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1월 30일 토요일

일제 시대에 우리말을 단순화한 정책도, 그 영향도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일본이 저지른 무역분쟁으로 우리 국민이 시작한 불매운동이 성공적으라고 연일 보도되고 있다.

그런데 초기 불매운동과 함께 시작되었던 일본 식민지 문화 뿌리 뽑기 운동은 조국 대전의 소용돌이 속에서 사라진 것이 안타깝다.

사실 아직까지 우리의 일상 속에서 많은 용어가 아직도 일본 잔재이며 대학에 오면 대부분의 전공용어 번역어가 일본식 한자어이다.

그런데 그 보다 더 큰 문제가 있다고 필자는 본다. 그것은 바로 일제 시대 우리나라 언어가 단순화되었고 그 영향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일제시대에는 한국어가 일본어를 가르치고 일본어를 이해하는 도움이 되는 소리 말만 주로 사용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일본어와 우리말 모두에 있는 소리는 한국인들에게는 쉬운 소리들이 주요했고 그 쉬운 것들만 주로 사용되다 보니 단순화되었다는 주장이다. 혹은 일제가 그런 방식으로 한국어를 단순화시켰다고 한다.

혹은 일제시대에서 우리말을 사용하려면 눈치가 보여 입을 크게 움직이지 않고 몰래 이야기하다보니 이렇게 말소리가 단순화되는 방식으로 변화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에 대해 필자는 국립국어연구원은 어떤 입장인지 궁금하다.

우리 말이 단순화된 것은 안타까우나 이미 단순화된 것 어쩔 수 없으니 현재 우리에게 익숙한 소리만 계속 쓰자는 것이 그 공식적 입장인가?

아님 당시 없어진 소리를 찾아내고 복원하고자 하는 생각이나 의지가 존재하는가?

현재 우리말은 '내'와 '네'가 구분되지 않고 있어서 '네'는 '니'라고 발음하는 경향이 강하다. 아래 아 소리가 사라진 것은 옛말이고 거기에 외국어를 한국어로 옮길 때에도 소리를 제한하는 규정이 너무 많아 한국어가 더 단순화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 필자의 우려이다.

필자가 이런 노파심을 가지게 된 이유는 해방 후 독재정권 하에서도 말에 의해 국민의 마음이 움직인다고 외국어에 대해서 된소리를 사용하지 못하게 한 정책을 아직도 국립국어연구원이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니 왜 우리가 홍길동도 아닌데 민주주의 국가에서 씨티City를 씨티라고 부르지 못하고 시티라고 소리내야 하는가? 왜 국가가 이것을 강요하는가?

영어 원어민들은 이 한국인들의 발음을 어떻게 비하하는지 아는가? 바로 Shitty(시티)라고 발음한다며 낄낄거린다(South Park라는 미국 성인 만화 영화의 한 에피소드)

필자가 좀 더 걱정스러운 것은 이러한 우리나라 소리규제에 대한 역작용이다. 국립국어연구원이 S sound를 우리말 ㅅ 소리에 해당한다고 표준을 정해 놓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남이섬'을 NamiSeom이라고 쓰고 알고 있다.

남이섬을 광고하는 곳에서도 이렇게 쓸 것이다.

결국 그 역효과는 남이섬을 남이썸으로 읽게 되는 것이다. 왜? 영어가 더 쿨하니까!

과거 중국어가 공용어였을 때는 우리가 얼마나 중국발음 따라하려고 노력했겠는가? 일제시대를 살았던 대부분의 우리 부모,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일본말을 할 줄 알았다. 이제는 영어다. 현실을 부정하지 말자.

문제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표준에 대한 강박이다. 그리고 언어를 가지고 국민의 마음을 통제하고자 하는 일제시대의 전통을 이어받은 독재시대 마인드이다.

이렇게 해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우리말을 할 때 입을 크게 움직이지 않고도 말을 하기에 큰 무리가 없을 만큼 우리 언어가 단순화된다는 점 뿐이다. 그래서 복화술을 왠만하면 다 구사할 수 있고 음식을 입에 넣고도 이야기하는 문화가 우리 말의 다양함보다 더 중요하다는 말인가?

