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8월 27일 화요일

영어의 한국어 표준: Maroon 5 (머룬 5? VS 마룬 5??)

  필자는 가끔 라디오를 들으며 작업을 한다. 그러다 음악캠프 배철수 아저씨가 필자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것을 듣고 반가움을 금할 수가 없었다. 배철수 아저씨의 고민은 Maroon을 어떻게 발음해야 하는가이다. Maroon이라는 단어가 화제가 된 것은 Maroon 5라는 그룹의 많은 노래가 Billboard chart 상위권에 오르면서 한국에도 인기를 얻으면서 라디오에서 많이  나오기 때문이다. 많은 한국의 DJ들이 마룬 파이브라고 이 그룹을 소개하는데, 배철수 아저씨의 주장은 머룬 파이브로 소개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이 그룹은 미국 그룹이고 미국에서 그렇게 발음하니까! 그런데, 자기 혼자만 머룬 파이브로 소개하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마룬 파이브로 소개하니까 외로우셨나 보다.

  기본적으로 필자는 배철수 아저씨의 주장에 동의한다. 또한 배철수 아저씨는 남들이 뭐라하든, 남들이 뭐라고 이 그룹을 소개하든 머룬 파이브로 소개하시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기본적으로 음악캠프는 팝송을 주로 소개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이고 영어를 아는 사람들이 머룬으로 발음하는 것 나쁘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어 표준으로 머룬을 삼는 것에 대해서는 생각할 것 많은 듯 싶다. 즉, Maroon을 마룬이 아니라 머룬으로 한글 표기 표준을 삼는 것에 대해서는 좀 생각해 봐야 할 다른 많은 문제들이 얽혀있는 듯 싶다.  외국어 한국어 표기 기준이 소리나는대로이지만 사실 소리자체가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타협이 불가피하다. 그 타협이 어느 시점에서 이루어져야 하는지는 모두가 다른 의견이겠지만, 어느 정도의 원칙은 필요할 듯 한데... 모든 외국어를 외국인이 발음하는 대로 표기하는 것 자체가 불가는하기 때문에 과연 일률적 원칙 적용이 가능한지 조차도 확신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국립국어연구원 생각은 어떤지 지금 물어보러 갑니다요. ㅋ)

   사실 Maroon이라는 단어의 발음이 머룬처럼 들리는 것은 강세stress가 뒤 음절에 있기 때문이다. 영어에서는 강세가 없는 음절의 모음 발음은 약하게 혹은 대충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자. 그래서 우리가 흔히 말하는 영어의 리듬감이 생기는 것이다. 마치 음악처럼 강약약 혹은 약강약 등등으로... 좀더 정확히 말해서두번째 음절에 강세 없이 머룬 하고 발음하는 것은 마룬하고 발음하는 것 만큼이나 부정확한 발음이다. 따라서 이렇게 해야 하지 않을까? 머루운! 또한 뒷음절에 강세만 넣어주면 사실 앞음절은 마로 발음한다고 영어사용자가 못알아 듣지도 않는다고 보는 것도 그리 틀린 말은 아니다. 즉 '마루운'으로 발음한다고 해도 어차피 첫음절에는 강세가 없어서 약하게 발음되기 때문에 '머루운'과 거의 같은 발음이 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뒤 음절에 강세를 넣어주지 않으면 마룬으로 발음하든 머룬으로 발음하든 원어민이 알아듣지 못할 확률 절반 이상이다.

  한국어에는 이렇게 정해진 리듬감은 없다. 영어가 랩에 적합한 언어이지만 우리말은 아니라는 오해가 바로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던가. 즉 한국어에는 특정 음절에 강세를 특별히 주는 발음 시스템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러니까 사아랑해, 사라앙해, 사랑해애.... 모두 같은 소리로 인식되고 모두 같은 뜻으로 이해한다.

  하지만 영어에서 present단어에 강세가 앞에 오면 현재, 선물 등을 뜻하지만(현재의, 출석한 등의 형용사이기도 하고), 강세가 뒤에 오면 발표하다, 소개하다 등의 동사를 뜻하게 된다. 발음도 전자는 프레즌트(또는 프레전트), 후자는 프러젠트(혹은 프리젠트)처럼 발음된다.

  그렇다면 같은 영어단어가 어떻게 쓰였느냐에 따라 발음이 달라진다는 것인데, 이렇게 다르게 쓰는 것을 다 알아서 발음하라고 하는 것은 일상적 영어 사용자가 아닌 사람에게는 좀 지나친 요구가 되는 것이다. 사실이었든 사실이 아니었든 한글이 처음 만들어질 때 한자처럼 어렵지 않아서 쉽게 누구나 글을 쓰고 읽게 된다는 사실에 기득권 층이 반발할 수도 있었다는 점이 쉽게 납득이 가는데, 이렇게 영어를 발음나는 대로 한국어 표준을 삼을 때, 상당한 영어 실력을 갖추지 않고서는 두려움에 떨 수 밖에 없는 영어에 의한 기득권층이 만들어 질 수도 있다는 점을 생각해 봐야 할 듯 하다.

  즉 팝송을 일상적으로 다루고 외국 뮤지선을 많이 소개하는 프로그램에서는 영어를 소리나는 대로 발음하는 것으로 할 수 있지만 국내 음악을 주로 소개하면서 가끔 팝송을 틀어주는 다른 라디오 DJ들은 알파벹대로 발음하도록 허용하는 것도 좋은 융통성있는 방법일 듯 싶다는 것이 필자의 의견이다.

  또한 이미 굳어진 발음도 많다. Korea를 우리가 영어로 발음나는 대로 하면 '커리어'이다.  Career와 왠만해서는 구분할 수 없게 발음된다. 필자도 처음엔 놀라웠다. 왜 주변 사람들이 자꾸 한국에 대해서 이야기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그들은 한국에 대해 거의 아는게 없었던 사람들이었으니까. 그러나 알고 보니 그들은 자신의 진로에 대해서 이야기 했던 것! Career가 Korea처럼 들린 것은 둘다 둘째 음절에 강세가 있어서 첫째음절 모음이 Maroon처럼 '어'로 발음되기 때문에 두 단어의 발음 구분이 거의 사라졌기 때문이다. 발음기호 상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원어민 언어 강사에게 질문한 바 원어민들도 두 단어의 발음이 일치한다고 여긴다는 것이다. 그럼 우리나라 발음 표기를 코리아에서 커리어로 바꾸어야 할까요? 다시 한번 말하지만 Korea를 코리아로 발음해서 둘째 음절에 강세만 제대로 넣어주면 커리어와 거의 다름없이 들린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자! 또한 오랫동안 쓰여왔던 표기를 바꾸는데 드는 비용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사실 한국에서는 사용이 굳어진 것중 필자가 문제 삼는 것은 좀 다른 것이다. 바로 '팟캐스트'! t가 종성으로 올때 ㅅ으로 표기하는 것에도 필자는 반대이지만 유성음 'd'조차 무성음처럼 표기하는 것은 더 문제인 듯 싶다. Podcast는 필자가 보기에 '포드캐스트' (미국식 발음이 좋으면 파드캐스트)로 표기해야 한다. 물론 글자 하나 줄여서 팟캐스트로 하는 것도 장점이 있다는 주장은 가능할 것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판단하기 어렵다. 그러나 공론이 이렇게 모아진다 하더라도 폳캐스트 혹은 팓캐스트 이상은 타협하기 어려울 듯 싶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다른 글에서 다시 논의 하도록 하겠다. 다만 배철수 아저씨는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하다. 음악캠프에 사연 올려 볼까??? ㅎㅎ

고급 발음 공부 (T Sound)

  일본에서 영어를 가르치다가 더 높은 전문성을 가지기 위해 TESOL을 이수하러 온 한 학생을 만나게 되었다. 그 친구는 가끔 일본에서 영어발음을 얼마나 이상하게 하는지 농담삼아 이야기하곤 했는데, 그 이야기를 듣다 보면 살짝 소름이 끼쳤다. 왜냐하면 한국에서 강사들이 하는 이야기와 너무나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쌀을 Rice로 발음해야 하는데 Lice로 발음해서 일본인들이 '이'를 먹는 줄 알고 외국인들을 기겁하게 한다는 식이다.

  한번은 필자가 그 친구에게 원어민들이 t발음 안 한다거나 'd'처럼 발음한다는 것은 오해1라고 다음과 같이 설명을 해 준 적이 있었다. 그 친구의 영어가 그다지 뛰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필자의 설명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래도 마지막엔 이해를 했었다. 그런데도 놀란 표정을 지을뿐 동의를 하거나 이후에도 필자에게 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말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 친구가 TESOL을 잘 이수했는지 어쨌는지까지는 잘 모르겠지만, 필자는 이를 계기로 TESOL을 이수하면 어느 정도의 실력을 갖추게 되는 것인지 많이 의심하게 되었다. 

  또한 우리가 가지는 영어에 대한 많은 오해들이 일본에서 온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도 동시에 하게 되었다. 물론 일본어 발음과 한국어 발음 체계가 비슷해서 두 나라에서 동시에 비슷한 영어 발음 실수를 하고 비슷한 영어에 대한 오해를 한다는 것도 가능하지만, 한국의 영어 사전이 아직도 일본에서 번역한 사전을 베낀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필자의 오해가 억측이라고만 볼 수도 없을 듯 싶다. 혹 원어민들이 t 발음 안 한다거나 'd'로 발음한다는 오해도 일본에서 온 것은 아닐까? (일본의 영어 교육 시장과 한국의 시장 간 연계에 대해 아시는 분은 좀 발언해 주시길 바란다.)

  여기에선 한국인들이 제일 많이 오해하는 t sound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우선 t를 r처럼 발음하는 경우는 t가 특정한 위치에 오는 경우 미국에 한해서 사실인 경우도 있다. 그러나 미국 발음 체계를 따르더라도 많은 경우 우리의 오해로 점철되어 있다. 우선 일반적으로 말해서 t 소리는 우리말의 ㅌ 소리를 포함하지만 이와 일치하지는 않는다. 이는 잘 알려진 사실이다. 우리말의 ㄷ소리도 포함하고, strike와 같이 t 소리가 자음 사이에 위치하는 경우엔 ㄸ 소리처럼 나기도 한다. 이것이 바로 필자가 우리말의 ㄷ, ㅌ, ㄸ 소리의 차이를 외국인들에게 가르쳐 주면 그들이 혀를 내두르는 이유이다. 그들에게는 이 세 소리가 모두 하나의 소리로 들리기 때문이다. 바로 T 소리!

여기서 알 수 있는 한 가지. 우리가 영어를 배울 때만 발음지옥에서 헤메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한국어를 배울 때도 발음이 어렵다. 우리는 ㄹ 소리가 r과 l로 나뉘어 힘들다고 불평하지만 그들은 t sound가 ㄷ, ㅌ, ㄸ 이렇게 세개로 나뉘어 헷갈린다고 불평할 것이다.

  그러나 위 설명만으로 한국인이 상대적으로 t 소리 내기 쉽다는 것은 아니다. 아주 엄격하게 말해서 t 소리는 혀를 입천장에 붙여 공기의 흐름을 막았다가 갑자기 공기가 흐르게 혀를 입천장에서 떼어줄 때 나는 무성음이다. 한번 해보자... 그리고 다시 한번. 지겹더라도 열 번정도 하길 바란다. 지겹지 않으면 한 백 번 정도! 아마 열 번 다 같은 소리가 나지는 않을 것이다. 그 다양한 소리가 모두 t 소리임을 명심하자. 특히 한국인에게 까다로운 소리는 바로 t소리 전후로 입천장에 혀가 붙는 자음, 예를 들어 s, l, n 등의 소리가 오면 매우 약한 공기를 흐름을 갑자기 끊는 소리만으로 혹은 갑자기 공기를 흐르게 해주는 소리만으로도 t 소리가 표현이 된다. 이런 소리는 매우 미묘하기 때문에 우리말 소리 체계에 익숙해 있는 사람이 듣기 쉽지 않고 그래서 원어민들이 t 소리를 하지 않는다고 오해하게 되는 것이다.  한국어에서는 바람을 끊었다 터지는 소리가 ㅌ 소리이다. 이는 주로 ㅌ이 초성에 올 때이고, ㅌ이 종성에 오면 끊는 소리로 ㄷ 소리가 나지만. 뒤에 모음이 오면 다시 터져야 ㅌ 소리이다. 하지만 영어에선 혀가 입천장에 갑자기 닿았다 떨어지는 무성음은 모두 t소리이고 뒤에 모음이 오더라도 한가지로 소리가 나지 않아서 우리에게 많은 오해를 불러 일으키게 된다.

  이제 우리가 언제 원어민의 t 소리를 오해하는지 열거할 수 있다. 

  첫째, 가장 많은 경우가 ㄷ 소리와 d 소리가 같다고 착각하여 약한 t 소리를 d 소리라고 착각할 때이다. 이 경우 t 소리를 듣고 말하는 경우는 무난하지만, d소리와 구분하고 또 d를 발음할 때 원어민들이 알아 듣지 못하는 비극적 사태가 초래될 수 있다. 

  예: City -> 흔히 '씨디'처럼 발음 되는데, 여기서 ty가 '디'로 발음되는 것은 이 단어의 강세가 첫음절에 있기 때문에 뒤음절은 약하게 발음되기 때문이다. 이 약한 '디'는 원어민이 CD를 발음 할때 '디'와 명백히 다르다. 전자는 성대가 울리지 않고 후자는 성대가 울린다. By the definition of the sound of T, 전자는 t 소리이고 후자는 d 소리이다. 

  둘째, 위에서 언급한 미묘한 t 소리를 듣지 못하고 원어민들이 t 발음을 하지 않는다고 착각할 때이다. 이 경우 자기 나름대로 원어민처럼 발음 굴린다고 t 소리 건너 뛰게 되는데, 원어민은 원어민이니까 어느 정도 알아들을 수 있다고 쳐도 나중에 한소리 들어 챙피할 수 있다. 너는 왜 t 발음을 대충하냐고. 또한 t가 들어있는 발음과 들어 있지 않은 발음을 구분할 수 없어서 원어민들의 말을 알아듣기 힘들어 고생할 수 있다. 이를 익히기 위해서는 다양한 상황에서 혀로 소리의 흐름을 갑자기 막았다가 다시 틔여주는 연습을 반복해서 각 상황에서 나는 소리가 모두 t임을 알고 익히는 방법 밖에 없다.

