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7월 18일 화요일

쉬어가는 페이지 4: "Shape Of My Heart" by Sting 해석

  스팅의 포커 게임 (poker game)을 주제로 한 노래의 가사가 재미있다고 생각해서 한 번 필자의 생각을 적어 본다. 아마 필자가 이 노래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과거 음악도시를 진행하던 성시경이 던진 궁금증 때문이었는데 그 궁금증이 무엇이었는지는 현재 기억나지 않는다. ㅎㅎ

  물론 필자의 아래 해석이 정답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스팅한테 물어본 것도 아니고 현재 주변에 영어 원어민도 없어서 물어볼 수도 없다. 특히 시는 함축적인 의미와 운율 맞춤에 의한 문법적, 의미적 일탈에 대한 허용도 있기 때문에 원어민이 아닌 필자로선 노래 가사 해석에 한계가 분명할 것이다. 따라서 순전히 필자가 느끼기에 이런 것 같다를 다음에 적었다. 뭐, 노래가 일단 대중에게 전해지면 대중의 해석도 중요한 것이니까... 그런데 거기에 외국인 대중도 포함될까? 포함된다에 한표! ㅋㅋㅋ

"Shape Of My Heart" by Sting
이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영어 학습을 독려하기 위해서 구체적 번역문은 안 적는다. 각자 해석해 보시라... 영어 그대로 느낀다면 더 좋고!

He deals the cards as a meditation
And those he plays never suspect
He doesn't play for the money he wins
He don't play for respect
우선 첫째 연은 이 사람이 카드를 하는 이유는 명상이라고 한다. 다른 이유가 아니라고.

He deals the cards to find the answer
The sacred geometry of chance
The hidden law of a probable outcome
The numbers lead a dance
그게 왠고 하니, 이 사람은 답을 찾고 싶은데, 그 답은 신성한 확률의 기하학(이것은 확률 분포 곡선을 말하는 듯)대로 나오는 결과. 그 법칙은 숨겨져 있기에 춤은 숫자들이 이끌게 된다고 말하고 있다. 카드에서 확률은 완전 랜덤이지만 또 개인의 구체적 결과는 다르다는 말을 멋지게 표현한 듯. 결국 자신의 운을 알고 싶다는 뜻이 아닐까?

I know that the spades are the swords of a soldier
I know that the clubs are weapons of war
I know that diamonds mean money for this art
But that's not the shape of my heart
여기서는 포카 게임 카드의 네가지 종류, 하트, 스페이드, 클로버, 다이아몬드를 가지고 말장난하고 있는 것 같다.
첫째, 스페이드는 삽. 무기로 쓰고자 하면 쓸 수 있을 듯. (혹 고대
영어에서는 스페이드가 칼이라는 뜻이었을까? 이건 언어학자한테 물어봐야 할 듯 싶은데
아시는 분?)
둘째, 영어에서는 클로버 카드를 club이라고도 한다. 뭐, clubs가 카드에서는 클로버를 뜻하지만 말 그대로는 곤봉이기 때문에 그대로 무기라고 쓴 것인 듯. 아니면 클로버가 한쪽 진영에 행운을 가져다 주어서 사기가 높아지면 전쟁에서 이길 확률도 높아지기 때문에 무기라고 했다거나 동양무술처럼 클로버 잎을 던지면 적들이 그에 맞아서 죽는 것을 말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아님 말고. ㅋㅋㅋ
셋째, 다이아몬드 카드의 다이아몬드를 실물로 팔 수 있다면 전쟁자금쯤이야... 그런데, 그 전쟁을 예술이라고 하는 점이 눈에 띈다. 사실 카드놀이는 다른 말로 도박이라 할 수 있고, 도박이 전쟁은 아니더라도 전쟁과 마찬가지로 치열하고 살떨리는 부분이 존재할 테다. 전쟁이든 도박이든 잘 한다면, 뭐가 잘 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예술이 될 수 있긴 한 테니.
마지막으로 그런데 이 모든 것이 자기 마음과는 다르다는데... 이 표현은 카드의 하트와 자신의 마음을 동일시 하면서 그야말로 말장난을 하고 있는 것. 스페이드, 클럽, 다이아몬드 카드는 모두 내가 가진 하트 카드와 모양이 다르다고.... 혹은 무기나 돈을 가지고 전쟁처럼 싸우는 삶이지만 그것이 내 마음은 아니다?!

He may play the Jack of diamonds
He may lay the Queen of spades
He may conceal a King in his hand
While the memory of it fades
이 연에서는 카드 게임할 때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하는 행동을 묘사하고 있다. 그런데 왜 쥐고 있는 카드들이 모두 왕자, 여왕, 왕이어야 할까? 혹시 이것들이 다음 연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수많은 얼굴과 관련있을 수도 있겠다. 전쟁같은 현실에서 이런 척 저런 척 하지만 진정한 나는 단 하나이라고!?

And if I told you that I loved you
You'd maybe think there's something wrong
I'm not a man of too many faces
The mask I wear is one
아.. 사랑고백을 하려고 카드 이야기를 시작한 모양인데... 자신의 사랑 고백이 포커 게임의 포커 페이스처럼 다른 마음을 품고 하는 건 아니라고 하는 듯. 그러니 의심하지 말라고! 이 부분이 카드의 하트와 자신의 마음을 동일시 하면서 이 카드는 다른 세 종류와 다르다고 한 부분과도 이어지는 듯 하다.

But those who speak know nothing
And find out to their cost
Like those who curse their luck in too many places
And those who fear a loss
늘 말 많은 사람은 아는 게 없고 비용만 따지는데 그런 사람들은 잃는 것이 두려워서 마치 자신의 행운에 저주를 하는 것이니 주변의 말 듣지 말고 내 사랑을 받아주오... 하는 듯 싶다.

  뭐 이런 뜻 정도 아닐까? 적다 보니 같은 문장에 많은 해석이 가능해서 재미가 더 커진다. 필자의 결론은 전쟁 같은 인생이지만 나의 사랑만은 진심이다, 그러니 이것저것 따지지 말고 나의 사랑을 믿어달라!

  원래 시라는 것이 그렇듯 당신의 해석은 다를 수 있다!

(이 글과 관련해서 저작권 문제가 발생하는지에 대해 필자가 아는 바가 없습니다. 혹 가사의 사용과 관련하여 저작권 위반 사항이 있다면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2017년 7월 17일 월요일

쉬어가는 페이지 3: One Direction 발음편

  한 때 세계적으로 유명했던 One Direction이라는 Boys Group의 이름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가 화재가 된 적이 있었다. 구글에서 미국인으로 추정되는 유저가 영국에서 원 다이렉션이라만 발음한다고 믿는 글을 쓰기도 하였고, 국내에서 팝에 대한 정보로는 일가견 있다는 배철수의 음악캠프에서 한 작가도 미국 사람들은 원디렉션이라고 읽고 영국 사람들은 원 다이렉션이라고 읽는다고 주장하였던 것이다. 이 프로그램의 배순탁 작가는 One Direction이 영국의 어떤 방송사의 프로그램에 나왔는데 그 사회자가 이들을 원 다이렉션이라고 소개하더라는 것이 그 근거였다. One Direction의 발음 영국과 미국에서 다르다!? 사실일까?

  진실은 최소한 One Direction의 영국식 발음은 '원 디렉션'도 맞고 '원 다이렉션'도 맞다는 것이다. 그 근거를 보자. 다음 두 비디오 클립은 영국에서 이루어진 One Direction 방송 인터뷰인데 한 비디오에서는 원 디렉션으로 소개하고 다른 비디오 진행자는 원 다이렉션으로 소개하고 있다.

One Direction on the Official Chart with Reggie Yates on Radio 1
http://www.youtube.com/watch?v=5aB-hwxRsNU

One Direction have breakfast with Chris Moyles
http://www.youtube.com/watch?v=XtE_OCk1xZA

  표준어 취급하지 않는 영어라서 지역마다 다르게 발음할 수 있지만 미국식 영어 사전을 찾아봐도 Direction의 발음은 디렉션/다이렉션 병기 표기되어 있다. 미국에서도 역시 두 발음이 모두 정석이라는 것이다. 아마도 구글에 미국과 영국의 발음이 다르다고 주장한 미국인은 우연히 Direction을 디렉션이라고만 발음하는 지방 사람이 아니었을까? 음악캠프의 배작가도 우연히 원 다이렉션으로 발음하는 진행자의 영국산 프로그램을 봤을 뿐이었다.
뭐 미국 원어민도 하는 실수니까 패스.