그와 더불어 그 역작용... 모든 된소리에 가까운 외국어 소리를 평음으로 강요하는 국립국어연구원의 패착은 먼 미래에 우리나라 말에서 된소리와 평소리의 구분이 사라지고 모든 소리가 된소리화 되어 국민의 마음이 아주 싸나와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제발 이제 우리가 이룩한 민주사회의 당연한 문화로서 다양함을 인정하자. 영어 단어는 영어 원음에 가깝게 우리 말로 옮기고 프랑스 단어는 프랑스어 원음에 가깝게 우리 말로 옮기고... 그 소리가 우리 말 어느 소리와 가깝든 그 소리를 규제하지 말고!!!

더 나아가 우리나라 말의 소리를 더 풍부하게 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현재 우리 말에서 아래 아 소리나 '내'와 '네' 소리 구분이 어렵듯이 한 번 잃어버리게 된 소리를 다시 찾기는 정말 어렵다. 그렇다면 이제부터라도 외국에서 소리를 적극 받아들여 우리말을 일제 시대 이전의 진정 세상의 모든 소리를 나타낼 수 있었을 것 같은 그 다양한 소리가 가능한 언어로 복원시킬 궁리를 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2019년 11월 25일 월요일

영어 소설에 나타나는 유교사상: Echo Burning by Lee Child (2001)

  추리소설을 읽다가 뜬금 없이 맹자의 '인' 사상을 떠올리게 되었다.

  우선 한 번 읽어보시라. 다음 문장은 미국 작가 Lee Child (2001)의 Echo Burning이라는 작품 96쪽에 나오는 주인공 Reacher의 생각 중 일부이다.

  ...He would do it for Jodie Garber, but he wouldn't do it for Carmen Greer. Why not? Because it comes in a rush. You can't force it. It's a hot blooded thing, like a drug in your veins, and you go with it. If it's not there, you can't go with it. Simple as that. ...

  이 책은 아직 국내에 소개되지 않았기 때문에 필자가 직접 번역해 보면...
  '...그는 조디 가버를 위해서라면 살인도 할 수 있지만 카멘 그리어를 위해서는 그러지 않을 것이다. 왜 그럴까? 그건 이런 제안을 갑자기 받았기 때문이다. 누구도 강요할 수는 없으니까. 이건 피가 끓어야 할 수 있는 일이다. 마치 약물에 취했을 때처럼 통제할 수 없는 것이다. 만일 그 상태가 아니라면 그런 일은 할 수 없다. 간단한 차이이다. ...'

  필자가 이렇게 번역하게 된 이유는 이 주인공의 생각 이전에 주인공의 대화 상대자인 카멘이 자신을 학대하는 남편을 죽여달라고 부탁하기 때문이다. 이 대화 이후에 이어지는 주인공의 생각에서 나오는 'it'이라는 대명사는 대부분 '살인' 행위를 지칭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렇듯 번역할 때는 해당 문장의 단어만 안다고 충분한 것이 아니라 위 아래 맥락이 무엇인지까지 파악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번역을 제 2의 창조라고도 부르고 필자는 골치아픈 작업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위 생각 이후의 장면에서 주인공이 카멘에게 그의 남편을 죽여줄 수 없다고 말하자 카멘이 항의한다. 남친이든 남편이든 주인공의 전 여자친구를 학대한다면 그를 죽여버리겠지만 왜 자신을 위해서는 그렇게 해줄 수 없느냐?라고 따지는 것이다. 카멘은 그 이유가 자신은 남미 출신이고 그의 전 여친은 백인이라서 차별하는 것이냐고 묻는다.

  주인공이 이에 대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자신이 전 여친은 잘 알지만 당신에 대해서는 모르기 때문이라고 대답한다. 사실 카멘이 주인공에게 남편살해를 부탁하는 시점이 아직 주인공에게 카멘이 낯선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서로 만나지 몇시간되지 않았을 때 이런 부탁을 하는 것은 절대 성공할 수 없는 전략이라는 조언도 주인공은 덧붙인다.

  자 여러분은 이 두 사람의 대화와 주인공의 생각에서 무엇을 느꼈는가?

  필자도 당황스럽게 어떻게 보면 가장 '인'스럽지 못한 상황, '살인'에 대한 대화 속에서 맹자의 '인' 사상을 떠올렸는지 아연하다. 그것은 아마도 필자가 인을 떠올릴 때면 한국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그 이야기... '어린 아이가 우물에 빠지려고 할 때 그 짠한 마음을 느끼지 못하면 사람도 아니다'고 했던 그 말이 떠오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또 생각해보면 남편에게 학대 당하는 여성이 자신의 전 여자친구라면 그 남자를 죽이겠지만 방금 만난 카멘의 남편인 경우 그를 죽일 수 없다는 주인공 리처의 생각이 맹자의 인을 떠올리는 데 그렇게 낯선 장면도 아닌 것 같다.