  예: Stacy를 원어민들이 빠르게 발음하면 '쎄씨'처럼 들린다. 이 단어에서 t 소리가 s 바로 다음에 와서 s를 발음할 때 혀가 입천장에 이미 붙어 있다가 a 소리 전에 공기의 흐름을 갑자기 터주는 정도로 t소리를 내기 때문에 미묘한 t 소리가 나게 된다. 그래서 잘 못 들으면 Sassy와 헷갈릴 수 있다. (Stacy는 여자 이름이고 Sassy는 영화 엽기적 그녀의 영어 제목 중 일부이기 때문에 독자들에게 익숙할 것이다.2)

  영어를 처음 배우는 사람들에게 미묘한 t 소리는 어차피 들리지 않는데, 어떻게 그들이 t 발음을 하는지 또는 나중에 자신들도 Stacy에서 t 소리를 듣게 된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혹자는 사실 원어민들에게도 Stacy와 Sassy간 발음 차이가 없다고 우기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고 필자가 단호히 주장할 수 있는 다음 예를 살펴 보자. 

  필자가 한국어를 원어민들에게 가르칠 때, 그 친구들이 Korean BBQ를 워낙 좋아하니까 '상추'라는 단어를 가르쳐 준 적이 있었다. 원어민 친구들의 반응은 이랬다. 

  친구: 왙? 탕추?

필자가 발음을 너무 세게 해서 친구가 못 알아들었나 해서 다음에는 조금 발음을 부드럽게 천천히 하려고 노력했다.

  필자: 노우... 사아앙추! 

  친구: 흠... 항추??

  필자: 왙? 하하하!!!

  처음 필자는 어떻게 상이라는 발음에서 그들이 t소리를 듣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여러분은 이해가 되는가? 우리의 예상과는 달리 내 친구들은 내 ㅅ 발음에서 s sound를 단독으로 듣는 경우는 없었다. 이제 '상'을 한 열번 정도 반복해서 발음해 보자. 아마 이제는 알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ㅅ을 발음할 때 혀가 입천장에 붙었다 급격히 떨어진다는 사실을. Again, by the definition of the alphabet sound t in English, 원어민들에게 ㅅ 소리는 t 소리였다. 물론 순수한 t 소리는 아니고 가끔은 ㅅ 발음에 h나 s 소리가 섞여 있다는 것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친구들이 끝까지 못 알아 들었기 때문에 마지막엔 필자가 스펠링을 불러 주었는데, '추'는 필자가 불러주는대로 모두 납득했다. 하지만 '상'은 끝까지 논란이 되었는데, 그 중 한 친구는 이 단어를 자기가 들은 대로 받아 적었다. 그 친구의 노트에는, '상'의 첫소리를 'ts'로 적었다. 이 예는 원어민들이 얼마나 민감하게 t 소리를 듣는지 알 수 있게 해준다. 따라서 우리가 한국어 체계에서 인정할 수 있는 ㅌ소리가 안들린다고 t소리 발음 안 한다고 주장하면 영어에 뛰어난 실력을 갖기란 어려워질 수도 있을 것이다. (ㅈ 소리에서도 원어민들은 마찬가지로 t 소리를 듣는다)

  위 두 경우 모두 원어민과 대화하지 않고 한국인들끼리만 영어로 대화하는 경우 조금 더 증상이 악화될 수 있다. 따라서 초기에는 한국인들과 편하게 대화하며 영어에 자신감을 키우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만, 거기에 안주하지 말고 발음을 더 잘 알아듣고 더 잘 하기 위한 노력 또한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하겠다. 또한 영어가 어느 정도 되면서 부터는 원어민 친구를 적극적으로 사귀고 대화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발음을 잘 하는 공부가 확실히 필요하다. 왜냐하면 원어민 친구들은 왠만하면 발음 지적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외국인들 우리말 발음 지적 잘 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하지만 우리의 잘못된 인식에 이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사실 이점이 있기에 이렇게 잘못된 생각이 끈질기게 살아남는 것이 아닐까 싶다. t를 원어민이 특정 경우에 d로 발음한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한 이점 하나는 아직 영어 발음 체계에 익숙하지 않을 때에 듣기 실력이 살짝 좋아진다는 것이다. 이런 사실을 모를 때는 t 소리가 나지 않아서 무슨 단어를 자신이 들은 것인지 헤메다가 t가 d로 들린다는 오해를 하게 되면 (정확하게는 ㄷ 소리이지만) 듣기가 조금 더 수월해질 수도 있다.

  물론 미국인들에 한해서 ty의 '디'를 '뤼'로 발음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미국식 발음을 따라하는 것은 비추이다. 이것은 절대 필자가 호주나 영국에서 영어를 했기 때문에 그들 방식에 젖어 있어서 그들이 생각하는 대로 이런 발음을 잘못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니다. 대학까지는 영어를 한국에서 했으니 당연히 미국식 영어에도 익숙하다. 게다가, 필자가 영어에 있어서 좋아하는 점 하나가 한국어처럼 표준어 제도가 없어서 다른 accent의 발음을 사실상 잘못이라고 이야기 할 수 없다는 것에 있다. 그럼에도 한국인들이 미국식을 따라하지 말길 바라는 것은 어릴 때부터 미국식에 원어민처럼 익숙하지 않다면 나중에 영어를 아주 잘하게 되었을 때 철자가 헷갈린다는 사실 때문이다. 영어는 각 단어를 어떻게 읽는지를 배워야 하는 언어이고 각 철자가 언제나 같은 소리를 내지 않는다. 따라서 철자는 원어민들에게도 그다지 쉬운 부분이 아니고, 만일 한국인이 t를 d나 r처럼 발음하는 경우 처음에 단어 몇개 모를 때 주변 사람들에게 뻐기기에는 좋지만 나중에 수 많은 단어들을 알게 되고 그것들로 급하게 문서를 작성하거나 채팅을 해야 할 때 원래 철자가 d인지 r 혹은 t인지 헷갈려서 고생하게 된다. 미국식으로 멋을 낼지 멋 내기보다는 실속을 차릴지 결정할 때 이 점을 숙지하기 바란다. (우리가 철자를 헷갈릴 때 주요 포인트가 소리의 비슷함이라는 것은 인지심리학적으로도 이미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혹 이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요청해 주시길...^_^)

참고
1. 원어민들 중 사람에 따라 t발음을 'd'처럼 발음하지 못하란 법은 없다. 영어에서 t와 d는 같은 발성으로 나는 소리인데 단지 성대가 울리지 않느냐 울리느냐에 따라 갈리는 소리다. 따라서 한국어보다 유성 자음이 많은 영어가 원어민인 사람들 중에서 t 전후로 특히 모음이 들어 가 있는 경우 t가 경우에 따라서 d로 소리가 날 수도 있다. 이는 일부러 d로 소리를 내는 것이 아니라 앞 뒤로 유성음인 모음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아무 생각 없이 소릴 내면 자연적으로? 혹은 습관적으로? 파생될 수 있는 결과이다. 그러나 한국어처럼 유성 자음이라고는 네 개 밖에 없는 언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우리가 t를 약하게 발음했다고 해서 그 소리가 d소리가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 소리는 대부분 ㄷ 소리일 가능성이 크고 ㄷ은 기본적으로 무성음이라 아무리 약하게 발음해도 t소리임엔 변함이 없다. 사실 한국인들이 d 소리를 제대로 내기 위해서는 소리를 내기 전부터 '음'하면서 먼저 성대를 울리기 시작하면서 d 발음을 할 때도 그 성대 울림이 지속하도록 연습하는 방법이 좋다. 그런데 이렇게 하면 사실 유성음 발음하는 시간이 무성음보다 훨씬 길게 걸리는데, 이는 영어 원어민 사용자들에게도 공통을 나타나는 현상이다. 물론 그들은 우리보다 유성 자음 전문가들이 때문에 훨씬 짧게 유성 자음을 발성할 수 있지만 그래도 무성 자음보다 일반적으로 소리 내기에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경향이 존재한다.

2. 위에서 Stacy와 Sassy 이 두 단어가 초성의 t 소리만 빼면 다른 소리가 모두 비슷해서 예를 든 것인데 혹자는 Stacy를 쎄씨처럼 발음하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어서 와닿지 않는 예라고 할 수도 있겠다. 이 경우 흔히 들을 수 있는 예로 가수 Pink의 노래 Stupid Girl이라는 노래를 들어보기 권한다. 이 노래는 매우 빨라서 가수가 친절하게 Stupid를 발음해 주지 않는다. 결국 여러분이 한국인이라면 이 단어가 '수피드'와 매우 유사하게 들린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것이다. Stacy와 마찬가지로 이 단어에서 t 소리가 s 다음에 바로 붙기 때문에 아주 미묘하게 소리가 날 뿐 절대 t 소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핑크의 stupid에서 t가 들릴 때까지 듣기 연습하시라. ^_^;;

2013년 8월 20일 화요일

초급 발음 공부 (듣기)

영어 발음과 한국어 발음에 비슷한 부분이 있다고 해서 그것을 같다고 여기는 순간 원어민들과 대화할 수 있었을지도 모를 당신의 영어 실력은 개발되지 못하게 된다. 만일 당신이 어린 아이라면 원어민의 말을 듣는 것만으로도 영어 발음을 익힐 수가 있다. (물론 국어와 병행하는 경우 언어가 헷갈려서 골로 가는 수도 있다.) 그러나 당신이 이미 중학생도 아니고 성인이라면 좀 더 기발한 테크닉이 필요할 수도 있다. 

어떻게 무디어진 소리 감각 다시 민감하게 만들 것인가? 혹은 모국어로 굳어진 소리 감각을 다시 자유롭게 풀어 놓을 것인가? 여기서 다시 한번 강조할 것이 있다. 발음은 중요하나 그것은 절대 어느 accent인가가 아니다. 즉 r과 t를 얼마나 강하게 혹은 얼마나 약하게 발음하는 가가 영어실력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것은 정말 개인의 선호도이다. 

따라서 우리가 말을 할 때 t가 모음 사이에 왔다고 반드시 r로 발음할 필요는 없다. 이런 발음 변형은 수 많은 영어권 국가 중 한 곳에서만 사용되는 발음이다. 즉, thirty를 써리로 발음하는 것은 미국에서만 사용된다. 이외의 영어권 국가에서는 써티로 발음한다. stress가 첫음절에 있어서 두번째 음절의 발음이 약해지는 것인데, 그렇다고 반드시 t를 r로 바꾸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t를 r로 변형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약하게 발음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영어를 들을 때, 들어서 이해해야 할 때 특정 나라에서는 이러한 변형이 사용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미 이전 글에서 밝혔듯이 화자의 accent를 모르면 그 사람의 말을 이해하기 힘들어진다. 따라서 아는 것은 중요하다. 어떤 사람은 little을 리틀(또는 맅을)처럼 발음하기도 하고 다른 지역에서 온 사람은 '리를'처럼 발음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미국에서 온 사람과도 영국에서 온 사람과도 대화할 수 있다. 실제로 미국식 발음에만 익숙해져 있으면 유럽인을 만났을 때는 차지하고라도 호주인이나 영국인을 만났을 때 패닉 상태에 빠지게 된다. 필자도 그랬다.

서론이 너무 길었다. 각설하고 초기에 영어 발음에 익숙해지는 방법 중 하나가 팝송 받아쓰기를 하는 것이다. 초기라는 점을 숙지하고 느린 팝송을 골라야 한다. 가수의 출신 지역도 챙기자. 꼭 특정 지역의 사람만을 고를 필요는 없지만, 원어민인지는 반드시 알아야 하고 또 특정 발음이 지역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도 알 수 있는 이점이 있다. 필자가 초기 영어 듣기 훈련을 할 때 이점을 고려하지 못하고 개인의 선호도만으로 Ace of Base라는 그룹의 노래를 듣고 받아쓰기를 했다. 이들 노래를 통해 필자의 듣기가 많이 좋아졌다고 보지만 결정적으로 이들은 영어를 모국어로 하지 않는 스웨덴 출신들이라서 이들이 하는 일부 영어 발음은 영어의 관점에서 보자면 잘못된 발음이었다. (대표적으로 Edge라는 단어는 처음부터 끝까지 유성음으로 이루어져 있다. 물론 영어의 관점에서 말이다. 하지만 이들이 부르는 Edge of Heaven이라는 노래에서 이들의 Edge 발음은 한국인의 그것처럼 무성음이 포함되어 있었고, 이대로 연습했던 필자가 나중에 이 잘못된 발음 때문에 원어민들과 대화하는 데 매우 곤란했던 기억이 난다.)

노래 받아 쓰기는 모국어로도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니 한 번 해보고 어렵다고 포기하지 말고 몇 번 반복하는 것이 좋다. 우선 자신이 가사를 모르는 노래를 고르고 구간구간 끊으며 들으면서 받아 적는다. 영어 단어, 표현으로 인지가 되는 것은 그대로 받아 적고, 들리긴 하는데 말도 안되는 소리로만 들리고 그것이 영어로 표현이 안되면 들리는 그대로 한글로, 혹은 영어 발음기호로 적는다. 개인의 성향에 따라 5회에서 10회 정도 반복한 다음에도 들리지 않는 것은 그 시점에서는 당사자의 능력을 뛰어 넘는 것이다.

