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8월 6일 화요일

모국어 accent는 없어지지 않는다.

  중학교 때부터 영어를 배우면 영어의 모국어 accent를 없앨 수 없다. 그것은 모국어의 소리 범주에 굳어지는 나이가 초등학교 6학년에서 중학교 1학년 사이에 오기 때문이다. 이를 심리학에서는 critical period라고 한다. 따라서 이 이후에 영어를 처음 접하면 모국어의 소리 범주에 벗어나는 미세한 소리를 구분하는 능력이 사라지게 되어 영어를 원어민처럼 하게 되기 보다는 외국인처럼 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한국인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인도인(Indian), 프랑스인, 독일인 모두에게 해당된다. 이들 국적의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하다 보면 그 사람들의 영어에서 그 나라 특유의 accent가 묻어남을 알 수 있다. 그렇다고 아무도 그들에게 영어 못한다고 욕하지 않는다. 우리처럼. 우리도 사실 우리의 accent만 혹은 동아시아인의 악센트만 비하하지 다른 나라 사람들의 악센트는 신경쓰지 않는다. 물론 그 이유는 부분적으로 그 사람들의 영어를 못 알아 듣기 때문이다.

  많은 한국인들이 인도의 공용어가 영어라고 생각하는 데 사실 인도의 공용어는 두 가지다. 힌두어와 영어. 그래서 인도에 가면 대학을 나온 사람들과 영어로 쉽게 대화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대학 교육을 받은 사람들에 한한다. 교육을 받지 못한 많은 Indian들은 일반적인 우리나라 사람만큼(?) 밖에 영어를 하지 못한다. 필자가 학회참석차 인도에 갔을 때, 필자는 그들의 영어를 이해하기가 좀 힘들었다. 이 상황은 또 하나의 좌절을 필자에게 안겨주었다. 이제 좀 호주영어 accent에 적응했나 싶었는데 또 다시 필자가 이해할 수 없는 영어 accent  등장한 것이다. 아, 이 accent들은 모두 언제 다 극복할 수 있을까?

  워낙 Indian들이 영어 잘 한다는 평판을 많이 들었기 때문에 필자는 열심히 그 accent를 파악하려고 노력할 뿐이었다. 필자는 이 상황을 아직 필자의 영어가 부족해서라고만 해석했던 것이다. 그런데, 반전은 한 영국인 발표자가 발표를 하고 한 Indian 연구자가 질문을 하면서 시작되었다. 그 영국인이 그 인디안의 영어를 전혀 알아듣지 못한 것이다. 두어번 다시 말씀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여전히 의사소통이 되지 않아서 그 중 영어 accent가 좀 다른 Indian 행사진행자가 나서서 그 둘의 영어를 통역해 주기 시작했다.

  모두가 영어를 사용하는데, 통역이 있어야만 의사소통이 되는 이 황당한 사건은 두고두고 회자 되었다. 필자가 나중에 영국에 갔을 때 당시 이 학회에 있었던 사람들이 이 사건을 기억해 냈고, 같이 있었던 사람들 중에 이 학회에 없었던 사람들은 많이 놀라는 눈치였다. 대부분 이 인도 학회에서 일어난 영어간 통역 사건을 웃어 넘겼지만 이 사건이 필자에게 준 충격은 상당했다.

  물론 첫째는 필자에 대한 것이었다. (사람이 자기 중심성을 벗어나기는 참 힘든 일인 듯 싶다.ㅋㅋ) 그것은 필자의 영어가 상당한 수준에 도달했다는 것이다. 영국인이 알아듣는 것은 나도 알아듣고 그들이 못 알아드는 것은 나도 못알아들었던 것이 아닌가? 즉 필자가 못 알아 들은 Indian의 영어는 필자의 영어가 모자라서가 아니라  힌두어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필자의 입장에서 그들의 accent는 이해하기 힘들었던 것이다. 사실 그 언어적 배경을 모르는 accent는 적응하는 데 시간이 꽤 걸린다. 그것은 힌두어 뿐 아니라 초반에는 독일어,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등을 몰랐기에 유럽에서 유학온 학생들의 accent를  이해하기 어려웠고 그래서 그들과 대화하는 것도 쉽지 만은 않았다.

