바 있다.

  한국어가 맥락적이라고 사람들에게 평가될 때, 또 하나 많이 언급되는 표현이 바로 한국말은 어 다르고 아 다르다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또한 우리가 가지는 한국어와 영어에 대한 정보의 불균형에서 비롯된 오해이다.

  대표적 표현으로 한국어에서 '거시기'라고 하면 거의 모든 것을 지칭할 수 있으니, 해당 맥락을 모르면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가갸가갸갸?'라는 표현은 어떤가. 정말 기가 막히게 단 두가지 소리 가와 갸로 '저 아이가 그 아이냐?'라는 표현을 대체할 수 있다.

  그렇다면 문제는 영어에는 이에 대응하는 표현이 없을까...라는 것이다.

  영어에서 '거시기'에 견줄 수 있는 표현은 something이나 thingy를 들 수 있다. 영어 화자들이 뭔가를 이야기 하고 싶은 데 해당하는 물건이나 사건의 이름이 떠오르지 않을 때, 그것을 something이나 thingy로 대체하여 표현한다. 예를 들어 이름은 생각나는 데 성은 생각나지 않을 때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화자 1: What was her name again?
화자 2: Sam Something, I guess. (쌤 아무개일 껄.)

  또 다른 예를 보자.

"And even underage wizards are allowed to use magic if it's a real emergency, section nineteen or something of the Restriction of Thingy ..."

  J. K. Rolling이 지은 그 유명한 소설 Harry Potter and the Chamber of Secret()에 나오는 표현이다. 해리와 론이 곤경에 처하자 마법을 써서 해결하자고 론이 주장하는 장면에서 나오는 대사인데, 해석하자면 '그리고 거시기 제한법 19조인가 머시기에 따르면 진짜 위기상황일 때는 미성년 마법사도 마법을 쓰는 것이 허용된다구'정도. 문장 작성법에서 서두를 and로 연결하는 것은 금기시됨에도 불구하고 역시 말할 때는 다 무시된다는 사실부터 확인 가능하다.

  이문장에서 우리의 관심사인 'Section nineteen or something of the Restriction of Thingy'는 Decree for the Reasonable Restriction of Underage Sorcery, Section 19 (미성년자의 마법 사용에 대한 합리적 제한에 대한 협약 19조)정도로 유추해 볼 수 있다. 여기서 something과 thingy가 모두 나온다.

  그렇다면 '갸가갸가가?'에 해당하는 표현도 영어에 있을까? 믿을 수 없겠지만 그렇다!

  영어에서 해당 표현을 찾아보면 Is she her?, Is he him?정도로 생각해 볼 수 있다. 하지만 영어화자들은 이런 표현을 정석으로 하지 않는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겠지만 미국에서는 'h'를 잘 발음하지 않고 영국에서는 'r'이 첫소리가 아닌 이상 그다지 중요하게 발음하지 않는다. 따라서 현지인 발음 기준으로 위 두 표현을 생각해 보면 "이쉬어?', '이지임?' 정도로 표현 가능하다.

  우와, 어떻게 보면 우리말보다 더 간단하다고 해도 할 말이 별로 없다. 따져 보자. '갸가갸가가?'는 ㄱ, ㅑ, ㅏ 이렇게 세가지 소리로 이루어져 있다. 영어에서 'Is she her?'는 i, sh, er이렇게 세 가지(혹자는 z와 sh를 왜 구분하지 않는지 따지고 싶을 텐데, 영어에서 이렇게 비슷한 자음 소리가 겹치면 한 소리만 낸다는 사실 알아두면 좋겠다), 'Is he him?'은 i, z, m 이렇게 세 소리로 이루어져 있다.

  게다가 한국어는 다섯음절인데, 영어는 모두 세음절이다. 이렇게 본다면 한국어 판정패! 물론 한국어는 남녀 모두에게 쓸 수 있는데 반해 영어는 남과 여를 분리해서 두 가지 표현이 존재하니 이 측면에서는 영어가 판정패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니까 두 언어가 비슷한 정도로 매우 맥락적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결론은 무승부!!!

  이런 표현들의 맥락적임에 더해 영어에서 대명사의 사용은 영어 표현을 더더욱 맥락적으로 만든다. 아마 한국에서 영어를 주로 글로 배우다 보니 한국어에서는 주어를 생략해서 의마가 맥락적인데 영어에서는 언제나 반복되는 명사는 대명사로 친절히 언급하기 때문에 문장의 뜻이 보다 명확하다는 식으로 배운 지식에 익숙할 것이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영어로 쓰여진 소설을 한 번도 읽어본 적이 없는 사람이 아닐까 싶다. 우리가 배운대로 언제나 대명사가 언급된다. 그런데 그 대명사가 언제나 바로 전에 나온 명사(사람 이름이든 물건 명칭이든)를 지칭하느냐? 절대 그렇지 않다. 어쩔 때는 도대체 이 대명사가 무엇을 가르치는 것인지 찾느라고 헤멜 때가 한 두번이 아니다. 해당 대명사를 생략했을 때 일어나는 우리나라 말의 뜻을 찾는 어려움과 다를 바가 전혀 없다.

  사실 우리말에서 반복되는 명사가 생략될 때는 그것이 주어이든 목적어이든 화자와 청자가 무엇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지 명확할 때이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청가가 물어볼 수 밖에 없다. 무슨 이야기 하고 있는 거야?

 영어도 마찬가지다. 대명사를 쓸 때는 이미 그 대명사가 무엇을 지칭하는지 화자와 청자가 명확히 알고 있다는 전제가 있다. 하지만 대화를 하다 보면 그들의 전제가 달라서 물어봐야 하는 경우가 역시 발생한다.

화자 1: She was so brave that all around her were touched!
화자 2: Who's she? (네가 말하고 있는 걔가 누구야?)

  대명사를 썼기 때문에 뜻이 명확하다고? 어림도 없는 소리.

  게다 많은 분들이 모르시는 것 같은 데 한국어로 글을 쓸 때는 대명사보다 해당 명칭을 반복 언급하는 경우가 더 많다. 어쩜 이렇게 맥락적이지 않고 뜻을 명확하게 할 수 있는지!



2018년 4월 19일 목요일

정보의 불균형 2: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한다. 한국말만??

  앞서 우리는 주어만 생략하지만 영어는 주어 동사 다 생략해서 한 단어로 의사소통한다는 점을 밝혔다. 가령 예를 들면, "understood?" 이런 식이다. 이건 한국어로 직역하면 어떻게 해야 하나? "이해했?" 정도?! ^_^;

  요새 SNS에서 짧게 말하며 의사소통하는 방식이 널리 퍼지는데, 어른들은 못 알아듣는 요새 인터넷 용어가 영어의 간단한 표현과 많이 닮았다는 것을 생각해 낼 수 있다. 그러니까 영어에서는 오래전부터 누가 화난 줄 알았다는 표현을 "화난 줄"이라는 식으로 일상생활에서 써왔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어와 외국어에 대한 어줍잖은 오해는 이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한다면서 자신의 중언부언을 정당화한다.

  그 이유인 즉 영어는 주어 동사가 앞에 나오기 때문에 첫 마디에서 요점을 파악할 수 있지만, 한국어는 문장의 주요 요소인 주어 동사 중 동사가 맨 마지막에 오기 때문에 끝까지 들어봐야 한다는 것이다. 정말일까?

  예를 하나 들어 이 주장을 반박해 보자. 그 유명한 반증!

  필자가 재미있는 블로그 하나를 발견했는데, 그 블로그 주소가 https://achildlives.blogspot.kr/ 이다.

  A child lives라... 이것만 보면 어떤 생각이 나는가? 육아 블로그? 동화 블로그? ... 아니면 중동이나 아프리카에서 굶주리는 난민아동에 대한??? 등등의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그래서 호기심에 클릭해 들어가보면 대문에 표제가 대문작만하게 다음과 같이 나온다.

  A Child Lives in My Mind.

  무슨 블로그든 가능할 것 같다. 어떤 일상생활에 대한 푸념까지도 소화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매우 철학적일 것 같기도 한?!