  다만 이 작가는 영국출신 그룹 이름을 영국식으로 불러야 한다는 취지에서 영국식/미국식 발음 차이에 관심을 가졌던 것이었기 때문에 그 취지에는 필자도 동감한다. 해당 그룹의 이름은 고유명사이고 영미 두 나라에서 다르게 발음하는 영어 단어들이 있는 것은 맞기 때문이다.

2017년 7월 14일 금요일

외국어 한국어로 바꾸기: R 소리 편

  현재 영어 이외 로마자를 기반으로 하는 외국어를 한국어로 바꿀 때 많은 곳에서 영어처럼 바꾸고 있다. 그 중 두드러지는 소리가 R 발음이다. 예를 들어 빵집 이름 중 '뚜레쥬르(Tous Les Jours)'는 영어가 아니라 불어인데, 한국어로 바꿀 때는 해당 불어 단어를 영어처럼 읽은 상태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또한 독일어로 자연이란 단어 Natur를 '나투르'라고 독어 R을 역시 영어처럼 읽은 소리로 한국어철자를 사용했다. 그럼 어떻게 바꾸어야 하는가? 필자가 보기에 뚜레쥬르가 아니라 '뚤레주흐', 나투르가 아니라 '나투어'로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영어만 외국어가 아니다. 과거 우리가 미국이 외국이라고 생각했듯이 여전히 영어가 외국어 전체를 대표한다는 무의식에서 비롯된 비슷한 문제들을 많이 찾아 볼 수 있다. 그 대표적 사례가 프랑스어와 독일어에서 r을 영어식으로 읽는 것이다. 예를 들어 프랑스의 수도 Paris를 흔히 빠리 혹은 파리라고 하는데, 프랑스어에서 r은 영어의 r과는 다른 소리이다. 마치 한국과 일본에서 '인삼'이 같은 한자어로 쓰이지만 그에 대한 소리는 인삼과 진생으로 달라지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이해하면 되겠다. 영어에서 r sound를 낼 때는 혀를 곧추 세우고 한국어의 ㄹ소리를 내는 것처럼 하면 된다. 하지만 프랑스어나 독일어에서 r은 영어의 r소리보다 좀더 목젖 부분에서 소리가 난다. 혹자는 영어의 h 혹은 독어의 ch sound를 유성음으로 성대를 울려서 낸다고 이해하라고 한다. 자 이제 한 번 소리를 내보자! 어떤 소리가 나는가? (사실 필자도 어떻게 소리를 내야 하는지 여전히 난감하다. t.t)

  사실 영어의 r 소리가 한국어에서 정확하게 대칭되는 소리가 없어서 그냥 ㄹ 소리와 비슷하다고 밖에 할 수 없는 것처럼, 불어와 독어에서도 r sound는 한국어에 정확하게 같은 소리가 존재하지 않고 그저 근사치로 ㅎ소리가 비슷하게 난다고 볼 수 밖에 없다. 다행히 불어에서는 알파벹 h가 한국어에서 초성 ㅇ처럼 아무 소리가 나지 않는다. 따라서 근사치로 ㅎ소리로 보는 것이 다른 철자의 소리와 헷갈리지도 않아서 가장 적합하다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필자는 불어나 독어를 잘 모르기 때문에 혹 오류가 있다면 잘 아시는 독자가 의견을 주신다면 겸허히 받을지어다...^_^;).

  따라서 프랑스의 수도는 '빠히' 혹은 '파히'라고 한국어로 쓰는 것이 더 적합해 보인다. 물론 필자가 이렇게 불어의 r을 ㅎ소리로 대체하면 프랑스인들은 그 소리가 아니라고 필자에게 강변한다. 필자가 불어를 잘 모르니 당연히 불어 원어민들의 말이 맞겠지만 그것은 r 소리가 ㄹ과 같지 않은 것과 비슷한 정도의 차이일 것이다. 즉 정확히 같은 소리는 아니지만 우리말의 제한된 소리 안에서 가장 근사한 소리라고 우리말 원어민으로서 생각하는 것이다(오해 마시길... 한국어 뿐 아니라 모든 언어는 제한된 소리로 의미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한국어만 폄하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음이다!).

  사실 필자의 r sound를 ㅎ소리로 대체하기가 독일인들에게서는 절반정도의 지지를 받고 있다. 필자의 지인 중 Debora와 Caroline가 있는데, 필자는 이들을 각각 데보하와 카홀라인이라고 불러준다. 외국인에게서 늘 영어식으로 데보라, 캐롤라인이라고만 불리다가 필자가 이렇게 불러주면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른다. 물론 다른 독일 친구인 Petra는 내가 그 친구를 페트하라고 부르면 여전히 자신의 이름에 h sound는 없다고 독일식 r sound를 필자에게 가르치려 드는데... 필자가 정확한 그들의 r 소리를 내지는 못하니 그다지 큰 성과는 없을 뿐이다... ㅜ.ㅠ

  그렇기 때문에 프랑스의 국호 France도 프랑스가 아닌 '프항스'로 읽어주어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그렇지 않고 기계적으로 무조건 r은 ㄹ로 소리를 옮길 바에는 한국어에서 '신라'나 '한라산'도 소리나는 대로 'Silla', 'Hallasan'이 아니라 'Sinra', 'Hanrasan'으로 옮겨야 형평성이 맞지 않겠는가. 그러나 우리말을 외국어로 옮기든 외국어를 우리말로 옮기든 소리나는 대로 옮겨주는 것이 원칙이다. 그래서 과거 우리가 동경이라 불렀던 도시를, 성룡이라 불렀던 배우를 그 나라 사람들이 부르는 대로 '도쿄', '청룽'이라고 부르려고 노력하면서 중국에 우리나라 수도를 더 이상 한성이라 하지 말고 '서울'이라 불러달라고 요청한 것이 아니겠는가? (한 10여년 전에 이런 요청이 있었다고 필자의 중국 친구들이 왜 한국은 갑자기 수도의 명칭을 바꾸었냐고 물어와서 박장대소를 한 적이 있었다. 중국인들은 자신들이 우리나라 수도의 옛 명칭을 아직까지 쓰고 있었다는 생각은 못하고 우리가 수도의 이름을 바꾸었다고 생각한 것이다.) 어쩔 때는 우리가 참 그 나라에서 소리나는 대로 잘 옮기기도 한다. 예를 들어 체코의 프라하 같은 경우! 자, Prague를 읽어보시라.  이 단어를 영어식으로 읽으면 '프래그' 정도 되지 않겠나? 왜 이렇게 외국어를 우리말로 옮기는 데 어떤 단어는 현지어에 충실하고 다른 단어는 영어식으로 읽는지, 일관성은 어디에 있는지 묻고 싶다.

  그 다음으로 독일어로 자연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  Natur를 '나투르'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이 보인다. 이 단어는 '나투어'라고 읽고 써야 하는 것이 맞는데 그 이유는 독어에서 r sound가 모음 다음 소리로 단어의 맨 마지막에 오면 '어'로 소리를 내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이 나투어를 나투르라고 쓰는 것은 r은 ㄹ이라는 영어식 발음 한국어 전환 원칙을 다른 언어에 기계식으로 대입한 결과처럼 보여진다. 그러고 보니 불어 'Jours'에서도 R이 마지막 소리이니 주흐 뿐 아니라 '주허'로 읽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실제로 소리를 들어보면 (Nager Tous Les Jours 발음 참조 https://www.youtube.com/watch?v=FHyU3LkRT6c) R소리 다음에 자음이 오는 경우 약한 '흐'나 아예 소리가 나지 않는 묵음처럼 들리고 R 다음에 아무 소리도 없는 경우 '허'처럼 들린다.

  이렇게 외국어는 현지어 소리나는 대로 우리말로 옮겨주어야 한다는 것이 국어연구원에서 주장하는 외국어 우리글자로 옮기기의 원칙이고 필자도 이에 동의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외국어 소리에 대한 연구가 좀 필요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독자들의 생각은 어떠신가?

[참고사항]
Tous Les Jours에서 앞소리 중 Tous Les도 현재 우리나라 빵집 상표에서 '뚜레'로 쓰는 이유는 일본식 L 소리 표기를 무작정 따라하는 한국의 기이한 관습에 기인한다고 필자는 보는데, 이에 대해서는 다른 글에서 다루기로 하자.

