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4월 19일 목요일

정보의 불균형 2: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한다. 한국말만??

  앞서 우리는 주어만 생략하지만 영어는 주어 동사 다 생략해서 한 단어로 의사소통한다는 점을 밝혔다. 가령 예를 들면, "understood?" 이런 식이다. 이건 한국어로 직역하면 어떻게 해야 하나? "이해했?" 정도?! ^_^;

  요새 SNS에서 짧게 말하며 의사소통하는 방식이 널리 퍼지는데, 어른들은 못 알아듣는 요새 인터넷 용어가 영어의 간단한 표현과 많이 닮았다는 것을 생각해 낼 수 있다. 그러니까 영어에서는 오래전부터 누가 화난 줄 알았다는 표현을 "화난 줄"이라는 식으로 일상생활에서 써왔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어와 외국어에 대한 어줍잖은 오해는 이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한다면서 자신의 중언부언을 정당화한다.

  그 이유인 즉 영어는 주어 동사가 앞에 나오기 때문에 첫 마디에서 요점을 파악할 수 있지만, 한국어는 문장의 주요 요소인 주어 동사 중 동사가 맨 마지막에 오기 때문에 끝까지 들어봐야 한다는 것이다. 정말일까?

  예를 하나 들어 이 주장을 반박해 보자. 그 유명한 반증!

  필자가 재미있는 블로그 하나를 발견했는데, 그 블로그 주소가 https://achildlives.blogspot.kr/ 이다.

  A child lives라... 이것만 보면 어떤 생각이 나는가? 육아 블로그? 동화 블로그? ... 아니면 중동이나 아프리카에서 굶주리는 난민아동에 대한??? 등등의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그래서 호기심에 클릭해 들어가보면 대문에 표제가 대문작만하게 다음과 같이 나온다.

  A Child Lives in My Mind.

  무슨 블로그든 가능할 것 같다. 어떤 일상생활에 대한 푸념까지도 소화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매우 철학적일 것 같기도 한?!

  여기서 포인트는 우리가 읽은 문장이 한국어가 아니라 영어였는데, 마지막 단어에 의해서 문장 전체의 뜻이 변했다는 것이다. 다시 위 블로그 주소와 제목을 비교해 보자. 느낌이 완전히 다르지 않은가! 주소만 보면 한 아이가 사는데, 어디 산다는 것인지 어떻게 산다는 것인지에 대한 정보는 전혀 없다. 심지어 제목으로 가서도 A child lives in my까지 가도 그 다음 단어가 house일지 work place인지에 따라서 전혀 뜻이 달라지는데, 하물며 mind라니. 이건 한 아이에 대한 기술이 아니라 우리 마음에 대한 이야기로 문장 전체의 뜻이 변해버리는 굉장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렇듯 마지막 단어에 의해 문장 전체 뜻이 변하는 것은 어느 언어에서나 볼 수 있는 현상이다. 한국어만 특별해서 말을 끝까지 들어봐야 하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즉, 문장에서 주어와 동사만 들으면 문장의 중요 내용을 모두 파악할 수 있다는 말은 언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태에서 나온 주장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것이 아니라면 한국어 교육에서 말하기도 제대로 가르치지 않기 때문에 중언부언하는 것과 좋은 말하기를 구분하지 못해서 생긴 말일 수도 있겠다.

  한국말 뿐 아니라 영어도 끝까지 들어야 한다는 주장의 두번째 근거는 영어에서 자주 사용되는 가주어 때문이다. 진주어가 이런 저런 이유로 길어지면 영어는 편리하게 가주어 it을 사용해서 문장 초반에 배치하고 긴 진짜 주어는 문장 맨 마지막으로 돌려버린다. 우리 한국인들 대부분이 가주어 진주어 문법에는 도가 텄기 때문에 예는 따로 들지 않겠다.

 우리가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한국어는 동사가 문장의 맨 마지막에 나오지만 영어에서는 가끔 주어가 맨 마지막에 오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영어를 끝까지 들어야 할 것인가 아닌가?

  문장에서 형식상 주어가 아니라 의미상 주어... 그러니까 실제 행위를 하는 주체에 대한 개념으로 진주어의 개념을 확장하면 영어에서 이 진주어인 행위자가 문장의 맨 마지막에 등장하는 빈도는 더 높아진다.