  여기서 포인트는 우리가 읽은 문장이 한국어가 아니라 영어였는데, 마지막 단어에 의해서 문장 전체의 뜻이 변했다는 것이다. 다시 위 블로그 주소와 제목을 비교해 보자. 느낌이 완전히 다르지 않은가! 주소만 보면 한 아이가 사는데, 어디 산다는 것인지 어떻게 산다는 것인지에 대한 정보는 전혀 없다. 심지어 제목으로 가서도 A child lives in my까지 가도 그 다음 단어가 house일지 work place인지에 따라서 전혀 뜻이 달라지는데, 하물며 mind라니. 이건 한 아이에 대한 기술이 아니라 우리 마음에 대한 이야기로 문장 전체의 뜻이 변해버리는 굉장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렇듯 마지막 단어에 의해 문장 전체 뜻이 변하는 것은 어느 언어에서나 볼 수 있는 현상이다. 한국어만 특별해서 말을 끝까지 들어봐야 하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즉, 문장에서 주어와 동사만 들으면 문장의 중요 내용을 모두 파악할 수 있다는 말은 언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태에서 나온 주장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것이 아니라면 한국어 교육에서 말하기도 제대로 가르치지 않기 때문에 중언부언하는 것과 좋은 말하기를 구분하지 못해서 생긴 말일 수도 있겠다.

  한국말 뿐 아니라 영어도 끝까지 들어야 한다는 주장의 두번째 근거는 영어에서 자주 사용되는 가주어 때문이다. 진주어가 이런 저런 이유로 길어지면 영어는 편리하게 가주어 it을 사용해서 문장 초반에 배치하고 긴 진짜 주어는 문장 맨 마지막으로 돌려버린다. 우리 한국인들 대부분이 가주어 진주어 문법에는 도가 텄기 때문에 예는 따로 들지 않겠다.

 우리가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한국어는 동사가 문장의 맨 마지막에 나오지만 영어에서는 가끔 주어가 맨 마지막에 오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영어를 끝까지 들어야 할 것인가 아닌가?

  문장에서 형식상 주어가 아니라 의미상 주어... 그러니까 실제 행위를 하는 주체에 대한 개념으로 진주어의 개념을 확장하면 영어에서 이 진주어인 행위자가 문장의 맨 마지막에 등장하는 빈도는 더 높아진다.

  수동태 문장은 영어가 얼마나 맥락적인지, 영어에서 주어를 어떻게 합법적으로 생략(그러니까 주어를 문법적으로 생략하지 않으면서 실질적으로는 생략하는)하는지에 대한 예를 들면서 언급한 적이 있었다. 그에 더해 수동태 문장에서 진주어를 생략하지 않는 경우에도 by 이후에 나오는 진주어는 문장의 마지막 부분에 위치하기 일쑤이다. 그러니 영어를 끝까지 들어야 하는 세번째 이유가 생겼다.

  마지막으로 또... 영어에서 주어가 길어지면 심지어 가주어를 내세우지 않고도 부사나 형용사를 문장 앞으로 도치시켜 기다란 주어를 문장 맨 마지막으로 옮겨버리기도 한다. 영어도 끝까지 들어봐야 하는 네번째 이유 되시겠다. 그 예로 다음 문장을 보자.

"... so imperfect is our view into long past geological ages, that we only see that the forms of life are now different from what they formerly were."

  Darwin이 1859년에 쓴 종의 기원이라는 책에 나오는 문장인데, 이 사람 한 문장 너무 길게 써서 현재 논의되고 있는 주제에 적합한 부분만 옮겨보았다. 해석해 보면 '오랜 과거 지질 시대에 대한 우리의 시각이 매우 불완전하기 때문에 우리는 현재 생명체의 형태가 과거에 있었던 것들과 다르다고만 생각한다'정도 되시겠다.

  보이는가? 이 문장은 한국인들에게 그렇게 유명한 so ... that절 표현 되시겠다. 그런데, so를 포함한 형용사구가 문장 앞으로 도치되면서 that이랑 거리가 멀어져서 혹자는 발견 못할 수도 있다. 이렇게 독자에게 불편을 끼치면서까지 도치를 시킨 이유가 바로 주어가 into로 시작하는 전치사구의 수식을 받다 보니 너무 길어져서다. 이렇게 주어가 뒤에 등장하니 영어, 끝까지 들어야 할 수 밖에 없지 않겠는가.

  아직도 주어를 수식하는 전치사구가 주어 뒤에 오니 our view까지만 들으면 되지 않겠느냐... 라고 우기실 분 계시겠다. 생각해 보자. 우리의 시각이 불완전한데, 우리의 어떤 시각이 불완전한지에 대해서 듣지 않고 이 문장 이해했다고 할 수 있겠는가? 만일 주어를 수식하는 전치사구가 불필요한 내용이라면 그 수식어 없애는 것이 좋은 문장을 작성하는 지침임을 명심하자. 이것이 우리말이고 영어고를 떠나 만국어 공통의 올바른 작문 원리이다!

  더 나아가 so ... that 구문은 뒤에 나오는 that절에 흔히 우리가 말하는 방점이 찍히는 중요한 내용이 들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 아니 정말 끝까지 들어야 하겠네!

  필자가 모든 언어를 아는 것은 아니지만 단언컨데 모든 언어는 끝까지 들어봐야 한다. 그래서 상대방이 말을 하는데 자르고 들어가는 것이 대부분의 문명사회에서 무례하게 취급되는 것이 아닐까.

  만일 당신이 여전히 한국말은 다른 언어와 달리 끝까지 들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이런 점을 고민해보기 바란다. 혹시 이미 핵심은 다 말해 놓고 쓸데없는 소리를 주절주절 떠드는 그런 언어 습관이 있는 것은 아닌지? 이 때 자신이 중언부언 같은 말을 혹은 전혀 주제와 상관없는 말을 끊임없이 떠들고 있다는 자각이 없다면 나의 중요한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야 한다고 억지를 부릴 수 있지 않겠는가.

  혹은 바로 핵심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별로 상관 없는 이야기를 주절주절 떠들고 있지는 않은지 검토해 보시길. 그럼 아직 핵심은 이야기하지 못했으니까 내 말을 끝까지 들어야 핵심이 나온다고 상대방에게 무한한 인내심을 요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지 말고 지금 당신의 언어습관에 아주 문제가 많다는 사실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당신의 나쁜 언어습관이 한국어의 특성은 아닙니다. ㅎ


2018년 4월 6일 금요일

영어로 자기 이름 소개하기: My name is... 꼭 필요하다!!!

영어로 자신의 이름을 소개할 때 My name is ...로 꼭 시작할 필요가 있을까? 대답은 요새 잘 알려진 일반적 믿음과는 다르게 Yes!!라는 것이다. 특히 한국인들에게는 그렇다. 그 이유를 살펴보자.

아래 글에서 영어로 친구를 소개할 때, 다음과 같이 한다고 했다.

  "Joe Public, Jane Roe. Jane Roe, Joe Public."

즉 서로의 이름만 나열하면 된다. 따라서 이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 입장에서는 지금 서로 소개해 준 것인지도 모를 수 있을 정도로 상황이 맥락적이다. 위 표현은 영어 화자들이 신원미상의 남녀를 부를 때 사용하는 이름들로 장난쳐 본 것이다. ^_^;

자기 소개를 할 때도 일반적으로 English Native Speaker들은 "My Name is Robin Yu'라고 하지 않는다. 그냥 'Robin Yu'라고만 하면 되고 더 일상적으로는 성은 언급하지 않고 이름만 언급하는 경우도 많다. 그냥 'Robin'이라고만 하면 된다.

그렇다면 한국인으로서 처음 외국에 간 당신은 어떻게 당신의 이름를 그들에게 소개해야 할까? 그들이 이름만 언급한다니 당신도 그렇게 하면 될까? 자 상황을 보자.

A: James.
Me: Shang-Choo.
A. What?

문제는 그들이 당신의 이름에 익숙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 경우 당신은 이름을 언급했지만, 상대방이 이름을 말한 것인지 다른 이야기를 한 것인지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또한 한국어 이름은 그들이 알아듣기도 힘들다. 영어 이름 없으면 그들처럼 소개하면 안됨.

해결책은 반드시 full sentence로 자신의 이름을 소개할 것! 요새 영어를 가르치는 많은 video tips가 돌아다니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 데, 하나 같이 I am ... 이나 My name is ...로 시작하는 자기 소개가 필요없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당신에게 영어 이름이 없다면 그들처럼 소개하면 안 된다. 최소 I am...으로 시작해서 자기 이름을 말해 줄 필요가 있다. 만일 당신의 이름이 그들 입장에서 알아듣기 어려운 이름이라면 my name is ...로 해주는 것이 좋다.

2018년 4월 2일 월요일

정보의 불균형 1: 한국어에서는 주어가 마구 생략된다! 한국어만?