2017년 7월 10일 월요일

영어에 대한 오해 1: 영어는 수학적이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말은 맥락적인데 반해 영어는 수학적이고 논리적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고정관념을 대표하는 말이 '우리말은 끝까지 들어보아야 한다'와 같은 표현이다. 이에 대한 부연설명으로 영어에서는 문장에서 가장 중요한 주어 서술어가 문장 초반에 나오지만 우리말에서는 술어가 문장 맨 마지막에 위치하기 때문에 끝까지 들어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문장의 맨 마지막에서 문장의 전체 뜻이 모두 바뀔 수 있다면 맥락적이라는 주장이 틀린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영어는 그렇지 않을까?

  이러한 고정관념을 확대재생산하는 대표적 예가 우리말 사투리에 존재하는 "갸가 갸가가?'라는 표현이다. 우리말에서는 가와 갸 단 두글자만으로 이렇게 복잡한 의사소통이 가능하니 얼마나 맥락적이란 말인가!? 이 외에도 우리말에서 주어가 쉽게 생략되지만 영어에서는 그런 주어가 대명사로 대치되어 반드시 문장에 명시되는 점 등이 우리말은 맥락적이라서 어렵지만 영어는 기계적이고 수학적이라서 단어만 많이 알면 주어, 동사, 목적어 중 해당 위치에 적절히 끼워넣기만 하면 영어를 잘하게 될 수 있을 것과 같은 환상을 불어 넣는다.

  과연 그럴까?

  첫째, 위 주장 중 주어와 술어의 위치를 따지는 주장은 우리말과 영어에서 문장의 중요한 요소 중 목적어의 위치는 생략한 논리이다. 즉, 자기 확신적 확증 오류가 아닌가. 우리말에서는 술어가 나중에 오지만 영어에서는 목적어가 나중에 온다. 술어로 인해 우리말을 끝까지 들어야 한다면 목적어는 중요한 메세지를 전달하지 않는단 말인가? 영어는 목적어 때문에 끝까지 들어야 메세지를 이해할 수 있다는 말도 같은 논리로 성립하게 된다.

  물론 영어의 문장구조를 볼 때 목적어의 위치가 문제가 아니라, 문장을 길게 만드는 데 가장 기여하는 부사구의 위치를 문장의 후반으로 돌릴 수 있다는 점이 문장주요성분 전반위치 주장에서 더 중요하게 취급되었을 수 있다. 우리말에서는 부사구가 항상 술어 앞에 위치해야 하기 때문에 분명 이 부분은 영어의 장점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논거에도 허점은 많다. 예를 들어, 주어나 목적어가 구를 이룰 때 영어에서는 가주어나 가목적어를 내세워 실제 주어나 목적어 부분을 문장의 맨 마지막에 위치하게 작문을 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영어에서는 술어가 아니라 주어나 목적어 때문에 문장을 끝까지 읽어야 이해할 수 있는 일이 생긴다.

  또한 영어에서 마지막에 위치하게 되는 부사구가 문장 전체의 의미를 좌우할 정도로 중요한 메세지를 담고 있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 주어 동사가 문장 앞에 위치했다고 해서 메세지 전달에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하고 부사구를 끝까지 들어야 화자의 진의를 이해할 수 있을 수도 있다. 즉, 필자는 영어도 끝까지 들어봐야 화자의 말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어떤 사람이 말을 하고 있는데 그 말을 끊고 자기 말을 하는 것은 매우 무례하다고 취급된다는 점을 고려해 보면 필자의 주장이 그리 크게 잘 못된 것은 아니라고 본다.

  다음으로 '갸가 갸가가'나 '거시기'와 같이 맥락을 공유해야만 이해할 수 있는 표현이 우리말에 많다는 주장이다. 얼마나 우리말이 영어보다 더 맥락적이지 않으면 안된다고 굳게 믿고 있다는 점이 드러나는지... 평소에는 사투리라고 멸시하며 표준어를 써야 한다고 열을 올리는 사람들이 우리말이 맥락적이라고 주장할 때만 되면 난데없이 사투리를 들고 나온다. 필자는 이렇게 우리나라 언어 자산인 사투리를 멸시하지 않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전적으로 환영이지만, 역시 이러한 고정관념은 우리나라 말은 사투리까지 모두 알고 영어는 책으로만 배워서 생기는 지식의 비대칭성 문제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영어에도 우리말의 '거시기'와 같은 표현이 존재한다. 영어사용자들은 말이 막힐 때 흔히 'thing' 또는 'something'으로 자기가 하려던 표현을 대신함으로써 우리말에서 '그거 있잖아'와 비슷한 효과를 낸다. 이에 대한 사투리... 거시기는 thingiy로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우리말에서 주어생략이 빈번하게 일어나기 때문에 맥락적이라고 한다. 하지만 주어생략은 영어에서도 빈번히 일어난다. 영어사용자들끼리 친구 사이에서는 주어는 물론 심지어 동사까지 모두 생략한다... 영어로 친구한때 점심 먹자고 이야기할 때 우리가 책에서 배운 것처럼 'Would you like to have lunch with me?'라고 하지 않는다. would가 들어가는 표현은 교수님한테 혹은 낯선 사람에게 물어볼 때나 사용하지 친구끼리는 'lunch?'라고 한마디 하면 된다. 이것을 우리 말로 번역하면 '밥 먹을래?'쯤 될 것이다. 우리말의 밥 먹을래도 이것이 점심인지 저녁인지 같이 먹자는 것인지 밥 남았으니 너 혼자 먹으라는 소리인지 맥락을 이해해야 의사소통이 가능하지만 영어의 lunch와 같은 경우도 점심을 먹었냐는 소리인지 같이 먹자는 소리인지 이해하려면 맥락을 알아야 한다.

  갈수록 한국이 세계화되어 가고 국내에 외국인들 수도 늘어나고 아이들도 이전보다 더 어린 나이부터 외국어를 접하는데도 불구하고 이런 고정관념은 약해질 줄을 모르는 것 같다. 심지어는 외국에서 살아도 보고 외국어도 아주 잘 하는 사람들조차 이런 잘못된 고정관념을 확대재생산한다는 측면에서 사람들이 아무 생각없이 습관적으로 하는 말에 얼마나 깊이 고정관념이 자리 잡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심지어는 자신의 경험도 이러한 습관을 이기지 못하니 말이다.

2017년 7월 8일 토요일

영어를 잊은 그대에게: 어학연수 후 영어를 다 잊으셨나요?

  어학연수 혹은 외국유학 후 귀국해서 영어를 쓰지 않는 환경에서 오래도록 지내다보면 자신이 외국에서 익혔던 영어를 잊게 된다. 서서히 이루어지지만 쌓은 영어를 잊게 되는 것은 서서히 이루어지기 때문에 서서히 달구어지는 물에 들어간 개구리처럼 자신이 영어를 잊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지내다가 어느 순간! 자신의 영어 실력이 과거의 그 수준이 아님을 깨닫고 깜짝 놀라게 된다.

  새롭게 영어 실력을 쌓는 것 만큼은 아닐지라도 잊은 영어 실력을 다시 살리는 것도 사실 지난한 과정이다. 특히 과거 자신의 영어실력과 현재를 비교하며 절망하고 그 절망을 이겨내지 못하면 포기하게 되는데.... 이러한 절망을 이길 자신이 없다면 더 이상 영어를 일상적으로 쓰지 않는 한국에서 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영어를 어떻게 지킬 것인가 고민하고 계획을 세워 지켜나가야 할 것이다.

  간혹 이런 경험이 처음이라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이 필자에게 상담을 청해 온다. 그래서 다음은 필자가 수행하고 있는 원칙인데, 그들에게 간단한 팁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 적어본다.