  수동태 문장은 영어가 얼마나 맥락적인지, 영어에서 주어를 어떻게 합법적으로 생략(그러니까 주어를 문법적으로 생략하지 않으면서 실질적으로는 생략하는)하는지에 대한 예를 들면서 언급한 적이 있었다. 그에 더해 수동태 문장에서 진주어를 생략하지 않는 경우에도 by 이후에 나오는 진주어는 문장의 마지막 부분에 위치하기 일쑤이다. 그러니 영어를 끝까지 들어야 하는 세번째 이유가 생겼다.

  마지막으로 또... 영어에서 주어가 길어지면 심지어 가주어를 내세우지 않고도 부사나 형용사를 문장 앞으로 도치시켜 기다란 주어를 문장 맨 마지막으로 옮겨버리기도 한다. 영어도 끝까지 들어봐야 하는 네번째 이유 되시겠다. 그 예로 다음 문장을 보자.

"... so imperfect is our view into long past geological ages, that we only see that the forms of life are now different from what they formerly were."

  Darwin이 1859년에 쓴 종의 기원이라는 책에 나오는 문장인데, 이 사람 한 문장 너무 길게 써서 현재 논의되고 있는 주제에 적합한 부분만 옮겨보았다. 해석해 보면 '오랜 과거 지질 시대에 대한 우리의 시각이 매우 불완전하기 때문에 우리는 현재 생명체의 형태가 과거에 있었던 것들과 다르다고만 생각한다'정도 되시겠다.

  보이는가? 이 문장은 한국인들에게 그렇게 유명한 so ... that절 표현 되시겠다. 그런데, so를 포함한 형용사구가 문장 앞으로 도치되면서 that이랑 거리가 멀어져서 혹자는 발견 못할 수도 있다. 이렇게 독자에게 불편을 끼치면서까지 도치를 시킨 이유가 바로 주어가 into로 시작하는 전치사구의 수식을 받다 보니 너무 길어져서다. 이렇게 주어가 뒤에 등장하니 영어, 끝까지 들어야 할 수 밖에 없지 않겠는가.

  아직도 주어를 수식하는 전치사구가 주어 뒤에 오니 our view까지만 들으면 되지 않겠느냐... 라고 우기실 분 계시겠다. 생각해 보자. 우리의 시각이 불완전한데, 우리의 어떤 시각이 불완전한지에 대해서 듣지 않고 이 문장 이해했다고 할 수 있겠는가? 만일 주어를 수식하는 전치사구가 불필요한 내용이라면 그 수식어 없애는 것이 좋은 문장을 작성하는 지침임을 명심하자. 이것이 우리말이고 영어고를 떠나 만국어 공통의 올바른 작문 원리이다!

  더 나아가 so ... that 구문은 뒤에 나오는 that절에 흔히 우리가 말하는 방점이 찍히는 중요한 내용이 들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 아니 정말 끝까지 들어야 하겠네!

  필자가 모든 언어를 아는 것은 아니지만 단언컨데 모든 언어는 끝까지 들어봐야 한다. 그래서 상대방이 말을 하는데 자르고 들어가는 것이 대부분의 문명사회에서 무례하게 취급되는 것이 아닐까.

  만일 당신이 여전히 한국말은 다른 언어와 달리 끝까지 들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이런 점을 고민해보기 바란다. 혹시 이미 핵심은 다 말해 놓고 쓸데없는 소리를 주절주절 떠드는 그런 언어 습관이 있는 것은 아닌지? 이 때 자신이 중언부언 같은 말을 혹은 전혀 주제와 상관없는 말을 끊임없이 떠들고 있다는 자각이 없다면 나의 중요한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야 한다고 억지를 부릴 수 있지 않겠는가.

  혹은 바로 핵심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별로 상관 없는 이야기를 주절주절 떠들고 있지는 않은지 검토해 보시길. 그럼 아직 핵심은 이야기하지 못했으니까 내 말을 끝까지 들어야 핵심이 나온다고 상대방에게 무한한 인내심을 요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지 말고 지금 당신의 언어습관에 아주 문제가 많다는 사실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당신의 나쁜 언어습관이 한국어의 특성은 아닙니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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