  한국어로 말 할 때 주어를 많이 생략한다는 사실을 대부분의 한국인이 알고 있다. 이를 근거로 한국어가 다른 언어보다 더 맥락적인 언어라고 생각하는 한국인들도 많다.

  과연 그럴까? 한국어만 이토록 맥락적이라서 아 다르고 어 다른데, 다른 언어, 특히 영어는 주어 동사가 항상 사용되기 때문에 우리보다 표현하는 것이 훨씬 더 구체적이고 오해의 소지도 적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필자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이는 정보의 불균형으로 인한 오판이다. 마치 외국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이 외국 사람 몇 명밖에 만나본 적 없으면서 외국은 한국과 이러저러한 점에서 차이가 난다며 결론을 내리는 것과 비슷하게 한국어는 전문가 수준으로 알지만 영어에 대한 정보는 상대적으로 빈약한 상태에서 자신이 알고 있는 것 만으로 두 언어의 차이를 말하는 과일반화의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필자가 볼 때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영어를 책으로 배워서 그런 것 같다. 사랑을 책으로 배우면 안 되듯이 영어도 책으로 배우면 영어 화자들은 주어도 생략하지 않고 언제나 full sentence로 말하는 줄 안다. 그래서 영화를 보면 하나도 안 들리는 것이다. 일상생활에서는 영어에서도 대부분 주어가 생략되기 때문에 책으로만 영어를 배운 사람 입장에서 적응하기 어려울 수 밖에 없다.

  예를 들어, 추억의 명작 Body Guard 초반 남자주인공이 어떤 노인을 경호하는 장면에서 그 경호받는 노인이 묻는다. "Hands ever shaken?" 그러자 남자배우가 대답한다. "Just adrenaline." 무슨 소리인가? 누군가의 공격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노인이 유능한 경호원이 손을 떨기도 하는지(무서움을 느끼는지- 필자 주) 물어보자 남자가 그저 호르몬 작용일뿐이라고(무서움을 느끼는 것은 아니지만 손을 떨기도 한다고 -필자 주) 대답하는 장면이다. 남자가 실력있는 경호원으로 위기의 상황에서도 침착함을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 이야기하다 장면 해석으로 말이 샜는데, 본론으로 돌아와 다시 영어 표현을 보자. 첫번째 문장을 여러분들이 좋아하는 영어의 full sentence로 표현하자면 아마 'Have your hands ever shaken?'정도 될 것이고 두번재 문장은 'It's just adrenaline.'일 것이다. 보자 보자... 첫문장에서 동사와 소유격 표현이 빠졌고 두번째에서는 주어, 동사 다 빠졌다. 한국인이 같은 상황에서 같은 것을 물었다면 아마 이 정도 표현이 아니었을까? '손을 떨기도 하나요?' '흥분한 거 뿐이에요.' 모두 주어만 빠졌다.

  주어 동사 다 생략하는 것보다 주어만 생략하는 것이 그래도 더 정확한 언어 표현 아닌가. 이제부터 이렇게 이야기하자. 영어는 맥락적이다. 한국어는 정확히 표현하는 편인데... ㅎㅎㅎ

  이제 처음 질문에 대답할 수 있다. 과연 한국어만 주어 생략하는 거 맞는가? 정답은 '아니다'이다. 이런 오해에는 한국의 국어교육의 문제점도 있다. 한국의 공교육에서 우리말로 글쓰기를 제대로 가르치지 않기 때문에 많은 한국인들이 우리말로 글을 써도 글에서 주어가 생략되는 일은 말할 때처럼 빈번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즉 한국인이 익숙한 한국어의 구어체와 영어 책 속의 문어체를 서로 비교하면서 두 언어는 이렇게 달라....라고 이야기하는 꼴이라고 말할 수 있다.

  자, 그럼 일상적 상황에서 영어로 말을 할 때, 주어가 어떻게 생략되는 지 한 번 살펴 보자.

  첫째, 영어에서는 한 단어로 말을 하는 경우가 많다. 최소한 한국어는 말을 할 때도 목적어와 술어는 꼬박꼬박 써주지 않나! 예를 들어, 친구에게 이렇게 물을 수 있다.

  "밥 먹을래?"

  같이 먹자는 소린지 혼자 먹으라는 소린지... 해당 상황에 있지 않다면 헷갈리는 맥락적 표현이다. 주어가 빠져 있기 때문이다. 그 뿐 아니라 점심을 말하는 것인지 저녁을 말하는 것인지도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최소한 목적어와 동사는 등장한다.

  반면 영어로는 위 말을 어떻게 할까?

  "Lunch?"

  음하하하... 이게 무슨 소린가? 우선 저녁이 아니라 점심을 이야기하는 것 같긴 하다. 그렇다고 이 표현이 덜 맥락적인가? 우선 같이 먹자는 소린지 혼자 먹으라는 소린지 상황을 모르면 어리둥정하기 마련이다. 역시 밥을 먹을 계획인지를 물어보는 것인지 밥을 먹었냐는 소린지도 알 수 없다.

  다른 상황을 생각해 보자. 필자가 두 친구에게 서로를 소개시켜 줄 때, 한국어로는 아마 다음과 같이 하게 될 것 같다.

  "이 친구는 이 아무개이고 저쪽은 박 아무개야."

  영어로는 어떻게 될까?

  "Joe Public, Jane Roe. Jane Roe, Joe Public."

  이제 다시 판단해 보자. 어떤 언어가 더 맥락적인가?

  둘째, 영어에서 이렇게 주어 동사 모두 생략하고 단 몇 개의 단어로만 의사소통하는 방법 말고도 가짜 주어를 내세워 실제로 행위한 주체를 생략하는 화법도 존재한다. 이런 방법은 대화에서 뿐만 아니라 글에서도 일상적으로 볼 수 있다.

  이렇게 가짜 주어를 내세우는 방법 중 하나가 한국인이 그렇게 잘 알고 있는 수동태 문장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한국인들이라면 일반적으로 영문법에서 만큼은 영어원어민을 능가하기 때문에 수동태 문장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여기서 생략한다.

  Binoculars were bought simply because binoculars were bought.

  위 문장은 Lee Child라는 작가가 지은 Never Go Back이라는 추리소설에 나오는 표현이다. 형식적으로 주어와 동사가 모두 보이지만 실질적인 행위 주체는 나오지 않는다. 누가 산다는 것인가? 위 문장을 우리말로 번역해 보자면 '사람들이 망원경을 샀던 이유는 오직 당시 망원경이 유행했기 때문이었다.'정도 된다. 우와, 한국어에서는 영어에는 표현되지 않았던 행위 주체가 나타났다!

  이렇게 실질적 주어는 숨겨놓고 형식적으로 주어 동사 있으니까 영어는 표현이 정확하고 한국어만 맥락적이라는 주장은 사실 '저는 영어를 잘 모릅니다'라는 선언이거나 '저는 영어든 한국어든 언어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 없이 그냥 시중에 떠도는 이야기를 반복할 뿐입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이 쯤 되면 우리가 한국어의 특수성으로 즐겨 언급하는 '갸가갸가가?'라는 표현, 어떻게 두가지 소리로 그렇게 복잡한 뜻을 나타낼 수 있는지 감탄하던 그 상황이 영어에서도 일상적으로 일어날 수 있음직하다고 의심할 수 있지 않을까?

2018년 3월 31일 토요일

외국어 한국어로 옮기기: 겹자음을 사용하자!^_^

오늘 필자는 외국어를 한국어로 옮길 때 겹자음을 사용할 것을 제안한다.

  외국어를 한국어로 옮길 때 가장 문제가 되는 것 중 하나가 원래 언어보다 음절 수가 늘어난다는 것이다. 그 이유 중 하나가 우리말 첫소리에서 겹자음을 거센소리 이외에는 허용하지 않는 경우가 많고 끝소리에서도 ㄳ, ㄼ, ㄶ, ㄽ 등 제한 된 경우가 아니면 겹자음을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만일 '밁'처럼 '밀ㅋ'를 쓸수 있다면 milk도 1음절이고 우리말로 옮긴 단어도 1음절이된다. 아마 내는 소리도 원래 원어에 더 가까워지지 않을까? 그러고 보니 ㅋ도 받침에 오면 ㄱ과 같은 소리가 나니 이 참에 milk에 대한 표준 한국어 표기는 "밁"으로 하는 것으로?!

