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9월 20일 금요일

우물 안 개구리에서 벗어나자.

  한국사회에서 영어를 이야기하자면 교육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고, 그러자면 한국의 문화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으니… 이 또한 모든 것이 서울로 통한다는 이치인가? 그럼 이번에는 좀 더 나아가 국제 정세를 이야기해 보자.

  필자는 좋아하는 것을 찾아 하라고 현재 커가는 어린이, 젊은이들에게 조언해 주고 싶다. 하지만 이런 말을 할 정도로 대한민국 경제가 좋아졌다는 자각을 할 때마다 격세지감을 아니 느낄 수 없다. 먹고 살기에도 바빠서 자기가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에 대한 고민조차 할 여유가 없이 산업전선에 뛰어들었던 우리 부모 세대에 비해 우린 이제 우리의 적성을 생각할 수 있을 만큼 여유가 생긴 것이다. 물론 현실은 더 각박한 취업 전쟁으로 치닫고 있지만...

  서유럽이 식민지에서 부를 탈취해 자신들의 나라를 복지국가로 만들었음올 모두 알 것이다. 아편전쟁 당시 중국의 국력은 영국을 뛰어 넘었다. 만일 영국이 아편이라는 꼼수를 쓰지 않았다면 과연 중국을 굴복시킬 수 있었을까? 이는 두 가지를 말한다. 그 하나는 일본 뿐 아니라 사실 서구의 많은 나라들이 마땅히 사과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사과하지 않고 넘어간 과거사가 많다는 사실. 그런 측면에서 최근 네델란드가 인도네시아에게 자신들이 통치하던 시절 잘못한 일을 사과한 것은 꽤 환영할 만한 일이다. 또 다른 하나는 국력이 우월해도 정보가 뒤지면 나라를 망하게 할 수 있다는 사실. 국민들이 아편에 물 들기 전에 아편의 정체를 알아차리고 수입 금지를 명했다면 중국이 그렇게 허무하게 무너질 수 있었을지 필자는 의문이다.

  우리도 이 두 측면에서 스스로를 돌아보아야 한다. 현재 경제규모를 우리가 이루었다고 좋아만 할 것이 아니라 누구의 부를 혹 탈취한 것은 아닌지 … 또는 누구에게 신세 진 일은 없는지를 돌아봐야 할 때이다. 특히 개발국, 즉 강대국에게 얻은 것만이 아니라 빈국으로부터 얻은 것이 있다면 더 유념해야 할 것이다. 이쯤 되면 모두 떠올려야 하는 나라가 하나 있다. 바로 일본이 한국전쟁에서 이득을 받듯이 우리도 베트남전쟁에서 이득을 보았음을 부인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우리도 마치 서구처럼 스스로 잘나서 경제를 발전시켰다고만 생각하는 듯 싶다. 그래서 자선도 국내에서만 하겠다는 생각이 아직도 팽배하다. 우리 나라에서도 굶는 아이들이 많은데 외국 아이들까지 왜 보살펴야 하냐는 질문을 눈 똑바로 뜨고 하는 사람들을 보면 역사는 반복된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는다. 우리가 다른 나라가 식민지로 고생한 것을 무시하며 영국을 신사의 나라라고 추앙할때 다른 나라들이 우리가 식민지로 고생한 것을 생각해 주겠는가? 그러니 일본에 대한 국제적 비판이 동아시아에만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필자가 진단하는 현재 한국의 수준은 바로 딱 '우물 안 개구리'들이다.  따라서 필자의 처방 또한 '무조건 어릴 때부터 외국 경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왜 우물안 개구리인가? 그 예로 social network이 한국에서 더 일찍 정교하게 발전했음에도 세계적으로 일반화시키지 못했다는 사실을 떠올려 보자. 많은 업체들이 미국에서 한국형 SN 프로그램을 보금시키려고 노랬했다. 그러나 모두 실패하고 결과는 바로 facebook에 그 선두를 빼앗긴 것이다. 왜 우리는 우리가 먼저 경험한 것을 세계화시키지 못했는가? 우리 입장에서만 보고 프로그램을 개발해서 실패한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고 필자는 주장한다. 즉 마음을 열고 다른 나라는 우리나라와 무엇이 비슷하고 무엇이 다른지 알아야 실질적 세계화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주지의 사실이듯 다른 나라들은 한국처럼 교육 수준이 높지 않다. 따라서 한국처럼 복잡한 디자인을 외국에 정착시키기는 어려웠을 지도 모른다. 물론 이것이 진정한 이유였는지는 필자도 모른다. 혹 이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는지도 궁금하다. 만일 없다면 이에 대한 연구를 진행시켜야 한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실패에서 배우지 못한다면 우리의 미래는 없기 때문이다. 또 다른 비슷한 예가 있는데, 이 예는 SN의 실패보다 더 뼈져리다. 그것은 영화나 노래를 다운로드해서 보는 표준을 만드는 것. 이런 경향은 한국에서 먼저 대중화되었다. 하지만 한국에서 이런 경향을 어떻게 합법화시키고 새로운 문화로 발전시킬지에 대해서 해결책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대신에 우리는 강대국이 지탄하는 저작권법에 대한 눈치만 보면서 어떻게 저작권을 보장해주며 이런 다운로드를 합법화시키지는 못했던 것이다. 과거 한국에서 다운로드와 저작권법이 부딪칠때 일부 누리꾼들은 저작권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고 합법적으로 다운로드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보았다. 그 결과는 어느 한 곳도 이런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지 않음을 발견하였다. 우리는 왜 우리만의 시스템을 구축해서 저작권과 다운로드를 해결하지 못했을까? 만일 우리가 이런 시스템을 당시에 해결했다면 새로운 인터넷 문화는 한국이 선도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결국 당시 다운로드로 유명했던 사이트들은 모두 폐쇄되고 다시 처음부터 시스템을 구축해야 했다. 이 시점은 다른 나라에서 이미 이에 대한 표준이 만들어진 후였고, 나중에는 다른 나라 사이트들에서 무료 영상이 활발해지며 국내 사이트 역차별 논란으로까지 이어졌다. 이것이 우리의 한계인가?