우선 듣기.
  모든 언어의 배움은 듣기에서 시작한다. 아기들이 모국어를 배울 때도 그렇고, 어린 아이들이나 청소년들이 외국어를 처음 배울 때도 그렇다. 우리나라 교육이 어쩌다 문법위주로 돌아가서 듣기에 대한 강조를 듣기평가 시험성적 이외에는 잘 하지 않지만 실생활에서 언어사용을 원하는 사람이면 한국어든 외국어든 듣기가 가장 중요할 것이다. 이는 배운 외국어를 잊지 않기 위해서 노력할 때도 그렇다.
  자신이 좋아하는 종류의 장르가 있다면... 그것이 팝송이 되었든, 뉴스가 되었든, 오디오북이 되었든 틈만 날 때 마다 들어주자. 필자는 시사에 관심이 많아서 귀국 후 국내 뉴스를 모두 영어로 들었다. 그러다 보면 외국 소식도 많이 접하게 되는데, 아무래도 영어로 뉴스를 전하는 매체에서는 시청자 층이 외국에 관심이 많거나 외국인들도 다수 포함하고 있어서 우리말 뉴스 프로그램보다 외국관련 뉴스를 많이 전하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국내 생활에 적응하다 보니 뉴스에 대한 흥미는 떨어지고 대신 팝송이나 오디오북으로 관심이 옮겨갔다. 그래서 영어 책을 읽기 보다 영어 책을 듣고 팝송을 부르기보다 팝송을 듣는 생활을 한동안 이어나갔다. 물론 필자가 시사에 대해 가지고 있는 관심은 영어로 해설하는 다큐멘터리와 같이 보다 깊이 있게 주제를 다루는 비디오 클립으로 해소하고 있다.
  이렇게 계속 듣게 되면 오히려 외국에 있을 때보다 듣기 실력이 더 나아진다고 느낄 때도 있고 새로움 표현을 계속 익히게 되는 장점이 존재한다. 그러나 이렇게 까지 되려면 많은 시간 듣기를 해야 하는데 그렇게 시간과 노력을 쏟을 수 없을 때에라도, 최소한 본인이 가지고 있던 영어실력이 낮아지는 것을 저지할 수 있다. 마지노선이라고 하지 않는가. 따라서 시간이 별로 없을 때 특히 짬짬이 영어로 듣기를 계속하는 것이 자신의 영어실력 지키기의 최소한임을 명심하자.
  물론 계속 듣기만 하면 말하거나 쓰는 실력을 떨어지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듣기를 계속할 경우 필요할 때 말하기나 듣기 실력을 원래 상태로 복원하는 데 드는 노력과 시간을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다는 사실!

둘째 읽기.
  듣기만 하기에는 부족하다고 느끼거나 시간적 여유가 있어 더 노력할 수 있다면, 영어 문서를 꾸준히 읽어주는 것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영어 실력을 지키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역시 뉴스든 소설이든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읽는 것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그래야 꾸준히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듣기는 읽기든 언제나 꾸준히 하는 것이 핵심이다.

셋째 말하기.
  영어로 대화할 수 있는 친구가 있다면 더할 나위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그리고 학원에 갈 시간이나 여유가 없다면 전화영어 화상영어통화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꾸준히 말하기 실력도 잃지 않게 노력해 보는 것을 추천할 만하다.

마지막 쓰기.
  어느 언어에서든 듣기와 말하기는 자연스럽게 되지만, 읽기와 쓰기는 전문적인 교육자에게 배워야 하는 것이다. 쓰기 또한 자신이 노력하는 만큼 늘고 그리고 노력하는 만큼 지켜진다.

  물론 모든 사람이 어학연수를 마치고 나서 혹은 유학을 갔다와서 꾸준히 계속 듣기, 말하기, 읽기, 쓰기를 모두 다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 경우 최소한으로 노력할 때 무엇을 할 것인가... 생각해 본다면... 필자는 듣기를 추천하지만, 자신의 상황에 따라 그리고 선호도에 따라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것을 선택해서 꾸! 준! 히! 하는 것이 핵심임을 명심하자.

영어 사용자와 우리말 사용자의 문화차이 1: 귀인 오류

심리학적 개념에는 Fundamental Attribution Error(기본적 귀인 오류)라는 것이 있다. 이는 사람들이 다른 이의 행동을 보고 그가 왜 그런 행동을 했을까 생각해 볼 때 많은 경우 그가 처한 환경을 고려해서 생각하기 보다 그의 행동이 그 사람의 생각이나 성격을 반영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을 일컫는 개념이다. 생각해 보자. 우리는 얼마나 많이 내 생각과는 다르게 상황에 따라 행동하는가? 하지만 타인의 행동의 원인을 생각할 때는 이러한 점을 고려하지 않아서 이를 심리학적 '오류'라고 보는 것이다. 여기서 '귀인'이라는 말은 '어떤 행동의 원인을 찾는다'는 뜻인데 일반독자가 느끼는 생소함에 비례해서 이 말이 일본학자들이 attribution을 번역한 일본식 한자어를 그대로 한국 심리학자들이 가져다 썼을 가능성이 높다는 데 한표 건다.

지난 글에서 우리말 사용자들은 꼭 '도둑놈이야'라고 명시하지 않아도, 즉 '도둑질을 했대'라는 일회성 행동 표현만으로도 그 대상이 되는 사람을 도둑놈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은 아닌지 문제를 제기 했었다. 즉, 명사적 표현은 추상성이 높고 동사적 표현은 추상성이 낮다는 것은 영어에 국한된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을 제기한 것이다.

이러한 의심과 관련해서 한가지 더 흥미로운 현상이 있다.

그것은 영어사용자 혹은 서구의 문화를 대표하는 것으로 취급되는 미국사람들은 어떤 행동을 보면 그 행동이 심지어 어쩔수 없이 한 행동이었다고 해도 그 행위자의 성격 혹은 내면적 의도를 반영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우리나라 사람들을 포함하여 동양인들보다 더 강하다는 것이다.

반면 우리말 사용자 혹은 한국인들은 그런 성향이 더 낮다고 한다. 즉 한국에서는 상황에 따라 사람의 행동이 달라진다고 보기 때문에 누가 어떤 행동을 했다면 그 행동의 이유가 무턱대고 그 사람의 내적 특성에 있다고 보기 보다는 상황이 어떠했는지를 거의 동시에 비슷한 비중으로 혹은 최소한 미국인들보다는 더 깊이 있게 고려하는 문화차이를 보인다는 것이다.

과연 그런가? 특히나 나이 많으신 분들은 일일 연속극을 보고 그 이야기 속에서 악역을 맡은 배우를 미워하게 되었다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 저런 나쁜... 이라고 욕하면서. 혹 만나기라도 하면 직접 이야기 속의 악행과 관련하여 혼을 내는 일도 있다는 소문도 듣는다. 하지만 그 배우는 그것이 역할이어서 그런척 했을 뿐이지, 그 이야기 속에서 그 배우의 행동이 그 사람의 실체를 반영하는 것은 아니어서, 이렇게 이야기 속에서 역할과 그 배우의 성격을 혼동하는 '기본적 귀인 오류'는 해당 배우의 상황을 매우 곤란하게 만든다.

필자가 볼 때 연속극의 역할과 배우 본인의 성격을 헷갈리는 경향은 우리나라가 미국보다 더 많을 것 같은데...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한가? 필자가 생각하기에 이런 문화차이의 역전은 일일 연속극과 같은 방송매체의 역사가 미국에서 더 오래되었으며 따라서 미국인들에게는 훨씬 더 익숙하지만 상대적으로 한국에서 방송문화는 미국보다 훨씬 더 최근에 시작되었기 때문에 여전히 이 부분이 낯선 한국의 노인분들에게는 이야기 속의 역할과 그 역할을 하는 배우 본인 간 경계가 모호해서 그 둘이 같다는 착각을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따라서 국내에서도 젊은 세대들은 이야기 속 역할이 그 배우의 특성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악역이라도 연기를 잘했냐 못했냐를 놓고 평가하는 경향이 더 강하지 않을까 미루어 짐작해 본다.

이렇게 보면 기본적 귀인 오류의 문화차이도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닐까?

2017년 7월 7일 금요일

우리말에 우리말 이름이 없다는 현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우리글은 훈민정음이나 한글이라는 이름이 있다. 그러나 우리말에는 이름이 없다 한자든 우리말이든. 우리글에라도 우리말 뿐만 아니라 한자로도 이름이 있다는 사실에 기뻐해야 하는 것인지... 이런 생각을 할 때면 필자는 씁쓸하다.

  우리말과 우리글을 합친 경우에는 우리말로는 이름이 없으나 한자로는 이름이 있다. 한국어!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의 이름도 우리말로는 없고 한자로만 존재한다. 대한민국, 한국.
우리꽃도 무궁화
우리깃발도 태극기.
우리나라 도시의 이름도 서울을 제외하고는 모두 한자이다.
대부분 우리나라 사람 이름도 한자이다.

  우리말의 80%가 한자어. 그 한자어의 80%정도 가량이 아마 일본식 한자어일 것이다. 사극을 보면 알 수 있듯이 현재 우리가 쓰는 한자어와 조선시대에 사용하던 한자어가 매우 다름을 알 수 있지 않나! (물론 필자가 언어학자가 아니라서 티비 드라마나 역사 영화에서 사용하는 한자어가 얼마나 조선시대 상용어를 잘 고증한 것인지까지는 알지 못한다. 혹 언어 전문가로서 의견이 있다면 기탄없이 개진해 주기 바란다.)