  그런데 읽어보니 마지막 'ㄱ'소리가 좀 작다. 이것을 ㅋ으로 바꾸면 좀 크게 소리내는 것으로 합의하면 아주 비슷해 지지 않을까?? ^ㅇ^ 하지만 사실 milk를 우리말로 '밀크'라고 적고 읽기는 하지만 실제 원어 발음 소리는 '미역'에 더 가깝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을 수도 있겠다. 어차피 우리가 milk를 미역이라고 표기하는 날은 오지 않을 것 같기 때문에...^_*

  조금 더 예를 들어보면...
  ㅅ카 scar - 한 음절로 표현할 수 있다. 영어단어와 마찬가지 효율!
  ㅅ트라잌 strike - 초성에도 이중자음 허용하면 삼음절로 표현할 수 있다. 여전히 영어단어는 1음절이라 우리말로 옮기면 길어지긴 하지만 그래도 현재 5음절보다는 장족의 발전이라고 본다.

  사실 과거 한국어를 보면 초성에도 종성에도 현재 우리가 사용하지 않는 많은 겹자음이 사용되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어떤 이유로 우리 말에서 아래'아'소리도 없어졌는데, 그와 마찬가지로 많은 겹자음 소리도 사라진 것 같다. 그 이유를 찾아보고 과거 각 겹자음이 어떤 소리였는지도 궁금한데...

  현재 한국어는 계속 단순해지고 있는데, 그 중 국어연구원에서 펼치는 외국어에 된소리 쓰지 않기 등과 같은 운동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생각해 본다. 과거 겹자음을 초성에도 허가하고 현재보다 종성에서도 풍부하게 허가했던 전례를 살펴보면 외국어표기에 겹자음을 허용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본다. 과거 용례와 일치하지는 않겠지만 과거를 복원할 수 없다면 그리고 언어도 움직이는 것이라면, 이 또한 우리말의 소리를 풍부하게 하는 하나의 방법이 아닐까?

  그래서 제안해 본다. 외국어 표기에 된소리도 허가하고 겹자음도 허가하면 좋겠습니다!!!

2018년 3월 30일 금요일

우리나라만 국가나 대통령을 부모라고 생각할까?

  우리나라가 유독 국가와 국민은 부모(특히 아버지)와 자식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는 주장이 있다. 유교국가라서 그렇단다. 군사부일체 아닌가?!

  그래서 정부의 수장인 대통령을 아버지(여성이면 어머니)로 생각해서 고난을 당했을때 그가 직접 보살펴 주기를 바란다는 소리가 있다. 그래서 세월호가 일어났을 때 피해자 가족들이 대통령을 그렇게 만나길 원했다는 소리.

  과연 그런가?

  필자가 다른 나라 상황은 잘 모르니까 우선 미국을 예로 들어보자. 미국에서는 정부를 삼촌이라고 부른다. 미국인들은 미국정부 'Uncle Sam'이라고 부르는데, 그러면 왜 삼촌일까?

  물론 이 Uncle Sam이라는 상징에는 역사적 기반도 있고 전설적 기반도 존재하지만(자세한 것은 다음을 참조 https://en.wikipedia.org/wiki/Uncle_Sam), 필자가 생각하기에 그 나라는 종교국가로 이미 부모에는 다른 상징이 사용되고 있다.

  아버지father는 신부나 신을 뜻하고 심지어는 son도 신을 뜻하고 mother나 sister는 성모 마리아와 수녀를 뜻하니, 부모와 자식 관계를 정부와 시민 간 관계를 뜻하고자 한다면 제정일치가 되는 전근대적 상황이 발현되는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을까...

  그 대안으로 정부는 삼촌이고 시민은 조카가 되는 대안을 택한 것이 아닐까?! 물론 이는 필자의 억측이다.

  다시 원래의 질문으로 돌아와서, 미국에서는 정부를 부모로 생각하지 않으니 한국인만 유독 국가를 부모로 생각한다는 것이 맞다고 볼 수 있을까?

  이미 부모가 종교 안에 굳건히 자리잡고 있어서 국가기관과는 조카 삼촌 관계일수 밖에 없는 미국이, 한국보다 더 유교적, 더 가부정적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_^

  그 근거로 미국에서도 큰 재난이 발생하면 대통령이, 정부가 총 출동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점도 덧붙이겠다.

2018년 3월 29일 목요일

된소리의 역습

  현재 국립국어원에서 외국어를 한글로 표기할 때 된소리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필자는 묻고 싶다. 아니, 왜? 물론 이유를 모르는 것은 아니다. 된소리를 많이 쓰면 우리 말이 억세지고 어감이 드세지고 어쩌구저쩌구....

  필자는 이런 국어원의 입장을 시대착오적이라고 생각한다. 마치 독재시대 미풍양속을 지켜야 한다면서 경찰들이 자 가지고 다니면서 여성들 치마길이 재고 남자들 머리 길이 재던 시절도 아니고...

  다시 말하지만, 외국어 표기에서 소리나는 대로가 아니라 무조건 된소리를 금지시킨 원칙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city는 시티라고 하고, science는 사이언스라고 쓰는 것이 표준 표기법이면, vitamin C는 비타민 시인가? 그런데 아무도 비타민 시라고 안하는지 모르겠다.

  모두들 비타민 씨라고 하지 않나? 사실 city는 씨티가 맞고 science는 싸이언스라고 소리나는 대로 적는 것이 필자는 더 좋다고 본다. 자연스럽게 소리나는 대로...

  억지로 무언가를 통제하려고 들면, 반드시 그 역작용이 일어난다. 마치 4대강을 파면 강이 썩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국어원의 노력으로 s sound를 훨씬 부드럽게 'ㅅ'소리로 대체했더니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자.

  바로 ㅅ소리가 s sound로 대체되는 위험한 조짐이 보인다. 그래서 '노들섬'이라는 한강의 섬은 영어로 'Nodulseom'이라고 하고 '노들썸'이라고 읽게 된다. 지하철을 타고 안내방송을 잘 들어보기 바란다. 이제 우리의 'ㅅ' 소리는 영어의 s로 1:1 대응 관계가 성립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s sound가 혀를 입천장에 붙이고 바람을 내보는 소리로 'ㅆ'에 가까운 소리가 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s가 'ㅅ'소리에 가까운 소리를 내는 경우는 s다음에 자음이 오는 경우에 한한다. strike는 스트라이크로 표현하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소리다.

  국어연구원은 영어의 된소리를 한국어의 예삿소리로 옮기면 한국인이 부드럽게 말하게 될 것이라고 착각하는 모양인데, 결과는 그 반대일 수도 있음을 이제부터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다. 즉 밤섬도 밤썸이라고 부르고 사이좋게를 싸이좋게라고 말하는 등 한국어에서 예삿소리가 사라지고 모두 된소리만 남으면 어쩌려고 이러는지 모르겠다.

  이런 문제는, 영어에서 혹은 외국어에서 하나의 알파벹을 하나의 소리와 1:1대응 시키는 국어연구원의 획일성에 기인한다고 본다. 이는 서울사투리를 표준말이라고 정해놓고 모든 다른 지방의 사투리를 멸시하는 현재 정부방침과 일맥상통하는 입장이다.

  사실 하나의 철자가 하나의 소리를 대변하는 대표적 표음문자인 우리말조차도 연음, 자음접변 등의 소리변화로 인해 실제로는 철자와 다르게 소리나는 경우가 허다하다. 예를 들어, 우리 고대 국가 중 하나인 '신라'는 영어로 'Shinra'라고 철자대로 쓰는 것이 원칙이 아니라 'Shilla'라고 소리나는 대로 쓰는 것이 원칙이다.

  하물며 우리나라보다 훨씬 더 자율성이 많은 영어를 비롯한 다른 나라 외국어를 우리말로 옮기면서 이렇게 s는 언제나 'ㅅ'으로 옮겨 적으시오...라는 획일적 정책은 결국 국적없는 조어를 탄생시키게 될 뿐 아니라 결국 우리말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게 되는 것이다.

  결국 우리의 ㅅ소리 ㅆ소리 모두 영어로는 'ㅆ'에 가까운 s소리로 굳어질지도 모를 이 위기에서 ㅅ라고 쓰고 ㅆ으로 소리내는 현상까지 가기 전에 국어연구원의 경직된 자세가 바뀌길 기대해 본다.


2018년 3월 27일 화요일

영어 잘 하려면... 번역하지 마라!