  맹자의 유명한 일화 중 하나가 제후 재선당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데 소가 울면서 끌려가고 있는 장면을 보게 된 것이다. 그 제후가 우는 소를 가여히 여겨 소를 끌고 가는 일꾼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한다. 그러자 그 일꾼이 지금 만들던 종이 완성되어 그 마무리를 하려면 소피를 발라야 하기 때문에 소를 끌고 가는 길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 제후가 그 소는 살려주고 양의 피로 종을 마무리하라며 일꾼을 돌려보냈다고 한다. 그 대화를 듣고 맹자가 제후에게 물었다 한다. '왕께서는 소는 불쌍하고 양은 불쌍하지 않다고 하십니까?' 그러자 제후가 대답하기를 '그러게 말입니다. 나도 말을 해 놓고 보니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왜 그랬을까요?'

  이에 대해 맹자가 한 말이 바로 '인'이라는 것이다. 자기 눈 앞에서 울며 죽어가는 짐승을 보며 불쌍히 여기는 그 마음이 바로 '인'심이라서 자기 눈 앞에는 보이지 않는 동물의 목숨으로 대신한 것이라고!

  어떤가? 내 눈 앞의 동물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과 내가 아는 사람의 불행은 살인을 해서라도 벗어나게 해주겠다는 마음!? 비슷하지 않은가??

  일견 이런 마음은 비 논리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눈 앞에 있는 것에만 급급해서 제도 전체를 고쳐 더 이상 학대받는 여성이 나오지 않고 동물도 죽이지 않게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으로 비판 받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어디 그게 쉬운 일인가? 이런 정치제도에 초점을 둔 입장은 또 다시 네 앞의 일이나 잘 처리하고 그런 말을 하라는 입장으로 대립점을 구축할 수 있다.

  이런 점이야 고민해 봐야 하는 것이겠지만, 그래도 동양의 특수성이라고 귀가 닳도록 들어오던 유교사상의 핵심, '인' 사상을 서구의 대중 소설에게 보게 되다니 필자는 감회가 새롭다 아니 할 수 없다.

  이렇게 보면 맹자의 인 사상으로 대표되는 유교 사상은 동양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공통된 인간의 심리, 윤리를 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2019년 11월 22일 금요일

게르만어와 로만어 발음 차이 1: 하우 매니 '페니스' 두 유 햅? Pennies Vs. Penis

오늘은 웬일로 야한 이야기?... ^_^

사실 '페니스'란 소리는 어느 나라 말이냐에 따라 야해지기도 했다가 전혀 야하지 않아지기도 한다. 이건 마치 '조또'라는 소리가 일본어 맥락에서 사용되느냐 아니면 한국어 맥락에서 사용되느냐에 따라 완전 정중한 표현일 수도 아주 기분 나쁜 표현이 될 수도 있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이야기가 어떤 음악 레디오방송에 나온 적이 있었다.

한 남성 연예인이 영국엘 갔다가 한 슈퍼마켙에서 뭔가를 사고 계산을 치르려고 지폐와 잔돈을 꺼내 잔뜩 쥐고 있었는데, 그 계산대 직원이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직원: 하우 매니 페니스 두 유 햅?

그러자 그 연예인이 당황해서 아니 왜 내 은밀한 부위를... 그것도 몇개냐고 묻는 것은... 이게 무슨 농담은가? 그러니까 '원'이라고 너무 진지하게 대답하면 분위기 이상할 것 같고 그렇다고 농담일텐데 화를 낼 수도 없고.... 그래서 재치있게 대답한다고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고 한다.

연예인: 텐!

자... 그러자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다 같이 깔깔 웃었을까? 이 연예인이 생각한 대로 그 직원의 질문은 음담패설에 가까운 더러운 농담이었을까?

실제로 일어난 일은 다음과 같다. 그 직원이 해당 연예인이 잔돈을 쥐고 있던 손을 보더니 1 cent짜리 동전을 세어서 가져갔다는...