  물론 일본식 한자어의 영향을 받는 것은 비단 지배를 받았던 우리나라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서구의 자본주의가 팽창주의를 추구할 때 아시아지역에서 가장 먼저 해당 문물을 받아들인 나라 중 하나가 일본이었기 때문에

  그러면서 영어를 쓰는 요즘 세태에 대해 손가락질 한다. 마치 이제 한복은 아무도 입지 않고 모두 양복을 입으면서... 언어는 한자만 쓰고 영어는 쓰면 안된다는 주장은 무엇인가? 이는 마치 양복은 입지 말고 중국식 복장만 입으라는 식의 발상이 아닌가??

  우리말을 지켜야 한다는 그 사람들의 대부분이 모르긴 몰라도 현재 우리가 쓰는 한자어에 얼마나 많은 일본식 한자어가 섞여 있는지... 혹은 애초에 왜 우리 조상은 우리말에 이렇게 많은 한자어를 섞어 놓은 전통이란 것을 만들었는지 한번도 의심조차 해보지 않은 사람들 일 것이다.

  물론 그들 중 일부는 자신들의 입장을 이렇게 논리적으로 전개한다.
한자어는 뜻글자... 그래서 좋다!?
한자어는 뜻글자라서 우리말에는 부족한 뜻 위주의 작명을 할 수 있다...뭐 이런 뜻인 것 같다. 하지만 그에 따른 막강한 단점도 있다. 성조가 빠진 한자어를 한글로 표현할 때 동음이의어가 너무 많아 의미가 정확히 전달된다는 뜻글자의 효력이 무색해진다는 것이다. 이 경우 영어가 더 명확한 뜻을 전달해 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은 이 경우, 영어를 쓰자고 하기 보다 한자어를 한자로 쓰자, 즉 한자를 한글로 쓰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필자 입장에서 이런 주장은 조선시대로 돌아가자는 주장처럼 들린다. 혹은 자신들은 한자는 잘 알지만 영어는 잘 모르니 자신들에게 맞추어라라고 하는 기득권지키기.

  필자도 우리말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우리말에 한자까지 포함하는 것은 아니다. 조상이 우리말에 한자를 80% 섞어 놓았으면 그중 40%는 우리 세대가 영어를 섞어 새로운 전통을 만들어서 후대에 물려주어도 무슨 낯부끄럼이 있겠는가?

  만일 이것이 싫다면 현재 우리가 쓰는 한자어도 모두 우리말로 바꾸어 쓰자!
많은 사람들이 이 말을 국수주의적 주장으로 생각한다. 세계화 시대에 우리말만 쓰자니. 하지만 필자가 이런 주장을 할 때 한자와 영어를 모두 배우지 말자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나라 사람 모두가 이 두 언어를 필수적으로 배워야 하는 것은 낭비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한자를 잘 알면 중국과 교류 뿐 아니라 우리나라 고문서도 읽고 이해할 수 있으며 이를 우리말로 잘 번역하고 설명하여 우리나라 사람들의 지식을 향상시켜주면 좋겠다. 이런 방면으로 흥미가 있다면 한자를 열심히 배워야 한다. 또한 외국과 교류하거나 외국 문물을 우리나라에 소개시키기 위해서 영어 필수적이다. 이런 방면으로 뜻이 있다면 영어를 열심히 배워야 한다.

  그러나 중국에 갈 일도 없고, 한국학이 전공도 아니고, 외국에 가고 싶지도 않아서 평생 한자, 영어 쓰고 살 일 없는 사람들이 무조건 한자와 영어 시험 성적을 잘 받아야만 취직도 하고 먹고 살 수 있는 교육 시스템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 게다가 이러한 시험성적은 실제 언어 실려과 상관이 없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과거에는 영어 시험이 해당 응시자의 성실함을 대표하는 지표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현재에도 영어 시험은 워낙 경쟁이 치열한 대기업 회사에서 객관적 기준이 필요하니까 보는 것이라는 입장이 대세적이다. 한자, 영어 실력과 무관한 시험성적만 추구하는 교육제도, 이것이 낭비가 아니고 무엇인가?

  자, 이제 한자어를 쓰는 것과 영어를 쓰는 것이 모두 문제임이 명확해 졌다. 이제는 시민사회의 결정이 필요하다. 당신은 어떻게 하고 싶은가?

동사형 우리말과 명사형 영어: 편견에 영향을 줄까?

  모국어인 우리말과 제1외국어인 영어와 관련하여 우리나라사람들에게 많은 고정관념이 있지만 그 중 일부는 맞는 경우도 있다. 그 중 하나가 무엇인가를 표현할 때 영어에서는 명사를 사용하는 빈도가 높고 우리말에서는 동사를 사용하는 빈도가 높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영어사용자가 자신의 취미를 말할 때 이렇게 말한다. I am a swimmer. 반면 우리말 사용자는 다음과 같이 말할 것이다. 나는 취미로 수영을 해. 우리말에서 취미를 소개할 때 나는 수영선수라느니... 암벽등반가라느니 이렇게 명사형으로 이야기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 사람이 그 취미에서 아주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는 경우에 한해서 주로 주변 사람들이 수영선수 뺨친다는 식으로 명사형 표현이 등장하는 편이다. 하지만 영어에서는 본인이든 주변사람이든 그 사람의 실력에 상관없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swimmer라고 취미를 표현한다.

  이러한 행위를 표현할 때 명사를 쓰느냐 동사를 쓰느냐가 언어에 따라 달라지는데, 이를 언어학적으로 볼 때 해당 표현이 담고 있는 추상성이 달라진다고 한다. 즉, 명사는 언제나 그것을 하는 사람이라는 높은 추상성을 가지고 있지만 동사로 표현할 때는 일회성으로 그것을 지금 하고 있다는 식이라서 다른 때는 그 행동을 하지 않음을 내포하는 추상성이 낮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서 심리학적으로 재미있는 질문이 하나 생긴다. 높은 추상성을 가진 명사를 표현해 사람들을 표현하다 보면 그 사람에 대한 고정관념, 나아가 편견이나 차별적 태도 경향까지 높아질까? 반면 일회성 행동을 의미하는 동사를 많이 사용하는 언어에서는 고정관념, 편견, 차별이 적은가? 예를 들어 누군가 친구가 어떤 가게에서 물건을 하나 훔치는 장명을 목격했다고 가정해 보자. 그 사람이 우리말사용자라면 '나 걔가 물건 훔치는 것 봤어.'라고 증언할 것이다. 반면 영어사용자라면 'He is a theft.'라고 표현할 것이다. 자... 당신이라면 누구의 말을 들었을 때 그 도둑질한 친구에게 더 나쁜 감정, 혹은 더 강한 감정이 들겠는가?

  영어사용국가에서 차별은 매우 뜨거운 주제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차별은 그다지 뜨거운 이슈는 아니다. 그렇다고 차별이 존재하지 않는다거나 차별이 약하다고 할 수 있을까? 그것도 동사를 많이 사용하는 우리말 때문에??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에서 많은 차별이 이루어지고 있다. 전통적으로 장애인, 외국인에 대한 차별을 비롯해서 최근에는 성소수자, 이민자 등에 대한 차별이 뉴스기사로 오르내리는 것이 특별한 일이 아니다. 특히 위에서 설명한 도둑질, 혹은 다른 범죄가 외국인과 연결되어 있는 경우... 생각해보자. 우리는 바로 외국인을 범죄자라고 단정하기 쉽다. 그 표현이 도둑질 한 번 하는 것 봤어...라는 동사형이라고 해서 우리의 편견적 태도가 약해지는지는 매우 의심스럽다. 우리 말에 이런 속담도 있지 않나...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

  예를 들어, 구로 지역에 외국인이 많이 사는 지역에는 경찰이 순찰을 하러 돌아다니기도 힘들다든지... 그러니 범죄가 일어나도 한국 경찰이 수사하기는 얼마나 더 어렵겠냐는 식의 소문이 심지어는 경찰 사이에서도 만연하게 일고 있다. SNS를 보면 물론 외국인의 인권을 논하는 네티즌도 많지만 외국인은 모두 범죄자인 것처럼 인식하고 있는 사람들도 많음을 알 수 있다.

  필자가 알고 있는 법조계라면 법조계인 범죄심리학을 전공한 지인 중 한 사람이 외국인이 집중적으로 거주하고 있는 지역에 한국 경찰이 자유롭지 못한 것이 사실 아니냐며 필자에게 반박을 한 적이 있다. 필자는 세월호 사건 당시 주범으로 지목되었던 (이 지목이 꼬리자르기냐 아니냐를 일단 논외로 하고) 유병언을 체포하기 위해 그가 거주하고 있는 곳을 경찰이 포위했을 때 이야기를 해 주었다. 물론 필자의 지인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경찰은 유벙언을 신봉하는 신자들이 저항하였기 때문에 결국 그를 체포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한국의 종교인들은 범죄인이라는 둥 더 나아가 한국인 모두가 경찰을 어렵게 한다는 둥 하는 식의 선입견은 그 누구도 가지고 있지 않다.