  흔히들 외국어를 배울 때, 이게 한국어로 무엇이지...라고 많이 생각하게 된다. 초기엔 그럴 수 있지만 어느 정도 수준에 도달하면 외국어로 외국어를 배워야지. 계속 한국어에 의존하면 외국어를 숙달하기 어렵다. 그 어느 정도의 수준이라 함은 초급을 벗어난 수준 정도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그러니 당신이 영어 중급정도 된다고 생각하면, 영어 책을 읽을 때도 영어로 말을 할 때도 한국어로 생각해서 번역하면 절대 안 된다. 왜냐하면 단어나 표현의 범위가 1:1이 아니기 때문이다.

  run을 생각해보자 이 단어는 흔히 달리다로 표현된다. 하지만 어떤 사업을 운영하는 경우도 run을 쓰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달린다는 표현으로 사업체 운영을 결부짓지는 않는다. 술을 죽도록 마시는 것이라면 모르지만.... 접대도 사업의 일부이니까?

  또한 hit은 흔히 치다로 번역된다. 하지만 영어에서는 우리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를 때도 hit을 쓰고 먼 길을 떠날때도 hit을 쓴다. 생각해 보자. 오른발을 들어 땅을 딛고 왼발을 들어 땅을 딛고... 이렇게 걷는 모양새가 사실 손으로 엘리베이터를 일렬로 죽 누룬다고 생각하면 그리 다르지도 않은 동작임이 사실이다. 단지 전자는 발로 하고 후자는 손으로 하는 차이일 뿐?

  하지만 한국어 사용자는 걷는 것을 땅을 두드린다고 표현하지 않는다. 이렇게 영어 단어의 표현 범위와 우리말 단어의 표현 범위는 다르다... 그런데 한국어로 생각해서 번역하면 영어가 된다고 생각하면 아주 이상한 말을 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오늘 걷는 것을 hit으로도 표현한다는 것을 배웠다. 기념으로 노래하나 듣고 가자.

Hit the road Jack! 

 https://www.youtube.com/watch?v=Q8Tiz6INF7I

2018년 3월 26일 월요일

쉬어가는 페이지 6: Sword 발음편 (스워드 vs 쏘오드)

다음을 구분해 보자!
Sword vs 쏘오드

  구분 가능한가? 그렇다면 당신은 발음을 잘못하고 있다!
  아 물론 이것은 완벽하게 사실은 아니다. ㅎㅎㅎ
  왜냐하면 일반적인 한국인들의 믿음과는 다르게 한국어로 영어 발음을 완벽하게 표현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시 시작한다.

  다음 단어를 발음해 보자.
Sword

  물론 완벽하게 일치하지는 않겠지만 대충 '스워드'와 비슷하고 발음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당신의 발음은 틀렸다!

  단어는 비교적 많이 알려진 단어로서 흔히 게임이나 역사 및 Fantasy 소설에서 많이 언급되는 단어이다. 하지만 얼마나 많은 한국인들이 이 단어의 발음을 잘 못 알고 있다. 왜냐하면 역시 영어가 알파벹 대로 소리 날 것이라는 우리의 크나큰 착각 때문이다.

  여러분, 영어는 한국어가 아닙니다. 독일어도 아닙니다. 영어는 절대로 알파벹 대로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다시 Sword 발음으로 돌아가 보자.
  영어 발음을 한국어로 완벽하게 표현할 수 없겠지만 그래도 가장 가깝게 표현해보자면 '쏘오드' 정도 되시겠다. 간략함의 미를 살려서 '쏘드'도 좋다고 본다.

  필자가 한 십여년 전에 한영어 한다고 설치고 돌아다니던 시절이 있었는데, 그 때 한 외국인을 만나서 전설의 기사 비슷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그 때 흔히 기사나 장군들이 쓰던 긴 검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그때부터 우리의 의사소통에 먹구름이 끼기 시작했으니... ^ㅡ^;;

필자: 스워드.
원어민 친구: What?
필자: Humm, the long knife that knights hold when they fight???
원어민 친구: 아, 쏘오드!
필자: What?

  음하하하. 이렇게 필자가 하는 말을 친구가 못 알아듣고 친구가 하는 발음은 필자가 못 알아듣는 경험... 이것은 필자가 막 영어회화를 배우기 시작할 때 pearl 발음 이후로 처음있는 일이었다. 어떻게 필자가 그 때까지 sword의 발음이 한국에서 통용되는 한글표기와 완전히 다르다는 사실을 몰랐을 수 있었는지... 여전히 필자에겐 미스테리다.

  의심가시면 영어사전을 펴고 직접 확인해 보시라.

  앗 이게 뭔가?
  국어 연구원에 따르면 'ㅆ'은 외국어에 쓸 수 없으니 Sword는 '소오드'로 써야 하나? ㅎㅎㅎ 줄여서 '소드'??

  이래서 필자는 국어 연구원의 입장을 절대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왜 우리의 소중한 발음 경음을 외국어 표현에서 제한하는가? 이러다가 분명 'ㅅ'이라 읽고 'ㅆ'이라 발음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바로 '경음의 역습!'

2018년 3월 25일 일요일

최대의 오역 2: developed/developing countries 선진국/후진국 vs 개발국/개발도상국

  우리는 세계를 평면으로 놓고 보자면 여전히 미국만 외국인 줄 알고 있고 시간으로 놓고 보자면 아직도 세계 열강이 식민지 다툼을 하던 시대에 살고 있는 것 같다. 전자는 미국식 영어발음 제일주의에 젖어 O는 '아'로 발음해야 정석이라고 생각하고 '오'로 발음하면 촌스럽다고 생각하질 않나 영어가 아닌 외국어를 영어처럼 발음하기 때문이다. 후자는 아직도 developed countries를 선진국이라고 번역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영어를 직설적으로 번역하기 좋아해서 'social'이 맥락무관 무조건 '사회적'이라고 번역되는 이 나라에서 왜 developed가 어떻게 봐도 '개발된'이라는 이 단어가 country와 만나서 '선진'이라는 뜻이 될 수 있는가 말이다.

  과거 식민주의 쟁탈전을 하던 시대에 사람들은 자신이 타국을 지배하는 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식민지가 되어버린 나라를 '미개'하다고 '후진'국이라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자신들은 선진국이라는 말이다. 이 때에도 선진국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는 적절한 단어는 advanced이다.

  물론 이렇게 국가 간 서열을 매기고 누가 누구를 지배하는 것이 정당한지 아닌지를 따지던 시절에는 developed=선진이라는 공식을 사용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이 어느 때인가? 2차세계대전이 끝난지 언제이고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하는 나라는 하나도 없는 21세기인데, 여전히 한국만 각 나라를 줄세우기 하고 해당 경제개발 수준에 맞추어 각 나라를 차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결론부터 말하자면 developed/developing은 선진/후진이라는 뜻이 아니다. 요즘 시대에 그런 식으로 번역하여 사용하는 관행도 아주 이상한 일이다. 따라서 필자가 새로운 번역어 제안을 하겠다.

  a developing county가 나중에라도 개발도상국으로 적절히 번역이 수정된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이에 준하여 a developed country를 한국어로 다시 번역해 보면 '개발완료국!'이라고 불러야 하지 않을까? 줄여서 '개발국'도 좋은 듯.

  여전히 개발을 했는지 안 했는지를 기준으로 선진/후진을 나누는 것이 식민지를 정당화하지 않더라도 여전히 유용한 구분이라는 주장 반드시 가능하다고 본다. 하지만 이런식의 구분은 개발이 반드시 해야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편견 때문이다.

  개발이 반드시 선이 아니다. 개발할지 말지는 각 나라가 각 지역이 알아서 결정할 문제이다. 특히 이렇게 자연환경 문제가 대두되고 있는 시점에 자연과 조화를 추구했던 선조들의 생각이 더 선일 수도 있다고 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이런 개발지상주의 철학을 한국인들이 가지게 된 것도 과거 식민지배를 받은 것은 열등해서라는 식민사관에 의해 아직도 휘둘리고 있기 때문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이렇게 과거 제국주의의 논리를 그대로 아직도 가지고 사는 것은 친일파 청산을 못한 역사만큼이나 넌센스의 세계관이 아닐까?

  아마도 피해의식으로 인해 한동안 개발만이 살길이라고 생각했을 수 있다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이미 개발이 끝난 대한민국에서 환경오염의 피해를 이렇게 겪으면서도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잘못! 이제는 고칠 때가 아닐까??

  그래서, 개발국! 어떠한가?


2018년 3월 23일 금요일

영어 문법: 원어민도 말할 때는 틀린다.

  필자는 몇년 전 "False Belief about English 3: 말할 때 문법이 틀리면 안된다?"라는 글에서 말할 때 문법적 실수는 원어민도 피해 갈 수 없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 일례로 Richard Dawkins가 한 라디오 방송(뉴스공장, 날짜 모름)에 나와서 영어로 인터뷰를 들 수 있다.