더 이상 안들리는 것은 포기해야 겠다는 결심이 서면 가사를 찾아서 자신이 적은 것과 대조해 본다. 얼마나 쉬운 표현이 들리지 않는지를 알게 될 것이고, 그런 쉬운 표현은 원어민들이 어떻게 발음하는지도 알게 될 것이다. 사실 영어로 표현이 안됐지만 들리기는 해서 한글로 적은 그 부분이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바로 그 부분이 받아쓰기를 한 사람이 조금만 더 노력하면 곧 알아들을 수 있는 그런 부분이기 때문이다. 이런 작업을 심심할 때마다 하면 어느새 쉬운 노래는 어느 정도 알아들을 수 있는 수준이 될 것이다. 그럼, 지화자!

추천곡: Edelweiss
            All by Myself (일명 오빠만세)
            Take Me Home Country Road
            ...

2013년 8월 19일 월요일

Accent와 영어 실력을 구분하자!

  인도 학회에서 일어났던 영어간 통역 사건에 대해 설명하면서 accent가 다르면 둘 다 영어를 잘 해도 서로 못 알아 듣기도 한다는 설명을 한 바 있다. 둘 다 영어를 잘 해도 서로 못 알아 들으면 그것이 무슨 소용이냐, 둘 중 하나는 반드시 문제가 있는 것이다라고 혹자는 주장하고 싶을 지도 모르겠다. 특히 그 쌍방 중 하나가 아시아 사람이면 늘 주늑이 드는 듯 하다. 굳이 인도인들의 영어가 문제라고 결론 짓고 싶어하는 마음은 무엇일까? 그렇다면 그 쌍방이 텍사스에서 온 미국인과 촌 지방에서 온 영국인이 의사소통을 하지 못하는 것이라면 당신은 누구를 탓하고 싶은가?

  실제로 지역 악센트가 심할 때 원어민간 얼마나 알아듣지 못하는지 필자가 판단하기는 어렵겠지만, 간혹 그런 경우를 만날 수 있긴 하다. 처음 호주인을 만난 미국인이 일정기간이라 하더라도 그들의 영어를 알아듣기 힘들었다는 경험담을 필자가 들은 적이 있는 데다가 (호주는 미국 드라마를 엄청나게 즐기기 때문에 호주인이 미국 accent를 알아듣지 못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미국인들이 영국에 가서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상황이 미국에서 방송된 sitcom에 등장 (Friends 중 한 episode)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한번은 필자가 황당한 경험을 한 적이 있었다. 한 일본인 학생과 동양계 미국인 학생과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필자가 미국인 학생에게 Asian accent가 강하다고 이야기해주었더니 그 미국인 학생이 자신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동의했다그런데일본인 학생이 무슨 소리냐이렇게 영어를 잘 하는데 라고 반박을 했다

  이 말은 무슨 뜻일까? 그럼 누군가에게 British accent가 강하다고 이야기하면 영어 못한다는 소리인가?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영국이 영어의 종주국이기 때문에? 그럼 American accent는? What about African accent? 문제는 왜 영어를 하는 사람들에게 다른 accent를 가졌다고 하면 욕이 아닌데, Asian accent를 가졌다고 하면 그것도 아시아 인들이 그것을 영어를 못한다고 해석하는가 이다.

  미국인들 중 African-American들은 African accent가 있고 동양계 학생들은 Asian accent를 가지고 있다물론 모두 영어는 엄청 잘 한다이렇게 이야기하면 유럽계 미국인들은 White accent가 있다고 해야 공평할 듯 싶기도 하다필자는 얼굴을 보지 않고 이들의 이야기하는 소리를 들으면 지금 화자가 동양계 미국인인지 흑인인지 백인인지 얼추 구분할 수가 있다. 가끔 만화영화를 볼때 목소리 녹음을 Asian-American이 했다면 그 목소리는 당연 다른 목소리와 구분되고 친근하게 들리기까지 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또한 노래를 들을 때 가수가 흑인이라면 단박에 눈치 챌 수 있다. (그런데, 요새는 필자의 이런 감각도 의심해 보아야 할 듯 싶다. Adele이 노래하는 것을 듣고 필자는 흑인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Adele은 백인이었다 그것도 영국인. 그가 soul을 너무 잘 하고 soul은 흑인 음악에 그 기원이 있기 때문이라고 변명하고 싶지만 글쎄... 독자들이 판단할 몫이다. ㅎㅎ) 물론 필자보다 영어를 더 잘 하는 사람들은 아마 화자의 인종적 배경 뿐 아니라 어느 지역 출신인지까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미국식 accent를 가진다는 것이 영어를 잘 한다는 것과는 무관하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한국에서는 영어를 할 때 미국식으로 발음을 굴리면 잘한다는 인식이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그래서 대통령이 외국 의회에서 영어로 연설을 할 때도 얼마나 좋은 표현을 썼느냐보다 얼마나 발음을 굴렸느냐 가지고 그의 영어실력에 대한 갑론을박을 하는 형편이 되었다. 심지어는 같은 한국어 accent가 강해도 미국식으로 발음하면 영어 잘한다고 칭찬해주고 영국식으로 발음하면 몇십년전 영어 선생님처럼 발음한다고 비웃는다고 한다. 이 것은 영국에서 어학연수를 마치고 돌아온 필자가 아는 사람의 경험담이다. 그 친구는 이런 경향에 대해서 분노했었다.

어떻게 특정 accent와 broken English를 동일하다고 생각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는지 고민할 때 마다, 이런 경험으로부터 필자는 액센트와 영어실력을 구분하지 못하는 현재의 경향이 일본의 영향이 아닌지 의심하기 시작했다. 물론 한국의 경향이 일본에 영향을 주었을 수도 있겠지만 설마 그랬을까? (혹시 아시는 분 계시다면 주저하지 마시고 푸쳐핸접!) 물론 영어를 잘 못하는 한국인들이 알아 들을 수 있는 것은 화자의 문장이 얼마나 수려한지가 아니라 얼마나 발음을 굴리는가 밖에 없기 때문에 일본과 한국에서 동시에 발생한 경향일 수도 있다. 그 근원은 차지하고 이 글의 결론은 특정 액센트를 가지고 있다는 것과 영어를 잘한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는 것이다. 특정 액센트를 가지는 것은 특정 액센트를 가지는 것이고 영어를 잘 하는 것은 영어를 잘 구사하는 것임을 명심하자.

2013년 8월 16일 금요일

단어장 만드는 가장 좋은 방법

  우리가 영어를 공부할 때 누구나 하는 일 중 하나가 단어장을 만들고 그것을 들고 다니면서 외는 것이다. 요새는 이런 작업을 스마트 폰으로 한다고 해도 본질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수첩 단어장이든 스마트 폰 단어장이든 단어 또는 숙어와 뜻이 빼곡히 들어차 있는 것은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좀 더 열심히 하는 사람은 단어, 숙어 뿐 아니라 예문도 들어가 있다. 그러나 이 블로그의 독자라면 이런 단어장은 더 이상 그다지 좋은 방법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것이다.

  결론부터 말해서 당신의 단어장에는 단어와 숙어가 아니라 문장으로 꽉 채워져 있어야 한다. 그 이유는 영어가 단어와 단어를 무작위로 연결해도 되는 그런 언어가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특성은 어느 언어에도 해당된다. 이렇게 연결하다가는 선생님이 식후에 주둥이를 닦으셨다라는 이상한 문장이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즉 단어끼리 숙어끼리 따로 외는 것은 지루할 뿐만 아니라 유용하지도 않다는 뜻이다. 물론 각 단어 및 숙어를 언제 사용하는지 일일이 다 욀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들인 노력에 비해 그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하다. 이렇게 왼 것을 다시 기억해내는데 시간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장을 통째로 외서 그것을 응용하면 왜 그 단어를 이 문장에서 사용해야 하는지는 몰라도 사용할 줄은 알게 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말을 할 때는 번역해서 작문할 시간이 없다. 물론 이를 극복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바로 말할 때는 문법 어법 무시하고 말해도 된다는 점이다! 필자가 영어권 국가에서 몇년 머무르면서 나름 영어에 대한 자신감이 붙었을 때 (안되는 것은 포기하고 마음을 편안하게 가지기 시작했을 때라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할 수도 있다) 문법을 너무 무시하고 아주 되는 대로 말을 하니까 한번은 원어민 친구한테 혼났던 적이 있었다. 그 친구의 지적은 필자가 노력하면 말을 잘 할 것 같은데 너무 문법 무시하고 말을 막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 뒤로 필자는 신경을 좀 썼고 필자의 말하기는 훨씬 나아졌다. 사실 필자는 필자의 영어에 대해서 지적해주는 친구들을 좋아한다. 왜냐하면 필자의 원어민 친구들은 너무 지적을 안해주고 무조건 필자 영어 잘한다고 칭찬만 해주기 때문이다. 이렇게 지적을 받으면 그 점에 대해서 신경쓰게 되고 그래서 더 발전하게 되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물론 누군가는 이런 지적을 받는 것을 못견디게 자존심 상해하고 그래서 이런 상황을 피하기 위해 처음부터 완벽한 영어를 하려고 노력하다 결국 영어를 아예 하지 못하게 되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완벽주의라고 하는데, 이 완벽주의의 나쁜 점은 인간이 완벽할 수 없기 때문에 결국은 중간에 포기하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지적은 언제나 말을 어느 정도 할 때 하는 지적이라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누가 3살짜리 꼬마한테 문법 어긋나게 말한다고 혼을 낸단 말인가? 우리 나라에서도 5-7살은 되야지 그 표현은 잘못된 것이고 이렇게 말해야 한다고 문법적 실수를 바로 잡아주지 않는가. 그러니 당신이 처음 영어를 시작한다면 지금 3살임을 명심하라. 그러니 되는 대로 말해도 된다는 소리이다. 그러니 당신이 완벽주의를 가지고 있어도 외국어를 배울때는 이를 포기해야 한다는 점 명심하길 바란다. 특히 말할 때는 더욱더! 이렇게 생각하는 것도 재미있겠다. 말은 완벽하지 않은 채로 완성되어 있다고!!

  그러나 영어를 시작한지 5-7살이 되어도 계속 3살짜리 꼬마의 실수를 반복하며 말하는 것도 문제이다. 글을 쓸 때는 문법이 중요하고 때로는 시간도 충분하다. 그렇다고 문법만을 기준으로 한국어 번역해서 작문하면 그 글은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없다. 왜냐하면 어법에 맞을 가능성은 시쳇말로 거의 영퍼이기 때문이다. ㅋㅋㅋ 그래서 필자가 해당 문장 혹은 숙어가 들어가 있는 문장을 통째로 외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ㅎ

  뿐만 아니라 쓰기에도 다양한 방식이 존재한다. 소설을 몇 개만 읽어봐도 작가마다 스타일이 다르고, 이와 소설, 시, 논설문 쓰기가 또 다른 것이 언어라는 것이다. 자신의 주장을 한다는 점에서는 같다고 해도 과학 분야의 보고서 및 논문 쓰기는 일반적 논술문과 또 다르다. 즉, 무엇을 하고 싶은지에 따라 특정 글쓰기를 배워야 하고 어디에 재능이 있는지에 따라 특정 글쓰기가 더 쉽고 조금만 노력해도 잘 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다른 스타일은 어떻게 익힐 것인가?

  즉 당신이 외야 할 것은 단어 혹은 숙어가 아니라 문장이라는 것이다. 문법도 필요 없다. 문장만 외면 그 안에 모두 들어가 있다. 왜인지는 모르지만 이것이 맞는 것 같아라고 느껴지는데 문법책 찾아보면 자신이 맞을 때, 바로 이 느낌을 길러야 하기 때문이다. 왠지 한국어를 익히듯 영어를 익히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가? 또한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그 외야 하는 문장들은 사전에 나온 뜬금없는 문장들이 아니라 자신이 현재 읽고 있는 그 책에서 해당 단어가 들어 있는 문장이라는 점 명심하기 바란다! 맥락이 없으면 문장도 외기 지루하고 잘 잊기는 마찬가지이다. 즉 시를 한편 외는 것이 쉽지 맥락에 어긋나는 문장의 나열을 외는 것은 정말 고역이라는 말이다.

2013년 8월 9일 금요일

학교 따돌림은 예방이 최우선인가?

  어제도 라디오를 듣고 있었다. 타지에서 오랫동안 생활했던 터라 한국어로 떠드는 소리가 듣고 싶었던 모양이다. 요샌 완전 중독이다. 그러던 중에 학교에서 따돌림 문제를 예방하자는 공익광고가 나오는 것을 들었다. 완전 절망이다. 아직도 예방을 떠들고 있다니 한국의 교육전문가들은 모두 돌대가리임이 분명하다. 진정 예방을 떠드는 것이 학교에서 일어나고 있는 따돌림 문제를 쉬쉬하게 하고 더 악화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그들은 모르는 것인가?

  이제는 따돌림은 언제나 발생할 수 있는 문제이고 발생했다고 해서 전혀 이상할 것이 없으니 모두 공개합시다라는 공익광고가 나올 시점이 아닌가? 그 시점은 과연 언제가 될 것인가? 이런 사고 체계 하에서 교내 상담교사의 존재가 유명무실하다는 이야기는 매우 당연하게 들린다. 이제는 좀 당연하게 생각하고 공개해서 정보를 나누고 어떤 도움을 주어야 하는지를 고민하자.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에게 상담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면 그렇게 하고 학급 전체가 집단 상담을 받거나 극기 훈련 같은 놀이를 제공해야 한다면 그것도 좋을 것이다.

  과거에도 학교 폭력은 분명히 존재했다. 단지 폭력을 행사하는 아이들이나 당하는 아이들이 현재처럼 주목을 받은 적이 없었을 뿐이다. 과거에는 아이들이라는 존재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과거 가정의 분위기만 생각해 봐도 이는 금방 납득이 가는 부분이다. 80년대까지만 해도 가정은 가장을 중심으로 분위기가 형성되었지 아이들은 부모를 따르는 존재들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이들의 수가 적어지면서 그 귀중도가 높아지고 가정은 아이들을 중심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이는 사회에서 아동은 중시하는 경향과도 맛물려 돌아간다.

