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2월 12일 목요일

문화차이 2: 화장실과 휴지통- 한국에서 너무 오래 살았다...시리즈를 아시는가?

한 20여년 전 쯤에 '한국에서 너무 오래 살았다'라는 시리즈가 유행한 적이 있었다. 그 대표적 에피소드 중 하나를 소개하자면 어떤 미군이 식탁 위에 두루마리 휴지가 놓여 있는 데도 아무렇지도 않다고 느낄 때 자신이 '한국에서 너무 오래 살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한다.

  왜 이 말이 사람들의 웃음을 자아낼까? 그것은 바로 한국과 미국의 문화차이 때문이다.

  미국이나 기타 서구문화에서 두루마리 휴지란 화장실에만 비치되는 것으로 적대 식탁에 오를 수 없는 물건인데 한국문화에서 식탁에 두루마리 휴지는 너무나 당연한? 최소한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는 물건이기 때문이다.

  필자가 오늘 식당에서 밥을 먹는데 그곳 식탁에 두루마리 휴지가 냅킨 대신 예쁜 케이스에 담겨있는 것을 보고 다시 이 생각이 났다.

  사실 이 문화차이가 왜 우리나라 공용 화장실 변기 옆에는 휴지통이 있는가와도 바로 연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한 2년전 '우리나라 공용 화장실에서는 왜 휴지를 변기에 버리지 않을까?'하는 문제제기와 함께 온 서울 시내 공공기관 화장실에서 휴지통을 없애버린 적이 있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을까? 화장실이 막혔다....ㅋㅋㅋ

  그래서 주로 주민센터나 작은 도서관 등을 중심으로 과반이 넘는 공공기관에서 다시 휴지통을 비치하는 방침으로 돌아서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서구사회에서는 아무 문제가 없는데, 왜 우리 나라만 유독 공공화장실에서 변기가 막히느냐?에 대한 질문을 해 보아야 한다.

  물론 서구사회에서도 화장실 변기 막히는 일 많다. 주로 손을 물로 씻고 말리는 데 사용하는 종이 타올을 변기에 버릴 때 발생한다. 그런데 우리는 이 종이 타올을 무엇이라 부르는가? 휴지?!

  그런데 우리 나라 공용변기가 더 자주 막힌다. 물론 휴지를 변기에 버릴 때! 그런데 무슨 휴지??

  그렇다. 우리는 두루마리 화장지도, 화장할 때나 여행용으로 사용하는 티슈도, 심지어 손 씻고 닦는 종이 타올도 모두 휴지라고 부른다.

  그래서 휴지를 화장실 변기에 버리자고 할 때 바로 비치된 두루마리 화장지만을 변기에 버릴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자신이 휴대하고 있는 휴지(티슈)나 세면대에 비치되어 있는 휴지(종이 타올)도 모두 변기에 버리면 변기란 변기는 다 막혀버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럼 이왕 말 나온 김에 각 명칭에 대한 영어 단어 한 번 짚고 갈까요? 영어에서 두루마리 화장지는 Toilet Paper라고 한다. 절대 이 품목이 식탁에 오를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이 강하지 않은가?! 그리고 진짜 화장할 때 쓰는 휴지, 티슈는 Tissue, 종이 타올은 Paper Towel! 마지막으로 음식점에서 주로 쓰는 넵킨 Napkin!!

  여기서 혹자는 설마... 우리가 그럴라고... 하시겠지만... 자기가 휴대하고 있던 티슈가 두루마리 화장지와 별로 다르지 않다고, 같은 휴지라고 생각하지 않고 있는 사람 손?!

  이 둘의 차이는 하나는 물에 녹고 다른 하나는 물에 녹지 않아서 티슈를 화장실 변기에 버리고 물을 내리는 행위가 반복되면 조만간 그 변기는 막혀버리게 된다는 것이다.