영어권 국가에서 1 cent짜리 동전을 Penny (페니)라고 부른다. 좀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미국이나 캐나다에서 1 달러가 100 cents이듯이 영국에서는 1 파운드가 100 pence로 이루어 져 있다. (과거 화폐개혁 이전에는 120 pence가 1 파운드) 이 Pence의 단수형이 바로 Penny!

그런데 이 모든 영어권 국가에서 1 cent나 1 penny 동전을 모두 Penny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1 cent나 1 penny 동전이 여러 개 있으면 복수형으로 Pennies (페니즈)라고 발음하게 된다. 이 '페니즈' 발음이 경우에 따라서 '페니스'라고 들리는 경우는 허다하다.

물론 영국을 특정해서 이야기하자면 조금 복잡하다. 미국에서 20 cents에 해당하는 돈이 영국에서는 20 pence인데 10 pence짜리 동전을 두 개 가지고 있었도 20 pence가 되고 1 penny짜리 동전 20개를 가지고 있어도 20 pence가 된다. 이 때 전자인 경우 two 10 pence coins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고 후자의 경우 20 pennies를 가지고 있다고 말하게 된다.

아 복잡하다...ㅋㅋㅋ

따라서 영국 수퍼마켙에 간 그 연예인은 1 penny짜리 잔돈이 얼마나 있냐고 묻는 질문(How many pennies do you have? 하우 매니 패니즈 두 유 해ㅂ?)을 How many penis(es) do you have?라고 오해한 데서 위와 같은 해프닝이 생긴 것이다. 다행히 그 연예인이 나름 재치있게? 오해해서 잘 극복??한 경우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

영국이 아니라 다른 미국이나 캐나다 수퍼마켙에서도 비슷한 질문을 들을 수 있다. 사실 이들이 이런 질문을 하는 이유는 우리나라에서 10원짜리 동전을 잘 쓰지 않는 것처럼 이들도 이제 1 cent나 1 penny짜리 동전을 잘 쓰지 않는다. 그래서 경우에 따라서는 거대한 수퍼마켙에서도 이 penny들(페니즈!)이 모자라서 잔돈을 가지고 있는 손님들에게 동전이 몇개나 있는지를 심심찮게 묻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Sword를 원래 발음인 '쏘드'로 알고 있지 않고 '스워드'라고 우기는 것처럼 영어에서 남성의 성기를 나타내는 Penis는 주로 '피니스'로 발음되는데 왜 페니스로 알고 있는지 의아하기만 하다.

물론 이 단어가 영어에서기원하지 않았다면 쉽게 이 의아함을 설명할 수도 있어 보인다.

사실 남성의 성기를 나타내는 이 단어가 영어에서만 쓰이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필자는 영어에서 어떻게 발음하든 해당 단어가 기원한 '원어'의 발음을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아리스토 텔레스'도 영어에서 발음하는 대로 '아리스토틀'이라고 발음하자고 절대 주장하지 않는다. 이건 영어 사용자들이 발음을 바꾸어야 하는 문제이다. 원어 중심으로!!!

문제는 이 단어가 우리나라에 전해진 것이 영어를 통해서가 아니라면 프로이트가 주장한 '남근선망' 때문이라면 독일어에서 기원했을 가능성이 높은데, 독일어에서도 이 단어의 말음은 '피니스'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이 단어를 자꾸 페니스라고 부를까? 이 때문에 결국 영국에서 위와 같이 웃지 못할 오해가 벌어진 것이 아니겠는가!

물론 여기에는 국립국어연구원의 우리말 사용 제한법에 걸려 있어서 알파벹 e는 무조건 '에'로 발음표기해야 한다는 무식한 조항의 억압에서 자유로울 것 같지는 않다.

문제는 이러한 외국어에 대한 한국어 표기 제한이 일본 강점기 시대부터 일본인에 의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얼마나 많은 한국어의 소리와 표기가 사라졌는가!?

따라서 필자는 외치고 싶다. 제발 특정 단어의 발음표기는 해당 단어가 기원한 원어에 준하여 표준화를 해도 하자고!!! 이 단어가 필자의 예상대로 게르만어에 기원해서 우리나라에 전해진 것이라면 우리나라에서도 '피니스'로 표기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 단어는 영어나 독일어와 같은 게르만어 기원의 언어에서만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프랑스어나 스페인어처럼 로만어 기원 언어에서도 사용되는데, 이 경우 Penis의 발음은 '페니스'가 맞다.