  어느 사회에서나 폭력이 존재한다. 그것은 아이들의 사회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아이들은 선하니까 교육만 잘 시키면 모든 악을 예방할 수 있다는 착각부터 버리다. 아이들도 욕망이 있는 개개의 인격체들이다. 다만 지식과 경험이 적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미성숙하다는 고정관념을 어른들이 공유하는 것 뿐이다. 실제로 현재 중고등학생 정도의 청소년들은 조선시대에서 어엿한 성인으로 대접 받았다는 점을 상기해 보자. (물론 혼인을 해야 가능한 일이었다)

  따라서 이제 시각을 바꾸길 진지하게 제안한다. 학교에서 학생들 간에 폭력이 발생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것은 사회에서 사람들 간 폭력이 발생하기도 하는 것과 비슷하게 발생할 수 있는 문제이다. 물론 가능한한 예방하면 좋지만 모두 예방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문제다. 사회에서 폭력이 발생하면 경찰서에 신고하고 때로는 재판을 받아 그것이 정당방위였는지 여부를 가린 다음 가해자에게 처벌을 내린다. 학교에서도 이러한 시스템이 존재해야 한다. 더 이상 학생들 간에 일어난 일을 교사에게 알린다고 고자질이라는 호칭을 붙이지 말자. 학생들 사이에 일어난 일은 너희들끼리 알아서 처리하라고 방치하지 말자.

  아이들이 스스로 적극적으로 발생한 폭력을 신고하고 스스로 구제할 수 있는 길을 찾을 수 있도록 학교에서 도와주어야 한다. 이는 요새 성폭력, 성추행에 대해 아동들에게 어떻게 교육하고 적극적으로 신고하도록 가르치는 것과 맥락을 같이 한다. 제발 모든 것을 노력하면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자. 이렇게만 할 수 있다면 사실 공산주의가 이 세상에 불가능할 일도 없을 테니까? 공산주의는 그 자체가 사상적으로 불순한 것이 아니라 사상만 봐서는 더할 나위없이 좋은 것이다. 만인의 평등, 능력만큼 일하고 원하는 만큼 가진다. 완전한 유토피아이다. 그러나 이는 인간 본성을 거스르기 때문에 이땅에서 실현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이렇게 노력하면 뭐든지 잘 할 수 있고 바꿀 수 있다고 믿는 한국사람들이 공산주의는 절대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 필자에게는 참 아이러니이다. 다시 학교 폭력 따돌림 문제로 돌아와서 살펴 보면 적극적으로 피해사실을 알리고 피해 사실이 알려질수록 그 심각함은 더 공유되고 예방책도 더욱 많이 강구될 것이다. 그러니 예방하고 싶다면 피해사실을 무조건 공개하라!

  단 이 주장에도 맹점은 있다. 공개하는 방향으로 가서, 공개가 많이 될수록 더 좋은 학교로 칭한다면 학교간 경쟁적 공개가 발생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학생들의 개인정보 노출 위험, 사생활 침해 위험이 커지지 않을까? 이것은 어떻게 막을 수 있는지 머리를 맞대어야 한다.

2013년 8월 8일 목요일

아이에게 자신의 한을 풀지 마라!

  현재의 부모들은 자신이 어렸을 때 공부하라고 하는 집안 분위기, 사회적 분위기를 싫어했으면서도 자신의 아이들을 이해하기 보다는 더 극한의 경쟁으로 몰아넣으며 스스로 불안해 하고 있다. 단언컨데, 부모의 한을 풀기 위해 부족함 없이 아이들을 키우는 것은 위험하다. 어떤 측면에서? 그 아이가 행복해지는 면에서 아이를 방치하는 것 만큼이나 위험한 양육방식이다.

  우선 현재 가장 보편적인 한국의 양육방식을 보자. 그것은 아이 중심의 가정문화이다. 이것이 아이를 위한다고 생각하는가? 필자가 볼 때 이 방식은 아이를 망친다. 부부 중심으로 문화를 바꿔라. 혹은 애완동물을 기르는 것이 아이 중심의 문화를 완화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말도 있다. 아이는 엄격하게 키워야 한다. 그래야 아이에게 사회를 살아갈 수 있는 규율을 가르칠 수 있다. 질문에 잘 대답해주고 아이 의문을 함께 탐구하는 것과 부모가 뭐든지 아이가 요구하는 것은 다 들어주는 것은 다른 것이다.

  사실 다른 측면으로 보면 우리나라 만큼 아이가 혹사당하는 경우는 없을 것이다. 그것도 아이를 위한다는 명분하에! 왜 자신이 이루지 못한 것을 아이로 하여금 이루게 하는 것이 아이를 위하는 것인가? 혹 부모들도 이것이 자신을 위하는 것임을 알고 있는 것은 아닌가? 아이가 싫어하는 것을 자신들을 위해서 시키는 반대 급부로 아이의 다른 요구를 모두 들어주는 것인가? 아이에게 아이가 싫어하는 것을 억지로 시켜야 하니까 집안의 중심이 아이가 되는 것이 아닌지 스스로 의심을 해 보아야 할 때이다.

  부모들도 학창시절 공부만 해야 하는 현실에 힘들었을 텐데, 그 부모들이 커서 하는 짓은 아이들은 그런 지옥으로 유치원도 들어가기 전부터 몰아넣는 일인 이 아이러니는 무엇인가? 부모한테 보고 자란 것이 공부를 강요하는 것이라서 자기 자신에게도 똑 같이 아니 더 심하게 하는 것인가? 필자가 볼 때 이 답은 아니다. 한국사회의 경쟁이 더 치열해 졌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맞다. 즉, 부모님의 세대에 대학만 보내면 취업은 보장되었으나 이제는 아니다. 대학도 하도 많아서 어느 대학이냐가 중요하고 좋은 대학을 나와도  취업은 더 힘들어지고... 이렇게 변화하는 상황을 과거 부모세대는 예측이나 했을까? 현재 부모 세대는 미래를 예측하고 아이들을 내몰고 있는 것인가? 정말 영어만 하고 대학만 가면 자녀가 맞을 미래의 문제는 다 해결되는가? 미래에 생길 문제를 자녀들이 스스로 해결할 수 있도록 문제 해결 능력을 길러 주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일례로 시각을 세계로 넓히면 조금 다르게 보일 것이다. 국내에서 너무 치고 박으며 살지 않아도 된다. 해외 취업은 부모가 해보지 않았으니 도와줄 수 없는 영역이다. 이런 상황에서 아이들의 미래를 열어주려면, 아이들이 여러 위기를 극복하길 바란다면 우선 아이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줘야 한다. 남이 이게 좋다더라 저게 좋다더라 할 때 팔랑귀로 아이들 학습지시키고 학원 보내서 돈 버리고 아이들 몸도 버리지 말고 (혹사 시키지 말고) 아이들 해외 여행 계획이나 세워라. 부모하고 놀러가는 것이 바로 아이들을 위하는 길이다!

  지금부터라도 애꿎은 아이들에게 자신의 과거 욕망은 그만 투영하고, 엄격하게 기르되 자주 놀러다니는 진정으로 아이들을 위하는 부모들이 되길 바란다. 

모국어도 잊는다

  필자가 영어권 국가에서 만난 수 많은 사람 중에 호주에서 20년은 넘게 산 한 일본인 신사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필자가 아는 한 이 일본분은 영어권 국가에서 산 시간이 일본에서 산 시간보다 길고, 직업적으로도 성공하였다. 뿐만 아니라 그분의 영어에 대해서는 원어민들도 칭찬이 자자하였다.

  한번은 그 분과 영어습득에 대한 대화를 나누었는데, 능숙하게 공문서를 작성하는 데 까지 10년은 걸린다는 조언을 해주셨다. 또한 그분이 알아듣지 못하는 영어는 그 분의 나이대의 원어민들도 못알아듣는 젊은이들의 슬랭이 전부라는 설명도 해주셨다. 의사소통에서 거의 완벽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당시 필자는 호주 아해들이 조금만 빨리 말을 해도 못 알아 듣던 터라 이 것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부러웠다.

  그런데 이분이 한번은 필자에게 이런 하소연을 한 적이 있었다. 그래도 일본어로 듣는 정보가 영어로 듣는 것보다 기억에 더 잘남고 일본어로 읽는 것이 영어로 읽는 것보다 더 빠르다고. 물론 필자는 여전히 낙관주의로 점철되어 나는 금방 영어로 읽는 속도가 국어로 읽는 속도만큼 올릴 수도 있고, 알아 듣기만 하면 영어로 듣던 국어로 듣던 기억에는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나는 다를 것이라고 생각하던 시절이어서 어떻게 위로를 해드려야 할지 잘 알 수가 없었다. 아무튼 결론은 '역시 모국어의 파워는 강하다'로 내렸다.

  이런 와중에 근래에 유학을 오거나 여행을 온 일본인 친구들이 그 분과 일본어로 대화를 하는 모습을 목격하게 되었다. 필자는 외국에서 오래 살면 모국어도 잊혀진다는 사실을 풍문으로 들어 알고 있었지만, 사실 믿어지지는 않았다. 게다가 그 일본분은 여전히 일본어가 편하다고 하시지 않는가? 하지만 그 분과 대화를 하고 나서 젊은 여행자가 유학생들이 한 평은 그 분이 일본어를 잘 하시지만 그 일본어가 꽤 옛날 일본어라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무슨 소리인지 가늠하기가 어려웠다.

  생각해보자. 우리가 20 -30년 전 한국에서 사용했던 한국어를 현재 듣는다면 어떤 느낌을 받을까? 아주 단적으로 이정도 오래된 티비 드라마를 지금 다시보면 복장이며 화장 등이 촌스러울 뿐만 아니라 그들의 발성도 적응하기 어렵게 어색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중국의 전통을 찾아 볼 수 있는 곳은 현재 중국이 아니라 미국의 차이나 타운이라는 말이 있다. 외국 지역에 살면 다들 애국자가 된다고 했던가. 그들의 말을, 전통을 지키려는 노력은 그 어떤 변화를 비롯한 발전을 허락하지 않게 되고, 결국은 그대로 남게 되는 것이다.

  한 5년을 영어권 국가에 머무르고 나니, 필자도 모국어 망각현상에 동참하게 되었다. 처음 이 현상을 느낀 것은 '양봉'이라는 인공적으로 벌을 길러 꿀을 따는 농축산업의 일종을 가르키는 단어가 생각이 나지 않아서 충격을 받았다. 이 단어는 필자에게 매우 익숙한 단어였기 때문에 더욱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몰랐던 듯 싶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한동안 이런 현상은 계속되었다. 그런데다가 처음 듣는 신조어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멘붕, 백퍼 이런 말들은 처음 듣자마자 이해할 수 있는 말들이 아니었다. 모국어로는 신조어가 나와도 바로 이해할 수 있다는 필자의 신념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그 일본 분은 컴퓨터를 일본어로 구동 시켰다. 일본어를 잊지 않기 위한 노력이 아닐까 싶다. 모국어이든 외국어이든 언어는 노력하지 않으면 익힐 수도 지킬 수도 없는 것들이다. 또한 외국어를 완벽하게 하기는 더욱 힘들다. 원어민이 칭찬해 마지 않는 이분도 원어민이 지적하면 무조건 영어 표현을 바꾼다. 당시 문외한이었던 필자는 이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영어를 어느 정도 하면 어떤 이유로 특정 단어를 선택했을 텐데, 지적 받는 대로 문서의 표현을 바꾼다는 것이 줏대도 없어 보이고 이상했다. 만일 누가 내 국어 표현을 그렇게 지적했다면 필자는 무시했을 것이다.

  당시 필자가 가지는 국어에 대한 자신감이 좀 지나치다는 점을 인정해야 하겠다. 나중에 필자 자신의 국어에도 문제가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공문서를 작성한다면 필자는 얼마나 많이 국어사전을 펼칠 것인가? 특히나 외국에서 5년을 살다 보니 가끔은 잘 하던 띄어쓰기도 헷갈리는 형편이다. 이 상황에서 필자는 다른 사람의 지적을 무시할 수 있을까? 국이든 영어든 어느 언어이든 언어는 어쩌면 영원히 정복 불가능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을 때 이 모든 것이 이해가 갔음은 물론이다.  

2013년 8월 7일 수요일

어릴 때 부터 영어에 집중하면 생길 수 있는 일들

  요새 아이들 중 어릴 때부터 영어를 배운 친구들이 많다. 어떤 아이들은 유치원 때부터 혹은 초등학교 때부터 영어를 배우고 심지어 영어로만 수업을 한다고 한다. 이외에도 자신의 아이를 원어민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은 끝이 없다. 누구는 아이를 낳을려고 출산시기에 영어권 국가에 머물고 어릴 때 이민을 가기도 한다. 어릴 때부터 하면 누구나 영어를 잘 하게 될 것이라는 청운의 희망을 안고!

  언제나 그렇듯이 모든 꿈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분명 어릴 때부터 영어를 접하고 배우는 데 무수한 장점이 있을 것이다. 최소 일부에게서라도 그런 좋은 결과가 나왔으니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눈이 벌개져서 어릴 때 영어를 접하게 하려고 이 난리가 아닌가? 그 중 일부는 과학적으로도 입증되었다. 그 첫째가 발음이 좋아진다는 것이다. 누누히 강조하지만 여기서 발음은 t를 r로 발음하느냐, r을 얼마나 굴릴 수 있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이건 accent의 문제이므로 이를 다룬 이전 글을 살펴 볼 것). 한국어와 영어의 다른 발음체계를 듣자마자 구별하고 문제없이 소리를 낼 수 있다는 뜻이다. 둘째, 만일 그 아이의 언어능력이 뛰어나지 못해도 어릴 때 부터 열심히 했다면 최소 초중학교 때 까지는 중간의 성적을 유지할 수 있다. 셋째, 어릴 때 부터 영어를 시작해서 발음이 좋아졌는데 마침 그 아이가 언어능력이 뛰어나다면 국어는 물론 영어도 잘 해서 나중에 커서는 두 언어를 모두 잘 구사할 수 있다. 아마도 이것이 누구나 바라는 결과일 것이다. 하지만 이 현상이 모두에게 일어나는 것 같지는 않다. 그래서 다음에는 발생 가능한 문제점을 살펴 보고자 한다.

