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8월 4일 일요일

한국인이 집착하는 발음의 허상

  지난 글에서 한국어와 영어의 목적어 동사의 어순이 바뀌어서 어렵다고 하는 불평은 한국인이 이미 영어에 대해서 너무 많이 알아서라고 지적한 적이 있었다. 이번 글에서는 한국인이 너무 모르는 부분에 대해서 말하고자 한다.

  거두절미하고 말하면 한국인이 발음에 집착하는 이유는 역으로 영어를 할 줄 몰라서이다. 물론 이 표현은 너무 애미하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영어로 듣고 말할 줄을 몰라서이다. 영어로 읽고 쓸 줄은 알기 때문에 한국인들이 누가 영어를 필기체로 잘 쓰냐를 가지고 스트레스 받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글씨를 잘 쓰는 것과 영어 실력이 무관하다는 것 정도는 누구나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어를 듣고 말할 줄 아는 사람이 적다보니, 영어를 듣고 구분할 수 있는 것은 이 발음이 한국인이 하는 것과 영어권 국가를 비롯한 서구인이 하는 것, 그리고 다른 동양인이 하는 것 정도로 구별할 수 있을 뿐이다. 한국인들은 자신들의 발음과 다른 동양인들의 발음 (아랍인, 인도인, 중국인은 여기서 제외될지도 모르겠다)은 무시하고 서구인들의 발음만 좋다고 그리고 발음만으로 상대방의 영어 실력을 평가한다. 사실 서구인 중 유럽인들 발음은 우리나라 사람들 발음 만큼이나 그 나라 모국어의 액센트가 강해서 원어민들도 못 알아 듣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어차피 원어민이 말하는 것도 유럽인이 영어를 할 때도 못 알아 듣기는 마찬가지이니 모두 합쳐서 잘 한다고 하게 되는 것이다. 이 어찌 코메디가 아닌가?

  필자가 영어권 국가에서 살게 된지 2년이 지난 시점에서 필자는 이 점을 깨달았다. 코페르니쿠스가 겪은 것과 같은 사고가 대전환되는 계기가 생겼던 것이다. 당시 필자는 여전히 영어 정복이 멀었다는 혹은 영어 정복은 영원히 불가능할지도 모르겟다는 두려움에 떨고 있던 시점이었다. 이 때 원어민 친구에게서 또 하나의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것은 그 친구가 느끼기에 필자의 영어가 그 나라 일반적 대학생들 영어보다 수준이 훨씬 높다는 것이었다. 그 때를 떠올려 보면 우리는 각자 연구를 진행하면서 현지 대학생들이 응답하는 방식, 성의 없음 등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었다. 필자와 함께 이런 저런 것은 논의하던 중 그 원어민 친구가 필자의 영어가 수준이 높다는 평을 해 주었던 것이었다. 물론 이 말은 현지 대학생들의 영어 수준이 형편 없다는 말의 다른 표현이었다.

  어찌되었든 필자는 할 말을 잃었다. 어디서 필자가 입만 열면 한국에서 왔냐는 소리가 대번에 나오는데 어떻게 필자의 영어가 뛰어날 수 있단 말인가? 혹 예의상 칭찬해주는 것인지 의심이 쉽게 가시지 않기도 하였다. 사실 당시에는 필자가 알고 지내던 그 일본인의 영어에 쏟아지는 찬사에 대한 의구심도 있었다. 필자가 보기에는 중간중간 문법적 실수도 있었고 여전히 일본어 악센트가 강한데 왜 영어를 잘 한다고 하는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러나 나중에 더 영어를 잘 하게 되어서 원어민들의 대화(이거 정말 알아듣기 힘들다)도 거의 문제없이 이해하기 시작하면서 이런 필자의 혹평은 사실 원어민들이 얼마나 문법적 실수를 많이 하는지 여전히 몰랐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그 일본인의 영어에 가혹했던 것이었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 또한 악센트는 의사소통만 되면 전혀 문제가 되지 못한 다는 사실도 몰랐기 때문이다.

  필자도 처음에 이런 이야기 들을 때 공감하지 못했던 듯 싶다. 영어를 얼마나 잘 배우느냐는 얼마나 열심히 하느냐 그리고 언어 능력도 좌우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물론 나이가 좀 많아서 가긴 했지만 기초는 튼튼했고 필자는 나 자신을 믿었다. 또한 그곳에서 필자를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 필자의 영어에 대해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영어권에 처음 오는 사람 치고 영어를 잘한다고. 이런 평가는 나를 더욱 우쭐하게 했었을 것이다. 이렇게 잘 하는 상태에서 왔으니 1-2년이 아니어도 수년안에 원어민처럼 영어를 구사할 수 있을 것이라고!

  그러나 지금은 그들의 말에 더 귀를 기울일걸 잘못했다고 후회한다. 영어를 할 때 모국어의 악센트는 거의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듯하다고, 영어권 국가에서 20년이 넘게 살았는데도, 영어로 익힌 지식보다 모국어로 익힌 지식이 더 기억하기 쉽다는 그들의 경험담은 실패담이 아니라 우리가 타국에 가서 살게 될 때 미리 알고 있어야 할 지식이었던 것이다. 이제서야 그들이 마음을 열고 나에게 경험을 나누어 주려고 했다는 점을 알겠다. 여러분 중 일부는 필자의 말을 인정하기 싫을 것이다. 자신은 아니어도 자신의 자녀들에게 열심히만 시키면 영어를 원어민처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굳게 믿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필자가 다시 주장한다. 어릴때 영어를 시켜서 얻게 될 수 있는 것은 좋은 발음이다. 이는 인정한다. 그러나 좋은 발음이 좋은 영어가 되는 것은 아니다. 좋은 영어를 구사하려면, 영어권 국가에서 교육을 하나도 받지 못한 사람들이 구사하는 영어가 아니라 고급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구사하는 수준높은 영어를 구사하려면 나이가 들어서 엄청나게 노력해야 한다. 이런 고급 한국어는 한국사람들도 잘 구사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한국어 발음이 좋다고 한국어를 잘 한다고 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이런 말은 외국인에게 사기를 북돋기 위해 쓰는 용도의 말일 뿐임을 명심하자. 이는 영어에도 해당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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