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영어권 국가에서 만난 수 많은 사람 중에 호주에서 20년은 넘게 산 한 일본인 신사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필자가 아는 한 이 일본분은 영어권 국가에서 산 시간이 일본에서 산 시간보다 길고, 직업적으로도 성공하였다. 뿐만 아니라 그분의 영어에 대해서는 원어민들도 칭찬이 자자하였다.
한번은 그 분과 영어습득에 대한 대화를 나누었는데, 능숙하게 공문서를 작성하는 데 까지 10년은 걸린다는 조언을 해주셨다. 또한 그분이 알아듣지 못하는 영어는 그 분의 나이대의 원어민들도 못알아듣는 젊은이들의 슬랭이 전부라는 설명도 해주셨다. 의사소통에서 거의 완벽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당시 필자는 호주 아해들이 조금만 빨리 말을 해도 못 알아 듣던 터라 이 것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부러웠다.
그런데 이분이 한번은 필자에게 이런 하소연을 한 적이 있었다. 그래도 일본어로 듣는 정보가 영어로 듣는 것보다 기억에 더 잘남고 일본어로 읽는 것이 영어로 읽는 것보다 더 빠르다고. 물론 필자는 여전히 낙관주의로 점철되어 나는 금방 영어로 읽는 속도가 국어로 읽는 속도만큼 올릴 수도 있고, 알아 듣기만 하면 영어로 듣던 국어로 듣던 기억에는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나는 다를 것이라고 생각하던 시절이어서 어떻게 위로를 해드려야 할지 잘 알 수가 없었다. 아무튼 결론은 '역시 모국어의 파워는 강하다'로 내렸다.
이런 와중에 근래에 유학을 오거나 여행을 온 일본인 친구들이 그 분과 일본어로 대화를 하는 모습을 목격하게 되었다. 필자는 외국에서 오래 살면 모국어도 잊혀진다는 사실을 풍문으로 들어 알고 있었지만, 사실 믿어지지는 않았다. 게다가 그 일본분은 여전히 일본어가 편하다고 하시지 않는가? 하지만 그 분과 대화를 하고 나서 젊은 여행자가 유학생들이 한 평은 그 분이 일본어를 잘 하시지만 그 일본어가 꽤 옛날 일본어라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무슨 소리인지 가늠하기가 어려웠다.
생각해보자. 우리가 20 -30년 전 한국에서 사용했던 한국어를 현재 듣는다면 어떤 느낌을 받을까? 아주 단적으로 이정도 오래된 티비 드라마를 지금 다시보면 복장이며 화장 등이 촌스러울 뿐만 아니라 그들의 발성도 적응하기 어렵게 어색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중국의 전통을 찾아 볼 수 있는 곳은 현재 중국이 아니라 미국의 차이나 타운이라는 말이 있다. 외국 지역에 살면 다들 애국자가 된다고 했던가. 그들의 말을, 전통을 지키려는 노력은 그 어떤 변화를 비롯한 발전을 허락하지 않게 되고, 결국은 그대로 남게 되는 것이다.
한 5년을 영어권 국가에 머무르고 나니, 필자도 모국어 망각현상에 동참하게 되었다. 처음 이 현상을 느낀 것은 '양봉'이라는 인공적으로 벌을 길러 꿀을 따는 농축산업의 일종을 가르키는 단어가 생각이 나지 않아서 충격을 받았다. 이 단어는 필자에게 매우 익숙한 단어였기 때문에 더욱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몰랐던 듯 싶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한동안 이런 현상은 계속되었다. 그런데다가 처음 듣는 신조어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멘붕, 백퍼 이런 말들은 처음 듣자마자 이해할 수 있는 말들이 아니었다. 모국어로는 신조어가 나와도 바로 이해할 수 있다는 필자의 신념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그 일본 분은 컴퓨터를 일본어로 구동 시켰다. 일본어를 잊지 않기 위한 노력이 아닐까 싶다. 모국어이든 외국어이든 언어는 노력하지 않으면 익힐 수도 지킬 수도 없는 것들이다. 또한 외국어를 완벽하게 하기는 더욱 힘들다. 원어민이 칭찬해 마지 않는 이분도 원어민이 지적하면 무조건 영어 표현을 바꾼다. 당시 문외한이었던 필자는 이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영어를 어느 정도 하면 어떤 이유로 특정 단어를 선택했을 텐데, 지적 받는 대로 문서의 표현을 바꾼다는 것이 줏대도 없어 보이고 이상했다. 만일 누가 내 국어 표현을 그렇게 지적했다면 필자는 무시했을 것이다.
당시 필자가 가지는 국어에 대한 자신감이 좀 지나치다는 점을 인정해야 하겠다. 나중에 필자 자신의 국어에도 문제가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공문서를 작성한다면 필자는 얼마나 많이 국어사전을 펼칠 것인가? 특히나 외국에서 5년을 살다 보니 가끔은 잘 하던 띄어쓰기도 헷갈리는 형편이다. 이 상황에서 필자는 다른 사람의 지적을 무시할 수 있을까? 국이든 영어든 어느 언어이든 언어는 어쩌면 영원히 정복 불가능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을 때 이 모든 것이 이해가 갔음은 물론이다.