  가장 큰 문제점은 그 아이가 어릴 때 언어를 헷갈릴 수 있다는 점이다. 이는 필자가 주변에서 보아 온 실질적 사례이나 아직 과학적으로 연구되고 있는지는 불분명하다. 이런 현상은 한국과 영어처럼 간격이 큰 언어에서 발생하는 듯이 보임으로 한국에서 신속하게 연구를 시작해야 한다. 어떤 경우에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것인지. 이전 글에서 critical period를 언급한 적이 있다. 생후 몇 년 이내 언어를 접하지 못하면 그 이후에는 언어를 발달시키지 못하게 되는 데, 그 대표적 예가 늑대소년이다. 이 소년은 너무 커서 인간들에게 발견되었기 때문에 나중에 도구를 이용해서 밥 먹는 법 등 사회생활에 필요한 양식등을 배울 수 있었지만 끝내 언어는 배울 수 없었다. 즉 어릴 때 부모가 과욕을 부리거나 잘못된 방법으로 두 언어를 가르쳐서 언어를 배우지 못하면 그 이후의 영향은 과히 치명적일 수 있다. 이런 점을 확인하기도 전에 전 국민실험에 돌입하게 된 한국의 교육환경은 어쩔 수 없더라도 가급적 빨리 이런 점을 확인해야 한다. 이런 연구는 유럽에서는 되어 있지 않는데, 그들의 언어는 너무 비슷해서 유아들이 이런 언어 헷갈림 현상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쪽 언어학자들에게 물어봐도 유아들이 두 개의 국어를 배우지 못할 수도 있다는 사실에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고 국내 연구는 전무해서 결국 아이들만 가장 큰 위기에 놓이게 된다.

  두번째로 그 아이가 영어를 익힌다 해도 영어를 싫어하게 될 수 있다. 이는 자신이 어릴 때 부모가 강요하던 것을 얼마나 싫어했는지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다. 또한 우리나라 대학원에 얼마나 많은 학자들이 공부가 좋아서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공부는 싫지만 학위를 딸 목적으로만 들어오는지를 살펴보아도 알 수 있다. 한국인들은 스스로 자부하듯이 머리가 좋은 국민이고 호기심은 인간이면 누구나 다 있는데, 왜 이리 공부하는 것을 싫어하는지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바로 강요 받아서 그렇다. 즉 영어를 강제로 익히면 어느 정도는 할 지 모르지만 영어의 아인슈타인 같은 사람은 절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만일 당신의 목적이 영어로 뛰어난 아이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어느때고 중간은 해야 한다고 믿는다면 아이들이 싫어해도 영어학원 보내고 압력넣어도 무방하다고 본다. 그렇게 훈련된 아이들은 중간은 할 것이다. 그 중 똑똑한 아이들이 있다면 꽤 잘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아이들이 자기가 하는 것을 좋아하게 될 가능성의 정말 낮다. 아이의 행복을 바란다면 이것이 정말 좋은 방법인지 다시 고민해보기 바란다. 반면 아이들이 공부를 재미있어 해서 하고 영어도 좋아해서 하길 바란다면 그러지 않는 것이 좋지 않을까? 이 경우 때로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하기 시작만 한다면 잘 할 것이고 또 즐겁게 할 것이다. 만일 끝까지 싫어서 안 할 수도 있는데, 아이가 정말 싫어한다면 안하는 것은 또 어떠한가?

  세번째로 그 아이가 영어도 잘 익히고 영어를 좋아하게도 될 수 있지만, 이 경우 국어를 못하게 될 확률도 같이 높아진다는 사실이다. 우리에게 양손이 있지만 언제나 양손을 같은 정도로 빈번하게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에게 우세한 손이 있다. 오른 손을 많으 쓰는 사람, 왼 손을 많이 쓰는 사람. 이에 따라 나이가 들면  손의 근육 발달 정도가 달라지고 특정 팔로 낼 수 있는 힘도 달라진다는 점 누구나 다 알고 있을 것이다. 언어도 마찬가지이다. 영어에 집중하면 국어가 상대적으로 약해질 수 있다. 물론 이게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 필자는 말하고 싶다. Why not?

  지금까지 어릴 때부터 영어를 집중적으로 가르칠 때 생길 수 있는 장단점을 살펴 보았다. 영어는 그러니까 외국어는 피겨스케이팅과 닮은 점도 많지만 다른 점도 많다. 우선 둘 다 재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재능이 있는 경우 어릴 때 부터 잘 가르치면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놀라운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하지만 외국어는 나이 스무살에 그 능력이 피크로 오르고 이십대 후반이면 거의 반드시 은퇴를 해야 하는 피겨스테이팅과는 매우 다르다. 언어는 오히려 훨씬 더 늦은 나이에 꽃을 피우는 경우가 더 많고 죽을 때까지 은퇴같은 것은 하지 않아도 된다. 이 점을 살펴 무조건 무조건 어린 나이에를 울부짖으며 검증되지 않은 실험으로 몰아쳐 가는 주변에 아무 생각없이 불안해서 동조해 버리는 우를 범하지는 않길 바란다.

  결론적으로 필자가 보기에 중학교 이전에 영어를 배운다고 그다지 중학교때부터 배우는 것과 실력에서 큰 차이가 나는 것 같지는 않다. 이전 글에서 봤듯이 모국어 accent가 있다고 영어를 못하는 것은 아니다. 특정 accent와 broken English를 동일하다고 생각하지 말자는 이야기도 또한 계속 반복되고 있다. 노력이 좀 필요하겠지만 상이한 발음체계도 구분할 수 있다. 예컨데 v와 b 소리가 모국어에서 하나의 소리 범주에 속한다면 이를 구분하기가 처음에는 어렵겠지만 그렇다고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연습을 통해서 구분하는 것이 가능하다. 필자의 경우만 하더라도 이 둘을 문제 없이 구분한다. 만일 순전히 critical period 이후에 배웠다는 이유만으로 우리말에 없는 발음 구분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의 언어 능력은 어느 정도 일까? 이에 대한 연구도 필요할 듯 싶다. 만일 이들은 언어능력이 제한된 사람들이라면, 그들이 어릴 때부터 한다고 하더라도 결론적으로 영어를 잘 하게 될까? 물론 발음은 구분하겠지만 그렇다고 영어를 잘 하게 될 것이냐는 말이다. 만일 발음만 좋고 영어를 못하게 된다면 이것은 또 무엇을 위한 고생이었단 말인가? 언제나 투입 대비 결과를 비교해 보아야 한다.

2013년 8월 6일 화요일

모국어 accent는 없어지지 않는다.

  중학교 때부터 영어를 배우면 영어의 모국어 accent를 없앨 수 없다. 그것은 모국어의 소리 범주에 굳어지는 나이가 초등학교 6학년에서 중학교 1학년 사이에 오기 때문이다. 이를 심리학에서는 critical period라고 한다. 따라서 이 이후에 영어를 처음 접하면 모국어의 소리 범주에 벗어나는 미세한 소리를 구분하는 능력이 사라지게 되어 영어를 원어민처럼 하게 되기 보다는 외국인처럼 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한국인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인도인(Indian), 프랑스인, 독일인 모두에게 해당된다. 이들 국적의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하다 보면 그 사람들의 영어에서 그 나라 특유의 accent가 묻어남을 알 수 있다. 그렇다고 아무도 그들에게 영어 못한다고 욕하지 않는다. 우리처럼. 우리도 사실 우리의 accent만 혹은 동아시아인의 악센트만 비하하지 다른 나라 사람들의 악센트는 신경쓰지 않는다. 물론 그 이유는 부분적으로 그 사람들의 영어를 못 알아 듣기 때문이다.

  많은 한국인들이 인도의 공용어가 영어라고 생각하는 데 사실 인도의 공용어는 두 가지다. 힌두어와 영어. 그래서 인도에 가면 대학을 나온 사람들과 영어로 쉽게 대화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대학 교육을 받은 사람들에 한한다. 교육을 받지 못한 많은 Indian들은 일반적인 우리나라 사람만큼(?) 밖에 영어를 하지 못한다. 필자가 학회참석차 인도에 갔을 때, 필자는 그들의 영어를 이해하기가 좀 힘들었다. 이 상황은 또 하나의 좌절을 필자에게 안겨주었다. 이제 좀 호주영어 accent에 적응했나 싶었는데 또 다시 필자가 이해할 수 없는 영어 accent  등장한 것이다. 아, 이 accent들은 모두 언제 다 극복할 수 있을까?

  워낙 Indian들이 영어 잘 한다는 평판을 많이 들었기 때문에 필자는 열심히 그 accent를 파악하려고 노력할 뿐이었다. 필자는 이 상황을 아직 필자의 영어가 부족해서라고만 해석했던 것이다. 그런데, 반전은 한 영국인 발표자가 발표를 하고 한 Indian 연구자가 질문을 하면서 시작되었다. 그 영국인이 그 인디안의 영어를 전혀 알아듣지 못한 것이다. 두어번 다시 말씀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여전히 의사소통이 되지 않아서 그 중 영어 accent가 좀 다른 Indian 행사진행자가 나서서 그 둘의 영어를 통역해 주기 시작했다.

  모두가 영어를 사용하는데, 통역이 있어야만 의사소통이 되는 이 황당한 사건은 두고두고 회자 되었다. 필자가 나중에 영국에 갔을 때 당시 이 학회에 있었던 사람들이 이 사건을 기억해 냈고, 같이 있었던 사람들 중에 이 학회에 없었던 사람들은 많이 놀라는 눈치였다. 대부분 이 인도 학회에서 일어난 영어간 통역 사건을 웃어 넘겼지만 이 사건이 필자에게 준 충격은 상당했다.

  물론 첫째는 필자에 대한 것이었다. (사람이 자기 중심성을 벗어나기는 참 힘든 일인 듯 싶다.ㅋㅋ) 그것은 필자의 영어가 상당한 수준에 도달했다는 것이다. 영국인이 알아듣는 것은 나도 알아듣고 그들이 못 알아드는 것은 나도 못알아들었던 것이 아닌가? 즉 필자가 못 알아 들은 Indian의 영어는 필자의 영어가 모자라서가 아니라  힌두어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필자의 입장에서 그들의 accent는 이해하기 힘들었던 것이다. 사실 그 언어적 배경을 모르는 accent는 적응하는 데 시간이 꽤 걸린다. 그것은 힌두어 뿐 아니라 초반에는 독일어,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등을 몰랐기에 유럽에서 유학온 학생들의 accent를  이해하기 어려웠고 그래서 그들과 대화하는 것도 쉽지 만은 않았다.

  둘째는 훌륭한 영어를 사용해도 accent가 다르면 영어를 모국어로 하는 사람들도 잘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이었다. 사실 이 사건이 필자가 원어민과 동시에 같은 어려움에 처하는 그런 경험이었다. 필자가 영어를 못해서 인디안들의 영어를 이해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니! 이 얼마나 격세지감이 느껴지는 일인가? 물론 그렇다고 필자가 원어민과 같은 수준으로 영어를 구사하게 되었다는 억지를 쓰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 인디안의 힌두어 accent가 너무 강해서 영국인이 알아듣지 못했지만 여전히 인디안들의 영어는 훌륭하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가 안다. 심지어 영어 어학연수를 인도로 가는 사람들도 있지 않는가? 또한 그들이 다른 영어권 국가에서 공부하거나 생활하게 되면 1-2년 만에 현지 accent에  적응하게 된다. 마치 우리나라에서 다른 지방에 가면 그 지역 방언에 익숙해지는 데 일정 정도의 시간이 걸리는 것처럼 그렇게 현지 영어에 적응해 낸다. accent와 영어 실력이 상관없음을 다시 한번 보여주는 이야기가 아닌가? 그리고 한국인들에게 의미심장한 메세지를 주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 메세지는 다음과 같다. 첫째, 같은 수준의 영어를 해도 특정 accent가  강하면 서로 못 알아들을 수도 있다. 즉 accent가  다르다고 영어 실력이 다른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따라서 당신이 한국인이라면 그리고 한국어를 모국어로 하고 있다면 한국인의 accent에 자부심을 가질지어다.

  둘째, 중학교 때부터 영어를 배우기 시작해도 영어수준이 상당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이전 글에서도 밝혔듯이 인도에서 영어교육은 중학교 때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인도 영어에는 힌두어의 accent가 강하게 남는 것이다. 물론 이는 아주 정확한 말은 아니다. 인도에서 힌두어는 영어처럼 공용어이지 사실 인도의 각 지방에서는 수많은 고유 언어가 있다. 따라서 일부 인도인들에게 힌두어는 영어처럼 외국어일 가능성이 높다. 마치 북경어와 광둥어가 서로 외국어처럼 다르듯이 말이다. 어찌됐든 인디안들은 중학교에서 부터 영어 교육을 받기 때문에 그들 영어에는 힌두어를 비롯한 그들 모국어의 accent가 강하게 남지만 영어 수준은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 바꾸어 말하면 한국인 지도자가 미 의회에서 연설을 할 때 자막이 나가고 발음이 원어민 같지 않아도 그 영어는 훌륭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필자는 왜 한국인이 영어로 미의회에서 연설하는지 모르겠다. 한국어로 해야지!)

  셋째, 이미 완벽하게 영어를 하는 사람들이야 말로 1-2년 안에 현지에 적응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것도 적응력이 끝내주는 경우에 한하지 않겠는가하는 조심스런 생각이 든다. 사실 우리가 보는 Indian들도 영어권 국가에서 성공적으로 정착한 예들 뿐이지, 성공하지 못한 인디안들이 얼마나 되는지와 같은 통계를 접한 적은 없다. 이런 점은 한국인들의 경우와도 상통한다. 즉, 한국인이 영어권 국가에서 살게 되면 1-2년만에 영어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무모함의 정체를 이제는 밝혀야 하는 시점이다. 1-2년이 아니면 4-5년정도면 영어에 통달한다고 굳게 믿는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1-2년 산 사람들보다 4-5년 산 사람들의 영어가 더 뛰어날 확률이 단연 높다. 하지만 원어민과 같은 수준으로? 그건 Indian들에게나 기대할 수 있는 수준이라는 점을 좀 명확히 갖자.
(그리고 그 Indian들이 대학을 나오고 대학교를 나와도 힌두어 철자를 외국인에게 가르쳐주기 힘들어 하는 수준이라는 점도 아울로 기억했으면 좋겠다.)