  이 사람은 신이 인간이 만들어 낸 망상이라는 주제로 책을 써서 그것을 홍보하려고 내한했다가 라디오 인터뷰를 하게 되었는데, 옥스퍼드 대학의 교수에다 수많은 저서의 저자로 완벽한 영어만 구사할 것 같았던 이분이 'If I were...'라고 해야 하는 가정법적 표현에 지속적으로 일관성 있게 'If I was...'라고 하지 않는가? Youtube에서 찾아 들어보면 해당 장면을 청취할 수 있다.

  이 문법적 실수가 너무 놀랍기도 하고 혹시 말버릇인가 싶은 생각도 들고 해서 결국 메세지에 집중하지 못하는 우를 범하였다. 이렇게 블로그에 문법이 아니라 메세지가 중요하다고 떠들면서 이런 이율배반적 실수를 하다니.

  한국사람들은 현지에 가서 영어공부를 할 때에도 원어민 강사하고 문법을 놓고 말싸움해서 이긴다고 하더니... 필자도 마찬가지 였다. 언제나 어디서나 외계인 취급을 받던 필자도 역시나 한국인이었던 것이다. 한국인 인증! ^_^;;

  변명을 해보자면 해당 문법적 실수가 한두번이었으면 그냥 지나쳤을 텐데 계속 반복되었기 때문에 필자가 메세지에 집중을 못한 것이었다.

  온 한국인을 대상으로 변명해 보자면...
여러분! 말할 때 문법 틀려도 됩니다. 용감하게 우선 떠들어 보세요!!


2018년 3월 22일 목요일

단어보다 문장!!!


  아직도 단어 몇 개 외면 초급 영어회화 마스터할 수 있다는 식의 광고가 판을 치고 있다. 여러분, 이거 다 새빨간 거짓말이란 거 아시죠? ^_^;

  필자가 늘 강조하지만 외국어 학습에 왕도는 없다. 단어 몇 개 외서 영어회화가 가능하고 작문이 가능했으면 우리나라 고등학교 나온 사람들 모두가 왜 영어를 못한다고 자괴감에 절어 있겠는가?!

  단어보다 문장, 문장을 외야 한다. 앞으로 영어 학습 방법에 대한 광고에서 몇 개 문장을 외면 초급 영어회화 혹은 초급 영작문 가능하다는 이런 광고를 하는 사업체를 눈여겨 보길 바란다. 물론 이런 업체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사실 한국인들이 영어를 할 때 가장 큰 문제점은 너무 많은 수의 단어를 알고 있으면서 그 단어가 들어간 문장은 몇개 외지도 못하고 만들지도 못한다는 점이다.

  즉 한국인들은 단어를 너무 많이 알고 그 단어를 어떻게 써야 하는지 모른다. 아마 수능, 토익을 비롯한 영어 시험의 영향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제대로 된 영어 능력 측정을 위해서는 말하기 시험이 필요하다고 하는 이유이다.

  혹 말은 못 하지만 쓸 줄은 안다고 항변하는 사람도 있을 것 같다. 정말 그런가? 가슴에 손을 얻고 생각해 보자. 당신은 한국어를 그대로 번역해서 영작을 하지 않는가? 해당 단어가 들어간 원어 문장을 몇 개 이미 알고 있어서 자유로이 변형해 영작을 할 수 있는가?

  위 질문에 Yes가 아니면 당신이 쓴 영어 문장은 십중팔구 한국사람에게는 자연스러우나 원어민들은 고개를 갸웃하며 이해하기 힘들어 할 그런 영어로만 쓰여진 전혀 영어 같지 않은 문장일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단어가 아니라 문장을 외라고 하는 것이다. 영어도 각 단어를 쓸 수 있는 혹은 쓰지 말아야 하는 맥락이 있다.

  차라리 단어를 좀 더 적게 알아도 해당 단어를 문장 속에서 어떻게 써야 하는지 아는 것이 생활 영어나 비지니스 영어에 더 좋다.

  흔히 비지니스 영어라고 하면 겁부터 먹는 사람들이 많은데, 사실 비지니스 영어는 흔히 국제무대에서 통용되는 국제 비지니스 영어를 일컫는데, 이는 공대 교과서 처럼 어렵지 않은 문장으로 구성되는 경향이 있다.

  왜냐하면 국제 무대에는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지 않는 사람들이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마치 과거 미국에 노예로 끌려온 1세대들이 사용했던 '피진어'라고 알려진 과도기 영어처럼 수 많은 외국인들이 공동으로 이해하려면 언어의 표현은 단순해질 수 밖에 없다. 물론 비지니스 영어는 피진어보다는 훨씬 고급 영어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겠지만.

  그렇지만 비지니스 영어에서 단어를 맥락에 맞지 않게 사용해서 해당 문장의 뜻이 명확하지 않아 여러가지로 해석될 여지가 생기면 매우 곤란해진다. 왜냐하면 비지니스는 기본적으로 돈이 왔다갔다 하는 상황에서 하는 커뮤니케이션이기 때문에 잘못된 단어 선택은 계약 파기 혹은 영업 손실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따라서 단어보다 문장을 익혀라! 다시 말하지만 단어보다 문장!!

  그런데, 문장을 아무런 맥락없이 외는 것은 힘들다. 또 어떤 맥락이 있어도 재미없는 상황의 시나리오를 외자면 그것도 너무 고역이 아니겠는가? 물론 맥락이 없는 경우보다는 낫겠지만. 그래서 필자는 좋아하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의 연설을 좋아하는 노래를 좋아하는 영화 시나리오를 외라고 추천하는 것이다. 거기에 모든 회화에 필요한 표현이 있다. 거기에 작문에 필요한 모든 표현이 있다.

2018년 3월 20일 화요일

쉬어가는 페이지 5: Korea vs Career 발음편


  다음 발음을 구분해 보자!
  Korea vs Career

  구분 가능한가?
  그렇다면 당신은 발음을 잘못하고 있다!

  필자가 처음 호주에 갔을 때 매우 어리둥절했던 사건이 바로 사람들이 너무나 한국 이야기를 많이 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초기에 호주 액센트가 너무 적응이 되지 않아서 대화의 대부분을 알아 들을 수 없었지만 어떻게 '한국'이라는 말 '커리어'라는 말을 못 알아 듣겠는가?

  잠깐,잠깐!
  한국이 '커리어'라구요? 혹시 '코리아' 아닌가요? 라고 하실 분 반드시 계시겠다.
  정답은 첫번째 질문엔 '아니오' 그 다음 질문엔 '예' 되시겠다.

  왜 그런가 살펴보자.
  Korea는 두번째 음절에 강세가 오기 때문에 첫번째 음절은 대충 발음해서 '커'가 되고 두번째 이중모음도 우리가 흔히 영어가 한국어처럼 알파벹대로 소리 날 것이라 착각하고 '이아'라고 쓰지만, 영어는 언제나 우리의 기대를 배신하여 이중모음에서는 첫소리만 강하게 즉 정확하게 소리내기 때문에 '이어'가 된다. 따라서 커리어!

  이제 대부분 감을 잡았을 줄 안다. 필자는 사람들이 자신의 직업 경력에 대해서 하는 이야기를 잘 못 알아듣고 한국에 대해서 이야기한다고 착각한 것이었다. 이것이 다 호주 액센트 때문이다. 흑흑흑

  사실 Korea와 Career 이 두 단어의 발음은 완벽하게 일치한다.
  놀라운가? 하지만 이것이 완벽한 실화다.

(이것은 사전에서 발음기호를 찾아보아도 확인할 수 있고 필자가 호주의 원어민 언어학자에게도 직접 확인한 사항이다.)

2018년 3월 19일 월요일

영어-한국어 표기 제안: 포드캐스트 (Podcast)

  현재 한국어 사용자들이 Podcast를 '팟캐스트'라고 쓰고 사용하고 있다. 필자가 보기에 o sound를 [아]소리로 발음하는 것은 미국 캘리포니아, 그 중에서도 헐리우드 액센트가 멋져 보이기 때문인 것 같고 d를 ㅅ으로 적는 것은 국어연구원 책임인 것 같다. 그나마 cast를 카스트라고 하지 않고 캐스트라고 한 것이 어디냐... 영어가 한국어도 아니고 절대 알파벹대로 발음나지 않는데.

  하지만 필자는 Podcast에서 o sound를 [아]소리로 발음하지 않길 권유한다! 특히 영어를 잘 하고 싶은 욕심이 있다면 더욱 필자의 권고에 유의하시라.