  둘째는 훌륭한 영어를 사용해도 accent가 다르면 영어를 모국어로 하는 사람들도 잘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이었다. 사실 이 사건이 필자가 원어민과 동시에 같은 어려움에 처하는 그런 경험이었다. 필자가 영어를 못해서 인디안들의 영어를 이해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니! 이 얼마나 격세지감이 느껴지는 일인가? 물론 그렇다고 필자가 원어민과 같은 수준으로 영어를 구사하게 되었다는 억지를 쓰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 인디안의 힌두어 accent가 너무 강해서 영국인이 알아듣지 못했지만 여전히 인디안들의 영어는 훌륭하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가 안다. 심지어 영어 어학연수를 인도로 가는 사람들도 있지 않는가? 또한 그들이 다른 영어권 국가에서 공부하거나 생활하게 되면 1-2년 만에 현지 accent에  적응하게 된다. 마치 우리나라에서 다른 지방에 가면 그 지역 방언에 익숙해지는 데 일정 정도의 시간이 걸리는 것처럼 그렇게 현지 영어에 적응해 낸다. accent와 영어 실력이 상관없음을 다시 한번 보여주는 이야기가 아닌가? 그리고 한국인들에게 의미심장한 메세지를 주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 메세지는 다음과 같다. 첫째, 같은 수준의 영어를 해도 특정 accent가  강하면 서로 못 알아들을 수도 있다. 즉 accent가  다르다고 영어 실력이 다른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따라서 당신이 한국인이라면 그리고 한국어를 모국어로 하고 있다면 한국인의 accent에 자부심을 가질지어다.

  둘째, 중학교 때부터 영어를 배우기 시작해도 영어수준이 상당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이전 글에서도 밝혔듯이 인도에서 영어교육은 중학교 때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인도 영어에는 힌두어의 accent가 강하게 남는 것이다. 물론 이는 아주 정확한 말은 아니다. 인도에서 힌두어는 영어처럼 공용어이지 사실 인도의 각 지방에서는 수많은 고유 언어가 있다. 따라서 일부 인도인들에게 힌두어는 영어처럼 외국어일 가능성이 높다. 마치 북경어와 광둥어가 서로 외국어처럼 다르듯이 말이다. 어찌됐든 인디안들은 중학교에서 부터 영어 교육을 받기 때문에 그들 영어에는 힌두어를 비롯한 그들 모국어의 accent가 강하게 남지만 영어 수준은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 바꾸어 말하면 한국인 지도자가 미 의회에서 연설을 할 때 자막이 나가고 발음이 원어민 같지 않아도 그 영어는 훌륭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필자는 왜 한국인이 영어로 미의회에서 연설하는지 모르겠다. 한국어로 해야지!)

  셋째, 이미 완벽하게 영어를 하는 사람들이야 말로 1-2년 안에 현지에 적응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것도 적응력이 끝내주는 경우에 한하지 않겠는가하는 조심스런 생각이 든다. 사실 우리가 보는 Indian들도 영어권 국가에서 성공적으로 정착한 예들 뿐이지, 성공하지 못한 인디안들이 얼마나 되는지와 같은 통계를 접한 적은 없다. 이런 점은 한국인들의 경우와도 상통한다. 즉, 한국인이 영어권 국가에서 살게 되면 1-2년만에 영어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무모함의 정체를 이제는 밝혀야 하는 시점이다. 1-2년이 아니면 4-5년정도면 영어에 통달한다고 굳게 믿는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1-2년 산 사람들보다 4-5년 산 사람들의 영어가 더 뛰어날 확률이 단연 높다. 하지만 원어민과 같은 수준으로? 그건 Indian들에게나 기대할 수 있는 수준이라는 점을 좀 명확히 갖자.
(그리고 그 Indian들이 대학을 나오고 대학교를 나와도 힌두어 철자를 외국인에게 가르쳐주기 힘들어 하는 수준이라는 점도 아울로 기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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