언어는 수단이다.

  영어가 한국사회에서 그 중요성이 점점 더 높아지자 많은 사람들의 목적이 영어를 잘하는 것이 되었다. 그런데 밑도끝도 없이 영어잘하기란 말은 무슨 소리인가? 필자가 누누이 이야기하듯이 '영어잘하기'란 말은 '국어잘하기'라는 말과 동격이다. 도대체 무엇을 위해 왜 영어를 잘 하고 싶어하는 것인가? 여기서 무엇을 위해가 영어 잘하기보다 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하다 못해 지금 맘에 두고 있는 여자분 남자분을 꼬시기 위해서라는 목적이라도 가져야 한다. 다행히 그 상대분이 영어를 잘 못하시는 분이라면 한국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t와 l 구분없이 r로 발음하는 영어 좋은 전략이다. 하지만 그 상대분이 영어를 잘 하신다면 다른 전략을 사용해야 한다. 다른 전략은 이 블로그 다른 글에서 여러번 소개했으므로 이전 글들을 참고하시기 바란다.

  영어가 목적이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영어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국어를 잘 하고 싶을 때도 소설가가 되고 싶다는 높은 꿈 뿐 아니라 하다 못해 논설문을 잘 써서 수능 논술점수를 높이려는 등의 이유가 있다. 그래야먄 무엇을 해서 자신의 국어 구사 능력을 높일지 답이 나오는 것이다. 수능에서 국어시험 점수를 높이려는 목적이면 어떤가?

  따라서 무엇을 위해 영어를 하려고 하는가 목적의식을 가지자. 그리고 그 목적을 위해서만 매진하자. 어차피 모든 것을 잘 할 수 없다. 원어민 중에도 영어를 스스로 잘한다고 여기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한국인들의 한국어 실력을 봐라. 객관적으로도 잘하는 사람 별로 없다. 그래도 밥벌어먹고 잘 산다. 밥을 못 벌어먹는 경우에도 그 이유가 한국어 실력인 경우는 거의 없다. 물론 한국어로 밥을 벌어먹고 사는 사람 별로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세상 사 다 똑같다.

  즉 영어로 밥을 벌어먹고 살 게 아니라면 특정 목적을 위해 그 목적이 요구하는 수준까지만 하면 된다. 더 이상 자신의 완벽하지 못함에 자책하지 말자. 필자는 신해철 팬인데, 신해철이 이 세상은 텅빈채로 완성되어 있었다고 했다. 감탄하지 않을 수 없는 명언이다. 사실 이 말처럼 우리의 언어실력은 완벽하지 않은 채로 완성되어 있었다. 그것이 한국어이든 영어이든 말이다. 때로 우리는 우리가 자유자재로 구사한다는 모국어로도 얼마나 많은 오해가 일어나고 얼마나 표현할 수 있는 폭이 적은가를 매일매일 느끼고 산다. 인간의 언어체계는 그 자체로 너무 한계가 많다. 그러니 아무리 언어능력이 뛰어나도 본질적으로 한계가 많은 언어를 완벽하게 구사한다는 것은 불가능이다.

  자신은 영어시험성적을 올리는 것이 입사 혹은 승진에 중요하기 때문에 영어 시험공부만 한다고 영어 잘못 공부한고 있다고 스스로 주눅들지도 말고 남들 욕하지도 말자. 그 사람은 자신의 목적하에 충실하게 영어공부하고 있는 것이다. 욕을 먹어야 하는 사람들은 영어 실력을 늘려서 해외에 가서 사용하고 싶은 목적을 가지고 있으면서 영어 시험공부만 하는 사람들이다. 영어 시험 성적 늘어도 해외 가서 입도 뻥긋 못한다. 이럴 때 회화 학원에 등록을 하든 듣기 부터 훈련을 시작하든 해야 할 것이다.

  영어로 밥을 벌어먹지는 않더라도 밥을 벌어먹는데 영어가 필요할 수는 있다. 위에서 말한 승진이나 입사, 혹은 회사내 업무 중에도 외국계 회사와 협업을 한다거나 외국에 물건을 팔아야 한다면 많은 문서를 번역하거나 외국인과 의사소통을 해야 할 것이다. 자신의 역할에서 요구되는 만큼, 혹은 자신이 감당하고 싶은 역할 만큼, 즉 밥 벌어 먹고 살 수 있는 만큼만 노력하고 사용하면 된다.  물론 어떤 것은 언어 재능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서 거대한 회사의 국제 비지니스 업무 팀의 중역이 되고 싶다거나 자신의 창작 욕구를 영문 작품으로 해소하고 싶은 경우, 이공계를 제외한 학문 영역에서 연구를 하고 싶다면 언어재능과 각 분야에서 요구하는 예술적, 사회적, 학문적 재능이 필요하다.

  하지만 어떤 것은 언어재능이 그다지 요구되지 않는다. 작은 가게를 차려 소매로 장사를 한다면 고차원적 언어능력보다는 친화력과 같은 다른 재능이 더 필요할 것이다. 따라서 기본적 영어 실력만으로도 외국에서 장사를 할 수 있다. 만일 한인타운에서 한인들과 협력하여 가게를 운영한다면 그 마저도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그 사람이 영어를 못한다고 비웃을 필요 없다.

  우리가 가끔 들리게 되는 구멍가게 아저씨가 자신의 말을 잘 못 알아듣고 동문서답을 한다고 해서 우리가 그 아저씨의 국어실력을 논하는 일이 얼마나 있는가? 우리는 일반적으로 그런 사람을 꽉 막힌 사람이라고 하지 국어를 못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런 점은 한국에서 가게를 하든 미국에서 가게를 하든 다 똑 같은 것이다. 사실 자신에게 자부심이 없어서 남에게도 가혹한 것이다. 이제 자기 비하 그리고 타인 비하는 그만하고 자신의 목적에 맞게 영어를 익히고 그렇게 익힌 영어에 제발 만족 좀 하고 살자!

2013년 8월 5일 월요일

영어, 재미있게 하자!

  영어 재미있게 배우자는 말이 현실적이지 않다고 볼 수도 있다. 실제로 재미있을 수만도 없을 것이다. 처음에는 재미있더라도 어느 순간에는 스트레스를 받을 것이다. 혹은 초반엔 스트레스였지만 나중에 재미를 느낄지도 모른다. 어쨌든 적절한 스트레스는 활력의 근원이다. 실제로 어떤 자극도 없는 상황에서는 사람이 미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그렇다면 자신의 도전정신을 자극할 수 있도록 적절히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 관건이다.

  실제로 부모가 자녀들 영어교육에 소극적인데 이런 환경에 오히려 자극받아서 스스로 더 열심히 영어를 공부하는 친구들도 있다. 필자가 본 첫번째 예는 집에서 도와줄 수 없는데 네가 정말 어학연수 갈 수 있겠냐는 식구들의 의심에 더 가겠다는 욕구가 생겨서 독하게 스스로 돈을 모아서 마침내 어학연수길에 오른 한 학생의 이야기이다. 사실 필자도 이런 스타일이다. 어릴 때부터 공부를 하려고 마음 먹었다가도 엄마가 공부하라고 소리지르면 펴던 책도 덮고 절대로 공부를 하지 않았다. 내버려 두어야 뭘해도 하던 필자같은 스타일의 아이들에게는 강요하지 않는 것이 필자를 공부하게 만드는 가장 좋은 방법이었던 것이다.

  두번째 예로 우리의 취미생활을 들 수 있다. 왜 베드민턴을 치는가? 땀나고 더운데?? 베드민튼을 치는 사람들에게 물어봐라. 얼마나 재미있는지 모른다고 대답할 것이다. 왜 산을 오르는가? 어차피 내려올 건데?? 등산가에게 물어봐라. 얼마나 산을 타고 싶은지 알 것이다.
영어도 마찬가지! 영어 왜 하는가? 어차피 까먹는데... 잊어도 계속 익히려는 노력 속에 영어는 산이 되고 당신은, 자녀들은 등산가가 될 것이다. 그럴려면 우선 당신이 자녀들이 영어를 좋아해야 한다. 어떻게 하면 특정 영역을 좋아할 수 있을까? 사실 무엇을 좋아한다는 것은 스트레스다. 이 말이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자기유발 스트레스라고 해야 할까? 그것이 하고 싶어서 죽겠는데 어찌 스트레스를 받지 않겠는가? 당신은 누가 당신에게 하라고 강요하던 것을 좋아해 본적이 있는가? 이에 대한 대답이 일정부분 당신에게 해답을 줄 것이다. 어차피 영어로 먹고 사는 게 아니면 영어는 취미다. 취미를 정말 열심히 하는 사람들 있는데 보고 배우자. 어떻게 영어를 취미로 만들지 ㅋ

세번째로는 누구나 아는 명언! 공부든 취미든 어차피 스스로 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어릴 때는 부모가 구박하고 밥 안 주고 하면 강제로 하게 만들 수 있지만 나중에는 결국 스스로 해야만 한다. 물론 스스로 좋아할 때까지 내버려 둘 때에도 문제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가장 단적으로 평생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영어를 할 필요가 반드시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 영어 못해도 먹고 살 수 있다는 점만 잘 알면 이 정도 risk는 감수할 수 있다. 의심쩍은가? 바로 당신을 봐라. 영어 못하지만 얼마나 잘 살고 있나? 정 필요하면 통역을 쓰면 된다. 사실 세상에 영어 잘 하는 사람은 널렸다. 영어를 못하는 나는 다른 일로 돈을 벌고, 영어를 잘하는 너는 내가 고용하고, 이정도 역할 분담만 익숙해지면 아무 문제도 없으련만 너도 나도 모두 영어를 잘해야 한다는 그 신념 하나로 이렇게 수 많은 자원을 낭비하며 아이들을 말더듬이로 만들다니 통탄할 노릇이다.

  그러나 아이들이 스스로 영어를 좋아하게만 되면 그 땐 부모도 못 말린다. 문제는 어른들이 자신의 자녀들의 미래를 결정해줄 수 있다고 믿는 데서 온다. 정말 당신이 아이들보다 현명하다고 생각하는가? 나이들어서? 경험이 쌓여서? 솔직해 보자. 자신들도 잘 모르겠고 불안하니까 아이들 교육 남들 하는 대로 맹목적으로 따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면서 '이게 다 너희를 위하는 길이야'라고 아이들을 압박하며 스스로 자위하는 것은 아닌가? 난 아이들에게 할 만큼 했다. 그러니까 너네가 공부를 못하면 너네 잘못이다...라고 정당화하고 싶어서! 정말 이렇게 하는 것이 정말 최선인가?

  어차피 미래를 확신할 수 없다면 아이들이 하자는 때로 따라 주자. 아이들은 놀아야 하고 놀면서 또 많은 것을 배워야 한다. 친구는 어떻게 만들고 또 신의는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 공중 도덕은 어떤 것이 있고 그런 것을 어기면 어떻게 되는지 등등의 수 많은 것들을 배워야 한다. 물론 외국어도 그 중에 하나다. 또한 아이들을 혹시시키지만 않는다면 외국어 열풍은 좋은 것이다. 모국어와 다른 언어를 배우고 그 언어가 모국어로 사용되는 나라를 여행해보고 시야극 키우는 것은 얼마나 좋은 것인가?

  여기서 단서에 주목해야 한다. 아이들을 혹사시키고 강제시키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근래 어린 연예인들을 혹사 시킬 수 없도록 하는 법이 제정되었다고 들었다. 이런 법이 어린이 인권에 준한 것이듯 아이들이 하루에 공부하도록 강제하는 시간도 제한하는 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로 하여금 돈벌도록 노동시키는 것만이 혹사가 아니라 하루에 몇 시간 이상 공부에 내모는 것도 혹사다. 수에 대한 개념도 없는데 구구단을 외라고 강요하는 부모는 아이를 방치하는 부모만큼이나 나쁘고 이렇게 아이들을 몰지 않도록 인권 조례 정해야 한다.

  원더풀 마마 25회에서 부부가 이혼위기에 있는데 고모가 엄마가 아이에게 상황을 설명해 주며 하는 말이 있었다. 이 말은 얼마나 어른들이 아이들만큼 수준 떨어지는지를 잘 보여준다. “너도 친구들과 싸워서 사이가 나빠지기도 하잖아? 어른들도 마찬가지야. 엄마 아빠도 지금 사이가 나빠진거야. 이해하지?” 반대로 말하자면 아이들도 알 것은 다 안다는 소리다. 이제부터 아이들 진로는 아이들이 원하는 대로 가도록 해주자. 사실 아이들에게 무엇을 강요할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무엇을 원할 때 그것을 들어줄 수 있는 부모인지 생각해보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아이가 원하는 것을 해 줄 수 없을 때 그 심정이 참담한 것 아니겠는가? 모든 부모가 아이들이 원하는 것을 해줄 능력이 있는 것은 아니다. 이를 위해 사회적 차원에서도 노력이 필요하겠다. 제발 자신의 아이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말자. 다른 아이들이 바로 그렇게 소중한 당신의 아이들과 함께 지내고 친구가 되고 사랑을 하는 존재들임을 명심하자.

영작에 대하여...

  지금까지 발음, 읽기, 단어장 만들기, 말하기 등에 대해서 살펴 보았다. 이번에는 어떻게 쓸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쓰기에서는 필자가 말하기에서 강조했던 사항이 대부분 포함된다. 즉 절대 한국어로 생각하고 그것을 번역하지 말라는 것이다. 또한 어법과 문법을 구분하여 문법 뿐 아니라 어법에도 신경써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친구에서 메세지를 보내거나 채팅을 하는 것이 아닌 한 쓰기에서는  어법과 문법의 중요성이 말하기보다 훨씬 더 부각된다. 따라서 사전을 찾아보는 것은 필수다.