 이렇게 보면 언어가 심리에 영향을 끼친다는 Sapir–Whorf hypothesis(사피어-워프 가설)이 얼마나 인간의 실제 심리 및 행동을 설명하는지 의문이 든다. 혹 명사는 그 사람의 일반적 경향성을 표현하기 때문에 추상성이 강하고 동사는 일회적 행동을 표현하기 때문에 추상성이 약하다는 설명은 영어사용자에게 국한 된 것은 아닐까? 우리말, 그리고 우리말이 사용되고 있는 한국문화에서도 동사와 명사의 추상성이 그렇게 구분되는지 연구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마치 우리나라 영어사전이 일제시대 일영사전을 그대로 배껴서 만든 그 지점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처럼, 현재는 영어사용자가 보는 세계관을 우리말에 그대로 투영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고민해 볼 때가 아닐까?

(영어가 공용어로 사용되는 나라들의 문화와 우리나라의 문화 간 차이에 대한 더 자세한 언급은 이 글의 목적은 아니기 때문에 다른 글에서 하기로 한다.)

 

2017년 7월 6일 목요일

아동 영어교육에서도 영어 발음이 전부가 아니다!

  아래 '아동을 위한 영어교육프로그램 추천!'라는 글에서 필자가 어릴 때 원어민에게 배우는 것이 발음에 도움이 된다고 언급했다고 해서... 과거에 부모들이 아무 문제 없는 아동들의 혀를 수술하려고 했던 것처럼 지나치게 원어민만 영어를 제대로 가르칠 수 있다고 오해할까봐 한마디 더 하고자 한다.

  첫째 영어는 발음이 전부가 아니다. 국내에서 영어를 잘 하지 못하는 사람일 수록 영어 발음이 미국인처럼 굴러가면 영어를 잘 하는 것이라고 착각하는 사람이 많다. 왜냐하면 어차피 메세지는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 사람이 얼마나 자신의 생각을 잘 표현했는지는 가늠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필자를 믿어라. 영어 발음보다 자신의 생각을 영어로 더 잘 표현하는 사람이 발음이 어떻게 되었든 영어를 더 잘하는 사람이다. 위에서 필자가 발음을 언급한 이유는 영어로 자신의 생각을 잘 표현하면서 발음도 좋으면 금상첨화이기 때문이지 발음과 생각의 표현 중 하나를 포기하라고 한다면 당연히 포기할 것은 발음이다.

  이 생각의 표현을 판단하기가 특히 어려운 이유는 우리가 우리말로도 자신의 생각을 잘 표현하는 것이 무엇인지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중에 말에 재능있거나 글을 잘 쓰는 사람은 나타나기 마련이다. 어떻게 이들은 말이나 글을 잘 하게 되었을까? 더구나 한국의 학교에서는 가르치지도 않는데... 뻔한 대답이겠지만 그들은 재능이 있거나 스스로 열심히 노력한 경우이다.

  즉 우리가 영어 공부라고 할 수 있는 읽기 쓰기는, 더 나아가 말하기 듣기도 잘 하려면 훈련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함께 고려해 보면, 이런 것은 나중에 개인이 흥미가 생겨서 혹은 재능이 있어서 알아서 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우리말에서도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이야 모두 우리말을 듣고 이해하고 말할 수 있지만, 누가 더 잘 듣고 잘 말하는지 누가 읽고 쓸 수 있는지는 모두 같은 교육을 받았다고 해도 개인이 노력하는 정도에 따라 달라진다는 점 잘 알고 있다. 물론 우리말 읽기 쓰기에도 좋은 강사를 붙여 더 질 높은 교육을 받으면 같은 재능이어도 더 뛰어나게 훈련될 수 있겠지만 이를 위해서는 현재와 같은 국어, 영어 강습, 과외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런 프로그램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부모님들이 현재 가능한 강사를 구해서 그냥 돈만 주면 되는 것이 아니라 해당 프로그램을 개발하도록 그 강사에게 혹은 그 강사가 포함된 학원에 더 나아가 교육부에 요구하여야 할 것이다.

(사실 이 부분은 영어나 국어와 같은 언어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수학이나 과학을 포함한 모든 학문, 공부에 해당한다. 우리 나라에서 공부는 해당 개념을 이해하고 실생활에 적용할 수 있는가에 기준이 있지 않고 사지선다형 시험에서 얼마나 점수를 높게 받느냐에 있다. 심지어 수학을 잘하는 것이 공식을 외서 대입을 잘하는 것이라는 말도 안되는 고정관념마저 형성하고 있어, 수학도 암기과목이라는 웃지 못할 우스개 소리까지 출현한 실정이다. 그래서 중학생의 수학실력은 세계 최고라는데 수학에 흥미를 가지고 있는 학생들의 비율은 세계에서 꼴찌이고 그에 따른 당연한 결과로 세계적 수학자는 배출되지 않고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영어도 발음이나 문법이 전부가 아니다. 물론 그래도 한국에서는 시험성적이 최고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 필자는 할 말이 없다. 따라서 부모가 결정을 해야 한다. 아동에게 영어, 수학을 가르칠 때 각 과목에 흥미를 가지고 스스로 하도록 환경을 조성해 줄 것인지 아니면 영어 수학 못해도 싫어해도 좋으니 시험성적만 잘 받도록 할 것인지. 만일 후자라면 필자의 블로그에서는 얻어갈 것이 없을 것이다.)

  둘째로 어린 아동에게 처음부터 외국인이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언어를 가르치도록 한다면 아동의 특성에 따라 겁을 먹고 영어를 두려워하게 될 수도 있다. 한국이 세계화되었고 길 가다 외국인을 수시로 접할 수 있게 변한 것은 맞지만 여전히 외국인이 우리 이웃이고 친구이고 만나면 친근한 그런 사이는 아니지 않는가. 이런 경우 외국인과 만나는, 특히 1:1 강습은 부모의 기대와는 달리 아동에게는 더 무서운 상황이 될 수도 있다. 따라서 아동이 처음 영어를 접하는 상황에서는 친근한 한국인 강사가 발음에 한국어 액센트가 강해도, 심지어 영어 발음이 후져도 더 좋은 선택일 수 있다. 이들이 영어에 대해 아동의 흥미를 이끌어낼 수 있다면 말이다.

  따라서 자신이 영어에 대해 자신감이 없는 부모라면 반드시 자신이 영어를 평가할 때 지나치게 발음에 의거해서 영어의 질을 평가하지 않는지 주의할 필요가 있다. 만일 자신이 영어 프로그램에 대해 발음 이외에 평가할 방법이 없다면 가장 안전한 방법은 역시 아동이 학교에서 영어를 처음 배우게 하는 것이다. 특히 당신의 자녀가 언어에 재능이 있다면 초등학교 3학년부터 외국어를 배우는 것은 전혀 늦은 시기가 아니다. 자신이 잘 모르는 사이에 섣부르게 자녀에게 영어에 대한 흥미를 잃게 하여 언어에 재능이 있음에도 영어를 혐오하게 만들지 말고 자연스럽게 학교에서 영어를 시작하게 하여 아동이 필요하다고 하는 부분에 지원을 하는 지원자 역할에 충실히 하자.

2017년 7월 5일 수요일

아동을 위한 영어교육프로그램 추천!

  현재 한국의 교육체계에서는 초등학교 3학년때부터 영어를 배우기 시작한다. 많은 부모들이 그러나 더 이른 시기부터 영어를 가르치고 싶어한다. 사실 이러한 욕망이 그릇되었다고만 볼 수도 없다. 아동들이 국어를 수학을 학교에서 배우기 시작하는 시기가 초등학교 입학 때부터이지만 사실 그보다 어린 시절부터 부모나 주변 어른을 따라하면서 말은 할 수 있게 되고, 자기에게 주어진 사과나 고구마 갯수, 혹은 같이 노는 친구들 장남감 갯수를 세면서 수를 자연스럽게 알게 되니까 말이다.