  어쩌면 새로운 기술을 먼저 발견하고 보급하는 것만으로 새로움 문화까지 구축할 수 있는 것은 아닌지도 모른다는 점을 여기에서 배워야 한다. 우리에게는 더 많은 정보와 토론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우리는 더 많이 해외로 나가서 더 많이 경험해 보아야 한다. 한국에 갇혀 살아서는 창의적으로 새로운 문화를 형성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이 말은 절대 외국에 가서 외국의 것을 배워다 우리나라에 그대로 적용해서 외국처럼 살자는 말이 아니다. 우리가 어떻게 살지는 우리가 결정하는 것이고, 이와 별개로 우리와 얼마나 비슷하게 혹은 다르게 다른 나라 사람들이 살고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많은 외국인들을 한국에 오게 해서 우리가 사는 방식을 알려주는 것도 병행해야 할 방법임은 두말할 나위 없겠다.

  자. 그럼 어린이들은 어떻게 키워야 할까? 필자는 어릴때 영어를 배우면서도 정말 이런 언어로 의사소통을 하는 사회가 존재할 까 의심을 그칠 수 없었다. 영화도 보고 책도 보면서 의심의 여지가 없었음에도 의심을 그칠 수가 없었다. 머리로는 아는데 현실감이 없었다고 해야 할 듯 하다. 문화에 대해서도 그랬다. 다른 나라에 가면 이렇게 다르고 저렇게 다르다고 많이 알고 있었지만, 필자가 실제 외국에 가서 겪은 어려움은 그런 것을 전혀 모르던 사람하고 그리 큰 차이가 없었던 듯 싶다. 이렇게 들은 것과 경험하는 것은 차이가 난다. 그래서 필자는 부모들이 자녀들 어릴 때부터 책을 읽힐 생각을 할 것이 아니라 아이들과 함께 여행을 다녀서 아이들이 더 많은 체험을 할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것이다.

  여러 체험을 하다가 관심 분야를 발견하게 되면 그 때부터 아이들은 부모들이 말려도 책을 보게 되어 있다. 한국사회는 여전히 경제가 어려울 때마다 해외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에게 화살이 돌리곤 하는데,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마치 주가가 떨어지면 주식을 하지 말고 주가가 오를 때만 주식을 해야 한다는 일차원적 사고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제 한국인들도 주식을 주가가 떨어졌을 때 사야 한다는 점을 모두 알고 있다. 과거 서구가 지리상의 발견을 했을 때도 그들 경제가 어려웠기 때문에 목숨을 걸고 배를 탔던 것이다. 즉, 필자의 주장은 경제가 어려울수록 한국인들이 해외로 더 많이 나가 세계에 눈을 떠야 한다. 어릴 때 부모가 함께 해외 여행을 갈 수 없다면 어학연수 프로그램에 끼워서 보내는 것도 아이에게 안전하게 외국을 경험시킬 수 있는 한 방법이다. 이 때 부모가 명심해야 할 것은 절대 한두 달 혹은  일이 년 어학연수로 영어를 비롯해 외국어를 겁나 잘 하게 될 것이라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다만 다른 언어 다른 문화를 간접적으로가 아니라 직접적으로 접하는 기회를 제공한다고 생각하고 보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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