  작문의 초기에는 한영사전을 찾아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무엇보다 시간도 절약되고 쉽다. 처음에 너무 시간이 많이 들고 어렵다 보면 많은 사람이 질려서 포기하게 된다. 따라서 처음엔 좀 부정확하더라도 쉬운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다. 그러나 이 방법이 너무 쉽고 좀 더 정확하게 표현을 사용하고 싶다면, 한영사전에 나와있는 그대로 무작정 쓰는 것이 아니라 해당 표현이 좋은 표현인지 검색엔진으로 한번 더 찾아서 해당 표현이 사용된 예문을 찾아보고 수정하거나 결정하는 것이 더 나은 방법이다. 영한 사전에 대해서 한번 비판했듯이 한영사전에도 오역이 무한대로 많다. 따라서 이렇게 찾은 표현은 검색 엔진으로 확인해 보아야 한다. 영어 표현을 읽기에 무리가 없다면 구글로 확인해 보는 것이 다른 검색 엔진보다 좋은 방법이다. 단, 원어민들도 한국사람들이 한국어 사용할 때처럼 이상한 문장을 많이 사용한다. 따라서 여전히 구글로 나온 표현 중 좋은 표현이 무엇인지 가려내는 눈이 필요하다는 조건이 붙는다.

  후기에는 영영사전으로 해당 단어의 용법을 반드시 확인하는 것이 좋다. 즉, 영어 실력이 어느 덧 쌓여서 더 좋고 정확한 영어를 사용하고 싶다면 이제부터 영영사전을 생활화하는 것이 좋다. 다시 말하지만 한영사전과 영한 사전은 해당 단어를 한국어로 혹은 영어로 어떻게 '번역'할 수 있는 가를 예시해 놓은 것이지 그 단어의 뜻을 써 놓은 것도 아니고 엄청난 오역과 잘못 사용된 예문을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해당 단어의 진정한 뜻을 알고 싶다면 영영사전을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영영사전 중에는 해당 단어의 뜻만 간단히 써놓고 짧은 예문만 들어놓을 것도 있지만 해당 단어가 문장 안에서 어떻게 사용되는지를 일일이 보여주는 용법사전이라는 것도 있다. 이 사전이 바로 작문을 할 때에 도움이 많이 되는 사전이다. 특히나 자신이 영어 단어를 욀때 필자가 추천한 대로 그 단어가 쓰인 표현을 통째로 외는 연습을 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이 사전은 더더욱 필수이다.

  왜 한국어를 영어로 번역하고자 할 때 모르는 단어만 한영사전 찾아서 번역하면 안 되는가? 왜 위와 같이 복잡한 절차를 따르면서 영작을 해야만 하는가라고 묻고 싶은 사람이 반드시 있을 것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위와 같이 하지 않은면 영어로 '사장님은 주둥이를 닦았다'라는 표현을 쓰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말을 배우는 어느 외국인이 이렇게 말을 했다면 우리는 무슨 뜻인지 이해는 할 것이다. 그리고 웃어줄 수도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렇게 썼다면 우리는 좀더 신중하게 접근할 것이다. 아마 여기서 '주둥이'가 잘못 쓰였다는 것을 지적해주는 한국인이 대부분 알 것이다. 의도적으로 사장을 비하할 목적이 아니었다면 설혹 그럴 목적이었다 해도 정식적 문서에는 사용할 수 없는 표현이다. 왜냐하면 주둥이는 사람의 입을 표현할 때 쓰는 표현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위 문장이 문법적으로 틀렸는가? 그렇지 않다. 문법은 완벽하다. 또한 주둥이는 속어나 비어도 아니고 한국인이 그렇게 사랑하는 표준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용할 수 없는 문장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어법이다. 이것은 영어로 말하는 것뿐 아니라 쓰는 것을 배울 때 문법 만큼 중요한 것인데, 이렇게 중요한 어법은 여태까지 한국에서 공부하던 식으로는 익힐 수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각 단어는 언제 사용할 수 있고 언제 사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제한이 있다. 이를 각 단어에 맞게 다 외우려면 정말 끝이 없다. 그래서 필자가 해당 단어가 들어가 있는 표현을 통째로 외라는 방법을 추천하는 것이다. 이 대신 한국에서 유행하고 있는 신념은
언어는 문화라며 문화를 배우는 것이다. 물론 해당 문장이 왜 한국어로 상이하게 번역되는지를 알려면 문화를 배우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그러나 영어권 국가의 모든 문화를 배우고 영어를 배울 수는 없지 않은가?

  마지막으로 쓸 때가 말할 때 보다 문법에 맞는 정확한 언어를 구사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해서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다. 물론 쓸때는 말할때보다 문법이 더 중요하다. 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어만 생각해 봐도 외계어를 쓸 지언정 문자로 대화하는 경우가 말로 할 때보다 문법이 비교적 더 정확하다. 영어를 구사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일부러 문법에 어긋나게 쓰고 쿨하다고 생각하는 경향도 있다. 이런 경향은 한국에서 젊은이들이 사용하는 외계어만 봐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몇 년 전까지 호주에서는 문장을 시작할 때 첫 글자를 소문자로 쓴 것이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이었다. 내가 아는 원어민 지인이 밝힌 이유는 첫글자를 대문자로 시작하는 것은 구리고 소문자로 시작하는 것이 더 멋지다는 이유였다. 즉, 친구끼리라면 글을 쓸 때도 문법은 어느 정도 무시할 수 있다. 그러니 너무 겁먹지 말고 도전할 것을 추천한다. 우선은 시작이 반이지 않는가? 그런 다음 위에서 필자가 밝힌 방법을 사용해 나간다면 나중에 정말 좋은 영작을 하는 자신이 되어 있을 것이다!

2013년 8월 4일 일요일

한국인이 집착하는 발음의 허상

  지난 글에서 한국어와 영어의 목적어 동사의 어순이 바뀌어서 어렵다고 하는 불평은 한국인이 이미 영어에 대해서 너무 많이 알아서라고 지적한 적이 있었다. 이번 글에서는 한국인이 너무 모르는 부분에 대해서 말하고자 한다.

  거두절미하고 말하면 한국인이 발음에 집착하는 이유는 역으로 영어를 할 줄 몰라서이다. 물론 이 표현은 너무 애미하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영어로 듣고 말할 줄을 몰라서이다. 영어로 읽고 쓸 줄은 알기 때문에 한국인들이 누가 영어를 필기체로 잘 쓰냐를 가지고 스트레스 받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글씨를 잘 쓰는 것과 영어 실력이 무관하다는 것 정도는 누구나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어를 듣고 말할 줄 아는 사람이 적다보니, 영어를 듣고 구분할 수 있는 것은 이 발음이 한국인이 하는 것과 영어권 국가를 비롯한 서구인이 하는 것, 그리고 다른 동양인이 하는 것 정도로 구별할 수 있을 뿐이다. 한국인들은 자신들의 발음과 다른 동양인들의 발음 (아랍인, 인도인, 중국인은 여기서 제외될지도 모르겠다)은 무시하고 서구인들의 발음만 좋다고 그리고 발음만으로 상대방의 영어 실력을 평가한다. 사실 서구인 중 유럽인들 발음은 우리나라 사람들 발음 만큼이나 그 나라 모국어의 액센트가 강해서 원어민들도 못 알아 듣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어차피 원어민이 말하는 것도 유럽인이 영어를 할 때도 못 알아 듣기는 마찬가지이니 모두 합쳐서 잘 한다고 하게 되는 것이다. 이 어찌 코메디가 아닌가?

  필자가 영어권 국가에서 살게 된지 2년이 지난 시점에서 필자는 이 점을 깨달았다. 코페르니쿠스가 겪은 것과 같은 사고가 대전환되는 계기가 생겼던 것이다. 당시 필자는 여전히 영어 정복이 멀었다는 혹은 영어 정복은 영원히 불가능할지도 모르겟다는 두려움에 떨고 있던 시점이었다. 이 때 원어민 친구에게서 또 하나의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것은 그 친구가 느끼기에 필자의 영어가 그 나라 일반적 대학생들 영어보다 수준이 훨씬 높다는 것이었다. 그 때를 떠올려 보면 우리는 각자 연구를 진행하면서 현지 대학생들이 응답하는 방식, 성의 없음 등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었다. 필자와 함께 이런 저런 것은 논의하던 중 그 원어민 친구가 필자의 영어가 수준이 높다는 평을 해 주었던 것이었다. 물론 이 말은 현지 대학생들의 영어 수준이 형편 없다는 말의 다른 표현이었다.

  어찌되었든 필자는 할 말을 잃었다. 어디서 필자가 입만 열면 한국에서 왔냐는 소리가 대번에 나오는데 어떻게 필자의 영어가 뛰어날 수 있단 말인가? 혹 예의상 칭찬해주는 것인지 의심이 쉽게 가시지 않기도 하였다. 사실 당시에는 필자가 알고 지내던 그 일본인의 영어에 쏟아지는 찬사에 대한 의구심도 있었다. 필자가 보기에는 중간중간 문법적 실수도 있었고 여전히 일본어 악센트가 강한데 왜 영어를 잘 한다고 하는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러나 나중에 더 영어를 잘 하게 되어서 원어민들의 대화(이거 정말 알아듣기 힘들다)도 거의 문제없이 이해하기 시작하면서 이런 필자의 혹평은 사실 원어민들이 얼마나 문법적 실수를 많이 하는지 여전히 몰랐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그 일본인의 영어에 가혹했던 것이었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 또한 악센트는 의사소통만 되면 전혀 문제가 되지 못한 다는 사실도 몰랐기 때문이다.

  필자도 처음에 이런 이야기 들을 때 공감하지 못했던 듯 싶다. 영어를 얼마나 잘 배우느냐는 얼마나 열심히 하느냐 그리고 언어 능력도 좌우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물론 나이가 좀 많아서 가긴 했지만 기초는 튼튼했고 필자는 나 자신을 믿었다. 또한 그곳에서 필자를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 필자의 영어에 대해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영어권에 처음 오는 사람 치고 영어를 잘한다고. 이런 평가는 나를 더욱 우쭐하게 했었을 것이다. 이렇게 잘 하는 상태에서 왔으니 1-2년이 아니어도 수년안에 원어민처럼 영어를 구사할 수 있을 것이라고!

  그러나 지금은 그들의 말에 더 귀를 기울일걸 잘못했다고 후회한다. 영어를 할 때 모국어의 악센트는 거의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듯하다고, 영어권 국가에서 20년이 넘게 살았는데도, 영어로 익힌 지식보다 모국어로 익힌 지식이 더 기억하기 쉽다는 그들의 경험담은 실패담이 아니라 우리가 타국에 가서 살게 될 때 미리 알고 있어야 할 지식이었던 것이다. 이제서야 그들이 마음을 열고 나에게 경험을 나누어 주려고 했다는 점을 알겠다. 여러분 중 일부는 필자의 말을 인정하기 싫을 것이다. 자신은 아니어도 자신의 자녀들에게 열심히만 시키면 영어를 원어민처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굳게 믿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필자가 다시 주장한다. 어릴때 영어를 시켜서 얻게 될 수 있는 것은 좋은 발음이다. 이는 인정한다. 그러나 좋은 발음이 좋은 영어가 되는 것은 아니다. 좋은 영어를 구사하려면, 영어권 국가에서 교육을 하나도 받지 못한 사람들이 구사하는 영어가 아니라 고급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구사하는 수준높은 영어를 구사하려면 나이가 들어서 엄청나게 노력해야 한다. 이런 고급 한국어는 한국사람들도 잘 구사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한국어 발음이 좋다고 한국어를 잘 한다고 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이런 말은 외국인에게 사기를 북돋기 위해 쓰는 용도의 말일 뿐임을 명심하자. 이는 영어에도 해당된다.

2013년 8월 3일 토요일

영어로 말하기: 한국어 영어 어순이 달라서 어려운가?

  여태껏 영어로 책읽기, 단어 공부하기, 발음 공부하기 등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그럼 이제 영어로 말하는 법을 알아보자.

  영어회화를 배울 때, 영어가 어순이 달라서 어려운 사람들은 역설적으로 이미 영어에 대해서 너무 많이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단어도 알고 문법도 너무 많이 알아서 그에 따라 영어를 하자니 너무 어려운 것이다. 왜냐? 그럼에도 불구하고 표현법은 몰라서, 자신의 생각을 한국어로 정리한 다음 영어로 번역하려다 보니 생기는 일이다.

  예를 들어, 영어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에게 '여기가 어디지?'라는 표현을 가르치는 것은 쉽다.

Where am I?

  영어를 읽지 못하는 사람에게도 비슷하게 '웨어 엄 아이?'라고 가르쳐 줄 수 있다. 이 표현은 어린아이부터 어른까지 문제 없이 배울 수 있는 간단한 표현이다. 그러나 이미 영어를 많이 알고 있지만 이 표현을 모르는 사람은 어떻게 할까? 여기는 'here'이고 어디는 'where'이고 의문문이니까 의문사가 먼저 나가고 그 다음이 동사... 결론은 'where is here?'이라는 국적 불명의 영어가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사실 이런 예를 들자면 끝도 없다. 미국이고 한국이고 많이 쓰는 표현이 '쟤 때문에 나 미치겠어'라는 표현일 것이다. 친구 사이, 연인 사이, 식구 사이에도 흔히 쓸 수 있는 표현이다. 영어로는 He drives me crazy 또는 He made me mad이다. 그러나 한국인이 가장 즐겨 사용하는 표현은 I'm crazy because of him가 된다. 왜냐하면 한국어를 그대로 번역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하면 원어민이 이해는 한다. 무슨 소리인지. 그러나 영어 어법에는 맞지 않는 표현이다. 만일 당신이 작문하는데 이렇게 썼다면 원어민 교사가 이 표현을 고쳐줄 것이다. 영어식으로.