  그렇다면 영어도 학교에서 배우기 이전에 이렇게 자연스럽게 익숙해지는 방법을 찾을 수 없을까? 필자가 여기에서 가장 강조하고 싶은 것은 아이에게 영어와 놀게하라는 것이다. 절대 학교에서 배우는 것처럼 영어를 가르치려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필자의 입장이다. 필자는 아동이 어릴때 그것이 영어든 국어든 수학이든 공부를 시키겠다는 마음으로 무엇을 강요하는 것은 아동학대라고 보는 입장이며 이와 동시에 이 글에는 그와 관련된 그 어떤 좋은 정보도 없을 것임을 미리 밝혀 둔다.

  다만 아동에게 영어를 학교이전에 미리 접하게 하고 싶은 그 마음이라면 필자가 주변에서 알게 된 몇가지 프로그램을 소개하고 싶다.

  우선 취학이전의 아동들을 대상으로 '영어 뮤지컬'교육을 하는 개인 사설 학원, 구립 문화시설 교육 프로그램이 다수 존재한다. 여기에서 아동들은 영어로 노래를 부르고 그 놀래가 속하는 상황도 함께 인지하면서 영어를 처음 접하고 배우게 된다. 무엇보다 영어가 재밌다는 인상을 아동이 갖게된다는 점에서 유익하다고 할 수 있다.

  취학 후에는 여러 도서관에서 실시되고 있는 영어 동화읽어주기(주로 자원봉사자가 아동들에게 영어를 읽어준다) 교육 프로그램이 추천할 만하다. 영어를 모두 알아듣지 못하더라도 재미있는 그림과 읽어주는 사람의 연기 등이 함께 어우려져 아동이 영어에 대해 더 깊은 관심을 갖게 해 줄 수 있다. 여기에서 조심할 것은 아동이 동화를 듣는 것에 만족해야지... 미리 영어를 읽게 하겠다고 알파벹을 가르치면서 수선을 떨다가는 역효과가 나서 아동이 영어를 싫어하게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와 동시에 각종 회화프로그램이 존재한다. 각족 사설학원및 구립 문화시설에서 실시되고 있는데, 이미 영어뮤지컬이나 영어동화듣기 프로그램을 통해서 영어를 좋아하게 된 아동들에게 추천할 만하다. 이제부터는 실제로 아동이 영어 표현을 배우게 된다. 혹 여유가 된다면 원어민 개인강사를 섭외해서 아동에게 1:1강습도 나쁘지 않다고 본다.발음은 어릴 때 배우면 상당히 개선될 수 있기 때문에 원어민이 진행하는 프로그램은 이와 관련하여 특히 장점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역시 주의할 점은 아동이 배우는 표현에 만족하지 않고 국내 영어학원처럼 대화에서 사용해본 적도 없는 단어나 표현을 단순 암기하도록 압력을 가하거나 초등학생에게까지 문법을 가르치려 든다면 그 아동도 역시 영어에 대해 흥미를 잃게 될 뿐 아니라 그 도가 지나칠 때는 아동정신과를 방문하게 되는 불상사가 벌어질 수도 있음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학원이 되었든 강사가 되었든 같이 놀면서 표현을 배우거나 프리토킹으로 놀면서 대화하는 수준으로 프로그램을 제한할 필요가 있다.

  물론 우리나라처럼 아동교육에 목숨거는 나라에서는 더 좋은 많은 프로그램이 있을 것이다. 필자가 여기에서 소개하는 것 이외의 것은 좋지 않다는 주장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 밝혀둔다. 다만 어떤 프로그램이 되었든 중요한 점은 아직 듣지도 못하고 말도 하지 못하고 아동에게 영어 알파벹부터 가르친다거나 문법을 가르치는 곳은 그곳이 영어 유치원이든 학원이든 문화시설이든 어디든 절대 보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혹시 부모 혹은 보육자가 영어프로그램의 내용을 파악하고 평가할 수 있는 능력이 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럴때 좋은 방법은 아동에게 영어 교육을 시키지 않는 것이다. 왜냐하면 학교에 가서 다 배울 것이고 초등학교 3학년은 외국어를 배우기에 절대 늦은 시기가 아니며 아동이 스스로 더 배우고 싶으면 부모나 보육자에게 요청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 때 아동의 요청에 따라 학원을 보내든 문화시설에 보내든 하는 것이 어릴 때 잘못된 영어 교육으로 평생 영어를 싫어하게 만드는 것보다 훨씬 더 좋은 판단이라는 점을 인지하길 바란다.

  그래서 결론은 다음과 같다.
  아동을 영어로 놀게하라!
 

2017년 4월 16일 일요일

Corea 대 Korea: 한국의 국제적 명칭으로는 여전히 둘 다 혼용되어 쓰인다!

  한국의 국제적 명칭은 현재 K로 시작하는 Korea로 통일되어 있다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한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사실은 그렇지 않다.

  구한말 한국의 국제적 명칭이 C로 시작했는데 이제는 K로 정착되었다는 믿음이 존재한다. 그래서 그 이유가 일본이 자기 나라의 국명인 J보다 순서가 뒤늦은 알파벹으로 만들고자 C를 K로 바꾸었다는 음모도 존재했었다.

  하지만 멀지 않은 과거에 한 잘 나가는 방송사에서 과거 한국이 C로만 시작했던 것이 아니라 K와 C가 혼용되었다는 사실을 대중적으로 밝혔다. 즉 한국이라는 Korea의 K를 일본이 해방 후 어떤 음모를 가지고 만든 것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졌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C가 아니라 K가 선택되었는지 아쉬워하는 사람도 있을 테고, 여전히 일본의 음모론에 솔깃해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여전히 잘못이 존재한다. 그것은 한국의 국제적 명칭이 K로 시작한다는 믿음다. 과거 한국에서는 외국인을 보면 모두 미국인이라고 칭하던 시절이 있었다. 외국 여행이 자유롭지 못하던 시절 한국인들에게 외국은 우리나라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미국과 동일했던 것이다. 어쩌면 한국을 찾는 외국인도 별로 없던 시절이었으니 그나마 어쩌다 마주치는 주한 미군이 우리에게 외국인 전부였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가물에 콩나듯 한국을 방문했던 유럽인은 매우 기분 나빠했다고 한다. 난 미국인이 아니라고...

  이제는 지나가는 백인을 봐도 그가 미국인인지 유럽인지지 속단할 수 없다는 사실을 한국인은 모두 알고 있는 듯 하다. 하지만 여전히 문화적 측면에서는 미국 문화와 유럽 문화가 다르다는 사실을 많이 모르는 듯 하다. 여전히 한국인에게 미국이 세계인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그 단적인 예가 바로 한국의 국제적 명칭에 대한 혼동이라고 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인식하지 못하는 듯 하지만, 한국의 국제적 명칭에는 여전히 K와 C가 혼용되어 사용된다. 백번을 양보해서 영어가 국제적 공용어라고 인정해 준다고 하면 한국의 국제적 공용어 지위의 명칭이 K로 시작할 뿐, 다른 언어를 쓰는 여러 나라에서 C로 시작하는 Corea라는 명칭을 여전히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예를 들어 보자. 모두 알고 있듯이, 한국의 영어 명칭은 South Korea이다. 혹 여러분이 외국에 나갔는데, 누가 Where are you from?라고 물으면 흔히 I'm from Korea.라고 답한다. 그러면 상대반이 반드시 From South or North?라고 다시 물을 것이다. 이 질문이 처음에는 재밌다. 아, 맞다... 북에 있는 조선이라는 나라도 Korea라는 명칭을 쓰지..라는 생각도 나고 이 사람들은 내가 한국사람인지 조선사람인지 구별을 못하는구나 신기하기도 하고... 하지만 이 대화가 얼마간 반복되면 짜증나기 시작한다. 왜 우리나라는 영어회화에서 한번도 I'm from South Korea.라고 대답하라고 가르치지 않는 것이지? 꼭 두번씩 대답을 하게 만드는 우리의 영어 교육, 문제는 없는가...에 까지 생각이 다다르기도 한다.

  한국의 국제 명칭을 이야기하다 그에 얽힌 개인 경험으로 이야기가 좀 샜는데, K로 시작하는 한국의 외국어 명칭에는 더치(네델란드어)에서 Zuid-Korea라고 하는 것으로 보아 분명 독일어에서도 K로 시작할 것이 분명하다. 이에 반해, 한국의 불어 명칭은 Coree du Sud, 이탈리아어에서는 Corea del Sud, 포르투갈어로는 Coreia do Sul이다. 이렇게 달라지는 알파벹에는 일정한 규칙이 보인다. 그것은 과거부터 영어를 비롯한 게르만어 계통에서는 K로 프랑스어를 비롯한 라틴어를 기원으로하는 로망스어 계통에서는 C로 시작했던 듯 하다.