하지만 필자가 생각할 때 이 단어가 로만어의 영향으로 우리나라에 들어왔을 가능성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어느 프랑스 의사에 의해서?? 이탈리아나 스페인 사람에 의해서 전해졌을 가능성은 더 적으니까???

만에 하나 이 단어가 필자의 예상과는 다르게 로만어에서 기원하여 우리나라에 전해졌다면... 좋다, 페니스! 영어나 독일어에서는 발음이 달라진 다는 사실, 여러분.... 명심하세요!!

그런데 여기에도 필자가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이 있다. 만일 일본을 통해서 포르투갈어가 전해진 것이라면? 포르투갈에서 일본에 전해진 문화 중 아주 유명한 것이 바로 덴뿌라, 바로 튀긴 생선이고 포르투갈어 '아브리 가두(고맙습니다)'라는 말이 전해져 일본어 '아리 가또'가 되었다고 한다.

따라서 필자가 볼 때 '페니스'가 로만어에 기원한 정확한 소리라면 사실 포르투갈 - 일본 경로가 가장 가능성 높아 보인다. 만일 정말로 '페니스'라는 소리가 포르투갈어 기원으로 일본을 통해 우리에게 전해진 것이라면 필자는 '페니스'라는 발음을 따를 생각이 없다.

따라서 피니스!!!

2019년 11월 4일 월요일

영어 한국어로 옮기기 6: Self-Service vs Help Yourself (셀프서비스 vs 헬퓨어쎌프 or 헬표쎌프)

  영어 단어를 한국어로 옮길 때, 우리말 표현 문제에 대해서 필자는 지속적으로 생각해 볼 문제를 던지고 있다.

  오늘은 '셀프서비스'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일부 사람들이 오해하는 만큼 Self-Service란 단어가 현지에서 사용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필자 생각으로는 일부 지역에서만 사용되기 때문에 영어 원어민이라도 잘 들어보지 못한 말이라 한국에서만 사용되는 영어로 착각할 수도 있는 단어일 뿐이다.

  예를 들어 우리 한국어 원어민 여러분, 우리말 단어 다 아나요? 사실 우리도 모르는 단어 많다. 한글 단어는 잘 안써서 대부분 모르고 한자어 다 아는 사람이 어디 있나?

  우스개 소리로 어떤 사람이 기고글 하나를 부탁받아 쓰게 됐는데, 그 글 중에 '적확하게'라는 단어를 썼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글이 출판되어 나올 때 해당표현이 '정확하게'로 수정되어 나왔다고 한다. 그래서 그 기고자가 편집자에게 왜 표현을 수정했냐고 물어봤더니 그 편집자 하는 말, '적확하게'라는 단어도 있어요? ㅍㅎㅎㅎㅎ

  따라서 식당에서 흔히 우리가 써붙이는 셀프서비스라는 말은 틀린 말은 아닌데, 오직 필자가 이 단어를 싫어하는 이유는 이 말을 일본에서도 주로 사용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Take Out과 마찬가지 이유로 필자는 이 두 표현을 싫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꼭 Self-Service를 셀프서비스로 써야 하느냐엔 의문의 여지가 존재한다. '셆서비스'라고 쓰면 훨씬 원어 발음을 정확하게 표현하는 것이기도 하고 게다가 한음절이 줄기 때문에 사용하기에도 편하다.

  물론 필자는 '쎒써비스'라는 표기를 더 선호하지만, 이 문제는 국립국어연구원과 다투어야 하는 문제이므로 현 단계에서는 필자가 양보하여 셆서비스 정도에서 타협했다.

  그러나 위에서도 밝혔듯이 필자는 이 표현을 싫어한다. 그래서 셆서비스 대신 Help Yourself를 제안하고자 한다.

  Help Yourself는 많은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듯이 각자 알아서 먹을 만큼 가져다 먹을 때 아주 흔히 쓰이는 표현이다. 영어 원어민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만큼!!

  그래서 우리 식당에는 일본 식당과는 다르게 '헬퓨어쎌프'라고 써 붙이는 운동을 하는 것은 어떨까?

  헬퓨어쎌프가 너무 길면 '헬표쎌프'로 줄일 수도 있다. 네 음절!

  사실 Help Yourself는 콩글리쉬로 오해를 받을 이유가 없다는 점에서도 이점이 있지만, 원어만큼 음절을 더 줄일 수도 있다는 장점도 있다.

  '헬표쎒' 또는 '헲요쎒'! 어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