  마지막 예로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그 일을 누가 했는지 궁금해질 때가 있다. 그 때 만일 자신이 한 일이라면 간단히 I did라고 하면 된다. 우리말로는 '내가 그랬어'가 되겠지만 이를 번역하려고 하면 '그랬어'를 어떻게 할 것인가? 필자는 머리가 나빠서 '그랬어'를 재빨리 '그렇게 했어'로 바꾼 다음 다시 영어로 번역하는 일을 하라고 하면 절대로 못할 것 같다. 당신은 어떤가. 필자 뿐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이 이런 작업을 하는데에는 시간이 걸리는데 우리도 수다 떨어봐서 알지만 사람들은 그렇게 느린 대화를 하고 싶어하지 않는 법이다.

  그렇기 때문에 필자가 영어를 읽을 때 말할 때 분석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다. 그럼 어떻게 말을 해야 하는가? 영어 표현을 통째로 왼 다음 그 표현들을 응용해서 말을 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어순 때문에 힘들다는 말은 이제 사라질 것이다. 결론은 알고 있는 지식을 자신의 한국어 표현에 대입해서 영어로 번역한 다음 그 결과를 말하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중고등학교에서부터 영어를 배운 사람들이 하는 영어에 대한 불만은 영어가 어순이 달라서 어렵다는 점임을 설명했다. 하지만 이 것이 전부가 아니다. 이후 학창시절 부족했던 영어회화를 다시 배운다면 그 다음으로 가장 먼저 나오는 말이 주어와 시제에 따른 동사의 변화가 어렵다는 것이다. 그 다음은? 복수와 단수의 명사 표현이 달라지는 것, 이와 더불어 가정법에서 현재 말하는 시점과 표현에서 시점이 달라지는 것이다. 그래도 이쯤 되면 영어가 상당한 수준으로 오른 것이다.

  그러나 아직 넘어야 할 산은 많다. 가장 마지막에 도달하는 난관은 바로 전치사의 적절한 사용. 그리고 관사의 사용법! 많은 사람들이 영어를 배울때 마지막으로 넘는 산이 관사라고 한다. 가장 어렵다는 뜻이다. 하지만 필자는 관사 만큼이나 전치사의 사용이 어렵다. 그것은 바로 필자도 영어를 할 때 표현을 통째로 외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필자에게도 필자가 공부할 때 누가 이런 걸 가르쳐줬더라면 너무 좋았을 것 같다는 회한이 있다. 자신있게 말하지만 이게 정석이다!!!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전치사는 어떤 동사인가 명사인가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그냥 한국어를 번역하다가는 절대로 알 수 없고, 그 많은 용법을 개별적으로 외는 것은 실용적이지 않다. 이를 가장 잘 해결해 주는 것이 바로 그 해당 동사, 명사가 들어가 있는 문장을 외는 것이다. 우리가 단어를 외듯이 문장을 외다보면 점점 감이 생긴다. 이 동사에는 이 명사에는 왠지 이 전치사를 써야 할 것 같은 그런 느낌! 바로 이 느낌이 당신의 영어정복의 마지막을 장식해 줄 것이다.

  즉 이 모든 것을 한 큐에 해결해 주는 것이 바로 독서하면서 만나는 표현을 통째로 외는 것이다. 구체적 방법은 어떻게 단어를 익혀야 하는지를 설명한 글을 참조하길 바란다. 

2013년 8월 2일 금요일

False Belief about English 4: 영어를 잘 하면 무슨 영어든 이해할 수 있다?

  여기에서 우선 ‘영어를 잘한다’는 문장이 무엇인지부터 생각해 봐야 한다. 이전에도 다루었듯이, 흔히 원어민처럼 영어를 구사하면 영어를 잘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여기에서 원어민처럼 영어를 잘 한다는 것은 또 무슨 말인가? 흔히 하는 농담으로 영어권 국가에서는 거지도 영어를 잘 한다고 한다. 가끔 영화를 보면 어쩜 저렇게 어린 아이가 영어를 그렇게 잘 하는지 부러운 따름이다.

  그런데, 우리가 바라는 영어가 교육을 제대로 받았을 듯 싶지 않은 사람이 구사하는 그런 영어인가? 즉 원어민의 영어에도 엄청난 다양성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 다양한 영어 중 어떤 영어를 잘 하고 싶은가? 혹은 그 중 어떤 영어가 잘 하는 영어인지를 생각해 봐야 한다. 같은 말이다. 영어를 잘 하고 싶다면 어떤 영어를 어떻게 잘 하고 싶은지 질문을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

  이를 이해하기가 힘들다면 한국어에 대입해서 고민해 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즉, 한국어를 잘 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우리가 누군가에게 언어능력이 뛰어나다고 이야기할 때가 언제인가? 물론 국어시험을 잘 볼 때도 사용가능하지만 이 보다는 농담을 잘 하거나 논설문이나 소설을 잘 쓰거나 하는 경우일 것이다. 또 다른 측면으로 우리가 누군가에게 이해능력이 뛰어나다고 할 때에도 어떤 경우에는 언어능력을 지칭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즉 내가 말도 안되게 표현을 했는데도 내 말을 잘 이해해 주거나 어려운 소설이나 글 따위를 읽고 설명해 주는 경우가 해당하겠다.

  하지만 여기에서도 공부를 잘 하는 사람이 꼭 좋은 선생인 것은 아니다라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즉 말을 잘하는 사람이 반드시 글을 잘 쓰는 사람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는 대인관계에서 언어를 잘 구사하는 사람이 반드시 어려운 글을 읽고 당신에게 해설해 주는 사람과 동일하지 않다는 것과도 상통한다. 즉 우리가 한국어를 잘 한다는 표현도 아주 여러 경우에 사용하고 있고, 이는 영어를 잘 한다는 말에도 그대로 적용 가능하다. 바꾸어 말하면 당신이 잘 하고 싶은 영어가 무엇인가가 자신이 영어를 잘 하는지에 대한 질문의 시작이다. 말을 잘 하고 싶은지 글을 잘 쓰고 싶은지에 따라 당신이 어떻게 영어 공부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방법이 따라 나온다. 시작이 반이라는 것은 누구나 알 것이다. 자 영어를 잘 하는 그 길의 반을 제발 가 보도록 하자.

  아울러 우리가 말은 못하고 잘 읽기만 하는 영어 교육을 받았다고 자조하는 목소리가 높은데, 어차피 모두 잘 하기는 어렵다. 기본만 한다면 잘 읽기만 하는 사람도 영어를 잘 하는 사람으로 대접해 주어야 한다! 바꾸어 말하면 말만 잘 하는 사람도 영어 잘 하는 사람이고, 말은 한 마디도 못하지만 글을 그럴듯하게 써내는 사람도, 남들이 못 듣는 이야기를 잘 캐취하는 사람도 잘 하는 사람이다. 우리 모두 자신이 하고 싶은 것, 할 수 있는 것 혹은 해야 하는 것을 정확히 파악하고, 현실적 목표를 가지되, 이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자!

  지금까지는 듣기, 읽기, 말하기, 쓰기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 한가지 더 살펴 볼 것이 있다. 그것은 말이나 글의 종류 및 분야에 대한 것이다. 소설을 잘 쓰는 사람이 논설문을 잘 쓰는 것이 아니듯이 추리소설을 잘 읽는 사람이 경제 전문지를 잘 이해하는 것은 아니다. 누가 영문학을 전공했고 아니면 외국에서 몇 년 살다 왔으면, 그렇지 않더라도 아무튼 영어를 술술 읽는다고 소문이 나면 사람들이 이것 저것 물어보기 시작한다. 그러다 잘 대답을 못 하거나 내민 글을 잘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하면 무슨 영어 잘하는 사람이 모른다고 할 수가 있냐고 의아해 한다. 그러나 입장바꾸어 생각해 보자. 필자는 영어는 몰라도 국어는 어렸을 때부터 꽤 잘했고, 신문은 고등학교 때부터 매일 같이 읽어서 이제는 10분이면 거의 내용을 파악할 수 있을 정도의 실력자다. 물론 영문신문은 제외다. 그리고도 두 개의 예외 영역이 있다. 그 중 하나는 경제면. 이건 한글이 맞긴 한 듯 한데 무슨 소리인지 하나도 모르겠다. 다른 하나는 스포츠 면. 이건 읽으면 이해할 수 있겠지만 관심이 없어서 절대로 읽지 않는다. 그런 필자에게 어느 외국인이 한글 신문 경제면이나 스포츠면을 들고 와서 무슨 소리인지 설명해 달라고 하면 필자가 설명해 줄 수 있겠는가?

  이렇게 영문학을 전공한 사람에게 심리학 전문서적을 혹은 경제학 전문 잡지를 들고 와 물어보는 것은, 사실 자동차학과 박사한테 자동차 정비에 대해 물어보는 것과 같다. 자동차학과 박사한테 직접들은 이야기인데, 자동차 정비는 정비소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박사보다 더 잘 안다는 사실! 믿기지 않는가? 그래도 믿길... 지인들이 자동차 정비에 대해서 물어볼 때마다 그 자동차학 박사분이 어치나 곤란하다고 하시는지.

  결론은 자신이 자신의 전공서적은 잘 읽는데, 혹은 자신이 좋아하는 소설은 잘 읽는데 나머지는 잘 모르겠다고 하더라도 자신이 영어를 잘 못하는 것이거나, 이상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더 이상 자괴감은 금물! 컵에 물이 반밖에 없다고 자꾸 열등감에 젖지 말고 컵에 물이 반이나 있다고 자랑하고 다니자. 사실 필자가 요새 좋아하는 것은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아 저는 4개 국어 합니다. 서울말, 부산말, 광주말, 영어! (마지막이 꼭 영어일 필요는 없다. 중국어든 프랑스어 든 상관없다.)

False Belief about English 3: 말할 때 문법이 틀리면 안된다?

  한국인이 말할때 발음과 문법에 집착하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원어민들은 유머와 어법에 집착한다. 발음이 이상해도 괜찮다. 웃기는 말만 할 줄 안다면. 문법에 어긋나도 괜찮다. 지들도 엄청나게 어긋나게 말한다. 사실 한국인들이 한국말 하는 것을 가만 들어보면 방송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빼고는 문법에 어긋나게 말하는 사람이 태반이다. 그러나 어법은 중요하다. 어법에 어긋나면 문제다. 당췌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가 없으니...

  잘 찾아보면 한국인이 그렇게 집착하는 문법에서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책도 있다. 물론 미국에서 베스트 셀러로 팔리는 책을 말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The Absolutely True Diary of a Part-Time Indian (by Sherman Alexie)와 같은 책을 읽어보라. 아직도 American Natives에게 Indian이라고 부르는 미국사회나 그렇게 잘못 이름 붙여졌기 때문에 아직도 스스로를 그렇게 부르는 미대륙 원주민들의 현실도 가슴아프고 그래서 이 소설이 더 감동적이지만, 얼마나 문법에 안 맞는 문장이 많은지, 그럼에도 이렇게 좋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 한국인들이 좀 느끼는 바가 있길 바라는 것이 필자의 마음이다. 이 책은 미국에서 갖가지 문학상을 받았을 뿐더러 한국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다. 번역서도 있지만 번역해 놓은 한국어는 너무 정갈하다. 꼭 원서로 읽어보길 바란다. 정말 쉽다. 그리고 당신의 문법 울렁증을 말끔히 씻어줄 만큼 엉망이다. 이렇게 써도 문학상을 휩쓰는데, 한국인들이여... 정말 그대들만 문법을 부여잡고 벙어리로 살고자 하는가?

  물론 문법에 맞는 정확한 언어를 구사할 수 있다면 더 좋을 것이다. 하지만 이에 얽매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것보다는 아이로 돌아가 아이처럼 문법에 어긋나는 표현을 사용하면서 말하는 것을 시작해서 나중에 점점 더 좋은 언어로 고쳐가는 것이 더 현실적이라는 것이다. 어차피 처음부터 정확한 영어를 구사하겠다는 생각은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겠다는 것이다.

  특히 말하기에 있어서 문법적 실수는 원어민도 피해 갈 수 없는 것 아닌가. 결론적으로 말해서 문법적으로 완벽한 영어로 말을 하겠다는 욕망은 원어민보다 영어를 더 잘 구사하겠다는 욕심이나 마찬가지이다. 이를 심리학에서는 완벽주의라고 하는데, 완벽주의의 가장 큰 맹점은 결국 완벽할 수 없기 때문에 완벽함만을 추구하다 중간에 포기해 버린다는 것이다. 그것도 처음부터 원어민보다 영어를 더 잘 구사하겠다는 욕심을 갖다니... 이런 측면에서 보면 한국인들 해도 너무 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한번 우리말을 문법적으로 완벽하게 구사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말을 해보라. 말을 빨리도 길게도 하지 못할 것이라는 데 한표! 한번 자신이 한국어로 말하는 것도 녹음해서 들어볼 일이다. 얼마나 문법적 실수가 많은데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하는지. 영어도 마찬가지다! 문법적으로 완벽해서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문법적 실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너무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하는 것이다. 문법 발음에 집중하지 말고 말에 집중하길!!

  다른 측면으로 생각해 봐도 같은 답이 나온다. 만일 영어를 배우는 목적이 외국 친구를 사귀고 싶은 것이라면 한국어를 어떻게 구사하는 친구와 사귀고 싶은지부터 생각해 보는 것이 좋을 듯 싶다. 한국어를 문법에 맞게 정확하게 구사하는 친구와 사귀고 싶은 사람은 몇이나 될까? 혹 누군가는 이런 사람을 재수없어 하지 않을까? 다른 사람들은 마치 아나운서 앞에 앉은 듯 불편해서 그 사람을 피할 것이다. 이제 헛된 욕심은 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

  발음도 처음부터 완벽할 수 없다. 한국어와 다른 발음 매일 연습하면서, 아직 불완전한 발음이나마 표현하자. 누구나 처음부터 이렇게 배운다. 그리고 여태껏 읽었던 책에서 통째로 욌던 영어 표현을 응용해서 말을 하는 것이다. 실수는 정상이다. 절대 기죽지 말지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