  결국 화장실에 휴지통을 설치하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사람들이 화장지(물에 녹는 휴지)와 티슈나 타올(물에 녹지 않는 휴지)를 구분해서 사용하는가에 대한 여부인데... 이 부분이 일부 큰 도서관이나 시청, 지하철처럼 관리가 되는 곳에서는 가능하고 작은 도서관이나 주민센터에서는 관리가 되지 않기 때문에 불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다시 휴지통이 비치되고 휴지는 휴지통에 넣어달라고 크게 써붙여지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화장실에 비치된 화장지만 사용하면 변기에 버려도 되느냐? 미안한 말씀이지만 한국에서는 그렇지 않다.

  일단 영업용 화장실 문화가 휴지를 휴지통에 버리는 문화로 고착되었기 때문에 많은 영업점에서 물에 녹지 않는 두루마리 화장지를 화장실에 비치하고 있다. 해당 업주의 말을 들어 보면 물에 녹는 화장지가 그렇지 않은 화장지보다 더 비싸 비용절감을 목적으로 물에 녹지 않는 화장지를 비치하고 휴지통에 휴지를 버리도록 권고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독자들도 기억을 더듬어 보면 어떤 영업장에서는 그곳에서 사용하는 넵킨을 화장실에서 사용하라고 제공하는 곳도 있었다는 사실을 쉽게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사실 휴지가 물에 녹지 않는다면 넵킨이나 다를 바가 없기 때문에 넵킨도 구입하고 휴지도 구입할 바에에 넵킨만 구입해서 화장실에서도 사용하게 하는 것이 대량구매 할인도 받을 수 있는 일석이조가 아니었을까?!

  따라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바람직한 화장실 에티켓은 해당 장소에서 안내해 주는 대로 따르는 것이 되었다. 해당 업소가 화장지를 변기에 버리라고 하면 변기에 버리고, 휴지통을 버리라고 하면 휴지통에 버리고!

  물론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변기에 버리라고 안내하는 곳에서도 비치된 화장지가 아니라 본인이 가져간 휴지를 사용해야 한다면 그 휴지가 물에 녹는지 확신할 수 없다면 무조건 휴지통에 버려야 한다는 사실, 잊지 맙시다!

  그렇다면 한국에서는 영원히 화장실에서 더러운 휴지가 담겨 위생적으로 나빠 보이는 휴지통을 비치할 수 밖에 없단 말인가?

  사실 우리가 다양한 상황에서 사용하는 휴지의 이름을 명확히 구분해서 사용하고 화장실에서 사용하는 두루마리 화장지는 돈이 좀 들더라도 무조건 물에 녹는 재질로 만들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형성되면 우리도 화장실에서 위생적으로 휴지통을 없앨 수 있다. 다만 그것이 언제가 될지... 필자는 그것을 모르겠다.

2019년 11월 30일 토요일

일제 시대에 우리말을 단순화한 정책도, 그 영향도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일본이 저지른 무역분쟁으로 우리 국민이 시작한 불매운동이 성공적으라고 연일 보도되고 있다.

그런데 초기 불매운동과 함께 시작되었던 일본 식민지 문화 뿌리 뽑기 운동은 조국 대전의 소용돌이 속에서 사라진 것이 안타깝다.

사실 아직까지 우리의 일상 속에서 많은 용어가 아직도 일본 잔재이며 대학에 오면 대부분의 전공용어 번역어가 일본식 한자어이다.

그런데 그 보다 더 큰 문제가 있다고 필자는 본다. 그것은 바로 일제 시대 우리나라 언어가 단순화되었고 그 영향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일제시대에는 한국어가 일본어를 가르치고 일본어를 이해하는 도움이 되는 소리 말만 주로 사용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일본어와 우리말 모두에 있는 소리는 한국인들에게는 쉬운 소리들이 주요했고 그 쉬운 것들만 주로 사용되다 보니 단순화되었다는 주장이다. 혹은 일제가 그런 방식으로 한국어를 단순화시켰다고 한다.

혹은 일제시대에서 우리말을 사용하려면 눈치가 보여 입을 크게 움직이지 않고 몰래 이야기하다보니 이렇게 말소리가 단순화되는 방식으로 변화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에 대해 필자는 국립국어연구원은 어떤 입장인지 궁금하다.