  따라서 과거에는 한국의 국제적 명칭에 K와 C가 혼용되어 사용되다가 현재는 K로 굳어졌다는 잘못된 믿음에는 과거 문호개방시기에는 우리가 다 알다시피 조선이 세계 열강의 각축장이었으므로 게르만어 계통을 사용하는 국가와 라틴어 계통을 사용하는 국가들이 거의 균등하게 영향을 미쳤으나, 현재는 게르만어 계통의 영어가 국내에서도 또한 전 세계적으로도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실체적 진실이 숨어 있는 것이 아닐까?


2017년 4월 8일 토요일

재미있는 삼디 프린터 논란

  대선을 앞두고 선거전이 점점 치열해지면서 재미있는 논란도 생기는 것 같다. 처음 3D Printer'를 삼디 프린터'라고 읽는 것이 맞는지 논란이 되었을 때 필자는 엉뚱하게도 '삼디는 왜 안되나?'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셋디'는 어떤가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니 왜 영어를 한자어로만 바꾸라는 법 있나, 한글로 바꿉시닷! ㅎㅎ)

  현재 이 논란은 다음과 같이 다른 영어 단어에도 퍼져있다.
A4 에이포 용지 대 에이사 용지 (에이넷은 어떤가?)
4B 사비연필 대 포비연필 (넷비는 왜 안되는가?)
5G 오지 대 파이브지 또는 피쁘쓰 제너레이션 (다섯지?? ^ㅇ^)

  이 논란 이전에는 한번도 생각하지 못했는데, 알고보니 삼디가 귀에 쏙 들어오는 장점이 있는 것 같다. 일단 삼디나 셋디의 장점은 쓰리디보다 음절이 하나 적다는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이 음절이 적은 경우 기억에 더 용이하다. 그래서 영어권 국가 학생들보다 한국 혹은 동양의 학생들이 수학을 더 잘하는 이유가 한자어 기반의 수를 읽는 시스템이 대부분의 수를 한음절로 읽는 반면 영어권 숫자는 두음절 이상인 경우도 많기 때문이라는 인지심리학에 기반한 설명도 있다. 사실 이 음절에 대한 경제성이 가장 큰 차이가 나는 것은 위 예들 중에서 5G에 해당한다. 오지로 읽느냐, 파이브지로 읽느냐에 따라 음절이 2음절에서 4음절까지 두배의 차이가 난다. 순수 우리말로 다섯지로 읽는다면 세음절. ㅎ (이 경우에 three는 한국어의 셋이나 삼처럼 영어에서도 한 음절이다. 그러나 이를 한국어로 소리나는 대로 옮기면 한국어에서는 이중자음이 첫소리로 올 수 없기 때문에 두 음절이 된다. 따라서 여기에서 말하는 경제성은 순전히 한국어 사용자에 한해 하는 이야기이다. 물론 다른 숫자의 경우 예를 들어 1에서 10까지의 수 중 영어에서는 seven이 이음절이지만 한자어로는 모두 한 음절이고 백,천, 억 단위도 영어로는 모두 이음절인데 한자어로는 한 음절이기 때문에 여전히 일반론으로서 한자어로 숫자를 읽는 것이 영어보다 더 경제적이라는 점은 성립한다.)

  개인적으로는 셋디가 더 좋지만, 삼디가 가지는 또 하나의 장점은 '디'가 보다 D의 영어 원음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최소 한국인들이 듣기에는 삼디의 ㄷ이 모음 사이에 끼어있어서 훨씬 부드러워 d소리와 비슷하게 들린다. 기본적으로 한국어의 ㄷ발음은 영어의 t소리와 비슷하기 때문에 여전히 원어민들한테 한국의 삼디는 tsamti정도로 들릴 것이다. 하지만 한국인에게는 삼디의 '디'가 셋디의 '디'보다 훨씬 'd'소리에 가까운 것처럼 들리는 자기 만족을 가져올 수 있다는 점도 중요하다고 본다.

  이러한 자기 만족이 한국어 소리를 표현하는 데 꽤 큰 또 다른 경제성을 가져오는데 그것이 영어의 유성음 b, v를 표현하기 위해 한국어에서 ㅍ과는 다른 소리 ㅂ을, d는 ㅌ과 구분되는 ㄷ, j는 ㅊ과 구분되는 ㅈ을 할당하는 결정이었다. 굳이 이를 정당화하자면 사실 우리 말의 ㅂ, ㄷ, ㅈ은 기본이 무성음이지만 한국인은 같은 소리내기에 기반한 유성음도 같은 범위의 소리로 인식한다. 하지만 여전히 한국인이 b, d, j 소리를 편하게 ㅂ, ㄷ, ㅈ으로발음하면 원어민에게는 p, t, ch로 들린다는 문제가 존재하지만 한국어 입장에서 만일 ㅂ, ㄷ, ㅈ을 ㅍ, ㅌ, ㅊ과 구분하지 않고 모두 같은 알파벹 소리 p, t, ch에 할당했다면 영어를 보고 해당 한국어를 유추하는데 분명 더 오랜 시간이 걸리는 비경제성을 감당해야 했을 것이다.

  필자가 외국에서 한 경험 중 하나가 있다. 한 8년여전 컴퓨터 하드를 정리하려고 씨디를 굽고 있다가 용량이 부족해서 친구에게 공씨디를 하나만 더 건네달라고 했었다.

필자: 씨디 하나만 저기서 건네줄래?

그랬더니 원어민이었던 필자의 친구는 그 큰 눈을 더 크고 동그랗게 뜨면서 필자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못 알아 듣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친구: What city?

그제서야 필자는 또 무의식중에 한국식 발음이 나왔다는 사실을 깨닫고 웃으면서...

필자: Sorry... I meant one more compact disc, CD!

필자의 친구는 영문을 알았는지 몰랐는지 더 묻지 않고 내게 씨디를 건네 주었다.^_^

  이렇게 한국인들이 d sound를 편하게 ㄷ소리로 내면 원어민들은 이 소리를 t소리로 이해한다. 많은 한국인들이 r과 l, b와 v, f와 p 소리를 구분하는데 힘들다고 하지만 사실 이런 문제는 초급에 해당한다. 마치 영어를 처음 배울 때 단어 외기 힘들다고 하는 소리와 비슷하다. 영어 고급으로 올라가면 누구나 공통으로 하는 소리가 관사와 전치사 사용이 힘들다고 입을 모은다. 소리도 마찬가지이다. 고급 수준에서 영어 자음의 무성음과 유성
음 구분이 매우 힘들다. 특히 해당 소리가 b와 p, d와 t, g와 k, j와 ch 등 같이한국어에서 유성음일때와 무성음일때 소리구분이 없으면 더 힘들어진다.

  긴 문장에서 맥락이 상당부분 받쳐주면 우리가 소리내는 자음과 무관하게 외국인들이 이해해주지만 해당 단어 하나만 이야기할 때도 그 친구들이 이해할 수 있느냐는 꽤 고난이도의 문제이다. 참고로 필자는 외국에서 5년간 살았지만 귀국하는 그 마지막 순간까지 'bird'라는 단어 하나만 이야기했을 때 필자의 친구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드는데 실패한 흑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외에도 사실 한국인들은 잘 모르지만 한국인들이 잘 못하는 발음 중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gold, judge ...
한국인들이 위 단어를 편하게 골드, 저지라고 발음하면 원어민들은 다음 소리의 근사치
로 듣는다.
colt, church (정확하게는 chuch ^_^;;) ...
그러니까 잘못하면 여러분은 재판(아무래도 judge 이야기를 할 때는 재판 관련 이야기일 테니)에 대해서 열심히 이야기하고 있는 데, 상대방 원어민은 당신이 왜 법원(court나 law같은 단어도 등장할 테니 judge라는 말을 이해 못해도 일단 법정 관련이라는 눈치는 챌 것이니)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자꾸 교회(church)를 언급하는지 이해를 못해서 눈이 훼둥그래해져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ㅎㅎㅎ

결국 이것은 자음을 발음할 때 성대를 울리는가 울리지 않는가... 그것이 문제로다!!!

(사실 한글이냐 한자냐 영어를 그대로 읽는 것 중 무엇이 좋은가는 상황마다 다르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 이야기가 좀 삼천포로 빠진 경향이 있다. 이 글에서는 경제성 측면에서 한자어나 한글 표현이 더 뛰어남을 보였지만 때에 따라 정확성 측면에서 영어를 그대로 쓰는 것이 더 좋은 경우도 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에 다시 다룰 예정이다. 개봉박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