한번은 그 분과 영어습득에 대한 대화를 나누었는데, 능숙하게 공문서를 작성하는 데 까지 10년은 걸린다는 조언을 해주셨다. 또한 그분이 알아듣지 못하는 영어는 그 분의 나이대의 원어민들도 못알아듣는 젊은이들의 슬랭이 전부라는 설명도 해주셨다. 의사소통에서 거의 완벽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당시 필자는 호주 아해들이 조금만 빨리 말을 해도 못 알아 듣던 터라 이 것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부러웠다.
그런데 이분이 한번은 필자에게 이런 하소연을 한 적이 있었다. 그래도 일본어로 듣는 정보가 영어로 듣는 것보다 기억에 더 잘남고 일본어로 읽는 것이 영어로 읽는 것보다 더 빠르다고. 물론 필자는 여전히 낙관주의로 점철되어 나는 금방 영어로 읽는 속도가 국어로 읽는 속도만큼 올릴 수도 있고, 알아 듣기만 하면 영어로 듣던 국어로 듣던 기억에는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나는 다를 것이라고 생각하던 시절이어서 어떻게 위로를 해드려야 할지 잘 알 수가 없었다. 아무튼 결론은 '역시 모국어의 파워는 강하다'로 내렸다.
이런 와중에 근래에 유학을 오거나 여행을 온 일본인 친구들이 그 분과 일본어로 대화를 하는 모습을 목격하게 되었다. 필자는 외국에서 오래 살면 모국어도 잊혀진다는 사실을 풍문으로 들어 알고 있었지만, 사실 믿어지지는 않았다. 게다가 그 일본분은 여전히 일본어가 편하다고 하시지 않는가? 하지만 그 분과 대화를 하고 나서 젊은 여행자가 유학생들이 한 평은 그 분이 일본어를 잘 하시지만 그 일본어가 꽤 옛날 일본어라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무슨 소리인지 가늠하기가 어려웠다.
생각해보자. 우리가 20 -30년 전 한국에서 사용했던 한국어를 현재 듣는다면 어떤 느낌을 받을까? 아주 단적으로 이정도 오래된 티비 드라마를 지금 다시보면 복장이며 화장 등이 촌스러울 뿐만 아니라 그들의 발성도 적응하기 어렵게 어색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중국의 전통을 찾아 볼 수 있는 곳은 현재 중국이 아니라 미국의 차이나 타운이라는 말이 있다. 외국 지역에 살면 다들 애국자가 된다고 했던가. 그들의 말을, 전통을 지키려는 노력은 그 어떤 변화를 비롯한 발전을 허락하지 않게 되고, 결국은 그대로 남게 되는 것이다.
한 5년을 영어권 국가에 머무르고 나니, 필자도 모국어 망각현상에 동참하게 되었다. 처음 이 현상을 느낀 것은 '양봉'이라는 인공적으로 벌을 길러 꿀을 따는 농축산업의 일종을 가르키는 단어가 생각이 나지 않아서 충격을 받았다. 이 단어는 필자에게 매우 익숙한 단어였기 때문에 더욱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몰랐던 듯 싶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한동안 이런 현상은 계속되었다. 그런데다가 처음 듣는 신조어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멘붕, 백퍼 이런 말들은 처음 듣자마자 이해할 수 있는 말들이 아니었다. 모국어로는 신조어가 나와도 바로 이해할 수 있다는 필자의 신념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그 일본 분은 컴퓨터를 일본어로 구동 시켰다. 일본어를 잊지 않기 위한 노력이 아닐까 싶다. 모국어이든 외국어이든 언어는 노력하지 않으면 익힐 수도 지킬 수도 없는 것들이다. 또한 외국어를 완벽하게 하기는 더욱 힘들다. 원어민이 칭찬해 마지 않는 이분도 원어민이 지적하면 무조건 영어 표현을 바꾼다. 당시 문외한이었던 필자는 이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영어를 어느 정도 하면 어떤 이유로 특정 단어를 선택했을 텐데, 지적 받는 대로 문서의 표현을 바꾼다는 것이 줏대도 없어 보이고 이상했다. 만일 누가 내 국어 표현을 그렇게 지적했다면 필자는 무시했을 것이다.
당시 필자가 가지는 국어에 대한 자신감이 좀 지나치다는 점을 인정해야 하겠다. 나중에 필자 자신의 국어에도 문제가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공문서를 작성한다면 필자는 얼마나 많이 국어사전을 펼칠 것인가? 특히나 외국에서 5년을 살다 보니 가끔은 잘 하던 띄어쓰기도 헷갈리는 형편이다. 이 상황에서 필자는 다른 사람의 지적을 무시할 수 있을까? 국이든 영어든 어느 언어이든 언어는 어쩌면 영원히 정복 불가능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을 때 이 모든 것이 이해가 갔음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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