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4월 8일 토요일

재미있는 삼디 프린터 논란

  대선을 앞두고 선거전이 점점 치열해지면서 재미있는 논란도 생기는 것 같다. 처음 3D Printer'를 삼디 프린터'라고 읽는 것이 맞는지 논란이 되었을 때 필자는 엉뚱하게도 '삼디는 왜 안되나?'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셋디'는 어떤가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니 왜 영어를 한자어로만 바꾸라는 법 있나, 한글로 바꿉시닷! ㅎㅎ)

  현재 이 논란은 다음과 같이 다른 영어 단어에도 퍼져있다.
A4 에이포 용지 대 에이사 용지 (에이넷은 어떤가?)
4B 사비연필 대 포비연필 (넷비는 왜 안되는가?)
5G 오지 대 파이브지 또는 피쁘쓰 제너레이션 (다섯지?? ^ㅇ^)

  이 논란 이전에는 한번도 생각하지 못했는데, 알고보니 삼디가 귀에 쏙 들어오는 장점이 있는 것 같다. 일단 삼디나 셋디의 장점은 쓰리디보다 음절이 하나 적다는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이 음절이 적은 경우 기억에 더 용이하다. 그래서 영어권 국가 학생들보다 한국 혹은 동양의 학생들이 수학을 더 잘하는 이유가 한자어 기반의 수를 읽는 시스템이 대부분의 수를 한음절로 읽는 반면 영어권 숫자는 두음절 이상인 경우도 많기 때문이라는 인지심리학에 기반한 설명도 있다. 사실 이 음절에 대한 경제성이 가장 큰 차이가 나는 것은 위 예들 중에서 5G에 해당한다. 오지로 읽느냐, 파이브지로 읽느냐에 따라 음절이 2음절에서 4음절까지 두배의 차이가 난다. 순수 우리말로 다섯지로 읽는다면 세음절. ㅎ (이 경우에 three는 한국어의 셋이나 삼처럼 영어에서도 한 음절이다. 그러나 이를 한국어로 소리나는 대로 옮기면 한국어에서는 이중자음이 첫소리로 올 수 없기 때문에 두 음절이 된다. 따라서 여기에서 말하는 경제성은 순전히 한국어 사용자에 한해 하는 이야기이다. 물론 다른 숫자의 경우 예를 들어 1에서 10까지의 수 중 영어에서는 seven이 이음절이지만 한자어로는 모두 한 음절이고 백,천, 억 단위도 영어로는 모두 이음절인데 한자어로는 한 음절이기 때문에 여전히 일반론으로서 한자어로 숫자를 읽는 것이 영어보다 더 경제적이라는 점은 성립한다.)

  개인적으로는 셋디가 더 좋지만, 삼디가 가지는 또 하나의 장점은 '디'가 보다 D의 영어 원음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최소 한국인들이 듣기에는 삼디의 ㄷ이 모음 사이에 끼어있어서 훨씬 부드러워 d소리와 비슷하게 들린다. 기본적으로 한국어의 ㄷ발음은 영어의 t소리와 비슷하기 때문에 여전히 원어민들한테 한국의 삼디는 tsamti정도로 들릴 것이다. 하지만 한국인에게는 삼디의 '디'가 셋디의 '디'보다 훨씬 'd'소리에 가까운 것처럼 들리는 자기 만족을 가져올 수 있다는 점도 중요하다고 본다.

  이러한 자기 만족이 한국어 소리를 표현하는 데 꽤 큰 또 다른 경제성을 가져오는데 그것이 영어의 유성음 b, v를 표현하기 위해 한국어에서 ㅍ과는 다른 소리 ㅂ을, d는 ㅌ과 구분되는 ㄷ, j는 ㅊ과 구분되는 ㅈ을 할당하는 결정이었다. 굳이 이를 정당화하자면 사실 우리 말의 ㅂ, ㄷ, ㅈ은 기본이 무성음이지만 한국인은 같은 소리내기에 기반한 유성음도 같은 범위의 소리로 인식한다. 하지만 여전히 한국인이 b, d, j 소리를 편하게 ㅂ, ㄷ, ㅈ으로발음하면 원어민에게는 p, t, ch로 들린다는 문제가 존재하지만 한국어 입장에서 만일 ㅂ, ㄷ, ㅈ을 ㅍ, ㅌ, ㅊ과 구분하지 않고 모두 같은 알파벹 소리 p, t, ch에 할당했다면 영어를 보고 해당 한국어를 유추하는데 분명 더 오랜 시간이 걸리는 비경제성을 감당해야 했을 것이다.