우리 말이 단순화된 것은 안타까우나 이미 단순화된 것 어쩔 수 없으니 현재 우리에게 익숙한 소리만 계속 쓰자는 것이 그 공식적 입장인가?

아님 당시 없어진 소리를 찾아내고 복원하고자 하는 생각이나 의지가 존재하는가?

현재 우리말은 '내'와 '네'가 구분되지 않고 있어서 '네'는 '니'라고 발음하는 경향이 강하다. 아래 아 소리가 사라진 것은 옛말이고 거기에 외국어를 한국어로 옮길 때에도 소리를 제한하는 규정이 너무 많아 한국어가 더 단순화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 필자의 우려이다.

필자가 이런 노파심을 가지게 된 이유는 해방 후 독재정권 하에서도 말에 의해 국민의 마음이 움직인다고 외국어에 대해서 된소리를 사용하지 못하게 한 정책을 아직도 국립국어연구원이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니 왜 우리가 홍길동도 아닌데 민주주의 국가에서 씨티City를 씨티라고 부르지 못하고 시티라고 소리내야 하는가? 왜 국가가 이것을 강요하는가?

영어 원어민들은 이 한국인들의 발음을 어떻게 비하하는지 아는가? 바로 Shitty(시티)라고 발음한다며 낄낄거린다(South Park라는 미국 성인 만화 영화의 한 에피소드)

필자가 좀 더 걱정스러운 것은 이러한 우리나라 소리규제에 대한 역작용이다. 국립국어연구원이 S sound를 우리말 ㅅ 소리에 해당한다고 표준을 정해 놓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남이섬'을 NamiSeom이라고 쓰고 알고 있다.

남이섬을 광고하는 곳에서도 이렇게 쓸 것이다.

결국 그 역효과는 남이섬을 남이썸으로 읽게 되는 것이다. 왜? 영어가 더 쿨하니까!

과거 중국어가 공용어였을 때는 우리가 얼마나 중국발음 따라하려고 노력했겠는가? 일제시대를 살았던 대부분의 우리 부모,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일본말을 할 줄 알았다. 이제는 영어다. 현실을 부정하지 말자.

문제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표준에 대한 강박이다. 그리고 언어를 가지고 국민의 마음을 통제하고자 하는 일제시대의 전통을 이어받은 독재시대 마인드이다.

이렇게 해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우리말을 할 때 입을 크게 움직이지 않고도 말을 하기에 큰 무리가 없을 만큼 우리 언어가 단순화된다는 점 뿐이다. 그래서 복화술을 왠만하면 다 구사할 수 있고 음식을 입에 넣고도 이야기하는 문화가 우리 말의 다양함보다 더 중요하다는 말인가?

그와 더불어 그 역작용... 모든 된소리에 가까운 외국어 소리를 평음으로 강요하는 국립국어연구원의 패착은 먼 미래에 우리나라 말에서 된소리와 평소리의 구분이 사라지고 모든 소리가 된소리화 되어 국민의 마음이 아주 싸나와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제발 이제 우리가 이룩한 민주사회의 당연한 문화로서 다양함을 인정하자. 영어 단어는 영어 원음에 가깝게 우리 말로 옮기고 프랑스 단어는 프랑스어 원음에 가깝게 우리 말로 옮기고... 그 소리가 우리 말 어느 소리와 가깝든 그 소리를 규제하지 말고!!!

더 나아가 우리나라 말의 소리를 더 풍부하게 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현재 우리 말에서 아래 아 소리나 '내'와 '네' 소리 구분이 어렵듯이 한 번 잃어버리게 된 소리를 다시 찾기는 정말 어렵다. 그렇다면 이제부터라도 외국에서 소리를 적극 받아들여 우리말을 일제 시대 이전의 진정 세상의 모든 소리를 나타낼 수 있었을 것 같은 그 다양한 소리가 가능한 언어로 복원시킬 궁리를 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