  영어에서 A는 때에 따라 [에이], [에], [애], [아] 등과 같은 소리가 나는데, o를 [아]로 발음하는 습관을 들이면 나중에 단어 spelling이 o였는지 a였는지 자주 헷갈릴 수 있다는 불편함이 있다. 인지심리학자들에 의하면 사람들은 오타도 소리에 근거해서 더 자주 일어난다고 한다. 예를 들어 원래 철자가 C인 경우 해당 글자를 잘못 치는 빈도를 살펴보면 C와 모양이 비슷한 G로 잘못 타이핑하는 경우보다 소리가 비슷한 K로 잘못 치는 경우가 더 많다는 것이다. 즉 소리가 비슷하면 타이핑 오류도 철자 오류도 더 많이 일어날 수 있다.

  가뜩이나 외국어라서 우리는 철자에 약할 수 밖에 없는데, 구분할 수 있는 소리는 최대한 구분하여 발음하는 것이 더 좋지 아니한가. 영화를 통해 캘리포니아주 특정 지역 발음이 우리에게 이른바 '미국식 영어발음'으로 알려져 있는데, 미국인들 중 일부가 이렇게 발음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가 미국인처럼 발음할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니다. 국제언어라고 할 수 있는 영어의 한 지역색에 불과한 것일 뿐.

  대신 우리에게 편한  international 발음을 선택하는 것이 어떨까? 일부는 영국식도 좋지 않을까? 물론 영어 단어 잘 외는 사람들은 마음대로 선택하시길... 영어 단어 외는 데 잼병인 저자의 권유이었으므로! ^_^

필자의 권유:
Doctor [닥터 x] [독터 o]
Socks [싹스 x] [쏙스 o]
iPod [아이팟 x][아이포드 o]
Podcast [팟캐스트 x] [포드캐스트 o]

  여기에서 d나 t sound가 종성으로 올 때 이 소리를 일괄적으로 'ㅅ'받침으로 처리하는 것에 대해 문제가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이것은 국어연구원 한글 맞춤법 기준일텐데, 사실 그 이유를 모르겠다.

  우선, d나 t를 종성 처리하는 것은 우선 음절 수를 줄여 주어 간략해진다는 측면에서 장점이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소리나는 대로 'ㄷ'으로 표시해 주어야지 왜 'ㅅ'표시를 하는가? 받침으로 올 때 같은 소리이니까 상관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라고 필자도 생각한다. 그 말을 그대로 되돌려주어 같은 소리인데, 왜 원래 소리인 'ㄷ'으로 처리하지 않고 'ㅅ'으로 바꾸어 처리하여 일을 복잡하게 만드는가가 필자의 의문이다.

 예를 들어 다음 문장이 영화제목이라고 생각해보자.
It is a miracle!

  위 영화제목을 번역하지 않고 그대로 한글로 옮겨 상영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면 어떻게 써야 하는가? 현재 맞춤법 대로라면 '잇 이즈 어 미라클!'이 될 것이다. 이 경우 영어를 모르는 사람의 경우 [이시즈어미라클]이라고 읽을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그러지 말고 간단하게 '읻 이즈 어 미라클!'이라고 쓴다면 영어를 모르는 한국 사람도 [이디즈어미라클]이라고 제대로 읽을 확률이 높다.

  둘째, 왜 맞춤법이라는 말로 한국어를 자꾸 단순화시키는지에 대한 의문이다. 위에서는 d와 t를 'ㄷ'소리로 표준을 정한 경우를 예로 들었다. 물론 한국어의 ㄷ소리는 본질적으로 무성음이라서 위와 같이 적어도 문제는 없다. 그러나 우리의 'ㄷ'소리는 영어의 'd' sound를 포함하는 소리이다. 따라서 우리는 일상적으로 d sound를 말할 때 내지는 않지만 외국인이 d sound로 이야기를 할 때 문제 없이 알아듣는다.

  따라서 필자는 해당 소리가 한국어 종성에 해당한다고 하더라도 한국어로 적을 때, d sound는 ㄷ으로 t sound는 ㅌ으로 적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과거에서 현재까지 한국어 사용의 궤적을 보면 한국어는 지속적으로 단순화되어 왔다. 특히 일제시대에서 일본어 소리에 맞는 글자만 지속적으로 사용하다가 이렇게 많은 글자를 잃은 것이 아닌지 의심스러운 상황인데(사실 필자는 언어학자는 아니기 때문에 정확한 것은 모른다. 강하게 의심만하고 있는 상황이다. 혹 잘 아시는 분이 있다면 알려주시길....) 이제 영어의 사용에서도 우리 말 표현을 강제로 단순화시킬 필요가 있겠는가?

  필자의 주장을 위 영화제목에 대입해 보면 위 영화의 제목은 '잍 이즈 어 미라클!'로 적어야 한다. 이를 발음하면 [이티즈어미라클]. 완벽하다!!

  혹시 필자의 주장이 받아들여진다면 정말 필자는 그것을 '기적'이라고 여기게 될 것 같다.





영어를 잘 하게 되면 생기는 나쁜 점

  외국어를 잘하고 싶은 것은 많은 한국사람의 희망일 것이다. 영어든 중국어든 관심 있는 언어를 잘 해서 그 나라에 여행을 가면 원어민들과 자유롭게 대화도 하고 internet에서 이런 저런 정보도 쉽게 얻을 수 있고... 얼마나 좋겠는가?

  사실 이런 환상은 젊은 청춘 남녀들이 연애에 대해 가지는 환상과 비슷하다. 남자친구가 있었으면 여자친구가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물론 좋을 것이다. 하지만 좋기만 하겠는가? '커플지옥 싱글천국'을 기억하라. ㅎㅎㅎ

  이민을 가는 경우도 비슷하다. 자신이 꿈에 그리던 나라에 열심히 준비해서 살러가면 좋기만 할 것 같은가? 모든 것에 장단점이 있다고 하듯이 외국어를 잘 하게 되는 경우도 비슷하다. 좋은 점도 많지만 나쁜 점도 있다. 좋은 점이야 무수히 알려져 있고 환상으로 부풀려진 측면도 존재하기 때문에 지금부터 외국어 능숙자에게 생기는 나쁜 일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다. 물론 필자는 영어만 할 줄 알지 다른 언어는 쥐뿔도 모르기 때문에 영어에 한해서만 이야기할 것이다.

  첫째, 영어를 잘 하게 되면 멀리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어느나라 말인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이거 의외로 불편하다.

  외국어를 잘 하기 전에는 저만치 떨어진 곳에서 사람들이 웅성거리면 그 소리는 당연히 한국어라고 생각하는 고정관념이 있다. 사실 필자도 자신이 이런 고정관념, 기대 속에서 산다는 것을 몰랐다. 영어를 어느 정도 하게 되고 저만치 서서 웅성거리는 사람들이 어느 나라 말로 떠드는지 감을 못 잡게 되고 나서야 깨닫게 된 것이다.

  아... 필자는 그동안 이 세상 언어는 한국어 밖에 없다고 가정을 하고 살았구나...

  이제서야 가까이 가서 듣고 언어를 확실히 파악하는 습관을 들이게 되었다. 왜냐하면... 멀리서는 구분을 할 수가 없으니까!ㅎㅎ 절대 필자가 편견이 없는 사람이라서가 아니다.
그리고 이게 좋기만 한지도 잘 모르겠다. 일단 귀찮으니... 일일이 확인하기가... 그니까 그냥 확인하지 않게 된다. 저 사람들이 어느 나라 말로 떠드는지 내가 알게 뭐람! 흠흠

  결론은 같다. 영어를 잘하기 전에도 영어를 잘하게 된 다음에는 멀리서 나는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어느나라 말인지 모른다. 차이가 있다면 영어를 잘하기 전에는 멀리서 나는 소리가 어느나라 말인지 모르면서 멋대로 한국어라고 가정을 했다면 영어를 잘하게 된 다음에는 멀리서 나는 소리는 어느 나라 말인지 모른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는 것이랄까?!

  둘째, 지하철 역 안내 방송이 헷갈린다. 이거 이해하기 좀 어려울 수도 있다.