  필자가 외국에서 한 경험 중 하나가 있다. 한 8년여전 컴퓨터 하드를 정리하려고 씨디를 굽고 있다가 용량이 부족해서 친구에게 공씨디를 하나만 더 건네달라고 했었다.

필자: 씨디 하나만 저기서 건네줄래?

그랬더니 원어민이었던 필자의 친구는 그 큰 눈을 더 크고 동그랗게 뜨면서 필자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못 알아 듣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친구: What city?

그제서야 필자는 또 무의식중에 한국식 발음이 나왔다는 사실을 깨닫고 웃으면서...

필자: Sorry... I meant one more compact disc, CD!

필자의 친구는 영문을 알았는지 몰랐는지 더 묻지 않고 내게 씨디를 건네 주었다.^_^

  이렇게 한국인들이 d sound를 편하게 ㄷ소리로 내면 원어민들은 이 소리를 t소리로 이해한다. 많은 한국인들이 r과 l, b와 v, f와 p 소리를 구분하는데 힘들다고 하지만 사실 이런 문제는 초급에 해당한다. 마치 영어를 처음 배울 때 단어 외기 힘들다고 하는 소리와 비슷하다. 영어 고급으로 올라가면 누구나 공통으로 하는 소리가 관사와 전치사 사용이 힘들다고 입을 모은다. 소리도 마찬가지이다. 고급 수준에서 영어 자음의 무성음과 유성
음 구분이 매우 힘들다. 특히 해당 소리가 b와 p, d와 t, g와 k, j와 ch 등 같이한국어에서 유성음일때와 무성음일때 소리구분이 없으면 더 힘들어진다.

  긴 문장에서 맥락이 상당부분 받쳐주면 우리가 소리내는 자음과 무관하게 외국인들이 이해해주지만 해당 단어 하나만 이야기할 때도 그 친구들이 이해할 수 있느냐는 꽤 고난이도의 문제이다. 참고로 필자는 외국에서 5년간 살았지만 귀국하는 그 마지막 순간까지 'bird'라는 단어 하나만 이야기했을 때 필자의 친구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드는데 실패한 흑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외에도 사실 한국인들은 잘 모르지만 한국인들이 잘 못하는 발음 중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gold, judge ...
한국인들이 위 단어를 편하게 골드, 저지라고 발음하면 원어민들은 다음 소리의 근사치
로 듣는다.
colt, church (정확하게는 chuch ^_^;;) ...
그러니까 잘못하면 여러분은 재판(아무래도 judge 이야기를 할 때는 재판 관련 이야기일 테니)에 대해서 열심히 이야기하고 있는 데, 상대방 원어민은 당신이 왜 법원(court나 law같은 단어도 등장할 테니 judge라는 말을 이해 못해도 일단 법정 관련이라는 눈치는 챌 것이니)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자꾸 교회(church)를 언급하는지 이해를 못해서 눈이 훼둥그래해져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ㅎㅎㅎ

결국 이것은 자음을 발음할 때 성대를 울리는가 울리지 않는가... 그것이 문제로다!!!

(사실 한글이냐 한자냐 영어를 그대로 읽는 것 중 무엇이 좋은가는 상황마다 다르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 이야기가 좀 삼천포로 빠진 경향이 있다. 이 글에서는 경제성 측면에서 한자어나 한글 표현이 더 뛰어남을 보였지만 때에 따라 정확성 측면에서 영어를 그대로 쓰는 것이 더 좋은 경우도 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에 다시 다룰 예정이다. 개봉박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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