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7월 7일 금요일

동사형 우리말과 명사형 영어: 편견에 영향을 줄까?

  모국어인 우리말과 제1외국어인 영어와 관련하여 우리나라사람들에게 많은 고정관념이 있지만 그 중 일부는 맞는 경우도 있다. 그 중 하나가 무엇인가를 표현할 때 영어에서는 명사를 사용하는 빈도가 높고 우리말에서는 동사를 사용하는 빈도가 높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영어사용자가 자신의 취미를 말할 때 이렇게 말한다. I am a swimmer. 반면 우리말 사용자는 다음과 같이 말할 것이다. 나는 취미로 수영을 해. 우리말에서 취미를 소개할 때 나는 수영선수라느니... 암벽등반가라느니 이렇게 명사형으로 이야기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 사람이 그 취미에서 아주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는 경우에 한해서 주로 주변 사람들이 수영선수 뺨친다는 식으로 명사형 표현이 등장하는 편이다. 하지만 영어에서는 본인이든 주변사람이든 그 사람의 실력에 상관없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swimmer라고 취미를 표현한다.

  이러한 행위를 표현할 때 명사를 쓰느냐 동사를 쓰느냐가 언어에 따라 달라지는데, 이를 언어학적으로 볼 때 해당 표현이 담고 있는 추상성이 달라진다고 한다. 즉, 명사는 언제나 그것을 하는 사람이라는 높은 추상성을 가지고 있지만 동사로 표현할 때는 일회성으로 그것을 지금 하고 있다는 식이라서 다른 때는 그 행동을 하지 않음을 내포하는 추상성이 낮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서 심리학적으로 재미있는 질문이 하나 생긴다. 높은 추상성을 가진 명사를 표현해 사람들을 표현하다 보면 그 사람에 대한 고정관념, 나아가 편견이나 차별적 태도 경향까지 높아질까? 반면 일회성 행동을 의미하는 동사를 많이 사용하는 언어에서는 고정관념, 편견, 차별이 적은가? 예를 들어 누군가 친구가 어떤 가게에서 물건을 하나 훔치는 장명을 목격했다고 가정해 보자. 그 사람이 우리말사용자라면 '나 걔가 물건 훔치는 것 봤어.'라고 증언할 것이다. 반면 영어사용자라면 'He is a theft.'라고 표현할 것이다. 자... 당신이라면 누구의 말을 들었을 때 그 도둑질한 친구에게 더 나쁜 감정, 혹은 더 강한 감정이 들겠는가?

  영어사용국가에서 차별은 매우 뜨거운 주제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차별은 그다지 뜨거운 이슈는 아니다. 그렇다고 차별이 존재하지 않는다거나 차별이 약하다고 할 수 있을까? 그것도 동사를 많이 사용하는 우리말 때문에??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에서 많은 차별이 이루어지고 있다. 전통적으로 장애인, 외국인에 대한 차별을 비롯해서 최근에는 성소수자, 이민자 등에 대한 차별이 뉴스기사로 오르내리는 것이 특별한 일이 아니다. 특히 위에서 설명한 도둑질, 혹은 다른 범죄가 외국인과 연결되어 있는 경우... 생각해보자. 우리는 바로 외국인을 범죄자라고 단정하기 쉽다. 그 표현이 도둑질 한 번 하는 것 봤어...라는 동사형이라고 해서 우리의 편견적 태도가 약해지는지는 매우 의심스럽다. 우리 말에 이런 속담도 있지 않나...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

  예를 들어, 구로 지역에 외국인이 많이 사는 지역에는 경찰이 순찰을 하러 돌아다니기도 힘들다든지... 그러니 범죄가 일어나도 한국 경찰이 수사하기는 얼마나 더 어렵겠냐는 식의 소문이 심지어는 경찰 사이에서도 만연하게 일고 있다. SNS를 보면 물론 외국인의 인권을 논하는 네티즌도 많지만 외국인은 모두 범죄자인 것처럼 인식하고 있는 사람들도 많음을 알 수 있다.

  필자가 알고 있는 법조계라면 법조계인 범죄심리학을 전공한 지인 중 한 사람이 외국인이 집중적으로 거주하고 있는 지역에 한국 경찰이 자유롭지 못한 것이 사실 아니냐며 필자에게 반박을 한 적이 있다. 필자는 세월호 사건 당시 주범으로 지목되었던 (이 지목이 꼬리자르기냐 아니냐를 일단 논외로 하고) 유병언을 체포하기 위해 그가 거주하고 있는 곳을 경찰이 포위했을 때 이야기를 해 주었다. 물론 필자의 지인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경찰은 유벙언을 신봉하는 신자들이 저항하였기 때문에 결국 그를 체포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한국의 종교인들은 범죄인이라는 둥 더 나아가 한국인 모두가 경찰을 어렵게 한다는 둥 하는 식의 선입견은 그 누구도 가지고 있지 않다.

 이렇게 보면 언어가 심리에 영향을 끼친다는 Sapir–Whorf hypothesis(사피어-워프 가설)이 얼마나 인간의 실제 심리 및 행동을 설명하는지 의문이 든다. 혹 명사는 그 사람의 일반적 경향성을 표현하기 때문에 추상성이 강하고 동사는 일회적 행동을 표현하기 때문에 추상성이 약하다는 설명은 영어사용자에게 국한 된 것은 아닐까? 우리말, 그리고 우리말이 사용되고 있는 한국문화에서도 동사와 명사의 추상성이 그렇게 구분되는지 연구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마치 우리나라 영어사전이 일제시대 일영사전을 그대로 배껴서 만든 그 지점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처럼, 현재는 영어사용자가 보는 세계관을 우리말에 그대로 투영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고민해 볼 때가 아닐까?

(영어가 공용어로 사용되는 나라들의 문화와 우리나라의 문화 간 차이에 대한 더 자세한 언급은 이 글의 목적은 아니기 때문에 다른 글에서 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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