  예를 들어 필자는 8호선 한강진역에만 도착하면 화들짝 놀란다. 안내방송에서 '삼각지'역에 도착했다고 안내했다고 생각해서 내려야 하는데 내릴 준비를 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너무 빨리 도착한 것 같아서 의아하게 둘러보면 역시나 '한강진'이라는 역명이 보인다. 그때서야 안심... 아직 내릴려면 많이 남았구나...ㅎㅎ

  삼각지와 한강진은 같게 들리는 음소를 많이 포함하고 있다. 이 두 단어에서 비슷한 소리만 빼서 살펴보면 '삼가지'와 '한가지'라고 볼 수 있다. 즉 다른 소리는 전자의 두번째 글자 종성과 후자의 두번째, 세번째 글자 종성 뿐이고 나머지 소리는 모두 같다. 최소한 비슷하다. 여기서 어떻게 ㅅ과 ㅎ이 비슷하고 ㅁ과 ㄴ이 비슷한지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아래 '고급 발음 공부 (T Sound)'라는 글에서 설명했듯이 한국어 'ㅅ'소리는 영어의 's' sound가 아니다. 필자가 외국인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면서 'ㅅ'소리를 내고 소리나는 대로 적어보라고 하면 1/3은 'sh'라고 적고 1/3 'ts'라고 적는다. 나머지 1/3은 무슨 소리인지 못 알아 듣는다. ㅎㅎㅎ 즉 우리말 ㅅ 소리는 영어의 h sound와 t sound가 미묘하게 포함되어 있어 지하철 같이 음질이 좋지 않은 방송을 소음이 많은 곳에서 들으면 ㅅ 소리의 일부분인 h sound가 확대되어  '삼'아 '한'으로 들릴 수 있는 것이다.

  사실 ㅁ 소리와 ㄴ 소리가 헷갈릴 수 있다는 것은 한국인들도 일상에서 여러번 경험했기 때문에 별로 길게 설명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이 두 소리는 외국인에게도 매우 헷갈릴 수 있어서 필자가 언젠가 본 영어로 번역된 일본만화에서 '선배'라는 표현을 어떤 부분에서는 'senpai'로 표기하더니 다른 부분에서는 'sempai'로 표기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지하철역 한국어 안내방송을 잘 못듣게 되어서 매일 내릴 역이 헷갈리게 되면 정말 느껴진다. 영어를 잘하는 것이 반드시 좋기만 한 것은 아니구나! ㅜ.ㅠ;

  결론적으로 필자가 주장하는 바는 한국 사람 모두가 영어를 잘해야만 하는 그 어떤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먹고 살 때 써먹을 필요가 있거나 외국어가 재미 있는 사람만 해도 된다. 따라서 영어 하기 싫음 안해도 되는 정당한 이유로 다음과 같이 써먹자! 영어 잘하는 것이 반드시 좋기만 한 것은 아니다. 위와 같이 불편해 진다. ㅎㅎ 

2018년 2월 22일 목요일

최대의 오역 1: Dead Poet's Society(죽은 시인의 사회 VS 죽은 시인 동아리)

  죽은 시인의 사회라는 영화를 아는가?
  글쎄...  이 영화를 안다면 연식이 좀 됐다는 뜻일지도 모르겠다.
  혹은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비인간적 교육현실이 국내에서 그리 개선되지 않았기 때문에 명작으로 남아 여전히 젊은이들에게 심금을 울리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청소년 여러분, 여러분의 생각을 알려주세요. ^_^

  영화에서 Dead Poet's Society는 한 사립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이 만든 문학동아리이다. 따라서 이 영화의 제목은 죽은 시인의 사회가 아니라 "죽은 시인 동아리" 혹은 "죽은 시인 클럽"정도가 되어야 했다.

  다음 영어사전을 살펴보면 society는 한국어로 1)사회 2)연구회 3)협회 4)집단 5)계층 등으로 번역할 수 있다고 나온다(http://dic.daum.net/search.do?q=society). 한영사전은 영어단어를 한국어로 어떻게 번역하면 좋은지 그 용례를 제시한 것이다. 영한사전도 마찬가지이고. 따라서 그 뜻을 알고 싶다면 간단히 Googling해 보거나 캠브리지 사전(https://dictionary.cambridge.org/dictionary/english/society)을 보는 것을 추천한다.

  귀찮으니까 구글에서 찾아보면 society에는 다음과 같이 두 가지 뜻이 있다: 1) the aggregate of people living together in a more or less ordered community; 2)
an organization or club formed for a particular purpose or activity (https://www.google.co.kr/search?q=society&rlz=1C1AVSA_enAU438AU439&oq=society&aqs=chrome..69i57j0l5.1310j0j4&sourceid=chrome&ie=UTF-8). 우리가 흔히 넓은 범위에서 '사회'라고 번역하는 개념은 첫번째 뜻이고 이 영화에 나오는 학생들의 동아리는 두번째 뜻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예를 들어 Royal Society가 왕립 사회로 번역되지 않고 왕립협회로 번역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런 번역의 오류는 한 외국어 단어에 대해 하나의 한국어 단어가 존재한다고 상정하고 기계적으로 번역하는 습관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외국어 단어와 한국어 단어가 비슷해 보여도 포함하고 있는 의미의 영역이 다른데, 이렇게 기계적으로 번역하다보면 번역체가 난무하는 표현이나 글이 되어버리기 때문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society를 동아리나 클럽으로 번역하지 못하는 오류는 사실 우리나라의 '사회적'이라는 단어와는 의미와 뉘앙스가 다르지만 반드시 그렇게 번역되고야 마는 'social'이라는 단어에 기인한다고도 볼 수 있다. 이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1)사회의 2)소셜 3)사교적인 4)사회주의의 5)사귀는 등으로 번역될 수 있다고 나오는데(http://dic.daum.net/search.do?)q=social), 이 단어가 번역될 때 사교적이거나 사귀는 등의 단어로 번역되는 경우가 매우 드믈다. 한국어에서 사회적이라고 하면 많은 경우 공적인 측면과 개인적인 경우에라도 다수의 사람들과 개인이 갖는 관계가 흔히 연상되지만 영어로 social이라 함은 단 둘만 만나서 이야기를 해도 성립되는 사적인 관계의 경우가 매우 많기 때문에 social과 '사회적'이란 단어를 1대1로 매칭하다 보면 의미의 차이가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흔히 한국인들이 '관계적'이라고 생각하고 이를 'relational'이라고 주로 영어로 번역하는 그 개념이 영어의 'social'에는 포함된다고 보는 것이 옳다.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이, 심지어 전문가들조차 그저 social은 사회적이고 한국인의 관계적 특성은 그들에게 없는 것으로 치부하여 관계성은 한국인에게 고유하다거나 더 강하다는 착각마저 일으키기도 하는 것 아닐까? 이 또한 좋을 때 '죽인다'는 표현을 쓰는 언어가 한국어 밖에 없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처럼 우리말에 대한 지식은 충분한데 외국어에 대한 지식이 없어서 생기는 오류에 해당하는 듯 하다.

  물론 Dead Poet's Society를 '죽은 시인의 사회'로 번역해서 그것이 오역이었다 하더라도 우리나라에서는 전반적 사회문제였기 때문에, 혹은 여전히 사회문제이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고 사람들로 하여금 학생들의 복지도 생각하게 했다면 바람직한 의역이라고 볼 수도 있지 않겠느냐... 되물을 수도 있다고 보고 이 주장에 타당성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반대로 이 '죽은 시인 동아리'는 영국의 한 고등학교에서 벌어진 일이었는데, 이 사태가 한국에서는 모든 학교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그 비극감이 해당 오역으로 인해 반감된 효과는 없었을지 의문을 제기해 본다. 마치 영국에서도 이런 식의 학생들을 입시로 내몰고 교육 학대를 하는 것이 비일비재한 것처럼... 그래서 다른 나라에서는 한국 학생들이 밤늦게까지 학교에 강제로 붙들려 있어야 하는 현실이 믿거나 말거나 해외 토픽으로 다루어지고 있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도록 만들지 않았을까? 글쎄 모를 일이다. 이 영화가 '죽은 시인 동아리'로 번역되어 상영된 적이 없기 때문에.

  문제는 이 오역은 영화의 국내 성공으로 인해서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요 네스뵈의 소설 Snowman이 국내 번역되었는데, 이 소설 이전 작품에서 사망한 경찰들의 사진을 벽에 붙여놓고 이 소설의 주인공인 해리라는 형사가 이들을 '죽은 경관의 사회'로 추억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소설은 노르웨이어 원작이라서 원작에 이 표현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 노르웨이어를 모르는 저자로서는 확인할 길이 없지만 죽은 형사들 셋이 '사회'로 지칭되는 것이 우리 어법에 맞는지 다시 한번 우리의 번역 관행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